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민 “이 만화, 웃기려고 정말 노력했다”
신작 『만화전쟁』 펴내 『신과 함께』 정도 호흡의 만화를 더 그리고 싶다
안 되는 걸 알면서 하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좋아해요. 끝까지 도달해보려고 하는, 실패에 머물지 않는 이야기요. 『무한동력』도 어떻게 보면 그런 이야기고요. 그런 이야기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 같아요.
웃기는 만화다. 사소한 실수로 북한까지 넘어간 만화 한 편이 북한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남한의 국정원과 북한 국가안전보위부가 이 만화를 자신들의 체제 선전물로 이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만화를 그린 작가 진기한의 어시스턴트로 각자의 요원을 파견한다. 『만화전쟁』은 여기서 시작된다. 주호민의 이 이야기는 북한으로 전단 날리는 행사를 보다가 “차라리 내 만화를 보내면 어떨까”라는 엉뚱한 상상에서 뻗어나갔다. 이 독특한 기본 재료에 올라 앉은 깨알 같은 양념들은 과연 주호민이 훌륭한 요리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진기한은 수시로 ‘진정한 만화가라면...’을 읊조리고, 오피스텔에 사는 국정원 요원이 등장하고, 북한 요원이 평양냉면을 처음 먹어보고 감동하는 장면이 나오는 식이다. “공들여 드립을 치고, 이렇게 하면 웃겠지, 하면서 어떻게든 독자를 웃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린 게 작가의 의도였다면, 이것은 성공한 만화다. 만화가 세상을 흔드는 세계, 참으로 유쾌하지 않은가.
차라리 내 만화를 보내면 어떨까
연재했던 작품이지만 단행본 작업은 또 다른 일이잖아요. <무한도전>에도 출연했고, 많이 바쁘셨을 것 같아요.
네, 연재도 계속 하고 있어서요. ‘(주)마왕’, ‘검협전기’ 같은 작품 하고 있고요. 거의 주중에는 계속 원고 작업해요. 그 외에는 사실 더 바빠진 건 딱히 없습니다. 그냥 <무한도전> 나오고 나서 김풍 작가님과 라디오를 하나 하게 됐는데 그렇게 시간 빼앗는 일은 아니에요.
<무한도전> 방송되고 주변 반응은 어땠어요?
알아보시는 분이 많이 늘었어요. 공원 같은 데 산책하다보면 가끔 알아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기분이 좋으면서도 불편한, 그런 게 있습니다. 그 전에도 가끔 알아보시는 분들은 있었는데 요즘은 비할 바 없이 많이 알아보시더라고요. 공중파의 위력(웃음)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 책으로 나온 『만화전쟁』은 남북관계라는 꽤 논쟁적인 소재를 썼어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먼저 물어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평소 하던 생각이 어떤 발화점을 만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한때 뉴스에 국정원 관련 소식이 굉장히 자주 나왔잖아요. 댓글조작, 간첩조작 사건 같은 거요. 그러던 차에 파주에서 대북전단 날리는 행사 하는 걸 봤어요. 그 안에 든 전단 내용이 북한 체제를 욕하고 이런 ‘삐라’들이잖아요. 모르겠어요, 과연 효과가 있는지는요. 북한에서 엄청 싫어하는 거니까 효과가 있는 거겠죠.(웃음) 그걸 보면서 차라리 내 만화를 보내면 어떨까 생각한 거예요. 북한에서 남한 콘텐츠가 엄청 인기 많다고 하더라고요. 드라마도 다 챙겨보고, 가요도 몰래 다 챙겨듣는대요. 그러니까 차라리 만화책을, 기왕이면 내 만화책을 보내면 어떨까 생각한 거예요. 그 만화가 북한의 국민만화 정도로 인기가 많아지면 남한과 북한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든 자기 쪽에 유리하게 체제 선전물로 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니까 국정원 사건과 엮어서 블랙 코미디를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새터민 취재도 했다고요.
