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이야기가 역사가 되기까지
6월 1주 신간
1995년 삼풍백화점의 기억을 복원한 『1995년 서울, 삼풍』,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기로 유명한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직업 윤리에 관한 명언 모음집 『읽고 쓰고 마음에 새기다』 등 주목할 만한 신간을 소개합니다.
1995년 서울, 삼풍
서울문화재단 기획/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 기억수집가 저 | 동아시아
세월호 참사와 달리 삼풍백화점 참사의 당사자들 이야기는 한데 모인 적이 없다. 이는 21년 전, 희대의 참사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몰인정한 상식이었다. 5명의 '기억수집가'가 2014년 10월 7일부터 2015년 7월 30일까지 약 10개월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총 108명을 인터뷰했다. 당사자들이 재현한 기억으로 '기록된 적 없는 개인들의 이야기'가 '역사'가 되었다. 붕괴 현장에서 골프채를 훔치는 좀도둑을 잡은 경찰, 취재를 위해 자원봉사자로 위장한 기자, 소방 호스로 구조대의 옷에 밴 시신 냄새를 씻겨준 자원봉사자, 600여 구의 시신 지문을 발췌하던 경찰, 브래지어로 시신의 성별을 구분했던 의료진, 실종자 가족 대표를 뽑는 절차를 만들었던 서울시 공무원, 꺼림칙한 기분에도 자리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은 매장 직원, 적용죄명을 두고 치열하게 토론하던 검사, 딸의 보상금을 가지고 소식을 끊은 사위까지 59명의 개인들의 기억으로 재구성된 '경험담'을 읽다 보면 장마철이었다는 참사 당시의 축축한 공기가 코끝에 닿는 듯 하다.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서민 저 | 을유문화사
저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재학 중 방송대본 '킬리만자로의 회충'을 쓰는 등 기생충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명하다가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기생충학계에 투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기생충학의 대중화'를 위해 인터넷 블로그, 딴지일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등에 칼럼을 써 왔다. 전편이라고 할 수 있는 『서민의 기생충 열전』보다 더 재밌고 흥미로운 기생충들의 세계가 펼쳐진다. 머릿니, 질편모충, 구충 등 이름만 들어도 더럽고 부정적인 이미지의 기생충은 역설적으로 인류 역사와 함께해왔고, 앞으로 인류가 멸종하더라도 지구가 멸망하는 날까지 생존할 거의 유일한 존재다. 그들의 생존법을 읽다 보면 기생충도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 매력적인 생명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읽고 쓰고 마음에 새긴다
진화 편역 | 나무발전소
중국 고전에서 찾은 직업 윤리에 관한 명언 모음집이다. 청담류(淸談類)의 수신 격언보다는 일을 잘 처리하고 조직을 잘 관리하는데 현실적인 지표가 되는 금언(金言) 위주로 엮었다. 그동안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없는 〈종정록〉, 〈육사잠언〉 같은 고전을 중심으로 편역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편집했다. 세월호/메르스사태/가습기살균제 같은 일련의 사태에서 보듯 한국에 지금 절실한 것은 일말의 '직업 윤리' 일 것이다. 주자의 "성현의 말씀은 반드시 늘 장차 눈으로 보고 입으로 소리내어 읽고 마음속으로 곱씹어 보아야 한다" 라는 말처럼 금언을 따라 읽고 쓸 수 있게 했다.
스님의 비밀
자현 저/석공,불교신문사 사진 | 조계종출판사
크게는 출가에서부터 열반까지 그리고 작게는 아침 도량석에서부터 저녁 취침까지 스님들이 어떻게 수행하고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동안 비슷한 내용이 책으로 출간되거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방영되기도 했지만 스님들이 생활하고 수행하고 있는 곳이 '금단'의 영역이어서인지 신비화되거나 왜곡되기 일쑤였다. 2,600년 전 인도에서 출발한 의례와 습관, 단어들까지 일일이 연원과 이후의 변화에 대해 다룬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 그리고 한국의 역사가 언급되고 유교, 도교, 민속신앙 등 이웃 종교와의 교류사도 언급된다. 법명조차 없이 '행자'로만 불리는 단계를 거쳐 승가고시를 통과해야 하는 멀고 먼 스님으로 가는 길도 흥미롭다.
매혹하는 식물의 뇌
스테파노 만쿠소,알레산드라 비올라 공저/양병찬 역 | 행성B이오스
사람들은 흔히 식물은 고통을 느낄 수 없으며, 지능이 없기 때문에 학습 능력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찰스 다윈은 "어린뿌리의 말단은 매우 민감해서, 인접한 다른 부분의 운동을 지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물의 어린뿌리는 하등동물의 뇌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라고 썼다. 다윈의 주장대로 근단은 식물 전체를 위해 시시각각 중력, 기온, 습도, 전기장, 독성물질 같은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뿌리를 뻗을 곳을 정한다. 지구 생명체 99.7퍼센트를 차지하는 식물은 우리가 인정하든 하지 않든 지구 공간을 지배하는 우점종의 위치에서 생태계를 떠받치고 있다. 앞으로 과학기술이 계속 발달함에 식물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지구 주민으로서, 동반자적 생명체 식물을 다시 보게 만드는 책이다.
친구 사이에 빨간 불이 켜졌다면?
트레버 로맹 글그림/정아영 역 | 라임
누군가의 화풀이 대상이 된 아이는 자존감이 부쩍 떨어지게 되고, 더 나아가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좌절감까지 느끼게 된다. 이 책에서는 괴롭히는 레오와 괴롭힘을 당하는 에디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에디가 자신을 탓하게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혼자라고 느끼거나, 누구나 한 번쯤 괴롭힘을 당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편견이다. 어린이 독자들은 모두가 당연한 듯 여기던 여러 편견들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이런 편견을 어떻게 깨 나가야 할지 스스로 고민해 보게 될 것이다. 학교 선생님과 학부모들을 위한 팁도 책의 말미에 제공해 이해를 돕는다.
사랑한다면 파리
최미선 저/신석교 사진 | 북로그컴퍼니
저자는 10여 년간 동아일보사 기자로 근무했다.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밤이면 차를 몰고 냅다 강릉으로 달려가 커피 한 잔 달랑 마시고 돌아오는 일이 잦아 '썰렁한 밤도깨비'라 불렸다. 사진작가는 공대를 나와 그와 걸맞은 직장 생활을 하던 중에 적금을 부어 산 카메라의 매력에 빠져 다시 대학 사진학과에 들어갔다. 당시 그의 나의 서른. 동기들이 대리로 진급할 무렵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에 동아일보 사진부 막내 기자로 입사했다. 취향이 같은 저자와 동시에 사직서를 냈다. 오로지 파리 한 도시만의 수많은 골목과 건물, 카페와 거리를 사진과 글로 풀어낸다. 파리를 가장 파리답게 하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녹여낸 여행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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