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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영의 읽는인간] 굳어진 마음을 시로 마사지하자 (G. 김지수 기자)

『괜찮아, 내가 시 읽어줄게』 출간한 ‘여배우’ 김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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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잡지 <보그>의 피처디렉터를 거쳐 현재는 <조선비즈> 문화부장으로 계시는 김지수 기자님, 나오셨습니다. 영화배우이기도 하시죠.(웃음) (2017.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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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김동영이라는 이름보다 ‘생선’이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생선은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그 생선 맞아요. 이 이름을 짓게 된 계기가 있어요. 어느 날 생선 가게에 갔는데 모든 생선이 눈을 뜨고 가판대 위에 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대부분의 생선은 눈꺼풀이 없어서 살면서 한 순간도 눈을 감지 못한대요. 그건 어떤 순간에도 모든 것을 다 지켜봤단 뜻이잖아요. 그게 저한테는 굉장히 인상 깊게 남아서 저도 어떤 순간에도 눈을 감지 않겠다는 뜻으로 스스로 생선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그게 벌써 18년 정도 됐네요. 이제부터 여러분도 생선으로 불러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인터뷰 - 김지수 기자 편>

 

김동영: ‘구두보다는 운동화를, 두 손이 자유로운 나이키 배낭을 좋아한다’라는 소개글이 있어요.

 

김지수: 일관되게 고수하는 스타일이에요. 운동화, 생수병, 재킷에 배낭 메고요. 지금은 광화문 쪽에서 일을 하는데요. 강남에 위치한 패션잡지에 있을 때도 이게 저의 시그니처 룩이었어요.

 

김동영: 지은 책으로는 『나는 왜 이 도시에 남겨졌을까』, 『도시의 사생활』, 『아프지 않은 날이 더 많을 거야』 등이 있습니다. 최근에 책을 또 한 권 내셨어요. 『괜찮아 내가 시 읽어줄게』입니다. 요즘 책 제목이 무조건 길어야 하거든요.(웃음) 제목 잘 지으신 것 같아요. 누가 지으셨어요?

 

김지수: ‘괜찮아 시 읽어줄게’까지는 제가 지었는데요. 편집자가 ‘내가’를 넣는 게 좋겠다고 하셨어요.

 

김동영: 이번 책은 시 에세이인데요. 시 자주 읽으시죠?

 

김지수: 시가 다가오는 시간이 있는 것 같아요. 금요일 밤이나 일요일 4~5시 같은 때? 금요일 밤에는 서가에 쪼그려 앉아서 스탠드 켜놓고 읽거든요. 서가에는 옛날 일기장도 있고, 그때 끄적이던 시도 있어요. 그것들과 같이 읽으면서 완전히 과거여행을 하죠. 한편 일요일 4-5시에 읽을 때는 안락의자에 앉아서 읽어요. 저희 집 창밖에 나무가 보이거든요. 나무를 보면서 읽는 거죠. 시집은 포즈를 잡기가 참 좋아요. 가볍잖아요. 책 읽는 포즈는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데 굉장히 중요하죠. 한 손에 시집을 들고 안락의자에 앉아서 창밖 풍경과 시를 왔다 갔다 하게 되면 무한대로 확장되는 느낌을 받아요.

 

김동영: 저는 시를 여행 다니면서 읽어요. 시는 금방 읽을 수가 없잖아요. 저는 그걸 ‘빨아 먹는다’고 표현하는데요. 말씀을 들으니까 금요일 밤에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하지만 일요일은 잘 모르겠어요.

 

김지수: 일요일 오후 4시부터 5시는 세상이 바뀌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죠. 우울한 기분이 드는 그런 시간대거든요. 특히 직장인에게는 더욱 그렇죠.

 

김동영: 시를 가까이 두고 읽으면 생활에 좋은 점이 있나요?

