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욱 “벼랑 끝에서 더 잘할 수 있었어요”
청소년 에세이 『열정을 만나는 시간』 펴내
저는 절벽에 서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했던 것 같아요. 절벽에 서 있지 않았다면 딴 짓을 했겠죠. 먹고 살기 위해서 다른 일을 알아볼 수도 있었을 텐데,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2018. 02. 09)
『아주 특별한 우리 형』 , 『가방 들어주는 아이』 ,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의 고정욱 작가가 청소년 에세이 『열정을 만나는 시간』 을 펴냈다. 270권 이상의 저서, 연 300회 이상의 강연을 통해서도 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작가 스스로 “홀딱 벗은 느낌”이 든다고 말할 정도로 가감 없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하여, 『열정을 만나는 시간』 은 ‘고정욱을 만나는 시간’이라 할 만하다. 고정욱과 열정이 등치되는 것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열정을 빼놓고는 그가 살아낸 시간을 말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았던 그는 1급 지체장애인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 등하교를 해야 했고, 의사가 되어 장애인을 돕고 싶었던 꿈은 “장애인은 의학을 전공할 수 없다”는 말 앞에 좌절됐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며 작가의 꿈을 키웠지만 등단까지 12년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정욱은 “휠체어 탄 통쾌한 사나이”가 됐다. 비장애인과 함께 공부하며 박사 학위를 받았고, 등단 이후 매년 10여 권 이상을 집필할 만큼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어지지 않은 것 앞에서 좌절하기보다 이룰 수 있는 것에 치열하게 매달린 결과다. 어렵게 얻은 결실이건만 독식하지 않는다. 꾸준히 인세를 기부하며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고 실현하고 있다.
어쩌면 작가란 사람들이 좀처럼 보지 못하는 세상을 발굴해 보여주는 존재다. 고정욱 작가도 그러하다. 그의 작품에는 장애를 가진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안에서 비장애인들은 지금껏 눈여겨보지 않았던 이들의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자신의 것보다 더 강하게 빛나는 “형형한 삶의 의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한 경험은 『열정을 만나는 시간』 에서도 이어진다.
홀딱 벗은 느낌이 들어요
이번 책에는 기존에 쓰신 에세이와 새로운 글들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작가들은 원고 청탁을 받는 일이 많아요. 그때마다 써서 발표한 글들을 많이 모아놨어요. 그 중에서 시대에 맞춰서 추려내기도 했고, 편집팀의 요청을 받고 쓴 글도 있어요. 사실 공로의 반은 편집팀에 있어요. 무작위로 써 놓은 원고 중에서 감동적인 걸 골라내고 엮은 건 다 편집팀의 노력이니까요. 저는 편집하는 권한을 굉장히 존중해요. 그 분들이 최고의 고급 독자들이잖아요. 그 분들의 시각과 의견은 거의 다 따르는 편이에요. 그게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청소년 독자들이 많이 찾는 책이 될 것 같아요.
요즘에는 대상 독자의 의미가 크지는 않지만, 일단은 청소년 독자들을 대상으로 생각했죠. 제가 청소년기에 어떻게 성장했는지 이야기해주고 싶었고요. 강연을 가면 한두 시간 밖에 이야기를 못하잖아요. 다 못 한 이야기들을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데, 물론 질문 시간에 말하기도 하지만 다 대답을 해주지는 못해요. 그래서 이런 책을 통해서 조금 더 깊이 저를 알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게 된 책이기도 한데요. 홀딱 벗은 느낌이 들어요. 꺼풀이 많이 벗겨졌다고 할까요. 제 본 모습에 다가가는 책이 된 것 같아요.
기대하시는 독자들의 반응도 있나요?
마음에 울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하게 제 이야기를 했을 때 사람들이 감동 받는 걸 보면 ‘내 삶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구나, 그런데 참 잘 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책을 통해서 남들에게 이야기할 정도까지 됐다는 게,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죠. 보통은 자신의 아픔을 잘 드러내지 않잖아요. 아픔을 뛰어넘을 정도의 자신감이나 능력이 있는 사람만 드러내지, 그 안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잘 이야기 안 하죠. 그런 걸 볼 때 ‘이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컸다는 거구나’ 싶어서 스스로에 대한 기특함도 느껴지고요. 더 성장해야겠다는 각오도 하게 돼요.
『열정을 만나는 시간』 이 몇 번째 책이죠?
274권 째 책이에요.
다작의 비결이 있을까요?
