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 트랙>과 북유럽 범죄소설
decca의 미스터리 탐구 16
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 거리가 있길 기원한다.
세계 판권 시장의 블루칩, 북유럽 범죄소설
2000년이 몇 년쯤 지났을 때였나? 북유럽 스릴러, 스칸디나비아 누아르, 노르딕 누아르 등 부르는 이름도 각양각색인 작품들이 전 세계 미스터리 시장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을 때, 무심코 지도를 들춰본 적이 있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모두 모국어가 있고, 인구는 채 천 만을 넘지 않는다. 나름의 범죄소설 전통과 60, 70년대 ‘마르틴 베크 시리즈’(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외 부부의 스웨덴 경찰 소설) 같이 성공한 작품들도 있지만, 이들 출신 작품들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영어권 시장에서 어떻게 인기를 끌 수 있는지 당시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방아쇠, 아니 핵폭탄 정도의 위력을 가진 작품이 있었다. 스웨덴의 저널리스트 스티그 라르손의 유작 ‘밀레니엄 3부작’은 출간 직후인 2005년부터 북유럽, 유럽, 미국, 아시아 시장을 차례차례 점령했고 5,000만 부 이상 팔렸다. 유지를 이어받은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최근 4번째 작품을 발표하긴 했지만, 스티그 라르손이 살아서 10권으로 완결됐다면 얼마나 더 팔렸을지 짐작할 수 없다. 아무튼 이 ‘해리 포터’급 작품은 전 세계 미스터리 시장을 완전히 뒤흔들었고, 북유럽 범죄소설은 이후 전 세계 판권 시장에서 블루칩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북유럽 범죄소설에 큰 관심이 없던 타지의 독자들이 그림 엽서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의 이면을 되짚게 된 건 그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복지 제도는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창립된 1899년부터 끊임없이 지속돼온 투쟁의 결과물이다. 북유럽 범죄소설들은 그 거친 흔적과 어두운 이면의 그늘을 드러내려 한다. 스티그 라르손이 평생 몸을 숨기며 싸워왔던 스웨덴 극우파의 존재는 그 의미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기존의 스릴러와는 다른, 범죄를 통해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는 새로운 화법 그리고 특유의 어두운 정서는 시장에 신선한 반향을 이끌어냈다. 여기에 유럽 대륙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이 더해져 북유럽 범죄소설은 하나의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 잡게 된다.
2015년 10월, 67세의 나이로 최근 생을 마감한 헨닝 망켈은 국내에 비교적 잘 알려진 작가들 -노르웨이의 요 네스뵈나 카린 포슘, 아이슬란드의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보다 손위인 작가이다. 언어권 밖에서 보면 스티그 라르손은 북유럽 범죄소설의 위대한 선구자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전통의 충실한 계승자인 셈이다. 헨닝 망켈의 대표작 ‘발란데르 시리즈’는 1991년부터 2009년까지 (마지막 해에 나온 한 권을 제외하면) 매년 한 권씩 발간돼 총 10권으로 마무리됐다. 이 시리즈는 45개국에 소개됐고 누적 3,000만 부를 돌파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인권 운동, 연극 연출, 순수 소설, 청소년 문학으로도 이름 높은 헨닝 망켈은 ‘발란데르 시리즈’가 자신의 전부인 양 알려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고 하지만 그 성공 덕분에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고, 북유럽 범죄소설 또한 보다 선명한 형태를 띠게 됐다.
‘발란데르 시리즈’는 스웨덴의 작은 도시 위스타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경찰 소설이다. 아프리카에 머물던 헨닝 망켈은 금융 위기로 급격한 경제 혼란을 맞았던 1990년대 스웨덴으로 돌아와 발란데르 시리즈를 집필했다. 그는 범죄소설은 사회를 관찰하고 비추는 도구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시리즈 내내 복지 국가라는 화려함에 감춰진 어두운 이면이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발란데르는 현실적인 캐릭터이다. 결혼에 실패하고, 딸 하나가 있고, 가족과의 관계는 여전히 껄끄럽다. 총기 사고 후유증으로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당뇨병에 걸려 인슐린 주사가 필요하다. 최신 수사 기법은 따라잡을 수 없고, 특별한 능력이라고 해봐야 오랜 경찰 생활로 잘 단련된 직감뿐이다. 발란데르는 사건 주위를 끈질기게 맴돌고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사건의 실체로 향한다. 시리즈가 진행됨에 따라 눈에 띄게 늙어가는 발란데르는 전혀 특별하지 않기에 독자들에게 더 인상적으로 다가서는 주인공이다.
노란 유채꽃 밭에서 스스로 몸에 불을 질러 자살한 소녀. 소름 끼칠 정도로 선명한 색의 대비로 시작되는 『사이드 트랙』은 1995년 작품으로 시리즈 다섯 번째에 해당한다. 2001년 골드 대거 수상작이자, 2008년 BBC 드라마 ‘월랜더’에서 케네스 브래너가 연기한 그 에피소드의 원작이기도 하다. 상상할 수도 없는 광경을 목격해 충격에 빠진 발란데르 앞에 쉴 틈도 없이 사건이 발생한다. 머리 가죽이 벗겨진 채 참혹하게 살해된 전직 법무부 장관. 잔혹한 형태의 사건은 미술상, 장물아비로 이어지며, 발란데르를 포함한 수사관들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연쇄살인과 마주하게 된다. 자살과 이민자 착취, 권력의 부정으로 얼룩진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발란데르는 중년의 고달픈 삶과 한없이 부조리한 현실에 조금씩 지쳐간다.
최근 헨닝 망켈의 마지막 저작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출간됐다. (서지 정보 상 작가는 ‘헤닝 만켈’이지만 같은 작가이다.) 2014년 불치 암을 진단 받은 작가가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며 쓴 글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헌신해온 삶의 궤적과 발란데르를 겹쳐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
사무엘 비외르크 저 | 황소자리
2013년에 출간된 노르웨이 작가 사무엘 비외르크의 데뷔작. 다소 무거웠던 그간의 북유럽 범죄소설과는 달리, 영어권 스릴러의 날렵함과 선정성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라는 푯말을 들고 나무에 매달린 채 죽은 여자아이. 베테랑 수사관인 홀거 뭉크와 뛰어난 추리력을 지닌 형사 미아 크뤼거가 다시 팀을 이뤄 연쇄 살인 사건에 도전한다.
목소리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저 | 영림카디널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은 어쩌면 가장 이국적인 공간인 아이슬란드에서 능숙하게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작가이다. <목소리>는 15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형사 에를렌두르 시리즈 중 5번째 작품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호텔에서 발견된 도어맨의 죽음. 껄끄러운 가정사 때문에 집에 머무르기 싫어 호텔에서 사건을 조사하는 에를렌두르. 진실은 과거 저 너머에 있다.
발신자
카린 포숨 저 | 은행나무
카린 포숨은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다루며 탁월하게 긴장감을 조성한다. 2009년에 발표된 <발신자>는 작가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유모차에서 잠든 아기가 피투성이로 발견되지만 검사 결과 동물의 피로 밝혀진다. 이를 시작으로 악의에 찬 장난이 계속 이어지고, 평화로운 마을에 점점 폭발할 듯한 불안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콘라드 세예르 경감 시리즈 중 열 번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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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거리가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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