 

김지수: 시를 읽어서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진 않아요. 도움이라면 일요일 오후 같은 경우 다른 시간대로 나를 이동시켜서 마음의 안정을 주는 경우가 있겠지만 시가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 같진 않아요. 그보다 시는 제 마음이 원해서 가는 것이에요. 시는 굉장한 치유죠. 저는 정신과 상담을 많이 받는 편인데요. 시가 그런 정신과적인 치유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내 마음, 내 슬픔을 바라보게 만드는 게 흔치 않거든요. 그렇게 단기간에 언어로 확 꽂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김동영: 시를 써본 적 있으세요?

 

김지수: 지금은 시인이 아니지만 어린 시절의 저는 시인이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가 시인이었고, 주변에서도 시인으로 인정을 해줬고, 그런데 어느 새 시를 잃어버렸고요. 저는 시인과 아나운서가 꿈이었어요. 굉장히 대비되죠? 시인은 무대 뒤의 사람이고 아나운서는 무대에 서는 사람인데요. 저는 늘 극단을 쥐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꿈을 꾼 거죠. 시인과 아나운서의 절충으로 저는 잡지사 기자가 된 거예요. 공적인 언어와 내적인 언어를 같이 가지는. 결국 저는 시를 잃어버렸지만 잃어버린 동안 다행히도 절충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거죠. 저는 인터뷰를 한 편의 시라고 생각하고 써요. 그래서 이제는 다시 시인을 꿈꾸진 않아요.

 

김동영: 프롤로그 제목이 ‘잃어버린 슬픔을 찾아서’예요. 왜 슬픔이죠?

 

김지수: 슬픔을 싫어하면서 좋아하고, 미워하면서 예뻐해요. 저는 진짜 슬픔의 인간인 것 같아요. 이유를 생각해봤더니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슬픔을 타고 났어요. 왜냐하면 내가 네가 될 수 없잖아요. 그 마음을 알 수가 없죠. 내 마음을 상대가 절대적으로 알 수 없고요. 또 내가 원하는 나와 나는 늘 다르죠.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국은 이별할 수밖에 없고요. 저는 크리스찬이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생각하면 창조물과 피조물이 분리되면서부터 슬픔이 시작됐다고 저는 느껴요. 근본적으로 슬프고, 다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 다 있는 거죠. 그렇다면 내 슬픔이 이해받아야 하잖아요. 저는 사랑받기보다 이해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걸 이해해주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니 내 슬픔을 내가 이해해야 하는 거고요. 슬픔을 바라보는 일을 시가 할 수 있게 해줘요.

 

김동영: 저는 시보다 김지수 기자님의 글을 먼저 읽었어요. 글을 먼저 읽고 시를 읽어도 좋더라고요. 특히 좋았던 게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를 읽은 글 ‘가만히 천천히 눈을 감고’(268쪽)였어요. ‘시인처럼 그렇게 눈을 감거나, 천천히 숨을 쉬어보면서 말이지요.’라는 글이 참 좋더라고요. 이쯤에서 시 낭독 한 편 해주시면 어떨까요?

 

김지수: 네, 조병화 시인의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라는 시인데요. 제가 사춘기 때 너무 좋아했던 시라서요. 읽어드릴게요.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서로 다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려니
인생이 그러하거니와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일세

실로 스스로의 쓸쓸한 투쟁이었으며
스스로의 쓸쓸한 노래였으나

(중략)

 

인생은 인간들의 옛집
아! 우리 서로 마지막 할
말을 배우며 사세

 

김동영: 책에 사진이 또 있어요. 이익태 작가님의 사진인데요.

 

김지수: 이분의 사진은 굉장히 직설적이면서도 영적이에요. 제가 ‘사진 시인’이라고 말을 하는데요. 가령 똥 사진을 찍어놓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라고 달아놓고 그러세요. 광주리에 감을 잔뜩 담아놓고 ‘감이 오네’ 한 마디를 하는, 굉장히 재미있고 영적인 전방위 아티스트예요. 책을 내면 꼭 이분의 사진을 쓰고 싶다고 부탁을 해서 함께 수록하게 됐죠.

 

김동영: 그런가 하면 강달막 할머니와 강춘자 할머니의 시도 있어요. 특별히 넣으신 이유가 있으세요?