이야기가 생각나면 휴대폰 음성인식 기능을 이용해서 녹음이나 입력을 해요. 그런 테크닉을 가지고 있다는 게 하나의 요소고요. 두 번째로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독서와 경험을 쌓은 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 이과였거든요. 자연과학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대학교 때부터 문과 공부를 하면서 또 다른 세계관도 갖게 됐죠. 그리고 장애가 갖고 있는 아픔과 갈망이 있죠. 그 모든 것들이 제 안에서 융복합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작은 실마리만 있어도 거기에 이야기들이 막 붙어요. 나도 모르게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거죠. 녹음을 하는 것도 그래서예요. 손으로 쓰려고 하면 이미 늦거든요. 떠오르는 생각을 말로 풀어놓는 건데, 나중에 보면 이야기가 어마어마하게 나와요.
장애가 가져다 준 갈망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사회가 준 편견과 차별의 아픔 때문에 생긴 갈망이죠. 예를 들면 너는 수학여행 가지 마라, 너는 의대에 가지 마라, 그런 아픔들이 갈망을 준 거죠. 공부하고 싶다, 작가가 되고 싶다, 결혼하고 싶다, 아이를 낳고 싶다, 그런 갈망을 갖게 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할 이야기들이 되게 많아진 거죠.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의 갈망, 고통, 아픔 같은 것들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거고요. 제가 작가로서는 굉장히 혜택 받은 사람이에요. 아픔도 있고,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아울렀고, 책도 많이 읽었고, 신기술도 장착했잖아요. 그러니까 많이 쓸 수밖에 없는 거예요.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은 거죠.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굉장히 행복한 사람이죠. 결론적으로는 불행을 코스프레하는 거죠. 가끔 지적 장애인 엄마들을 만날 때가 있어요. 그 아이들은 말을 잘 하지 못하니까 저는 엄마들과 대화를 나누죠. 그러다가 제가 ‘어머니, 저도 장애인이에요’라고 말하면 그 분들이 ‘선생님이 무슨 장애인이에요?’ 그래요. 장가도 갔고, 공부도 다 했고, 돈도 잘 벌고, 신나게 살고 있는데 뭐가 장애인이냐고요. 걷지 못한다고 하지만 휠체어 타고 차 타고 다 다니잖아요. 그러면 제가 ‘맞아요, 제가 장애인인 척 했네요’ 그래요. 할 말이 없어요. 그 분들이 말씀하시길 ‘우리 아이는 엄마가 누군지도 몰라요, 내가 매일 데리고 있는데도요’ 하세요. ‘내가 죽으면 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요. 이런 애가 장애인 아니에요?’ 하시죠. 맞는 말씀이에요. 저는 장애인 코스프레하고 다니는 거죠. 장애가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예요. 스스로 강해지고 멋있는 삶을 사는 건 장애와는 별개라는 거죠.
작품을 통해서 이루고 싶으신 일들 중 하나가 그게 아닐까 싶어요.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을 부수고 제도를 개선하는 데 이바지하고 싶으시죠?
어렸을 때는 장애의 아픔을 겪으면서 ‘내가 왜 장애인이 됐나’ 원망하기도 했어요. 나 자신을 원망하고, 하늘을 원망하고, 운명을 원망하고 저주했었어요. 그런데 작가가 돼서 작품을 쓰고 강연도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내 작품을 사랑해주고 찾아줬을까, 싶은 거죠. 역으로 생각하면 제가 장애인이라서 이렇게 된 거잖아요. 거기에 내가 장애인이 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없애라는 사명을 띠고 이 땅에 장애인으로 태어난 거구나’ 싶었죠. 숨기고 싶었던 장애가 널리 드러내야 할 빛나는 보석이 된 거예요. 그런 묘한 경험을 하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할 수 있다는 거고요. 쥐구멍에도 볕들 수 있다는 거예요.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낼 수도 있고요.
서문에서 말씀하신 “통쾌한 순간”이군요.
통쾌함이죠. 저는 통쾌하게 살고 있는 거예요. 누구도 안 가본 길을 가니까요. 항상 그런 당당함과 자신감으로 살고 있습니다.
