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책] 요즘 웃을 일이 없다면, 이 책
박상의 신간 에세이 외
활자만으로 웃길 수 있는 책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그런 책을 만나 낄낄대는 순간만큼 행복할 때가 있을까. 한 주제에 대해서 여러 권을 모아 읽는 것은 성격 때문이라기보다는 직업병인 것 같다. (2017.10.18)
사람을 웃기기는 힘들다. 글만으로 웃기기란 더욱 어렵다. 그 어려운 일에 박상 작가는 한평생을 헌신해왔다. 무협 스타일의 야구 소설 『말이 되냐』, 이야기마다 이원식이 등장하는 단편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 제목부터 웃기려고 썼다는 의도를 강하게 담은 『15번 진짜 안 와』와 『예테보리 쌍쌍바』까지 독특한 작품을 선보인 소설가가 박상이다. 그의 작품에는 부장님 개그와 ‘웃픈’ 장면 묘사,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적확한 비유가 수시로 등장한다. 골 때리는 박상표 소설을 기다린 독자라면 다소 실망할 법한데, 이번에 나온 책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에세이다. 굳이 정의한다면 본격 B급 여행 음악 에세이.
소설을 기다렸는데 에세이라니! 실망할 독자가 있다면 안심하라. 일부 소설가는 본업인 소설보다 부업인 산문을 더 재밌게 쓰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박상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여하튼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박상표 소설만큼이나 웃기다. 인트로(Intro)에서 저자가 고백하듯 이 책의 존재 의의는 웃기기 위해서다. 그런데 ‘음악’이라는 단어에서 걸린다. 아무래도 음악을 소재로 웃기기란 여간해서는 쉽지 않으니까. 재미는 둘째 치고 전달하는 매체도, 느끼는 감각도 다르다는 점에서 음악을 글로 표현하는 건 무진장 어렵다.
음악 평론 책이 괜히 인기 없는 게 아니다. 음악을 소재로 한 글로 웃기겠다니,너무 무모한 도전은 아닐까.
“내게 음악이 없는 삶은 지루하다. 너무 평면적이라 그럴 것이다. 길은 길이고 운전은 그냥 이동이고 카페는 목을 축이는 데고 로또 판매점은 걸리지 않을 종이 쪼가리를 파는 곳이며 식사는 에너지를 보충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런 게 평면이다. 그러나 음악이 거기 끼어들면 입체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현상들의 의미가 확장된다. 길은 시가 되고 운전은 이벤트가 되고 카페는 이야기와 향기가 되고 로또 판매점은 꿈을 파는 상점이 되며 식사는 쾌락이 된다. 이어폰을 꽂으면 세상과 내가 단절되는 게 아니라 음악적 감각이 더해지며 아름답게 쩍 벌어지는 것이다.” (73쪽)
거봐라, 다소 감동적이긴 한데 웃기진 않다. 천하의 박상도 음악을 소재로 해서는 웃길 수 없단 말인가…. 사실 이번 에세이에서 음악을 다루는 작가의 태도는 꽤 진지하다. 대신 여행지에서 생긴 에피소드는 충분히 웃기다. 여행 음악 에세이라고 했듯, 박상은 여행지에서 들었거나 떠올린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 풀었는데 장면 자체가 웃기다. 잘생겼으나 운은 없는 여행자의 에피소드로 가득 차 있다. 웃픈 장면을 묘사하는 문장에는 ‘나는 배트맨이 되고 싶지만 여기는 베트남이다’라든지 ‘마누라도 없는데 마닐라라니’와 같은 아재 감성이 충만하다. 지루해진다 싶을 때 비일상적인 배변 활동으로 벌어진 참극을 끼워 넣는 신공도 발휘한다. 전반적으로 똥 이야기는 재미없을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이 책이 무조건 웃기기만을 지향하진 않는다. “왜 정치와 종교는 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상관없이 절대 발전을 안 하는 거람”(229쪽)과 같이 역사적, 인문주의적 통찰을 슬며시 넣음으로써 독자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또한 들어보고 싶은 밴드, 뮤지션을 여럿 알게 되는 건 이 책의 보너스 트랙이다.
더 읽는다면…
청춘을 달리다
후지요시 마사하루 저 / 김범수 역 | 황소자리
라디오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유명 작가 배순탁의 음악 에세이. 1990년대를 추억하되, 추앙하지는 않는 감성적인 기록.
배철수의 음악캠프 20년 그리고 100장의 음반
배철수 저 | 예담
늘 듣는 음악만으로 지겨운 일상을 이길 수 없을 때,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선정한 명반에서 활로를 발견해보자.
15번 진짜 안 와
박상 저 | 자음과모음(이룸)
열정과 재미는 헤비메탈의 동의어다. 본격 헤비메탈 소설. 록 스피릿으로 충만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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