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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책] 미국 빈민가 출신이 바라보는 가난의 이유

마약 중독자 엄마를 둔 예일 로스쿨 졸업생 아들이 쓴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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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나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성공하는 실화는 어지간한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기 마련이다. 한 주제에 대해서 여러 권을 모아 읽는 것은 성격 때문이라기보다는 직업병인 것 같다. (2017.11.06)

힐빌리의노래.jpg

 

초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친하지도 않았는데 유독 기억나는 친구가 있다. 키가 크고 말이 없고 착했다. 피부색이 다소 검고 눈이 커서 그 친구의 별명은 적도 근처에 위치한 어느 나라의 이름이었다. 상처 받을 법도 한데, 그 친구는 그 별명을 들을 때마다 웃어 넘기곤 했다. 어느 날 골목에서 그와 마주쳤다. 할아버지 댁에 놀러왔다고 했다. 이웃 할아버지의 손자라니, 친밀감이 생겼는데 더는 친해질 계기가 없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건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때였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고, 할아버지 손에 자라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갔다는 소식이었다. 진학 대신 취업을 택한 이유는, 경제적 사정 때문이었으리라.

 

『힐빌리의 노래』를 읽으며 그 친구를 떠올렸다. 저자인 밴스가 묘사하는 자신의 모습과 겹쳐서다. 그 역시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고 한창 중요한 10대를 할머니 집에서 보냈다. 부모는 살아 있었다. 다만 벤스의 친부는 진작 이혼하여 다른 가정을 꾸리고 있었으며 친모는 분노 조절 장애에 마약 중독자였을 뿐이다. 벤스의 성장 배경은 숨이 막히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건, 결국은 해피 엔딩이라서다. 서문에서 자신의 성공을 과대포장하지 않으려 함에도, 어쨌든 저자는 아이비리그 명문 대학 로스쿨을 졸업하여 변호사로 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개천에서 용 나는 이야기인 셈이다.

 

개천의 미국적 표현은 힐빌리(hillbilly)다. 그의 조부모는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산업화 물결에 밀려 도시로 이주했다. 시골에 남은 친척과 달리 그들은 경제적 빈곤에서는 벗어났다. 그렇다고 바로 중산층으로 올라서지는 못했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처럼 문화적 취향과 소비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벤스는 “할모는 가난한 산골을 벗어났다고 생각했으나, 경제적 빈곤에서는 벗어났을지언정 여전히 정서적 빈곤에서 허덕이고 있었다.(238쪽)”라고 회고한다.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지역은 아비투스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힐빌리라는 토양은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사다리가 아니라 가로막는 견고한 벽이었다.

 

힐빌리에는 가난을 자랑으로 여기고, 근면을 조롱하는 분위기가 있다. 미성년자도 마약을 쉽게 구한다. 이 책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도 마약과 관련한 에피소드다. 엄마가 아들에게 소변을 빌려 달라는데 이는 마약 검사에서 걸리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아들도 대마초를 흡이한 상태.

 

마약에 취해 있고, 지각을 일삼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줄 기업은 없다. 소득이 없으니 가난하고, 가난해서 고등 교육도 받지 못한다. 이들도 생계는 이을 수 있다. 복지국가 덕분이다. 이런 힐빌리 풍경을 묘사하는 저자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한쪽에는 측은함이, 그리고 나머지 한쪽에서는 복지로 연명하는 무임승차자를 향한 따가운 시선이 공존한다. 있는 그대로를 묘사했다고 해도, 독자에 따라서는 복지를 축소하려는 정치적 보수주의에 타당한 근거로 이 책을 읽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주인공은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중산층으로 진입했다. 본인도 인정했듯, 그의 조부모나 친척이 필요할 때 도와준 덕분이다. 그런데 이런 행운이 없다면 글 서두에 언급했던 필자의 친구처럼 도중에 학업을 포기하고 어린 나이에서부터 적자생존의 정글에 내던져진다. 그 친구가 지금은 어찌 사는지 모르겠다. 확률로 보자면 아마도 부유해지기보다는 크게 나아질 게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고 있지 않을까. 중학교 졸업에 사회적 배경 없는 사람이 대접받기 힘든 건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더 읽는다면…

 

사당동 더하기 25
조은 저 | 또하나의문화

한국판 『힐빌리 노래』. 세대를 넘어 가난은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다룬 조은 교수의 대작이다. 대한민국의 근대화, 도시화, 계층분화를 이 책 한 권으로 조망할 수 있다.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
에드워드 로이스 저/배충효 역 | 명태

『힐빌리 노래』와는 정반대로 주장하는 책이다. 계급/계층론 입문서로, 가난을 해결해야 할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결국 정부라고 시종일관 입증해낸다.

 

 







폭스파이어
조이스 캐롤 오츠 저/최민우 역 | 자음과모음

『힐빌리의 노래』의 주인공은 엄밀하게 말해 최하층은 아닌데, 이 소설 주인공들은 진짜 최하층민이다. 슬램에서 10대 소녀들이 어떻게 사회와 싸우는지를 묘사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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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금주(서점 직원)

chyes@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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