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나의 측면돌파] 형, 사인은 내가 할게! (G. 조준호 코치)
“어린 마음에 선배들이 사인하는 게 너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조준호 『잘 넘어지는 연습』
오늘 모신 분은요.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면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사실을 몸으로, 경험으로 ‘지긋지긋하게’” 배운 분입니다. 전 국가대표 유도선수이시죠. 『잘 넘어지는 연습』을 쓰신 조준호 코치님 모셨습니다. (2018. 01. 18)
넘어진 다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렇다.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넘어지자마자 벌떡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잠깐은 창피함을 견뎌야 하고, 상처를 살펴야 하며, 가빠진 호흡을 골라야 한다. 그래야 잘 일어날 수 있다. 유도에서도 낙법을 친 다음에 벌떡 일어나지 않는다.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천천히 일어나 도복을 단정하게 정리한다. 그래서 ‘잘 넘어지는 일’과 ‘잘 일어서는 일’ 사이에는 ‘그리고’가 필요하다.
에세이 『잘 넘어지는 연습』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한 때는 넘어지는 게 일상이던 시절이 있었죠. 우리 모두가 꼬꼬마였을 때 말이에요. 그때는 다시 일어서지 못할까 봐, 영영 주저앉게 될까 봐, 겁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손만 뻗으면 나를 일으켜 줄 엄마가 있었고, ‘괜찮아? 안 다쳤어?’라는 따뜻한 말들이 있었으니까요. 때로는 세상 서럽게 울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툭툭 털고 일어났죠. 어쩌면 어른이 되는 건, 내 안의 아이를 스스로 지켜내야 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넘어진 순간엔 ‘작은 나’를 향해 말을 걸어주세요. 아프지 않니? 괜찮아, 넘어져도 괜찮아. 가끔은 눈물도 닦아주시고 투정도 다 들어주세요. 내가 다시 잘 일어설 수 있도록 말이죠.
<인터뷰 - 조준호 코치 편>
김하나 : 첫 책을 내셨어요. 유도 전 국가대표이셨고 지금 유도 코치님으로 계신데 쓰신 책이 아주 의외예요. 어떤 실습이라든지 유도 자체에 대한 책이 아니라 『잘 넘어지는 연습』이라는 에세이를 쓰셨어요. 처음에 이 에세이를 써야겠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된 거예요?
조준호 : 다른 작가님의 생각에서(웃음).
김하나 : 너 책을 써라, 이렇게요?
조준호 : 네(웃음). 제가 리우올림픽 가면서 심심해서 공항에서 책을 샀는데, 이지성 작가님의 『생각하는 인문학』 책을 사서 읽으면서 ‘인문학이라는 게 정말 좋구나, 인문학을 배워보고 싶다’ 했는데요. 책에 부록이 있더라고요. 에듀케이션을 하시더라고요. 거기에서 공부를 하다가 마침 강의가 들어왔었는데, 강의안을 짜는 데 도움을 받으려고 선생님을 찾아갔었는데요. 그 선생님이 소설도 쓰시는 작가이셔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이거 책으로 써도 되겠다’고 하셔서, 그냥 거기에서 시작됐어요. 제가 일 저지르는 걸 좋아해서 ‘할 수 있겠다’ 해서 바로 하게 됐죠(웃음).
김하나 : 일을 저지르는 건 쉬운데 마무리를 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조준호 :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김하나 : 저는 서문 읽고 깜짝 놀랐어요.
조준호 : 왜요?
김하나 : 서문이 너무 좋은 거예요.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실패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그걸 자신의 전공 분야인 유도와 낙법에 연관 지어서 펼쳐놓으셨잖아요. 이 방송 들으시는 분들은 서점에 가시면 『잘 넘어지는 연습』의 서문을 펼쳐서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너무 완결성이 있고 좋아서, 저는 깜짝 놀랐어요.
조준호 : 고맙습니다.
김하나 : 그 서문은 패기롭게 시작했을 때 쓴 건가요? 아니면 지지부진하게 ‘겨우 마무리했어’ 하고 난 뒤에 쓴 건가요? (웃음)
조준호 : (웃음) 둘 다인 것 같은데요. 그런데 사실 제가 작가님을 정말 뵙고 싶었어요. 제가 이 책을 쓰고 제목을 정할 때 『힘 빼기의 기술』 을 많이 추천 받았었고, 책 제목을 ‘힘 빼기의 기술’ 쪽으로 많이 생각했었거든요.
