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특집] 유현준 “알아두면 쓸모 있는 공간 이야기”
<월간 채널예스> 2월호 특집
공간의 단절은 소통을 막고 뺨으로 느끼는 공기 없인 제대로 숨 쉴 수 없다. 열린 공간, 마음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공간을 예찬하는 tvN <알쓸신잡>의 건축가 유현준의 말이 소중한 이유다. (2018. 02. 05)
좋은 건축이란 사람 사이의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교수님이 경험했던 도시에서 이 기능에 가장 부합한 건축물을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저한테 많은 가르침을 준 거리가 보스턴의 뉴베리스트리트예요. 간척사업으로 만든 땅이라 건물을 반 층쯤 들어서 지었어요. 계단을 한 8개쯤 올라가서 1층을 만들었는데 우리로 치면 반지하가 있는 거죠. 그 거리가 주택으로 있다가 상업가로 변형이 되면서 재미난 시도를 한 것이 반지하 아래 선큰을 파서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만들었어요. 선큰에 앉아 차를 마시는 사람, 1층 서점에서 책을 읽는 사람, 거리를 걷는 사람 다양한 시점이 공존하고 또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 참 좋아요.
도시인들은 매일 일상의 건축물인 집과 사무실이 있는 일터, 공공의 건축물을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각각의 공간이 꼭 갖추었으면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사적인 외부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게 불가능 하다면 아파트의 테라스나 발코니 같은 곳이라도요. 우리나라는 발코니 확장법이라는 게 있는데, 이것 때문에 발코니를 다 실내 공간으로 만들었잖아요. 일터도 비슷해요. 역시 외부 공간이 부족해요. 일 하다가 바깥 공기를 쐬고 싶으면 갈 수 있는 곳이 옥상 밖에 없잖아요.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자연을 만나는 곳이 거의 없어요. 그런 공간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공공의 공간은 어떨까요?
공공 건축은 다른 거 없는 거 같아요. 접근성이 좋아야 해요. 우리 나라는 공공 건물이 너무 커요. 예를 들어 국립 도서관이 있다고 하면 ‘백만 권의 장서가 보관되어 있다’ 이라면서 사이즈를 점점 키우잖아요. 하지만 접근성 없이 백만 권짜리 장서가 있는 도서관 보다 10만 권짜리 10개가 분산 되어 있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아요. 공공건축물이라는 건 작게 쪼개져서 우리의 실생활 속에 침투를 해야 의미가 생기잖아요.
사적인 외부 공간이 공간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요?
인간은 유전적으로 자연 속에서 진화돼 온 동물이거든요. 자연을 만나는 외부 공간이 없다는 건 유전적으로도 말이 안되는 것 같아요. 자연은 1년 열두 달 변하잖아요. 계절과 날씨와 해의 입사각도 달라지고. 근데 그런 게 없는 실내 공간에서만 산다는 건 변화가 부족한 데서 산다는 얘기고, 변화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스마트폰을 더 많이 쳐다보고, 텔레비전을 더 많이 보고, 사람끼리 단절이 되는 거죠. 그만큼 서로의 다양성도 인정해주지 않고요. 제가 볼 땐 대한민국 사회가 자연과 분리되어 산 게 20~30년 밖에 안되는 거 같은데 좀 개선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집 공간에서 달라졌으면 하는 건 없나요?
방에서 거실 쪽으로 창문을 뚫었으면 좋겠어요. 이게 가족을 더 행복하게 하고 집도 더 넓어 보이게 하는 손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안방에 있는데 거실 쪽으로 창문이 있어서 그걸 열어 놓으면 5평짜리 안방인데 거실이 10평이면 15평으로 보일 거 아니에요. 심리적으로도 그런데 시각적으론 연결 되어 있지만 몸은 못 가잖아요. 완전히 단절되지도 완전히 오픈 되지도 않은 채 다른 가족과 느슨한 연결 관계를 주죠.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를 보면 르 코르뷔지에의 파리 설계를 예로 들며 “자연을 바라보는 대상으로만 이해했을 때 건축 디자인은 실패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공간을 설계할 때 자연을 체험의 대상으로 바꾸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게 바로 발코니, 테라스, 좁은 마당, 이런 것들이에요. 대문을 열고 나가지 않더라도 바깥 공기와 햇볕을 쬘 수 있는 공간을 가진 삶이 훨씬 더 퀄리티 있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가려주는 공간도 필요하겠죠?
