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인간의 거리와 삶에 대한 사유
『래피의 사색』 저자 DJ 래피 인터뷰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말이 있습니다. 모든 움직임이 같지 않다는 것이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만 하고, 양이 차면 음이 올라오게 되는 게 세상 만물의 이치입니다. (2018. 07. 12)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것,
이는 도미노를 너무 멀리 떼어놓는 것과 같다.
그래서 하나의 도미노를 밀어도
다음 도미노에 닿지 못해 연쇄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늘 교류하며 사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삶의 활력소가 된다.
_본문 중에서
록 밴드에서 래퍼로, DJ로, 대학 교수로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해온 힙합 뮤지션 DJ 래피, 그의 인문학적 감성을 담은 일상에 대한 70가지의 이야기. 혼자 잘난 사람으로 살아가기보다 인간 플랫폼으로서 모두의 연결고리가 되고 싶다는 그는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인간의 거리와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헤픈 감성보다는 인문학적 통찰력을 통해 순간순간 일어났다 사라지는 마음의 움직임과, 같으면서도 다른 일상의 파편들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래퍼, 작곡가, DJ, 교수, 인문학 강연자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계신데 이제 작가라는 이름까지 하나 더 올리셨습니다. ‘아시아빅뉴스’에 연재한 칼럼을 모아 이번 책을 출간했다고 들었는데 칼럼을 연재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말이 있습니다. 모든 움직임이 같지 않다는 것이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만 하고, 양이 차면 음이 올라오게 되는 게 세상 만물의 이치입니다. 이 이치를 알고 나니 더는 삶에서 요란 떨지 않게 되고, 슬기로워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식(知識)의 ‘지’는 ‘알 지(知)’ 자이지만, 지혜(智慧)의 ‘지’는 ‘슬기 지(智)’ 자입니다. 지식과 지혜는 차원이 다릅니다. 앎이 앎으로만 그쳐서는 안 되고 앎을 ‘함’, 즉 실천으로 옮겨야 비로소 앎은 삶이 되지요. 앎에는 지식이 필요하지만, 삶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식은 바깥의 것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지만, 지혜는 안에 있던 것이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말하는 데에는 힘쓰고 행하는 데에는 게을리한다면, 비록 말을 잘한다고 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겠지요. 그래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쓰려면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면 보게 되고, 보면 잘 행하고 있는지 뉘우칠 수 있더라고요. 처음엔 SNS에 끄적대기 시작했는데, 평소 고향 후배이자 음악 내외적으로 동반자처럼 지내던 배드보스컴퍼니의 조재윤 대표가 ‘아시아빅뉴스’에 칼럼으로 연재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왔습니다. 부족한 글, 실어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요. 미끼를 덥석 물었다가 출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책으로 만들려면 연재한 칼럼들을 정리하고 가려 뽑는 작업을 했을 텐데요, 이 책의 주요 키워드는 무엇입니까?
큰 틀에서는 세 가지 키워드를 담고 있습니다. ‘세상 바라보기, 일상의 치유, 함께 살아가기’인데요, 실패는 우리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언젠가 우리는 반드시 누군가를, 무언가를 상실하는 경험을 합니다. 인생이란 마치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끝은 보이지 않고, 길을 잃기도 하며 신기루를 좇기도 하지요. 우리 인생의 많은 부분이 그 모습과 닮았습니다. 사막에서는 지도가 필요 없습니다. 모래언덕에는 이름이 없지요. 이름을 붙인다고 해도 그 모래언덕은 금세 사라지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분명한 지도와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 길은 웬만해서는 건너지 않으려 합니다. 눈에 보이는 탄탄하고 안전한 길만 걸으려고 합니다만, 인생에서 안전한 길이란 게 과연 존재하긴 하던가요?
이 세상은 기본적으로 복잡계이자 불확실성의 지배를 받습니다. 어떤 것도 정해진 게 없으며, 생각한 대로 잘 진행되지 않습니다. 하여 우리는 그 불확실성에 몸을 맡기고 일단 시작하고 실행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도가 없다면 마음속의 나침반을 따라서 일단 나서야 합니다.
저는 청소년 멘토링을 전문으로 하는 ‘달꿈’의 강사로도 일을 하고 있어서 평소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많은 강연을 하는데요, 아이들 속에서 직접 부딪히며 느꼈던 것들과 얘기해주고 싶었던 내용이 고스란히 제 칼럼의 글감으로 쓰였습니다.
