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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어렵지 않아요

동요 <옹달샘>에서 배우는 정의의 참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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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그 친구가 ‘틀린’ 건 아닙니다. 다른 친구의 다른 생각은 그의 권리예요. 그런데 내 생각에 그런 다른 생각들이 더해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다양한 생각이 확장되고 서로 얽혀 복합적인 생각이 될 수도 있어요. 그걸 ‘생각의 융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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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면서 뭔가 부당하다거나 옳지 않다고 여기는 일들을 겪어 봤을 거예요. 아마 이런 경우도 겪어 봤을 겁니다. 나는 규칙을 지키는데 다른 친구들이나 사람들은 전혀 지키지 않는 경우 말입니다. 시험 때 나는 열심히 공부했는데 누군가는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면서 부정행위를 하고도 걸리지 않아 나보다 점수가 높게 나오는 경우,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나요? 분명히 공정하지 않다고 여길 겁니다. 그렇다고 선생님께 고자질하는 건 내키지 않아 속으로 끙끙 앓아 본 적 있나요? 지하철이나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떤 사람이 슬그머니 새치기하는 경우도 있지요. 게다가 하나 남은 자리를 새치기한 사람이 차지해서 꼼짝없이 내가 서서 가야 하는 경우는 정말 화가 나지요? 그런 때 규칙을 따르는 사람만 손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뭔가 부당하고 불공정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정의를 생각합니다. 산소가 부족해야 산소의 가치와 의미를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지요. 사전에 따르면 정의란,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혹은 ‘바른 의의’ 또는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나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라고 설명됩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요. 그런데 추상적 설명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정의라고 하는지, 그리고 정의의 실제적 모습이 어떤지는 딱 부러지게 설명하거나 이해하기 어렵지요. 그럼 다음의 경우를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 초등학교 때 <옹달샘>이라는 동요 배웠지요? 초등학교 교실로 돌아가 봅시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가사가 참 간단하지요? 이제 하나씩 따져 봅시다. 노래의 주인공인 토끼는 왜 그렇게 새벽에 일찍 일어났을까요? 가사에 있잖아요. ‘세수하러’ 그렇게 일찍 일어난 겁니다. 토끼의 소망이랄까 바람이 바로 깨끗한 물에 세수하는 겁니다.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걸 거창하게 말하자면 ‘행복추구권’이라 할 수 있어요. 행복추구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제10조에 기록되어 있는데 1980년대 들어서야 문자로 규정된, 그러니까 매우 현대적 개념이고 가치입니다.


숲 속의 법칙을 따르자면 ‘먼저 가는 동물’이 그 권리를 얻을 수 있는 거겠지요. 토끼는 그래서 새벽에 일어났어요. ‘눈 비비고’ 일어났다는 건 싫은데 억지로 일어났다는 거지요. 왜 그랬죠? 맞습니다. 바라는 바가 있잖아요. 바로 깨끗한 물에서 세수하는 것! 그렇죠. 깨끗한 물에 세수하려고 그렇게 힘들게 일어났어요. 새벽어둠을 가르며 옹달샘까지 가는 것도 쉽지는 않겠지요. 그러니까 그 권리를 얻기 위한 값을 치른 셈이지요. 그래도 드디어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으니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토끼가 이상해요! 세수하러 갔는데 세수를 하지 않다니요! 건망증이 심해서 가다가 까먹은 걸까요? 여러분은 궁금하지 않나요? 왜 세수를 하지 않은 걸까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어요. ‘누구나 자신의 방식대로 생각할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누가 내게 생각을 강요했나요? 아닙니다. 내가 내 나름대로 생각한 겁니다. 그걸 개념적으로 설명하면 바로 ‘사상의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 또한 헌법에 보장된 자유고 권리입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이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 수 있어요. 그들도 생각의 자유, 즉 사상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서로 토끼가 세수하지 않은 까닭을 말하겠지요. 내 생각과 다른 것도 있고 같은 것도 있을 겁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그 친구가 ‘틀린’ 건 아닙니다. 다른 친구의 다른 생각은 그의 권리예요. 그런데 내 생각에 그런 다른 생각들이 더해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다양한 생각이 확장되고 서로 얽혀 복합적인 생각이 될 수도 있어요. 그걸 ‘생각의 융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혼자 공부하지 않고 학교에 함께 모여 공부하는 까닭 가운데 하나도 바로 그런 목적 혹은 효과 때문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나와 함께 공부하는 내 친구들이 소중하고 고맙겠지요. 그게 일차적 연대 의식 혹은 공동체 의식입니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성적을 얻어도 그런 의식이 없다면 나는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어떤 부당한 일에 맞설 때 나 혼자 외롭게 싸우거나 버텨야 합니다. 반면 함께 공부하고 생각을 나누고 더해 준 친구들이 곁에 있다면 늘 든든하고 고맙겠지요. 이건 꼭 기억해야 해요.