 

김지수: 넣고 싶었어요. 시란 그렇게 언어를 정렬해서만 쓰는 게 아니라는 걸 다양하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가능했다면 동시도 넣고 싶었고요. 저는 일단 쉬운 시가 좋아요. 쉬운 건 유치한 게 아니죠. 예를 들어 김광섭의 「저녁에」 같은 시, ‘이렇게 정다운/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 같은 것 딱 들으면 정말 좋잖아요. 아름답죠. 마음을 만지잖아요. 또 정호승 시인의 「꽃 지는 저녁」, ‘꽃 지는 저녁엔 배도 고파라’, 이러면 감각이 확 전환돼요. 이런 감각적인 시는 뇌를 깨우죠.

 

김동영: 시를 쓰는 사람도 대단하지만 시를 읽고 느끼는 사람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김지수: 보통 사람들은 시를 쓸 수 없잖아요. 하지만 분명히 시를 각자의 방식으로 읽을 수 있거든요. 어렵게 느끼지만 않으면 돼요. 시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내가 원하는, 나한테 꽂히는 단어 하나를 가지고 쑥 들어가면 되거든요.

 

김동영: ‘김동영의 읽는 인간’ 고정 질문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최근 구매해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다면?

 

김지수: 저는 책 담당이기 때문에 책이 늘 쌓여 있어요. 늘 읽거나 읽지 않은 상태에 있는데요. 최근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오늘 오전에 산 책을 말씀드릴게요. 『페이버』라는 책이에요. 하형록이라는 재미 사업가 분의 이야기예요. 30대 때 심장병을 걸려서 심장을 이식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요. 자기 차례가 돌아온 심장을 다른 사람한테 양보를 한 거예요. 놀랍죠? 자기보다 간절한 사람을 보고는 그 심장을 자기가 가질 수 없었다고 해요. 그런데 양보 후에 이분의 인생에 기적이 일어나는 거죠. 그걸 이분은 ‘페이버(favor, 은혜, 축복)’라고 해서 쭉 풀어 가신 건데요. 정말 읽고 싶어서 샀어요.

 

김동영: 와, 정말 궁금하네요. 꼭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산 책?

 

김지수: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요. 아마도 삼중당 문고에서 나온 에밀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 아니었나 싶어요.

 

김동영: 감수성이(웃음) 대단하시네요. 일생을 감수성과 슬픔으로 살아오신 것 같아요.

 

김지수: 말씀을 들어보니 그런 것 같아요.(웃음)

 

김동영: 재미있어요. 세 번째 질문은 신작 나오면 꼭 읽어보는 작가가 있는지, 입니다.

 

김지수: 김훈 선생님이죠. 그리고 재일동포 정치학자인데 강상중 교수의 책도 꼭 읽어요. 『고민하는 힘』부터 최근에 출간된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까지 봤고요. 또 마음산책에서 나온 ‘말 시리즈’도 꼭 읽죠. 『칼 세이건의 말』,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등 인터뷰 시리즈가 있는데요. 그건 꼭 읽습니다.

 

김동영: 이번 책 『괜찮아 내가 시 읽어줄게』를 어떤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하세요?

 

김지수: 50대 남성 분들도 좀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사회생활을 오래 해서 마음이 굳어진 것 같아요. 자기 마음을 시로 마사지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20-30대 여성들이 많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제가 여자이고, 여자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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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동영(작가)

김동영이라는 이름 석 자보다는 '생선'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하였고 마스터플랜 클럽에서 허드렛일을 한것이 인연이 되어, 음반사 문 라이즈에서 공연과 앨범 기획을 담당하였다. 델리 스파이스와 이한철, 마이 앤트 메리, 전자양, 재주소년, 스위트 피의 매니저먼트 일을 담당하면서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복고풍 로맨스」, 「항상 엔진을 켜둘게」, 「별빛 속에」, 「붉은 미래」등의 노래를 작사하였다. MBC FM4U [뮤직스트리트], [서현진의 세상을 여는 아침], [K의 즐거운 사생활] 등에서 음악작가로 일했다.『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나만 위로할 것』 두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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