텔레비전을 없앤 지 오래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대중음악과 텔레비전은 꽤 긴밀한 관계인데 대중음악가로서 텔레비전을 없애고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총명(聰明)이란 단어가 있지요? 이는 보통 지혜롭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실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총명이란 문자 그대로 ‘귀 밝고 눈 밝은 것’을 뜻합니다. 즉, ‘잘 듣고 잘 본다’는 뜻이지요. TV를 옆에 두고 있는 한, 화려함과 허상에 가려져 삶의 무늬들을 잘 듣고 잘 볼 수가 없겠더라고요. 저는 무늬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요, 천문(天文)이란 하늘의 무늬를 말합니다. 인문(人文)은 사람의 무늬입니다. 즉, 인문은 사람이 살아가는 꼴, 또는 살아가면서 남기는 무늬와 지니는 마음가짐이나 행동 규범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문학이란 곧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무늬를 그리고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저에게 음악이란 그 무늬를 그리는 수단 중의 하나인 거죠.
문화란 무엇인가요? ‘화(化)’란 사람(人)이 모양을 바꿔 다른 사람(匕)이 된다는 뜻을 합한 글자로 ‘되다’를 뜻합니다. 문화는 ‘무늬가 되다’, ‘무늬를 바꾸다’ 또는 ‘무늬를 가르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문화라는 것은 무늬를 바꾸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저에게 무늬를 바꾸는 수단은 예술이고, 예술은 감정을 표현하는 일입니다. 누군가에겐 TV가 그 일에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TV가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TV를 버리고 책을 선택했는데, 그러고 나니 예술 활동에도 더 도움이 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를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남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나를 제대로 볼 수 있어야 남의 모습이 바르게 보입니다. 나를 제대로 알아야 세상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상처를 알아야 남의 상처도 위로할 수 있습니다. 나를 헤아리기 위해서 TV를 버렸고, 읽기 시작했고, 쓰기 시작했고, 뉘우치기 위해서 계속 써나갔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전부터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건가요, 아니면 인문학에 빠져들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가 생긴 건가요?
활자 중독자가 되면서부터 길가에 핀 꽃이 아름답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행복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행복이란 글자를 한번 볼까요? ‘행(幸)’은 ‘夭(요, 일찍 죽다)’와 ‘逆(역, 거역하다)’의 합자입니다. ‘복(福)’은 제사(示) 지낼 때 쓰는 술과 음식(豊)입니다. 그래서 제사 지낸 음식을 먹는 것을 ‘음복’이라고 표현하지요. 그러므로 결국 일찍 죽지 않고 함께 나눌 만큼의 술과 음식만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입니다.
행복에 대한 관점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나 봅니다. 에피쿠로스도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평온한 삶(Ataraxia)’,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했거든요. 행복은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우정과 인간관계입니다. 역사적으로 탁월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 커다란 역경을 극복한 사람들, 또 자기 삶에 높은 만족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이들을 신뢰하고 지지하며 사랑해주는 친밀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결국 운이고, 운이 결국 사람입니다. 저는 자신의 성공을 말할 때 운을 제일 먼저 들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성공에 운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아는 게 당연하지요. 동양 철학의 최고 경전인 『역경』 의 핵심도 음, 양 그리고 천, 지, 인(시간, 장소, 사람)입니다. 행복과 사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래피의 사색』 은 일반적인 감성 에세이와 조금 다른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글에 인용된 다양한 동양 고전과 고사성어 등을 보면서 ‘말랑말랑한 가벼운 에세이는 아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글이 가벼운 듯하면서도 진지하고 어두운 듯하면서도 밝습니다. 유튜브에서 동양 철학도 강의하시잖아요, 이러한 글의 분위기와 흐름은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중용의 도’와도 관련이 있을까요?
저는 동양 철학의 경전 중 『역경』, 즉 『주역』에 심취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급기야는 유튜브에서 『주역』 강의까지 할 정도입니다. 동양 철학의 경전을 말하자면 반드시 사서삼경을 거쳐야 하는데요,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서경』, 『역경』이 바로 그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하여 『중용』 역시 제 철학적 관점에 크게 자리하는 부분입니다. 잘 물든 단풍처럼 늙어가면 삶이 서글프지 않습니다. 아무리 꽃이 예뻐도 떨어지고 나면 아무도 주워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 물든 단풍은 책 속에 꽂아서 오래 보관합니다. 아름답게 물들려면 지나침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중용(中庸)’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잘 모릅니다. 중용은 치우치지 않고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 즉 역동적이며 지속적인 평형입니다. 때로는 나아가고 때로는 물러설 줄 아는 것 역시 중용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계속 변화합니다. 그 변화를 인정하고 그 변화에 맞춰 정확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 역시 중용입니다. 《중용》 15장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군자의 도는 비유컨대 먼 곳을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고, 높은 곳을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함과 같다.”