인터뷰를 했는데요. 둘 다 고등학생이었어요. 오늘 드라마가 뜨면 내일 북한에서 볼 수 있대요. 그 정도로 전파가 빠르다고 하더라고요. 남한 드라마 봤던 거 얘기하는데 저도 안 본 것들을 다 봤더라고요.(웃음) 남한말 쓰는 게 북한에서 되게 ‘힙’한 거래요. ‘오빠’라는 말 자체가 없는데 오빠라고 하는 게 유행이라고 하더라고요. 콘텐츠의 힘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어요. 만화는 굉장히 대중적인 매체인데 왜 거기에 참전을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작품 안에서나마 해본 거죠.
평소 생각에도 여러 갈래가 있잖아요. 주로 어떤 생각들이 만화가 되나요?
『무한동력』 같은 경우 27살 때 그린 만화인데요. 친구들의 모습을 한 번 그려보고 싶었어요. 취업준비생들이었거든요. 그러던 차에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집 마당에 무한동력 장치를 만드는 발명가 이야기를 본 거죠. 발명가와 내 친구들 이야기를 붙이면 되겠다, 싶어 만화가 시작된 거예요. 『신과 함께』도 평소 재개발, 강제이주, 이런 시사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가택 신앙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리게 됐고요. 가택신(神)에게 집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이 결합돼서 이야기가 시작이 된 거죠. 『만화전쟁』이 국정원 뉴스와 파주 전단지 행사와 결합된 것처럼요.
사회문제, 이슈 같은 것에 레이더를 계속 켜두고 있는 거네요.
일단 시사에 관심이 많아요. 재미있어요. <썰전> 같은 프로그램도 굉장히 재미있게 보고요. 세상 돌아가는 일, 그 중에도 논쟁적인 것들이 흥미롭죠. 제게 어떤 명확한 포지션이 있지는 않거든요. 그냥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래서 이런 대립이 있구나, 정도로 받아들이는데요. 그런 여러 가지 관점을 보는 게 흥미롭고 그래서, 관심이 많습니다.(웃음)
요즘 관심 두는 이슈는 뭐예요?
여혐(여성혐오) 이슈죠. 여혐 이슈에 관심이 굉장히 많아요. 그것이 창작 면에서도 정치적 올바름과 표현의 제약 사이 어느 지점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많이 주고 있죠.
실제로 그런 문제로 비판 받은 웹툰도 있잖아요. 많이 염두에 두고 있군요.
의식적으로 어떤 대사나 캐릭터를 만들 때 조심하려고 하고 있는데요. 가령 아무 생각 없이 썼지만 남편은 아내에게 반말을 하고, 그렇게 관성적으로 쓰게 되기도 하거든요. 그런 건 의식적으로 조심하려고 해요. 성 역할 같은 경우도 그렇죠. 고정된 성 역할이 부여된 캐릭터들이 있잖아요. 앵커는 거의 남성 캐릭터고요. 그런 걸 의식적으로 바꿔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만화전쟁』에서도 어머니가 집이 더럽다고 혼내면서 ‘여자 좀 만나라’ 하니까 주인공은 ‘여자는 청소부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해요. 아주 작은 에피소드지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 대사도 그런 노력 중 하난데요. 그것도 욕을 먹던데요.(웃음) 결국은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고 있지 않느냐고요. 어쨌든 그런 것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부분 때문에 이야기가 축소되는 것이 걱정되기도 하나요?
그런 건 있어요. ‘드립’을 친다고 하잖아요. 이때 이 드립에 의해 기분 나쁠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이 드립을 치지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이 있어요. 사실은 지금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비하가 굉장히 많잖아요. 특히 못생긴 사람, 뚱뚱한 사람에 대해서는 거의 기계적으로 유머 코드를 사용하는데요. 그건 어느 순간 저도 굉장히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요. 그 기준을 어디까지 높이고 낮추는지는 여전히 고민하고 있어요. 과연 단 한 사람도 불편하지 않은 수위까지 내릴 수 있는가, 그게 가능한가, 고민을 하죠.
저는 제 헤어스타일을 희화화하는 개그를 많이 하는데요. 자학개그고 저는 재미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또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는 거죠. 그런 고민을 예전에 아예 안 했다면 지금은 많이 하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동료들도 굉장히 많이 하고 있고요.
트위터 많이 하시잖아요. 그 영향도 있을 것 같은데요.
SNS에서 저는 세상을 배웠어요.(웃음) 아무도 안 가르쳐줬어요. 학교에서도 그런 걸 안 가르쳤죠. 저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런 건 학교에서 다 가르쳐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거죠.
