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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특집] 지금 당신 곁의 나무는 잘 있나요?

지금 이 땅의 모두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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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것 별로 없이 땅에 기대어, 나무에 기대어 살아가는 노인들이 흘려보내는 이야기에서 나무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이 땅의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생의 의미, 생명의 뜻을 깨우치게 된다. (2017.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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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은 한 쌍의 느티나무를 그냥 ‘할배’ ‘할매’라고만 불렀다. 식물로서 그 나무가 소나무인지 느티나무인지 돌배나무인지는 무의미했다. 4백 년 동안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지켜준 수호신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논농사를 짓는 이 마을의 풍년을 나무는 지켜주었고, 대처로 떠난 자식들의 안부까지 더불어 지켜줬다고 사람들은 굳게 믿었다. 살아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나무는 해냈다. 아마 ‘할배’ ‘할매’보다 더 지극한 호칭이 있었다면 그런 이름으로 불렀을 게다.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용포리. 모두 합쳐 열 다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 어귀에 서 있는 한 쌍의 느티나무 이야기다. 한해에 한번씩은 정성을 모아 당산제를 올렸지만, 당산제 때가 아니어도 마을 사람들은 아무때나 아무렇게나 나무를 찾았다. 가을 풍년을 빌었고, 사람들의 평안을 빌었으며, 고향 떠난 자식들의 안부를 기원했다. 힘든 일 어려운 일이 다가올 때에도 사람들은 나무를 찾아가 그렇게 했다. 나무는 그렇게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왔다.

 

평안하게 살던 나무에 뜻밖의 위기가 닥쳐온 건 2009년의 봄이었다. 모내기에 한창이던 어느 날, 포크레인을 동반한 중장비가 나무 곁으로 들이닥쳤다. 나무를 캐어내려는 작업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앞뒤 사정을 살필 겨를 없이 나무를 지키기 위해 모여들었다. 맨몸으로 포크레인을 막았고, 나무 둘레를 겹겹이 에워싸며 나무를 지켰다.

 

나무가 서 있는 땅이 도시의 조경업자에게 팔려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한나절의 파동이 가라앉은 뒤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무를 지켜야 했던 마을 사람들은 그해 농사를 작파하고, 조경업자로부터 나무를 지키기로 했다. 한해 농사를 포기한 마을 사람들은 당번을 정해 번갈아가며 나무 곁에 머물렀다. 호루라기를 들고 나무 주변에 모르는 사람이 다가오는지를 세심히 살폈다. 봄부터 가을까지 마을 사람들의 나무 지킴이 당번은 이어졌다.

 

조경업체 직원들은 하릴없이 헛걸음을 되풀이했다. 방법을 찾을 수 없던 조경업체에서는 마침내 사람들이 모두 집안으로 들어갔을 밤 시간을 이용해 나무 채굴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이 시도를 놓치지 않은 마을 사람들은 그날부터 아예 밤을 새워 나무를 지키기로 작정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엄동설한의 매운 바람 맞으며 나무 곁에서 한뎃잠을 자야 했다. 이듬해에도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봄이 찾아왔고, 모내기 철이 돌아왔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논농사보다 더 급한 건 나무를 지키는 일이었다. 다시 또 한해 농사를 포기하고 나무 곁에서 봄바람을 흘려 보냈다. 묵정밭이 돼 가는 마을 앞논을 바라보는 마을 농부들의 속마음은 타들어갔지만, 나무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여름. 마을 사람들과 조경업체 사람들이 한 자리에 마주앉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든 손해를 배상해줄 테니, 나무를 포기하라고 조경업체에 요구했다. 나무를 캐가는 게 결코 쉽지 않다고 판단했던 조경업체는 마을 사람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게 가장 좋은 마무리라고 생각하고는 선뜻 받아들였다. 손해배상금은 모두 3천3백만원이었다. 여든 안팎의 노인들이 중심인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매우 큰 돈이다.

 

마을에서는 열 다섯 가구가 공평하게 나누어 모으기로 결정했다. ‘할배’ ‘할매’를 버릴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곧바로 돈을 구하러 나섰다. 평소에 2백만원 이상이나 되는 큰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2백만원씩을 모으려면 급전을 빌려야 했다. 대처에 나간 자식들에게 돈을 부치라 한 경우도 있었고, 이웃 마을에 돈을 꾸어야 했던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농협에 대출도 받았다. 빚을 얻어서라도 ‘할배’ ‘할매’는 지켜야 했다. 놀랍게도 3천3백만원이라는 큰 돈은 고작 보름 만에 모두 걷혔다. 2010년 가을, 곡절은 거친 나무는 마침내 누구의 것도 아닌 마을 모두의 ‘할배’와 ‘할매’로 온전히 남게 됐다.

 

한 평생을 평안하게 마무리할 채비에 든 여든 즈음의 노인들은 돈을 꾸러다녔던 그 때 그 순간을 돌아볼 때마다 당당하게 혹은 도도하게 말한다.

 

“농사를 잘 못 지어 내 입에 풀칠하자고 돈을 꾸러 다녔다면 그건 부끄럽고 창피스러운 일이 되겠지. 하지만 우리는 다른 무엇도 아닌 ‘조상의 얼’을 지키기 위해서 돈을 꾸러 다닌 거였어.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배운 것 별로 없이 땅에 기대어, 나무에 기대어 살아가는 노인들이 흘려보내는 이야기에서 나무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이 땅의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생의 의미, 생명의 뜻을 깨우치게 된다. 그리고 지금 이 땅의 모두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지금 당신 곁의 나무는 무사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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