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연 “번역가는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지는 사람”
음악 관련 서적 번역의 일인자
번역가는 모든 걸 자기가 책임을 져야한다. 책에 자기 이름이 들어가고 텍스트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모두 맡는다. 다른 사람들과 상의를 해서 일을 만들어가는 걸 재미있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혼자서 모든 일을 만들어가는 걸 재미있어 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번역가는 혼자 하는 데서 재미를 느껴야 한다.
우리는 어려운 외국서적을 번역가의 수고로 쉬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외서를 대할 때 번역가는 저자에 비해 덜 드러나지만 실제로 우리가 읽는 것은 저자의 아바타라고 할 옮긴이의 문체와 섬세한 내용 정돈이다. 능히 예상할 수 있지만 정확한 표현과 의미 전달을 위해 번역가가 겪는 산고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장호연은 그중에서도 주로 음악 관련 원서를 번역하는 인물이다. 서울대 미학과(89학번)와 대학원 음악학과를 졸업한 뒤 한때 평론 활동에 몸담았던 그는 1999년 『대중음악 사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음악이란 무엇인가』, 『록 음악의 미학』, 에릭 클랩튼 자서전 등과 소설을 포함, 50여권 정도의 번역서를 냈다. 얼마 전에는 데이비드 버클리가 쓴 『엘튼 존』 전기를 번역했다.
번역과 관련한 전반 환경이 어떤지 궁금했다. 번역 일로는 첫 인터뷰라는 그는 “음악 공부를 위해 책을 읽다가 이건 재미있겠다 싶은 책을 내게 되면서 번역에 발을 들였다”며 지금은 자신의 직업을 번역가로 여긴다고 했다. 국내 독자들이 한 번도 접하지 못한 부류의 책, 음악을 넓게 보는 책을 번역한 게 자랑스럽고 또 지속적으로 그런 책을 내고 싶은 소망도 피력했다. 그가 꼽는 번역가의 조건은 뭘까? “성격, 혼자 있는 것을 견디는 성격이 제일 중요하다!”
여태까지 낸 번역서 가운데 음악 아티스트에 대해 다룬 건 몇 권 정도인가
50여권 중에서 아티스트에 대해 다룬 건 존 브림(John Bream)의 『레드 제플린(Whole Lotta Led Zeppelin)』과 에릭 클랩튼이 직접 쓴 『에릭 클랩튼』, 그리고 막 나온 데이비드 버클리의 <엘튼 존> 이렇게 딱 세 권이다. 비슷한 걸로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대해 마이클 랭(Michael Lang)이 쓴 책 『우드스탁 센세이션(The Road To Woodstock)』도 있고. 그때쯤 우드스탁 40주년이다, 우드스탁 코리아가 열린다 해서 번역서가 우르르 쏟아진 적이 있다. 그 공연 계약한다고 그러던 도중에 번역 제안이 들어왔다. 공연은 취소됐지만 책은 어쩌다 나오게 됐다.
니콜라스 쿡(Nicholas Cook)의 『음악이란 무엇인가(Music-A Very Short Introduction)』와 같은 이론서나 개론서 번역은 언제부터 한 건가
이론서나 개론서 번역은 10년 전인 2006년 무렵부터 시작했다. 전업 번역이 올해로 10년째인 셈이다. 대학원 나오고 2002년 영국 뉴캐슬 대학에서 1년 정도 공부할 무렵에 읽었던 책들을 다룬 것이다. 사이먼 프리스 책도 그때 공부했던 것들과 관련이 있는 거고 미네소타 대학교에 교수로 있는 시오도어 그래칙(Theodore Gracyk)의 저서 『록 음악의 미학 (Rhythm And Noise: An Aesthetics Of Rock)』은 그 즈음 영국으로 가기 전에 번역했던 책이다.
그때 진지하게 직업으로서의 번역을 고려했나.
번역가는 아니었다. 번역가로서의 자의식은 그때에는 없었으니까. 공부했던 책들을 조금씩 번역하다가 그다음 대중적인 소설, 에세이 같은 분야로 넓히면서 스스로 번역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번역가가 되고 나서 낸 음악 책들은 나 자신의 공부보다 대중에 타깃을 두고 있다.