그렇죠. 가벽 같은 거라도 세워서 가려줘야 사생활보장이 되니까요. 그런 걸 굉장히 잘 한 사람이 안도 다다오에요. 야외공간인데 거의 실내공간처럼 벽에 둘러 싸인 공간을 잘 만드는 건축가죠. 그의 교회도 좋아하고 주택도 좋아하는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정말 기가 막히게 풀어 논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건축가가 안도 다다오인가요?
학부 때는 안도 다다오 굉장히 좋아했고요. 대학원 가서는 루이스 칸을 제일 좋아했어요. 루이스 칸의 건축은 연구실이건 도서관이건 딱 들어가면 사람을 영적인 상태로 만들거든요. 솔크 연구소라고 태평양 지역에 있는데 서 있으면 자연과 나 둘만 존재한다는 느낌을 줘요. 그가 지은 도서관도 천장의 아치에서 떨어지는 빛 때문에 위를 올려다보는 순간 성당 안에 있는 것 같죠.
공간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공간을 만든다는 관점에서 지금의 주거 형태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뭐가 있을까요?
가장 큰 건 소통이 단절되는 거죠. 도시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자기랑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할 때 생각의 시너지가 생기는 거예요. 저는 대한민국의 근대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진 이유 중 하나가 다 서울로 상경해서라고 보거든요. 전라도 광주 사람이랑 대구 경북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서울에 올라와 살면서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얘기하고 그러면서 다양한 시너지가 발생한 거라고요.
집 볼 때 가장 중요하게 볼 건 뭘까요?
채광과 통풍이죠. 하하. 채광 좋고 통풍 잘되고 건축의 기본이라고 봐요. 언젠가 풍수지리 전문가와 얘기를 나눠 본 적이 있는데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어떤 공간에 가서 “기분 좋으면 된 거다”라고요. 산을 배경 삼고 눈 앞에 물이 흐르고 볕 좋고 시원하면 누구나 기분 좋잖아요. 사실 제가 관심 있어 하는 건 인간의 본능, 공통점이에요. 그걸 만족시켜 주는 것이 좋은 건축이고요. 인종과 시대를 떠나서 공통분모를 건드려 주는 건축이 100년 뒤 천 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건축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안도 다다오나 루이스 칸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들이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에 답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거든요.
건축가가 되길 잘 했다고 생각하나요?
그럼요. 내가 하는 모든 경험을 하나로 응집시켜서 열매를 거둘 수 있는 직업 중 하나거든요. 공간을 설계할 때 다양한 상상과 종합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제가 살아서 경험하는 모든 게 거기에 녹아 들고 영향을 미쳐요.
자신의 삶 전체를 일로 응집시켜 결과물을 내는 건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 분야가 뭐가 되든지 간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인간하고 연동되기 시작했다는 거 같아요. 사람이 중심이 된 거죠. 법을 하든 금융을 하든 뭘 하든 그 중심에 사람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내가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체험이 거기 들어갈 수 밖에 없어요.
공간에 대한 통찰, 공간을 이해했을 때 얻어지는 기쁨은 무엇일까요?
공간은 거울이에요. 사람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기 때문에 그걸 만든 사람이나 그걸 사용하는 사람이 그 공간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거고요. 내가 어느 공간에 들어가면 공간의 반향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 되고요. 이게 대화가 될 수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해석하지 못할 뿐이지 무의식으로는 느끼거든요. 공간을 이해한다는 게 사람을 이해하는 것과 같아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유현준 저 | 을유문화사
자신들이 만든 도시에 인간의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과연 더 행복해지는지 아니면 피폐해지고 있는지 도시의 답변을 들려준다.
관련태그: 공간, 유현준 건축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집
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
<유현준> 저13,500원(10% + 5%)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닮는다 도시는 단순히 건축물이나 공간들을 모아 놓은 곳이 아니다. 도시는 인간의 삶이 반영되기 때문에 인간이 추구하는 것과 욕망이 드러난다. 이 책은 자신들이 만든 도시에 인간의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과연 더 행복해지는지 아니면 피폐해지고 있는지 도시의 답변을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