실패에 머물지 않는 이야기
『만화전쟁』의 주인공이 종종 ‘진정한 만화가라면’이라는 말을 하죠. 어떻게 보면 비틀기 같기도 한데요.
진기한이라는 캐릭터는 아무런 편견 없는 캐릭터로 만들었어요. 다른 사람의 나이도 궁금해 하지 않고, 똑같이 일하면 똑같이 돈을 줘야 하죠. 어떻게 보면 진보적인 사람인데요. 자기가 하는 만화에서만큼은 굉장히 ‘꼰대’인 걸로 그려본 거예요. 그런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남자라면’, ‘만화가라면’, 이런 식으로 어떤 직업이나 포지션을 규정해서 ‘이래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어요. 그런 면을 희화화한 거죠.
그런 고정된 생각이 작가에게도 있을까요?
신인 때는 이런 게 만화지, 하는 것이 있었어요. 십 년 넘게 만화 작업을 하니까 정말 다 훌륭하고, 나름대로 어떤 노력이 들어간 것들이고,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지금은 그런 게 없어요. 진정한 만화가는 이래야 한다, 만화는 이래야 한다, 이런 건 전혀 없어요. 그냥 모든 만화에서 그 만화만의 특징을 발견하고 나랑 맞다, 안 맞다, 이 정도만 보고 있죠.
작가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어떤 건가요?
안 되는 걸 알면서 하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좋아해요. 끝까지 도달해보려고 하는, 실패에 머물지 않는 이야기요. 『무한동력』도 어떻게 보면 그런 이야기고요. 그런 이야기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 같아요.
요즘은 그야말로 ‘웹툰전쟁’인데요. 오래 웹툰을 해온 입장에서 웹툰 시장이나 후배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세요?
굉장히 포화됐다는 느낌을 받아요. 연재처가 엄청 늘어난 상태인데요. 전체 수요에 비해서는 연재처가 많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연재처들이 각자의 색을 가지고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이고, 지망생 입장에서는 연재처가 늘어난 건 좋은 일이죠. 그런데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가 조금 걱정이 돼요.
그럼에도 지망생은 많고, 점점 많아질 텐데요. 책임감 같은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책임감이요? 책임감 그런 건 없어요.(웃음) 원래 선후배 개념, 이런 게 없기도 하고요. 그냥 제 작품이나 잘 해야 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고요. 그렇습니다.
필모그래피라고 하잖아요. 작품 계획이랄까 지향하는 작품의 형태가 있는지 궁금해요.
지향점이 있긴 있는데, 계획대로 안 되더라고요.(웃음) 왜냐하면 제가 자전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서 친구들 이야기, 판타지, 이렇게 조금씩 확장을 시켜나갔는데요. 아무래도 아이도 생기고 하다 보니 큰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워졌어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고 그래서요.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계속 단 권짜리 작업만 하고 있거든요. 좀 더 긴 호흡의 극화를 해보고 싶어요. 그게 원래 목표거든요. 『신과 함께』 정도 되는 호흡의 만화를 그래도 십 년 안에 서너 개는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웃음)
결국 공감
『만화전쟁』을 ‘가장 만화다운 만화’라고 했다고요.
일단 소재 자체가 만화니까 다른 만화 패러디라든지 이런 것들이 들어갔고요. 이 만화는 웃기려고 정말 노력을 많이 했어요.(웃음) 공들여 드립을 치고, 이렇게 하면 웃겠지, 하면서 어떻게든 독자를 웃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렸어요.
그러니까 가장 만화다운 것은 ‘재미’인가요?
그렇죠, 그런데 사실 ‘재미’는 ‘희노애락’이라고 생각해요. 부정적인 감정들까지도 다 재미라고 생각하긴 하는데요. 일단 기본적으로 만화책은 즐겁기 위해 보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좀 가벼운 마음으로 그렸죠.
‘재미가 희노애락’이라는 건 어떤 의미죠?
여러 감정들이 있잖아요. 기쁨, 노여움, 슬픔, 그런 감정들을 제 의도대로 주무르는 게 작가의 재미고요. 주무름을 당하는 건 독자의 재미겠죠. 그런 부분을 신경 많이 쓰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마음을 휘저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요. 다만 『만화전쟁』은 그런 고민은 안 했다는 거(웃음), 웃기려고 했다는 거예요.