음악 아닌 다른 분야 책들로는 뭐가 있나
소설이 여덟 권정도. 그중엔 레너드 코헨이 1960년대에 냈던 소설 『아름다운 패자』도 있다. 출판사 '책세상'에서 나온 건데 이건 거의 모더니즘 소설이다. 또 헌터 S. 톰슨(Hunter S. Thompson)의 책 중에 조니 뎁이 나온 망한 영화 『럼 다이어리(The Run Diary)』의 동명 원작 소설도 번역했었고, (웃음)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Fear and Loathing In Las Vegas: A Savage Journey To The Heart Of The American Dream, 1971)』라고 밤 문화 쪽과 관련해 되게 잘 알려진 책도 번역했다.
헌터 톰슨,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누군지 소개해 달라
사실 헌터 톰슨이라고 하면 카운터컬처 계열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우리가 그 사람을 모른 채 빼먹고 있었다. 이즘에서나 얼터 바이러스에서나 예전에 한창 카운터컬처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자료 공급하고 그랬는데 말이다. 미국에서는 그 분야로 전설적인 위치에 선 인물이다. '곤조 저널리즘' 창시자이기도 하고 약물 문화 쪽으로도 전문가이기도 하고. 그의 책을 번역한 게 자랑스럽다. 『롤링 스톤』에서도 그 사람 글을 엮은 책(『Fear And Loathing At Rolling Stone: The Essential Writings Of Hunter S. Thompson』)을 냈다.
와우, 그런 책을 번역했단 말인가.
한국에 안 먹히는 소재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마약이다.
사실 자서전 『에릭 클랩튼』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에서 먹힐 수 있나 싶긴 하다. 그런 쪽으로 보면 시대가 아무리 자유로웠던 1960-70년대였다고는 해도 완전 엉망으로 산 사람에 대한 내용이지 않나.
그것뿐 아니라 『레드 제플린』도 말도 못 할 정도다. 그런데 사실 그 시절에는 그게 문화였지 않았나. 전혀 이상한 문화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그루피들이 자서전도 내고 회고록도 내고 스타가 되기도 했다. 폭로도 하고. 영국에는 가십만 전문적으로 다룬 회고록들도 있다. 특히 축구스타, 팝스타 옆에 붙어있던 여자들이 낸 걸로 말이다.
번역을 출판사에다 제안하기도 하나. 또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편인가.
음악 관련 책들은 거의 그렇다. 음악 쪽으로는 스무 권정도 했는데 그중에서 출판사가 내게 의뢰한 책은 서너 권밖에 없다. 좀 놀랍다. 보통은 그렇게 흔쾌히 받지 않으니까.
질문에 이유가 있다. 사실 우리의 경우, 음악이든 문학이든 사회 과학이든 관련 번역 분야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보니 보통은 번역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지 않나
다 그렇지는 않다. 여기엔 역사적인 설명을 붙여야 할 것 같다. 1990년대에는 번역이란 게 직업이라 인식이 되기 힘들 정도로 번역가가 드물었다. 그때는 공부하는 사람들이 읽다가 아는 출판사에게 이거 번역해보자고 해서 내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출판 기획이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0년대에 오면서 외서(外書)의 판권을 갖고 있는 사람과 한국 도서의 판권을 갖고 있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에이전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에 출판사들에 외서 전문 담당 부서가 생긴 것이다. 출판사와 맞는 책들을 선별하고 기획해서 외서를 번역해 내는 역할이 그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
음악 책이 상당히 늘어난 게 그때쯤인 것 같다.
그렇다. 원래 출판 기획은 출판사가 하는 일이다. 프랑스 소설이나 영국 소설, 역사, 인문, 과학, 어린이, 경제, 경영 다 출판사마다 전문적인 역할이 있는데 음악만 유독 그런 게 없다. 국내에서 소개되는 책들도 보면 거의 다 번역가가 “한 번 해보지 않겠습니까?”해서 번역을 해서 나온 게 아닐까 싶다. 음악에 관해 단발성으로 책들을 내는 곳은 많지만 체계적으로 내는 곳은 다섯 군데 정도 밖에 안 된다.
