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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도』와 호러 미스터리

decca의 미스터리 탐구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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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 거리가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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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역시 살인, 그리고 시체

날씨가 후덥지근하다 싶으면, 각종 매체에 장르소설을 소개하는 지면이 갑자기 늘어난다. 이런 ‘납량물’ 은 미스터리 소설과 호러 소설이 대부분이다. 두 장르는 얼핏 보면 상당히 비슷해 보인다. 모두 불가해한 사건과 죽음이 있고, 선정적인 묘사가 따르며, 독자를 심리적으로 집요하게 압박해 껄끄러운 정서를 불러 일으킨다. 미스터리 장르가 보다 넓은 범주를 아우르는 요즘 같은 때에는 두 장르소설은 별다른 구분 없이 종종 함께 언급된다.

 

하지만 두 장르 사이에는 결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다. 호러는 대부분 ‘알 수 없음’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호러 장르의 카타르시스란 결국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서 시작되는 셈이다. 반면 미스터리 장르는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초자연적인 현상에도 설명 가능한 정연한 질서가 있다는 것이 미스터리 장르의 요지이다. 그리고 불가해한 사건을 이성의 영역으로 끌고 오는 존재는 바로 탐정이다. 두 장르의 차이는 결국 태생에서 유래한다. 미스터리 소설은 19세기 고딕소설의 초자연적인 괴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미스터리야말로 진정한 ‘근대의’ 장르인 것이다.

 

결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장르는 그래도 곧잘 어울린다. 최초의 근대적인 미스터리 소설이라 할 수 있는 『모르그 거리의 살인』에서 참혹하게 죽은 모녀의 시체가 발견됐을 때부터 둘의 교제(?)는 숙명처럼 자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스터리 소설이 호러 소설의 기법을 끊임없이 탐내는 이유는 바로 ‘알 수 없음’ 때문이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섬뜩한 현상은 미스터리의 ‘이성’을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게 드러낼 수 있는 지점이다.

 

이런 유의 작풍으로는 단연 존 딕슨 카를 꼽을 수 있다. ‘불가능 범죄의 거장’, ‘밀실의 마스터’라는 별칭을 가진 그는 붉은 카펫 한가운데 똑바로 세워진 머리의 수수께끼(데뷔작 『밤에 걷다』)를 시작으로 30여 년 넘게 불가능 범죄에 파고들었다. 바다 건너 일본에는 요코미조 세이시가 있었다. 그는 에도가와 란포로 대표되는 탐미적인 일본 미스터리의 전통을 존 딕슨 카와 버무려 특유의 으스스한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요코미조 세이시는 미스터리에 공포를 가미하는데 한 표준을 제시한 작가였다. 그는 전쟁 직후 떠도는 인습을 살인 동기로 설정했는데, 폐쇄된 지역 안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괴담을 기반으로 해 이를 호러 스타일로 풀어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이러한 스타일은 이후 아야쓰지 유키토 같은 신본격 작가로 이어졌고, 현재는 호러와 미스터리를 자유롭게 오가는 미쓰다 신조가 다음 바통을 이어받은 상태이다.

 

최근 출간된 신시은 작가의 『해무도』는 기시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미스터리에 익숙한 독자라면 표지 문구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요코미조 세이시나 미쓰다 신조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20년 전 은사가 머물던 해무도에서 목이 잘린 채 바다에 떠오른 시체 두 구를 목격한 연치수. 당시 범인을 찾으려 했으나 마을 사람 누구도 진실을 원치 않았다. 이제 그는 은사 정 교수의 부고를 듣고 다시 섬으로 향하는 중이다. 한편, 뭍에서 장례를 치르게 된 정 교수의 두 딸은 아버지의 머리가 사라진 걸 알게 되고 머리를 찾기 위해 역시 섬으로 향한다.

 

해무가 끼면 사람을 데리고 가는 백발의 귀신 노파. 오래 전부터 떠돌던 괴담이 섬에 짙게 그림자를 드리운 가운데, 더는 사람이 살지 않는 한옥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온다. 폭설이 쏟아져 누구도 드나들 수 없는 상황. 사라진 정 교수의 머리가 한옥에서 발견되고 살인 예고가 이어지며 불가능해 보이는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섬을 둘러싼 귀신과 미신의 저주 때문일까? 연치수는 20년 전 두 구의 시체와 현실의 사건이 이어져 있음을 알고 사건 속으로 뛰어든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 후, 인습에 지배당하는 섬의 폐쇄성을 독자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등장인물의 사투리는 일종의 전략이며, 짐작하기 어려운 흐릿한 시공간 또한 마찬가지이다. 종종 발견되는 설정 상 허점과 매력적이지 않은 등장인물들이 아쉽지만, 성실하게 작품 곳곳에 단서를 심어놓은 작가의 부지런함이 돋보인다. 탐정 역을 맡은 연치수를 굳이 외지인으로 설정한 이유는 섬의 인습과 근대의 이성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기 위함이다. 작가는 미스터리의 미덕을 잘 알고 있으며,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꽤 고심한 걸로 보인다.

 

‘전설의 고향’은 해마다 있었지만, 이런 유의 미스터리는 국내에서 한동안 찾기 어려웠다. ‘셜록 홈스 시리즈’를 기점으로 해외 미스터리가 폭발적으로 유입된 지도 이제 10여 년이 지났다. 현재 출간되는 한국 작품들은 그간 소개된 양질의 작품들이 작가들에게 어떤 계기를 마련해줬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지점들이다. 스물셋, 젊은 작가의 데뷔작인 『해무도』도 그중 하나이다.


세 개의 관
존 딕슨 카 저 | 동서문화사

누구도 드나들 수 없는 방에서 한 교수가 살해당한다. 눈이 그친 건물 주변에는 발자국 하나 찾을 수 없다. 비슷한 시간, 교수를 협박하던 마술사 역시 살해당한다. 총소리 이후 시체만 남겨진 상황. 역시 발자국 하나 찾을 수 없다. <세 개의 관>은 밀실 미스터리 중 최고 고전으로 손꼽히는 작품으로, 17장에 실린 기디온 펠 박사(탐정)의 밀실 강의는 지금까지도 언급된다.

 


팔묘촌
요코미조 세이시 저 | 시공사

전국시대 패주 무사의 끝없는 저주가 서린 '팔묘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험담.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중 가장 널리 알려졌다. 팔묘촌의 부유한 가문의 상속자임이 밝혀진 타츠야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그만큼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스릴이 일품이다. 스릴러, 호러, 로맨스, 모험 등 장르소설의 모든 요소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미쓰다 신조 저 | 비채

호러와 미스터리 사이의 절묘한 균형 감각으로 일본 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미쓰다 신조. 그의 작품 중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돼, 많은 독자들로부터 찬사를 이끌어낸 작품이다. 외부와 고립된 히메카미 촌의 기묘한 후계자 의식 중에 4중 밀실을 뚫고 일어난 살인 사건.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 또다시 목 없는 귀신의 저주가 마을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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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영천(예스24 e연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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