실제로 뵈니까 정말 밝고 열정적인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을 읽으면서, 그 안의 수많은 인물들을 보면서 배운 거예요. 장애를 가졌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서 배운 거죠. 부모님이 잘 길러주신 덕도 있고요. 남들과 똑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공부를 하고 경쟁을 거쳐냈기 때문에 당당해질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당당하게 내 힘으로 해낸 거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더불어 사는 세상’이 바로 그런 거예요. 장애인도 똑같은 기회를 가지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애인이 우울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을 빨리 만들고 싶어요. 제가 할 일은 조금 더 밝고 당당하고 명랑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절벽에 서 있었기 때문에 더 잘한 것 같아요
집필 속도도 굉장히 빠르시더라고요. 『가방 들어주는 아이』 는 한 시간 만에 쓰셨다면서요?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침대 머리맡에서 해준 이야기예요. ‘아빠가 어렸을 때 가방 들어주던 아이의 이야기를 해줄게’ 하고 녹음기를 켜놓고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걸 동화로 옮겨 적은 거죠. 나중에 알게 된 건데, 가수나 작곡가들도 짧은 순간에 떠올라서 작곡한 곡들 중에서 빅히트 친 게 많대요. 1~2년씩 멜로디를 다듬었다고 해서 대박나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작가들에게는 하늘의 문이 가끔 열린다’고 표현해요. 그때 잽싸게 하늘에 있는 보화를 빼 와야 돼요. 『가방 들어주는 아이』 도 그렇게 빼온 거라고 할 수 있죠.
『가방 들어주는 아이』 이야기를 하자면, MBC 프로그램 <느낌표>를 빼놓을 수가 없어요.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의 선정도서가 됐었잖아요. 그때 방송의 영향이 엄청났었죠?
엄청났죠. 우리나라 동화책 중에 거의 유일하게 100만 권 넘게 판매가 됐어요. 저의 인생을 바꿔준 책이 됐죠. 기부의 기쁨을 알게 해줬고, 동화책을 쓰는 보람을 느끼게 해줬으니까요.
판매 수익을 ‘기적의 도서관’ 건립에 기부하셨죠?
그렇죠. 두 달 동안 판매된 수익이었어요. 인세를 거의 1억 원 가까이 기부했어요. 너무 기뻤죠.
이후에도 계속 나눔을 실천해 오셨어요. 인세를 기부하신 책이 스무 권 이상 되죠?
지금쯤 서른 권이 넘었을 거예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나눠서 계속 기부하고 있어요.
그래도 사람인지라(웃음), 때로는 아깝다는 생각이 드실 법도 한데요.
기부할 때는 계약서에 써놔요. 인세 중의 일부를 어느 기관에 줘야 하는지 적어놓는 거죠. 그 기관도 출판사와 계약하는 거예요. 출판사는 두 명의 계약자에게 인세를 나눠서 주고요. 저를 거쳐서 돈이 전달되지 않으니까, 돈이 빠져나간다는 느낌이 별로 없어요. 그렇게 해야 제가 신경을 안 써도 되죠. 좋은 일 하는데 일일이 찾아 다니면서 티 낼 필요 없잖아요. 자동으로 기부가 되면 되는 거죠. 저도 조금 바쁜 사람이에요(웃음). 일일이 신경 못 써요(웃음).
『희망을 주는 암 탐지견 삐삐』 는 인세 전액을 기부하셨더라고요. 2차 저작권, 번역권까지 넘겨주셨고요.
모든 권리를 통째로 줘버렸죠. 재능으로 봉사하고 기부한 거예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에요.
괜찮아요, 저는 작품을 많이 써서(웃음). 비유하자면 빌딩을 200채 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한 채 줄 수도 있지 않겠어요? 한 채 밖에 없으면 못 주겠지만요(웃음).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셨어요. 등단까지 12년이 걸리셨죠?
그렇죠.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작가의 꿈을 가졌으니까요.
포기할 법도 한 세월 아닌가요?
거의 포기했죠. 대학원 다닐 때는 더 그랬어요. 박사 과정 들어가면서 공부하기 바빴으니까요. 사실은 등단도 얼떨결에 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박사 논문을 쓰는데, 계속 논문만 쳐다보고 있으니까 너무 답답한 거예요. 그러다가 어느 날 신문에서 신춘문예 공고를 봤어요. 써 놓은 작품들은 많이 있었으니까, 그 중에 하나를 골라서 다듬어가지고 보내보자고 생각했죠. 논문 쓰다가 머리가 복잡해지면 그때마다 조금씩 다듬었어요. 작품을 고치는 게 일종의 리프레쉬(refresh) 용이었던 거죠. 그런데 그 작품이 당선된 거예요.
당선은 기대 안 하셨던 거예요?
네, 전혀. 잊어버리고 있을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박사 논문 심사가 막바지에 다다라서 한창 열심히 하고 있는데 신문사에서 전화가 온 거예요. 당선됐다고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치열하게 작가 생활하고 있는 거예요.