음악 비평모임 '얼트 바이러스' 그리고 웹진 '웨이브'에 몸담았던 이력이 있다. 그 즈음 『얼트 문화와 록 음악』이라는 저서도 나왔지 않았나.
학교 사람들끼리 공부하려고 만들었던 얼트 바이러스에서 2년 정도 함께 했다. 웨이브는 초기에만 잠깐 있었다. 웨이브로 가면 젊은 친구들이 많았다. 『얼트 문화와 록 음악』은 그건 책을 낼 목적으로 쓴 게 아니었다. 우리끼리 공부하다고 (신)현준 형이 기획해서 나온 책이었다. 처음부터 뭘 하나 써내야겠다고 낸 건 아니었다.
15년 전 막 음악 공부를 할 때에는 번역을 해서 이 정도에 오를 줄 알았나. 뭐가 번역 활동의 결정적 계기였나?
아예 생각을 못 했다. 원래 난 음악 공부를 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첫 번역은 오히려 출판사로부터 의뢰를 받아서 했다. 그게 (이)정엽이랑 했던 로이 셔커(Roy Shuker)의 『대중음악 사전(Popular Music: The Key Concepts))』이다. 이후 원서를 읽고 공부하면서 재밌다 싶었던 책들을 내기 시작해 번역을 처음 알게 됐다. 그렇게 출발했다. 그러고 나서 다른 시각을 갖고 다른 분야 책도 자연스럽게 하게 된 거고. 요즘은 전과 달리 처음부터 번역가라는 직업을 삼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다. 내가 한창 공부할 무렵에는 번역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도 그걸 목표로 하지 않았고.
그럼 장호연은 자신을 번역가라고 생각하나.
번역가다. 번역으로 생활하니까.
얼마 전, 데이비드 버클리(David Buckley)가 쓴 번역서 『엘튼 존(Elton John)』이 나왔다.
이 얘기를 많이 해야 한다. (웃음) 책이 팔려야 하니까. 이와 관련해서 좀 슬픈 얘기가 있다. 내가 막 번역할 때에 엘튼 존이 내한을 왔다. 출판사에서 비상이 걸렸다. “이거 빨리 낼 수 없느냐”라고. 공연 뉴스 나갈 때 책 뉴스도 같이 나가야 하니까. 하지만 또 책을 빨리 내고 싶다고 해서 빨리 낼 순 없는 노릇이다. 이게 서글프다. 화제가 있어야 책이 나간다. 게다가 소식도 금방 꺼진다.
타이밍이 중요한 건가.
책이 총 몇 권 나가는가도 중요하지만 책이 어떻게 얼마나 나가는가도 중요하다. 그래야 시작에 제작비가 얼마나 빠지는가가 결정된다. 이게 몇 년에 걸쳐서 조금씩 팔리면 환장한다. 초반이 바로 소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돈이 빨리 회수된다.
『엘튼 존』의 원서 난이도는 어떤 편인가.
‘스탠더드' 하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아티스트의 자서전, 평전 이런 책이 되게 매력적이다. 그런데 자서전은 아예 그 사람 아니면 쓰질 못 하는 거니 희귀한 반면, 전기는 밥 딜런 한 사람만 따져도 되게 많지 않나. 개중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고 골라야 한다. 그랬을 때 정석적인 게 맞지 않을까 해서 스탠더드 한 걸 택하게 됐다.
묻기는 그렇지만 번역료는 충분히 받았나.
충분히 받았다. 나는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다. 나를 믿고 내 기획을 해주는 출판사가 있다. 번역가가 성장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행착오도 많이 나고 번역을 하며 생기는 실수도 많이 난다. 이 수준을 시작으로 점점 단계가 올라가면서 전문 번역가가 탄생한다. 이는 출판사도 마찬가지다. 처음 책 낼 때는 아무것도 모른다. 책을 더 내고 카탈로그가 생기면서 독자가 생긴다. 나는 그 지점에 있던 출판사를 만나서 같이 컸다. 그래서 내가 기획한 책들이 잘 나올 수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운 좋게 일을 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럼 번역으로 생활하기에 전반적으로 수입이 충분한가.
