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열전, 종의 기원부터 제3인류까지
5월 2주 신간
<주목, 이 주의 신간> 이번 편은 소설 특집입니다. 정유정 작가의 신작 『종의 기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완결판 『제3인류』, 마흔여섯 기러기 아빠의 은밀한 『자기 개발의 정석』 등 주목할 만한 신간을 소개합니다.
종의 기원
정유정 저 | 은행나무
주인공 유진은 피 냄새에 잠에서 깬다. 유진은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을 며칠간 끊은 상태였고, 늘 그랬듯이 약을 끊자 기운이 넘쳤고, 그래서 전날 밤 '개병'이 도져 외출을 했었다. 유진이 곧 시작될 발작을 기다리며 누워 있을 때, 해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10년 전 자신의 집에 양자로 들어와 형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해진은, 어젯밤부터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집에 별일 없는지 묻는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진은 피투성이인 방 안과, 마찬가지로 피범벅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작가는 사이코패스로 분류되는 이들이 가진 인간 본성의 어둠을 포착하고 거침없이 묘사해 나간다. 어린 시절부터 학습돼 온 도덕과 교육, 윤리적 세계관을 철저하게 깨나감으로써 비로소 평범했던 한 청년이 살인자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악인의 탄생기'를 완성시킨다.
정신병원을 탈출한 여신 프레야
매튜 로렌스 저/김세경 역 | 아작(디자인콤마)
북유럽신화의 사랑과 전쟁의 여신으로 그 신화에서는 지극히 중요한 존재인 프레야는 인간들에게 잊혀진 채 한 정신병원에서 새라 버내디란 이름으로 무려 이십칠 년째 시간을 죽이고 있다. 누가 그녀를 가뒀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정신병원이 가장 편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녀는 어느 날 새로 정신과에 근무하게 된 남자직원 나단을 만나게 된다. 나단은 외모도 괜찮고 유머감각도 있어서 그녀의 마음에 든다. 그리고 같은 날 그녀는 가렌이란 이름의 면회객을 받는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있기에 면회를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말이다. 위협감이 철철 흘러넘치는 남자인 가렌은 새라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 자신들에게 협력하라고 위협한다. 작가는 신들을 인간의 소망이 구현한 존재로 묘사하면서 이 세계의 욕망들이 어떻게 서로 충돌하는지를 그리 심각하지 않으면서 유머러스한 필치로 보여준다. '프레야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기도 한 이 책은 원고 상태 계약으로 한국어로 가장 먼저 출간되는 이색적인 책이기도 하다. 영어 초판은 2017년 출간될 예정이다.
제3인류 5,6 세트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이세욱,전미연 공역 | 열린책들
지구는 핵폭발의 위험, 종교와 성차별에 따른 폭력으로 점점 망가지고 있다. 파리에서는 황폐한 환경과 방사능 속에서도 살아남을 신종 인간을 탄생시키려는 비밀 프로젝트가 성공하고, 초소형의 인간 '에마슈'가 탄생한다. 에마슈는 작은 체구를 십분 활용해 핵폭발과 소행성 충돌을 막아낸다. 두 번째로 나타난 소행성을 파괴하기 위한 로켓 발사 예정일, 에마슈들의 나라 마이크로 랜드에 거대 쓰나미가 발생하고, 어느 국가도 에마슈들을 도우려 나서지 않고 에마슈들의 로켓은 파도가 덮치기 전 아슬아슬하게 발사에 성공한다. 일곱 진영으로 나뉘어 혼돈에 휩싸인 지구에서는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려 한다.