김하나 : 그렇게 정하셨어도 너무 잘 어울렸겠네요. ‘기술’도 들어가고.
조준호 : 제 유도 인생 평생의 화두가 ‘힘 빼기의 기술’이었거든요. 그래서 작가님 너무 뵙고 싶었어요.
김하나 : 영광이네요. 국가대표까지 지내신 분이 평생의 중요한 화두가 ‘힘 빼기의 기술’이었다니.
조준호 : 제 눈이 조금 힘 빠진 졸린 눈이잖아요. 원래 어릴 때는 안 그랬거든요. 그런데 유도를 하면서 힘 빼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어떻게 하면 힘을 뺄까’ 고민을 했었는데, 그게 저는 얼굴에서 표현됐다고 생각하거든요.
김하나 : 졸린 눈으로 체화된 힘 빼기의 기술(웃음).
조준호 : 체화된 게 아니고 몸에 스며든 건데요. 제가 유도에 눈을 뜨면서 ‘힘 빼기의 기술’이라는 말에 오류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이 말에 생략된 게, 힘을 다 빼면 사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아요. 힘을 빼고 쓸 힘만 쓰라는 건데...
김하나 : 쓸데없이 힘을 빼지 말기.
조준호 : 네. 그래서 저도 유도를 배울 때 코치님이 자꾸 힘을 빼라고 하시는데 ‘힘을 빼면 기술 자체를 못 들어가는데 무슨 힘을 빼라는 건지...’ 굉장히 나중에는 화가 나더라고요. 그러면서 나중에 유도에 눈을 뜨면서 ‘이게 그런 뜻이구나’ 라는 걸 알게 됐는데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 가르칠 때 ‘힘을 빼고 지금부터는 네가 이 기술에 필요한 힘만 넣는다고 생각해라’라고 말해요. 뒷부분의 말을 생략시키면 굉장히 어려워지더라고요.
김하나 : 최근의 목표는 뭔가요?
조준호 : 지금 ‘안티 불리’ 쪽에 관심이 생기면서 그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예요.
김하나 : 안티 불리요?
조준호 : 네. 유도를 이용해서 학교 폭력 관련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예요.
김하나 : 와, 재밌네요. 그러면 호신술 같은 건가요?
조준호 : 호신술이 될 수가 있는데요. 비단 호신술만으로는 이 친구들에게 변화를 줄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3T라고 하는 게 있는데, Talk Tell Tackle 이에요. 학교 폭력이라는 게 처음에 그냥 툭 건드렸는데 그 아이의 반응이 재밌고 아무것도 안 하니까 ‘툭’이 ‘퍽’이 되고 두 대가 세 대가 되고, 누가 하고 있으니까 다른 친구들도 와서 하고, 이렇게 시작이 되더라고요. 저희 센터의 선생님 중의 한 명도 학교 폭력 피해자였는데요. 그 선생님은 축구 선수 출신으로 전학을 많이 다니게 됐어요. 전학생들을 괴롭히는 친구들한테 괴롭힘을 당하다가, 그 선생님은 신체적으로 조금 강하고 성격도 있다 보니까 참다가 맞서 싸운 거예요. 그런데 으레 남자 아이들이 그렇듯이 한 번 싸우고 친구가 된 거예요. 재밌는 건, 친해지고 나서 ‘너희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라고 물으니까 그 친구들이 ‘나도 잘 모르겠어’라고 했대요. 그냥 아무 의미 없이 한 거예요. 그 행동에 처음 ‘하지마’라고 말만 할 줄 안다면 많은 걸 예방할 수 있는데, 그 말을 하기까지 자존감 수업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앞부분은 자존감 수업을 하고요. 두 번째 ‘Tell’은, 제가 학교 폭력 쪽으로 공부를 하고 자료를 모으다 보니까 정말 무서운 말이 있더라고요. ‘내 자식의 학교 폭력에 대해서 알 때는 내 자식의 장례식장에서다’ 너무 무서운 말이죠.
김하나 : 저 지금 막 소름 돋았어요.
