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나의 측면돌파]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이들의 역사
『인생극장』, 『엄마는 페미니스트』, 『거실의 사자』
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로 갈지 아무도 모르는 코너죠. 삼천포 책방, 두 번째 시간인데요. 오늘도 어김없이 저와 함께 딴소리를 들려주실 단호박 님, 그냥 님을 모셨습니다. (2018. 02. 08)
오늘 저희가 소개할 책은 ‘그저 그런’ 사람들의 역사를 기록한 『인생극장』 , 페미니즘의 기본과 단순한 진리를 담아낸 『엄마는 페미니스트』 ,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한 고양이의 비결’에 과학적으로 접근한 『거실의 사자』 입니다.
그냥의 선택 - 『인생극장』
노명우 저 | 사계절
사회학자인 저자가 ‘그저 그런’ 사람이었던 부모님의 삶에 대해서 쓴 책이에요. 아들이 쓴 부모님의 자서전이죠. 이 책을 보면 정말 평범한 사람들,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역사가 보여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라는 건 굵직한 사건으로 교과서에 정리되어 있는 것인데, 진짜 역사는 ‘그 안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가’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 역사,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것이 당대에 만들어진 영화예요. 그 영화를 보면 당시의 사회상을 알 수 있기 때문인데요. 아버지가 스무 살 때는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어머니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을 때는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여성상에 영향을 받았을까, 그런 이야기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아져야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거대한 사건이나 위대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 가족이 아니고는 아무도 기억해줄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의 삶이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가 다 다르고, 각자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수록 타인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는 것 같아요.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구나, 저 상황에서 저렇게 느낄 수도 있구나’ 하고요. 그런 맥락에서 이 책도 ‘그저 그런’ 역사 속의 사람들, 특히 이전 세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줍니다.
톨콩의 선택 - 『엄마는 페미니스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저 | 민음사
민음사의 ‘쏜살문고 시리즈’ 중 하나인데요. 쏜 살처럼 빠르게 읽을 수 있는,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문고 시리즈예요. 책의 부제는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입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나이지리아 출신의 미국 작가예요. 소꿉친구 중에 한 명이 ‘자신의 딸을 페미니스트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을 때, 그것에 대한 답으로써 작가가 페이스북에 편지를 연재했다고 해요. 열네 편의 편지가 책에 수록되어 있고요. 사이사이에 삽화도 있어서 정말 빨리 읽을 수 있어요.
책에 이런 말이 있어요. “우리 페미니스트들은 때때로 용어를 남발하고는 하는데 용어는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거든” 아이한테 여성혐오라든가 가부장제 같은 말을 너무 자주 쓰지 않도록 하라는 거죠. 뭔가에 여성 혐오라는 꼬리표만 붙이지 말고, 그것이 왜 여성 혐오인지를 설명해주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말해주면 된다고 써있는데요. 지금 페미니즘이 핫한 키워드잖아요. 그래서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면 뭐가 뭔지 모르게 되죠. 점점 말을 하기가 조심스러워지고 용어끼리 서로 부딪히고 어려워지는데요. 그게 어렵다고 하더라도 아주 기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단순한 진리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이 작은 책에 잘 담아낸 것 같습니다.
이 책 이전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라는 책이 있었죠. 이 책은 남녀노소 누구나 읽어야 되는 책이고, 페미니즘에 관한 책 한 권만 읽는다고 한다면 저는 이 책을 권할 것 같아요.
단호박의 선택 - 『거실의 사자』
애비게일 터커 저/이다희 역 | 마티
이 책의 부제는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했을까’예요. 뒷면에 책 내용의 일부가 적혀 있는데요. 읽어드리면 “고양이는 스스로 가축화를 선택한 독특한 동물이다. 인간은 가축과 매정한 거래를 하는 데 익숙하다. 그런데 고양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수천 년 전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인간을 위해 무언가를 하도록 진화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인간은 고양이를 사랑한다”는 내용이에요.
요즘 고양이에 대한 책이 많잖아요. 만화책도 많이 나오고 집사들의 육묘 일기도 많이 나오는데요. 이 책을 쓴 애비게일 터커는 과학 글을 주로 쓰는 분이에요. 자연과학 잡지 <스미스소니언>에 많이 기고를 했는데요. 이 분도 굉장히 큰 ‘뚱냥이’를 키우는 집사예요. 어느 날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를 보고 ‘나는 왜 이 뚱뚱한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살고 있는 거지? 이 고양이는 나한테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싶어서 고양이를 주제로 과학적인 접근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 결과 이 책을 쓰셨는데요. 정말 재밌어요.
과학적인 접근이다 보니까 ‘어떤 식으로 고양이가 인간과 공생하기 시작했는가’를 과거부터 쭉 이야기하는데요. 고양이의 종이 분화되어 온 과정도 나오고요. ‘톡소플라즈마 조종 가설’이라든지 도시화가 된 고양이의 증식 현상, TNR에 대한 이야기, ‘인터넷에서 고양이는 어떤 식으로 밈이 되었는가’, 이집트에서 신격화 되었던 고양이에 관련된 사례들도 나옵니다. 풍부한 과학적 사실과 곁들여서 고양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고요. 고양이 예찬론자나 막연하게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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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