10년 이상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게 대단한 것 같아요.
공부하고 글 쓰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어요. 취직을 할 수도 없잖아요. 저는 절벽에 서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했던 것 같아요. 절벽에 서 있지 않았다면 딴 짓을 했겠죠. 먹고 살기 위해서 다른 일을 알아볼 수도 있었을 텐데,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글과 논문 쓰는 것밖에 없구나, 이거나 열심히 하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하고 생각했던 거죠. 하다 보니까 결과가 좋게 나왔고, 그래서 지금까지 한 사람의 가장으로 살 수 있게 된 거예요.
주로 청소년 소설과 동화를 집필하셨어요.
원래 소설로 등단했는데, 1999년에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을 쓰면서 직업이 동화 작가로 바뀌었죠. 그 뒤로 20년 가까이 동화를 쓰는데, 한 5년 전부터는 시장에 변화가 생겼어요. 아동물 시장이 많이 위축되고, 출산율도 낮아지고. 그래서 지금은 주 직업이 강사처럼 되어버렸어요. 강의를 많이 하고, 작품도 쓰고 있죠. 살면서 5개 정도의 직업을 가졌던 것 같은데요. 저는 그걸 굉장히 긍정적으로 봐요. ‘내가 비록 장애가 있지만 오히려 비장애인보다 더 탄력적이고 변화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 새로운 기회가 오면 새롭게 변신하자고 늘 마음 먹고 있어요.
동화 작가가 되신 데에는 자녀들의 영향도 있었죠?
거의 100%죠.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들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때가 20년 전이니까 아동물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을 때였거든요. 서양 동화들을 어설프게 번역한 작품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읽을 동화는 내가 써야겠다’ 싶었어요. 원래는 한 편 정도 쓸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쓴 작품이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인데 반응이 좋았죠. 출판사에서 다음 작품에 대한 요청이 들어왔어요. 『안내견 탄실이』 ,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의 일기』 , 『가방 들어주는 아이』 가 다 그랬어요. 독자들이 많이 좋아해주시니까 출판사에서 계속 다음 작품을 써달라고 한 거예요. 그런 시기가 5~6년 이어지니까 이제는 소설을 쓸 수가 없는 거예요. 동화 작가로 직업이 변한 거죠.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소설도 쓰실 계획인가요?
나중에 쓸 생각이에요. 시장이 무르익고 쓸 내용이 생기면. 예전의 동원그룹의 김재철 회장이 한 이야기가 있어요. 저한테 아주 와 닿았는데 ‘본업을 버리면 망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본업만 해도 망한다’는 말도 했어요. 본업은 절대 버리지 않으면서 다양한 분야의 기회가 올 때는 해야 된다는 의미죠. 사업도 그럴진대, 작가는 더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뭐든지 기회가 오면 해보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30년 가까이 작가로서 독자들을 만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 명의 친구만 있어도 장애인은 죽지 않아요
강연 현장에서 아이들과 많이 만나시는데요. 최근의 독서 실태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몇 천 권씩 읽던 아이들이 중학교 이후부터는 독해력이 조금 떨어지지 않나요? 스마트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대부분은 그런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해력 좋은, 책 많이 읽은 똑똑한 아이들도 많아요. 글을 쓰거나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걸 보면 기가 막힐 정도의 아이들도 분명히 있어요. 모든 아이들을 일반화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는데, 전반적으로는 아이들의 독서 능력이 떨어지고 스마트폰을 좋아하는 게 문제이긴 하죠. 그건 세계적인 추세예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이야기해요. ‘세계적인 문제라면 어쩔 수 없지만, 이걸 기회로 이용할 수는 있다’고요. 예전에 저희 어릴 때는 모두가 책을 읽었거든요. 웬만큼 똑똑하지 않으면 두각을 나타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만 책을 읽으면 똑똑한 아이가 될 수 있어요. 책을 안 읽는 아이들이 많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오히려 지금이 찬스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읽을거리도 많고, 좋은 책도 많잖아요. 책을 사서 보기도 쉽고요. 도서관도 많죠. 읽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강연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면서요? 대학은 ‘들이대’를 나와야 한다고요(웃음).
그렇죠. 세계에서 제일 좋은 대학이에요. 비장애인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고요. 항상 독자들에게 ‘여러분 들이댑시다’라고 말해요. 들이댄다는 건 나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이지만, 내가 상대방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고등학교 이름도 있던데요?