슬픈 영화 보고 나와도 ‘재미있다’고 하잖아요. 감정이 움직였으면 그게 재미라고 생각해요. 아무 느낌이 없는 것들은 재미가 없는 거죠. 공감을 했기 때문에 거기서 슬픔이나 분노를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요. 결국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신과 함께』가 영화화되고 있어요. 다른 장르로 대중들에게 다가갈 기회가 생긴 건데요.
영화를 만들자고 한 게 거의 5년 전이에요. 이게 되나 싶었는데 결국 촬영 중이거든요. 일단은 찍고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요. 『신과 함께』는 뮤지컬로도 만들어져서 작년에 공연한 적이 있는데요. 제 만화가 다른 매체로 인식 돼서 본 건 처음이었어요. 정말 황홀한 경험이었죠. 그러면서도 괴로운 경험이었는데요.(웃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공을 들여서 그런 무대가 만들어졌다는 건 황홀했는데요. 제 대사를 사람들이 육성으로 얘기하니까 힘들더라고요. 그건 어떤 느낌이냐면요. 제가 미니홈피에 쓴 일기를 옆에서 누가 읽는 느낌 있죠? 만화가에게 금기시되는 게 만화 대사를 그 만화가 앞에서 읽는 거거든요. 금기예요, 금기. 너무 민망하니까요. 그걸 꼼짝없이 앉아서 세 시간 동안 당하니까 귀에서 피가(웃음).
영화도 그럴 텐데요?
그렇겠죠.(웃음) 다만 영화는 많은 부분이 달라져서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일 잘하는 일로 욕을 먹어야 하는 어려움
다른 장르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작품이 또 있나요?
『만화전쟁』을 다른 장르로 바꿔서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드라마 전쟁’, ‘연극 전쟁’ 이런 식으로요. 만화기 때문에 만화라는 소재를 채택한 건데요. 만약 북한에서 엄청 인기 있는 드라마가 있어서 그걸 체제 선전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식이 돼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만화전쟁』 작업하면서 굉장히 즐거우셨던 것 같아요.
작업을 하는 도중에는 다 힘들어요. 끝났을 때 즐겁고요.(웃음) 『만화전쟁』도 그릴 때는 힘들었는데 끝나고 나니까 경쾌한 소품이 하나 나온 것 같아서 좋죠. 선물하기도 좋고요.
힘들지만 즐거운, 그 과정이 원동력이겠죠.
도피하는 면이 있어요. 현실에서는 육아나 다른 문제들도 힘들잖아요. 그런데 원고를 하고 있으면 차라리 그게 나은 거예요. 그런 식으로 원고가 어느 정도 도피처가 된 것 같아요.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쉽지 않죠. 근데, 다른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웃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제일 재미있기도 했고요. 오히려 취미가 일이 되면서 생기는 문제들이 있었죠. 마냥 즐겁지 않다는 것, 중압감이 있긴 있어요. 내가 제일 잘하는 일로 욕을 먹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고요. 모든 프로들이 겪는 숙명이겠죠. 그런데 가끔 생각하면 화가 날 때가 있어요.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인데 이걸 욕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자괴감이 빠질 때가 있는데요. 그런 생각들이 지워지는 순간이 또 원고 하고 있을 때죠. 그래서 계속 그리는 것 같아요.
매체 자체가 온라인이라 너무 가깝죠. 악플에도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요. 힘든 일이에요.
예전 만화는 편집부라는 완충지대가 있었잖아요. 독자 감상이 엽서로 도착하고요. 지금은 바로 댓글이 달리거나 블로그에 찾아와서 글을 남기고, 쪽지를 날리고, SNS로 바로 말을 해요. 접촉하는 면이 너무 많죠. 예전에는 그게 장점이라고 생각했어요. 빠른 피드백이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가끔 댓글창 없는 사이트에 연재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별히 참고할 가치가 없는 의견들이 굉장히 많아요. 물론 그것도 만화의 재미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만화를 보고 그 아래에서 댓글 놀이를 하는 것들이요. 그러니 작가로서는 필요악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 같아요.
특별히 화가 났던 댓글이 있나요?