10년 후의 일상
편석준 저/엄성훈 그림 | 레드우드
저자는 IT대기업을 다니던 회사원이었다가 스타트업 창업을 한 CSO였다. 그리고 생애 최초로 작가로서의 시간을 올곧이 보내며 인공지능 시대의 IT소설집을 냈다. 작가로서의 자질을 묻는다면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서 최종심 3편에 오른 적이 있다. 총 33편이 실린 이 소설집은 과학기술이 지금보다 발전한 10년 뒤의 세계를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의 일상을 담고 있다. 가상현실과 인공지능이 더해져 의료기술은 놀랍도록 발전했지만 누군가는 콧물 감기약이 없어 이미 상해 버린 약을 세척해 먹거나, 자율주행자동차로 여행을 떠난 가족은 각자의 가상현실에 바져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아무 먼 미래의 과학 발전을 소재로 하는 기존의 SF소설보다는 가까운 미래의 과학을 소재로 상상력을 발휘했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 공평성을 기하기 위해 '점심 메뉴 결정 앱'을 사용하는 정도의 근미래가 오히려 현실성있게 느껴져 줄거리에 몰입하게 된다.
자기 개발의 정석
임성순 저 | 민음사
회사에 목매단 대기업 부장이자 처자식한테 돈 보내기 바쁜 기러기 아빠가 등장한다. 더 나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이 쳇바퀴 돌던 마흔여섯의 이 부장은 전립선염 치료를 받기 위해 찾은 병원에서 일생일대의 위기를 만난다. 의사에게 전립선 마사지를 받던 중 전율을, 아니 쾌감을 느끼고 만 것. 쾌감의 정체가 드라이 오르가슴이란 걸 알게 된 이 부장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오르가슴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고, 무기력하기만 하던 이 부장의 삶은 전에 없는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저자의 대표작 모두 자본주의에 대해 질문하면서 '회사'에 대한 탁월한 분석을 내놓는다. 대기업 영업직으로 십여 년 일한 주인공과 그의 삶을 떠받치는 회사의 관계에 대한 표현은 이 시대 회사인이라면 열렬히 공감할 만 하다. 장편소설에 비해 몰입 시간이 짧은 경장편 소설의 한계를 극적인 상황의 긴장감과 흥미로운 캐릭터의 연쇄로 대체했다.
베개를 베다
윤성희 저 | 문학동네
감기로 회사에 나가지 않기로 한 날. 김비서는 '나'의 전화에 몹시 놀란 눈치다. 오늘 나의 눈에 보이는 풍경은 어쩐지 새롭다. 이 자리에 원래 이렇게 큰 목련나무가 있었던가, 다음날 눈을 뜨니 이미 낮 한시가 넘어 있다. 이틀째 결근한 나는 밥을 먹고 돌아오다 백발의 할머니를 만난다. 그녀를 따라 밭을 갈고 이랑과 고랑 만드는 일을 돕는 나. 할머니는 나에게 "내일은 출근해. 땡땡이는 딱 하루면 좋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은 이틀째 결근이며 내일도 회사에 가기 싫을까봐 두려운 나. 할머니와 헤어진 나는 어쩐지 어제보다 덜 아픈 기분이고, 그럼에도 아프다고 엄살을 맘껏 부릴 수 있을 만큼 편안해진 기분이다. 제 41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이틀」이 수록된 단편집. 줄거리로만 보면 강렬한 사건 하나 없는 밋밋한 이야기지만 작가 특유의 건조한 문장으로 오히려 삶을 선명하게 보이게 한다.
끝나지 않는 여름
넬레 노이하우스 저/전은경 역 | 북로드
크리스마스 날 아침 고요한 농장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다섯 명이 사망하고 열일곱 살 셰리든 그랜트는 고향을 떠난다. 유력한 참고인으로 수배된 셰리든은 결국 붙잡히고 의붓오빠를 유혹한 입양아로 손가락질을 받는다. 작가는 냉철하고 카리스마 있는 수사반장 보덴슈타인과 남다른 직관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여형사 피아가 등장하는 '타우누스 시리즈'로 베스트셀러 작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다. 그 중에서도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독일에서 32주 동안이나 판매 순위 1위를 기록하는 등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전 세계 20개국에 번역 출간된 이 작품은 한국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며 2011년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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