어떠한 일도 어느 날 갑자기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반드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도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요. 초심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조급하게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사람치고 어떤 분야에서든 고수나 거장이 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제 삶의 모토 중 하나는 안단테 콘모토(Andante con moto)입니다. 느리게, 그러나 활기차게. 저는 느리게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뒤로는 가지 않습니다.
책에서 흥미로웠던 단어가 ‘늧’이었습니다. 순우리말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는데 사전을 보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 일의 근원. 또는 먼저 보이는 빌미’라고 되어 있습니다. ‘늧’이란 무엇이고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좀 더 설명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저는 그것을 약간 응용해서 늧력자라는 말도 만들어 쓰기도 합니다. 늧력자는 말 그대로 늧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뜻이죠. 늧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 일의 근원, 또는 먼저 보이는 빌미를 뜻하는 우리말입니다. 어떤 일의 ‘조짐, 기미, 낌새’ 등으로 생각해도 됩니다. 인생에서 늧이 사나운 사람이나 일을 만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지요. 항상 좋은 일만 생기고, 항상 내 뜻대로만 흘러가는 인생이 있던가요?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일이 생길 때는 어떤 자세로 맞아야 하며, 나쁜 일이 생길 때는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의 길잡이가 되어 모든 일에 올바름을 잃지 않게 해주는 중용의 출발이 바로 늧입니다. 늧바람(늧에 대한 바람(Wish)), 그것이 바로 제가 늘 읽고 쓰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좋든 싫든 끝없이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자신에게 있습니다. 늧을 미리 알아채지 못함도 잘못이라면 잘못이지요. 그럴 때, 남을 탓해서는 도움 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짜증만 더 날 뿐이고 절망만 커져가고, 싸움만 커져갈 뿐입니다. 하여 우리는 늧을 파악하는 능력을 지녀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늧, 일에 대한 늧.
뮤지션에서 작가로 새로운 길에 들어서셨는데 자신에게 책이란 무엇입니까? 그리고 구상하고 있는 다음 책이 있다면 조금 들려주십시오.
말씀드렸듯이, 늧바람, 그것이 바로 제가 늘 읽고 쓰는 이유입니다. 늧바람은 마치 비가 오기 전 우산을 준비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비가 오고 안 오고는 자신이 결정할 수 없지요. 하지만 비를 맞고 안 맞고는 내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비를 굳이 맞을 이유가 있을까요? 그냥 처마 밑에서 그 비가 지나가기를 잠시 기다리거나 우산을 펼치면 됩니다.
『래피의 사색』 은 시리즈별로 지속적으로 발간할 예정이고요, 현재 동양 철학 『역경(주역)』 해설서를 준비 중입니다. 행복이 영원하지 않듯이 불행 또한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전략을 바꿔야 합니다. 하늘에 대고 비를 내리지 말아 달라고 바랄 것이 아니라 비를 피하는 지혜, 또는 우산을 펼칠 수 있는 지혜를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비를 오지 않게, 또는 그치게 할 수는 없지만 비를 막거나 피할 수는 있습니다. 비를 맞을 것이냐 피할 것이냐는 하늘의 뜻이 아닌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늧의 철학으로 풀어낸 동양 철학 해설서,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래피의 사색DJ 래피 저 | 더스토리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동양 고전에 대한 편견을 깨고 오히려 글이 감성 과잉으로 흐리지 않게 잡아주고 있다. 감성을 자극하는 사진들도 글을 읽는 동안 깊은 사유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끌어준다.
관련태그: 래피의 사색, DJ 래피, 인간의 거리, 인문학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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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일상에 대한 과감하고 예리한 사유! 음악하며 글 쓰는 DJ 래피의 익숙한 세상 깨기! 프리스타일 랩 대회에서 우승한 힙합 뮤지션인 저자는 9년째 [김창열의 올드 스쿨]에서 ‘래피의 드라이브 뮤직’ 코너를 진행하는 DJ이자 작곡가이다. 록 밴드에서 래퍼로, DJ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