조준호 : 그만큼 바쁜 현대 사회에서 자식에게 관심도 못 기울이고,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죠. 제대로 된 관심과 대처를 못 하다 보니까 보복이 있는 거죠. 그 보복 때문에 용기가 안 생기는 건데요. ‘Tell’에서는 가족들 간의 유대감을 만드는 파트가 되는 거죠. 마지막 세 번째로는 맞서 싸우는 유도의 매치기, 호신술이 되는데요. 저희는 유도를 이용해서 호신술을 하기 때문에 타격기가 안 들어가고 스윕이라든지 유리한 포지션을 잡아서 제압하는 데까지만 들어가게 돼요. 저희 센터의 한 학생 어머니가 전화를 주신 적이 있어요. 학생이 싸워서 학교에 소환된 거예요. 저희가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죠. 사실 그 친구가 조금 약한 학생이어서 늘 괴롭힘을 받았었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항상 피해자로 학교에 가다가 가해자로 가게 된 거예요. 유도를 조금 배워서 괴롭힘에 맞서 싸우다가 가해자가 됐는데, 그때 제가 생각한 게 ‘내가 이 친구들에게 유도를 잘못 가르치면 이 피해자가 또 한 명의 가해자가 되는 순간을 낳을 수 있겠구나’라는 거였어요. 제대로 가르치는 게 참 중요하더라고요. 내 몸을 호신술이 돼야지 누군가를 괴롭히고 억압하는 기술이 되면 안 되더라고요.
김하나 : 그 선을 지키는 게 참 어려운 일이겠어요. 저는 말씀만 들었을 때는, 태권도나 복싱이 아니라 유도라면 상대를 넘어뜨리고 제압하는 정도로 그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요. 그것 자체가 조절이 안 된다면 또 가해가 될 수 있으니까요.
조준호 : 짧게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요. 크고 길게 보면, 유도의 2대 정신이 있거든요. ‘자타공영(自他共榮)’과 ‘정력선용(精力善用)’이 있는데, 힘을 옳은 데 쓰고 자신과 타인이 함께 번영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유도 정신을 실천하면서 사는 게 제 인생 목표인 것 같아요.
김하나 : 프로필에 “어디서든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해주시길. 아는 척해주면 좋아한다”고 쓰여 있어요. 그리고 책에는 “요즘은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사인하는 종이는 대부분 계약서인 것 같다”고 쓰시기도 했고요. 사람들의 관심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는 없나요?
조준호 : 아무래도 제가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사인은 괜찮죠. 그런데 사진은 평생 그 사람에게 남는 거니까 웃어줘야 되잖아요. 그런데 제가 안 좋은 일이 있는데도 웃어줘야 될 때는 그게 조금 힘들 때는 있더라고요.
김하나 : 기억에서 잊힌 선수가 될까 봐 걱정한 적도 있으세요?
조준호 : 아뇨, 그건 당연한 순리라고 생각해요. 저는 추억을 먹고 사는 게 제일 별로라고 생각해요.
김하나 : 왕년의 챔피언, 이런 말이 참 싫죠.
조준호 : 네. 거기에 그냥 순응하고 살아야죠. 그리고 옛날에 저희 선생님들 세대에는 카드 명세표에 사인을 안 했잖아요. 그런데 요새는 누구든지 사인을 하는 순간이 오잖아요. 계산만 잘하면 되니까. 얼마나 세상이 좋아졌어요. 사인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니.
김하나 : (웃음) 사인하는 걸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조준호 : 제가 그래서 베이징올림픽 끝나고, 그때는 파트너 할 때였으니까...
김하나 : 파트너를 할 때였다는 건 무슨 뜻이죠?
조준호 : 1진이 아니고 2진이라서 올림픽 출전하는 선수들의 파트너 선수였는데요. 그 선수들이 베이징올림픽에서 성적을 잘 내고 끝마쳐서 선배들이랑 술을 같이 마셨어요. 그때 호프집 사장님이 선수한테 사인을 받으러 왔었어요. 그런데 제가 술이 취해가지고 명세표 사인인 줄 알고 ‘형, 이런 거 형이 하지 마’(웃음)
김하나 : (웃음) 선배, 이거 아니야. 이거 내가 해야 되는 거야. 사장님이 나한테 해달라고 한 거야.
조준호 : (웃음) 이제 형은 대단한 선수니까 이런 거 하지마, 하면서... 사장님이 종이를 계속 들고 와서 부탁을 하는데 그걸 계속 제가...(웃음)
김하나 : (웃음) 너무 웃기네요.
조준호 : 그럴 정도로 어린 마음에 선배들이 사인하는 게 너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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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 카피라이팅, 네이밍, 브랜드 스토리, 광고, 퍼블리싱까지 종횡무진 활약중이다. 『힘 빼기의 기술』,『15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등을 썼고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