 

그런데 친구들 가운데 꼭 이상한 대답을 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녀석들이 있잖아요? 선생님께서 토끼가 세수하지 않은 까닭을 물어보셨을 때도 그런 이상한 대답을 하는 친구가 있을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나요? ‘뭐 저런 놈이 있냐?’ 혹은 ‘쟤 바보 아냐?’ 그러거나 ‘아, 재수 없어!’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그 친구에 대해 판단하고 내 친구 명단에서 지워 내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다시 물어봅니다. “넌 왜 그렇게 생각하니?” 그 친구가 더듬더듬 대답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 보니 전부 다 동의할 수는 없어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거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은 부분이 있을 겁니다.


여기에 두 가지 생각할 거리가 있어요. 우선,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남 눈치 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표현의 자유’입니다. 앞에서 말했던 권리, 즉 사상의 자유와 묶어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것 또한 19세기에 들어서야 헌법적 가치로 인정받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21조에 이 권리와 자유가 분명하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럼 나머지 한 가지 생각할 거리는 뭘까요? 아까 어떤 친구가 이상한 대답을 했을 때 속으로 비난하거나 비웃었잖아요? 그런데 그 친구 대답을 들어 보니 어떤 점에서는 일리가 있고 동의하고 공감할 점도 있잖아요. 그러면 내가 너무 성급했던 셈이지요. 성급함의 반대는 뭘까요? 그건 바로 신중함이고 기다림입니다. 사람이건 사물이건 사태건 판단할 때 너무 성급하면 전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쉽습니다. 하나의 현상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건 매우 위험합니다. 더구나 그가 사람이고 게다가 나와 같은 반에서 함께하는 친구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정의라는 주제를 다룰 때 ‘신중함과 배려, 공감과 연대’라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토끼는 왜 세수를 하지 않은 걸까?”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다양하게 표현되기는 하겠지만 아마 가장 많은 대답은 이런 게 아닐까요?


“내가 깨끗한 옹달샘에서 세수하면 물이 더러워져서 다른 동물들이 물을 마시지 못하니까요.”


여러분도 그렇게 여기나요? 아마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아도 대략 그런 비슷한 대답을 많이 떠올렸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겠지요.


“그래. 토끼는 분명 새벽에 일찍 눈 비비고 일어나서 왔으니 대가를 치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 즉 세수할 권리를 가졌지만 여러분의 생각처럼 다른 동물들을 생각해 보니 도저히 세수할 수 없다고 여겼을 거야.” 그러시면서 이렇게 덧붙일 겁니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고 그 권리와 자유를 갖는다. 그러나 나의 행복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함께 크게 하거나 혹은 최소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그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


내 행복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불행을 토대로 해서 이루어지는 행복이라면 그건 행복일 수 없습니다. 그런 경우 기꺼이 내 행복을 포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의입니다.


선생님께서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이 행복하고 싶을 때 다른 이를 불행하게 한다면 그걸 추구해야 할까?”

 

 그러면 아이들이 대답합니다. “아니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며 그것을 선택하는 과정이 바로 정의입니다. 정의라는 건 그리 거창한 게 아닙니다. 내가 행복하고 또한 ‘우리가’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이해하고 따르는 것, 그것이 바로 정의의 바탕입니다.


자, 정의가 이젠 어렵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느껴지나요? 그럼 우리는 벌써 목적지에 반쯤은 도달한 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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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나만 지키면 손해 아닌가요?김경집 저 | 샘터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정의의 문제부터 함께 짚어보고, 동서양의 시대별, 인물별 정의에 관한 생각과 이론을 살펴본 뒤, 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연대의 마음가짐과 실행 방법 등을 고민해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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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경집(인문학자)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에서 인간학과 영성 과정을 가르쳤다. 인문학을 대중과 나누는 일과 문화운동에 뜻을 두고 있으며, 거대담론보다는 소소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또한 그러한 삶을 소중하게 여긴다. 저서로 《책탐》《생각의 인프라에 투자하라》《고장난 저울》《완보완심》《인문학은 밥이다》《생각의 융합》《엄마 인문학》 등이 있다.

정의, 나만 지키면 손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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