‘아니면말고’ 예요. 들이대 보고 안 되면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생각하라는 거죠. 그러려면 실력을 쌓아야 되니까 중학교는 ‘열공중’을 나와야 돼요. 실력이 있어야 어디를 가더라도 능력을 보여줄 수 있잖아요. 초등학교는 ‘인동초’예요. 고통을 이겨내는 힘,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길러야 된다는 거죠.
자녀들의 책 읽기는 어떻게 지도하셨어요? 책 읽으라는 잔소리는 안 하셨나요?
별로 안 했어요. 책은 읽으라고 말해서 읽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항상 책만 읽고 있어도 아이들은 안 읽을 때도 많았어요. 그래도 책 읽으라고 하지 않았어요. 다른 일을 하겠다고 하면 그걸 하라고 했지, 간섭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저는 읽지 말라고 해도 읽었거든요. 그런 거죠. 읽고 싶으면 읽는 거예요. 책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한테 압력을 가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번 책에 막내 따님과의 일화도 실려 있는데, 읽는 동안 마음이 아팠어요. 아빠가 가진 장애에 대해서 아이에게 설명하셔야 했잖아요.
그게 참 가슴 아픈 이야기 중에 하나예요. 제 삶에서.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집 밖에서 장애를 가진 아빠로 인해 겪은 일도 많았을 텐데, 저한테 다 이야기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가끔 조금이나마 들을 때가 있는데, 들어보면 굉장히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았더라고요. 그런데 아이들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저도 물어보지 않았죠. 그냥 넘어간 거예요. 이야기 해봐야 나아지는 게 없으니까요. 그런 이야기를 한 마디씩 들으면 작품의 소재가 되는 거죠.
그런 작품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무심코 하는 말 중에 차별이 담겨있는, 폭력적인 것들도 있잖아요.
그렇죠. 그런 부분들을 계속 작품으로 쓰고 있어요.
잘못인 줄 몰라서 계속 반복하는 말들도 있죠.
그래서 알려줘야 돼요. 저는 그런 사명을 가지고 있어요. 이번 책도 그래서 낸 거예요. 읽다 보면 장애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열정적으로 사는지를 보고 배울 수 있잖아요. 자신도 그런 열정을 본받을 수 있고요. 덩달아서 장애에 대해서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조금은 영양가 있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글은 쓰지 않겠다”고 결심하셨다고요. 작가로서 지키고 있는 또 다른 원칙이 있을까요?
글쎄요. 원칙이라기보다 조금은 교훈을 주는 책을 쓰고 싶어요. 읽고 나면 뭔가가 남는 책, 교훈이 있는 책을 쓰고 싶어요. 잘못 이야기하면 꼰대처럼 보일 수 있는데, 작가에게는 약간 그런 기질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도 들고요. 제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깨달음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오로지 재미만 주는 작품도 틀린 건 아니지만, 저는 재미 안에 삶의 깨달음을 담아내고 싶어요.
사인하실 때마다 ‘장애인의 친구가 돼주세요’라고 쓰시죠?
장애인에게 있어서 친구는 재활 수단이기도 하고요, 멘토이기도 해요. 장애인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가 친구예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함께 강남에도 갈 수 있죠. 함께 싸워줄 수도 있고요. 친구 하나만 있으면 그 장애인은 절대 죽지 않아요. 목마르면 친구가 물 떠다 줄 수 있고, 영화 보러 가면 친구가 데려가 줄 수 있잖아요. 여행 가자고 하면 같이 가주고요. 그건 국가 시스템으로 할 수 없어요. 시스템의 빈틈을 메우는 건 가족과 친구예요. 그래서 제가 장애인의 친구가 되어달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장애인 한 사람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어 달라는 거죠. 꼭 장애인과 친구가 되세요.
더 나이가 든 뒤에 자서전을 쓰고 싶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더 늙으면 쓰고 싶어요. 조금 더 많은 걸 이루고 나서요. 장애인이 완전히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든 다음에 써야죠. 아직은 이룬 게 별로 없어요. 모자라요. 더 영향력을 키우고, 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시점이 됐을 때 써야죠.
왜요?
선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선한 영향을 미치고 싶어요.
열정을 만나는 시간고정욱 저 | 특별한서재
쇼윈도를 지날 때 다리가 흐느적대는 모습이 보기 싫어 외면했고, 죽고 싶었다, 울고 싶었다 등의 솔직한 표현들로 무너지는 그의 민낯을 그대로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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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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