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탐정
하라 료 저 | 비채
아주 크게 보면, 세상의 미스터리는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영국식 미스터리이고 또 하나는 미국식 미스터리이다. 영국식 미스터리는 대략 이렇다. 점잖고 부유한 신사숙녀가 아늑한 저택에 모인다. 오가는 대화 속에 감춰진 살의가 천천히 드러난다. 마침내 기묘한 수수께끼로 감춰진 살인이 일어나고 천재 탐정이 나타나 멋지게 사건을 해결한다. 수수께끼를 위한 이상적인 공간과 작위적인 등장인물, 독자와의 두뇌 게임을 요구하는 이러한 스타일은 황금기(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를 통해 완성된 영국식 미스터리의 양식이다.
영국식 미스터리 작가들이 트릭에 골몰할 무렵, 1920년대 미국 사회는 급격한 변화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쟁 이후 갑작스러운 번영은 보수적인 가치관과 정면으로 충돌했고, 금주법이 제정되고 마피아가 출몰하는 등 그야말로 혼란의 시대였다. 이후 1929년 ‘검은 목요일’을 기점으로 미국은 긴 불황의 늪으로 빠져든다.
이러한 시대에 범죄는 더는 교묘한 수수께끼로 남을 수 없었다. 범죄는 화려한 추리 게임이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맞닥뜨린 현실이었다. 현실의 범죄를 다루는 장르가 현실과 점점 멀어지는 아이러니는 그 동안 유행했던 영국식 미스터리에 커다란 균열을 가져왔다. 자연스럽게 보다 현실적으로 범죄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다양한 펄프 매거진을 통해 등장했고, 훗날 그 흐름은 하드보일드라 불렸다.
미국식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하드보일드는 그렇게 탄생했다. 하드보일드는 하나의 서브장르나 막연한 폭력성을 뜻하기도 하지만, 결국 하나의 문학적 스타일이다. 그 스타일은 대부분 문체로 만들어지며, 그 문체는 탐정의 무심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하드보일드의 탐정들은 우아한 이성이 아닌 수임료로 움직였고, 거친 현실을 헤쳐나가기 위해 비정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1920년대 이후 하드보일드는 대실 해밋,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라는 거장을 거치며 더욱 깊어졌고, 이후 사설탐정이 등장하는 범죄소설로 이어져 현대 미스터리 장르를 대표하는 한 경향이 되었다.
거추장스러운 역사적 배경과 연원을 걷어내면, 하드보일드는 정형화된 스타일이 남는다. 현재 생존 작가 중에서 그 스타일을 가장 적확하게 보여주는 이는 아마 하라 료일 것이다. 1946년생, 미술과 미학을 공부했고 재즈피아니스트였던 그는 도쿄 생활을 접고 귀향, 글쓰기에 탐닉한다. 43살 되던 해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의 첫 장편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를 발표하는데, 야마모토 슈고로상 후보에 오른다. 작품 후기에 해당하는 ‘말로라는 사나이’에서 알 수 있듯, 레이먼드 챈들러와 그의 고결한 기사 필립 말로에 대한 경애심은 사와자키 시리즈 전체에 녹아 들어 있다.
하라 료는 모두가 인정하는 심각한(?) 과작 작가이다. 첫 작품을 발표한 지 27년, 그간 발표한 작품은 단 여섯 권으로 장편 4편과 단편집 1편 그리고 에세이 1편뿐이다. 그 모든 시간을 쏟아 부은 건 아니겠지만, 복잡한 플롯을 한결 같은 스타일로 풀어내는 그의 글을 읽으면 종종 구도자의 간절한 기도 같다는 느낌을 준다.
하라 료의 하드보일드를 완성하는 건 사와자키라는 중년 탐정이다. 그는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를 홀로 운영하는데, 와타나베는 그의 동료이자 선배로 오래 전 경찰의 현금과 야쿠자의 각성제를 동시에 가지고 사라졌다. 혼자 남은 사와자키는 덕분에 경찰과 야쿠자 양쪽으로부터 모진 감시를 받고 있는 신세이다. 사와자키는 낡은 블루버드를 몰고 필터 없는 피스를 피는 애연가로 어떤 상황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고결함 또한 잃지 않는 탐정이다.
사와자키가 등장하는 유일한 단편집 『천사들의 탐정』에는 제목처럼, 어린이나 청소년이 주로 등장한다. 엄마를 지켜달라는 열 살짜리 소년의 의뢰, 자신을 협박하는 이와 만나는 자리에 동석해달라는 딸을 잃은 남자, 아버지의 뒤를 미행하는 소녀, 잘못 걸려온 전화로 자살 결심을 말하는 아이돌, 혈육을 찾는 한 부인의 의뢰를 무작정 거절해달라는 또 다른 탐정, 살인 사건에 휘말린 아들을 찾아달라는 어머니. 여섯 건의 사건은 뜻밖의 방향으로 진행되지만, 의뢰인과 범인의 경계에 선 탐정은 사건을 냉철하게 바라보며 어른으로서 책임감 또한 잃지 않는다. 『천사들의 탐정』 말미에는 단편집을 준비하면서 새롭게 썼다는 짤막한 엽편 『탐정을 지망하는 남자』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서 아직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사와자키의 이력이 살짝 밝혀진다.
고결한 기사와도 같은 하드보일드의 탐정은 미스터리 장르에서 여전히 이채롭게 빛나는 존재이다. 하드보일드의 이상향을 신앙처럼 추구하는 하라 료의 스타일은 읽는 이에게 어떤 쾌감마저 안겨준다. 하라 료는 2008년에 사와자키 시리즈의 2기를 발표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벌써 8년이 지났지만, 그는 언제나 긴 기다림을 보상 받을 수 있는 작가이다.
소름
로스 맥도널드 저/김명남 역 | 엘릭시르
하드보일드를 완성형이라고 평가받는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 시리즈' 중 대표작. 아내를 찾아달라는 소소한 의뢰는 결국 두 건의 살인 사건으로 연결된다. 1960년대, 파괴된 미국의 중산층을 바라보는 관조적인 시선과 동기에 집중하는 심리적인 접근 방식, 뜻밖의 반전으로 이어지는 유려한 플롯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유리 열쇠
대실 해밋 저/김우열 역 | 황금가지
하드보일드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실 해밋이 스스로 뽑은 자신의 최고작. 헨리 의원의 정치 활동을 돕고 자신도 함께 정치계에 입문하려는 폴 매드빅. 그리고 그를 형처럼 따르며 뒤처리를 도와주는 네드 보먼트. 어느 날 헨리 의원의 아들 테일러 헨리가 시체로 발견되고 폴 매드빅이 범인으로 지목되면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저/박현주 역 | 북하우스
레이몬드 챈들러의 페르소나 '필립 말로'가 등장하는 첫 번째 장편소설. 캘리포니아의 사설탐정 필립 말로는 백만장자 스턴우드 장군의 의뢰로 사위 러스티 리건을 찾아 나선다. 장군에게는 골칫거리 두 딸이 있고 사건은 복잡하게 꼬여만 간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필립 말로는 천재형 탐정인 셜록 홈스의 반대편에 확실하게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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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거리가 있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