굳이 악플을 찾아서 읽진 않는데요. 비평의 수준이 낮은 경우는 화가 나죠. 비평 수준이 높을 때는, 정곡을 찔렸을 때는 너무 부끄러워요. 그런데 수준이 낮으면 화가 나는 거고요.
<IZE>에서 이말년 작가와 작화 비교를 한 기사를 봤어요. 그에 대해 트위터에 이말년 작가의 작화가 좋다고도 남겼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게 너무 답답한 거예요. 이말년이 그림을 못 그린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그림이냐고 해요. 그런 걸 보면 너무 답답해요. 그림을, 한마디로 모른다는 느낌이 들면서 그런 비평에는 화가 나는 거죠.
작가의 작화에 대해서도 그렇다면?
저는 실제로 못 그립니다.(웃음) 이말년은 진짜 잘 그리는 거고요. 저는 어제도 원고를 하다 울컥했어요. 왜 이렇게 안 그려질까, 이러면서요. 지금 하고 있는 브랜드 웹툰은 무협 장르라서 되게 액션 장면이 많아요. 그런데 그림 그릴수록 너무 이상한 거예요. 어제 김풍 작가님과 진지하게 크로키 학원을 다니자고 얘기했어요.(웃음) 진짜로 좀 답답해서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주호민 작가의 그림체를 좋아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저도 좋아해요. 둥글둥글하고, 가독성에 무게를 실은 그림이라서요. 잘 읽히고, 인물들의 감정을 충분히 묘사할 수 있죠. 좋아하는데, 만족하진 않는 거죠. 표현하고 싶은 게 100% 표현이 안 될 때 너무 답답해요. 더 잘 그리고 싶은 욕구는 항상 있어요. 그러면 더 큰 이야기들을 할 수 있으니까요. 왜냐하면 그림체라는 한계에 갇혀서 못 그리는 이야기들이 좀 있거든요. 더 잘 그리고 싶죠.
<무한도전>에서 박명수 씨에게 무한 칭찬을 해주셨는데, 그 부분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어요. 기사도 많이 됐고요.
그 부분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는 분들이 있었어요. 제게 직접 SNS로 감사하다고 인사도 주시고요. 놀랐어요. 사람들이 정말 칭찬에 굶주려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당연히 처음 하는 사람이 잘할 수 없거든요. 재미, 흥미를 가지려면 시간도 필요하고 용기도 필요한 거잖아요. 그런 걸 북돋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댓글 시스템이 그래서 신인 작가들에게 힘이 되는지 잘 모르겠거든요. 너무 혹독한 말들을 쏟아내니까요. 좀 더 시간을 갖고 연마하면 훨씬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인데, 그런 댓글에 상처받고 움츠리지 않을까 걱정이 돼요. 칭찬을 많이 해줘야 할 것 같아요.
작가의 상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와 취재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어떻게 생각하세요?
각자 스타일이기 때문에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것만으로 뭔가 만들어냈다고 그게 비난 받을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자전적인 얘기만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영화감독도 있는 거고요. 다만 우려되는 건 어쨌든 캐릭터를 묘사할 때 실제 사람을 관찰하고 그걸 가공해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이미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캐릭터를 다시 재가공하고, 재가공한 캐릭터를 또 재가공하고, 이런 식으로 다른 창작물에 영향을 받아 끊임없이 그리는 건데요. 그것은 마치 소가 소를 먹는 것처럼, 광우병처럼, 뭔가 좀 문제가 있을 수 있겠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그런 말을 했었거든요. 실제 인간 관찰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캐릭터를 만들기 때문에 지금 일본 애니메이션이 오타쿠 소굴이 되었다고요. 오타쿠 소굴이 된 걸 비난하거나 그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요. 캐릭터를 만들 때 인간 관찰을 기본으로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만화전쟁 주호민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무명 만화가 진기한. 준비 중이던 「우주괴수 용지라」 연재를 퇴짜 맞고 돌아온 날, 북한에 날려 보낼 풍선에 넣을 만화를 그려달라는 외할아버지의 부탁을 받는다. 「우주괴수 용지라」가 북한으로 날아가고, 한 달 후 다음 편이 궁금해서 탈북한 사람까지 생겨날 정도로 북한 인기 만화가 된다. 국정원은 이 만화를 대북 선전매체로 이용할 계획을 꾸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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