혼자 살기에는 충분하다. 사실 나는 기획을 하면서 번역을 한다. 여기엔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다. 출판사가 하는 일을 내가 어느 정도 하는 셈이다. 과학 분야를 예로 들면 출판사가 책 찾아서 자기네들끼리 검토하고 도장 받고 번역가를 쓰면 된다. 번역가는 글 받아 원고 넘기기만 하면 되는 거고. 그건 시세대로 받으면 끝나는 일인데 나는 내가 찾고 검토하고 출판사를 설득하기까지 해야 한다. 이게 할 일이 많다. 내 경우엔 그러고 나서 번역료를 잘 받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게 작업 다 했는데도 “이런 책 내주는 게 어디냐”며 불합리하게 계약을 하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음악 쪽에서 단발로 나오는 서적들에 그런 사례가 보인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열정페이'의 논리에 있는 거다.
『엘튼 존』도 그럼 직접 기획해 고른 건가.
일단 출판사가 내게 리스트를 주기도 했고 내가 찾아서 보기도 했다. 그렇게 검토하면서 재밌겠다 싶은 걸 골랐다.
그 직전에 말한 번역의 시스템, 이것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다른 분야는 다 시스템이 잘 돼있다. 그런데 음악은 그렇지 않은 게 음악 쪽 시장이 작으니까. 요즘 점점 잘 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제대로 돌아가려면 출판사가 기획을 해야 한다. 출판사가 기획하고 가격대로 매절에 따라 번역료 주고. 매절로 받는 것도 중요하다.
번역가 스스로가 자기 몫을 잘 챙겨야 할 것 같다.
당연하다. 열정페이 식으로 계속 가다 보면 시스템이 그렇게 굳어진다. 번역가의 절박함을 볼모로 출판사가 책을 내는 건 정상적이지 않다. (여기서 스스로 출판사를 만드는 것 어떠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그건 좀 다른 얘기다. 내 돈 들이는 순간부터는 내가 냈던 책들 못 낸다.
번역하며 고통스러울 때는 언제인가.
잘 못 쓴 책을 번역할 때다. 번역을 하려면 책을 사랑해야 하는데 책이 마음에 안 들면 괴롭다. 좋아하는 책만 할 수는 없으니. 또 막상 책이 검토했을 당시의 느낌과 차이가 났을 때도 그렇다.
현재 가장 번역하고 싶은 책이 있나.
출판사가 내게 먼저 부탁을 해서 지금 검토하는 게 하나 있다. 데이비드 보위에 관한 책. 요즘 데이비드 보위에 관한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데 그중에서 사이먼 크리츨리(Simon Critchley)라는 영국의 철학자가 쓴 작품이다. 상당히 짧은 책인데 내용이 독특하다. 보통 전기와 다르다. 사춘기 시절에 보위를 처음 접하고 지금까지 오면서 보위가 내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196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에 이른 보위의 노래들에 대해 가사를 분석하고 음악을 분석해놓았다.
그러면 거의 전기(傳記)지 않나.
전기처럼 보이면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전기와 가장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인다. 전기라고 하면 찾은 자료, 인터뷰 언급하고 주변 사람, 동료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나. 하지만 이 책 속에는 나와 보위 밖에 없다. 그런데 구성은 연대순으로 있어서 전기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걸 변역할지 말지 고민 중이다. 요즘 보니 데이비드 보위의 국내 파급력이 꽤 크더라. 관심 있는 사람들이 되게 많다.
그러고 보면 얼마 전에 타계한 이글스의 글렌 프라이와 같은 책이 나올 법도 한데 이 경우는 그렇지 않다. 국내에서의 인기를 떠나서 말이다.
아직 소개 안 된 사람이 많다. 이번에 이글스 일들 보면서 되게 짠했다. 물론 사람들이 데이비드 보위를 더 좋아하고 데이비드 보위가 더 유명한 것도 알겠지만, 데이비드 보위 사망했을 때 엄청 일었던 추모 분위기가 글렌 프라이가 사망했을 때에는 거의 없었다. 너무 짠했다.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게 소개 안 된 책들 가운데서 사이먼 레이놀즈의 『레트로 마니아』가 번역서로 나왔을 때 꽤나 놀랐다.
그 책 나왔을 때 되게 충격받았다. 대체 그걸 누가 냈을까. 게다가 반응도 꽤 있었다. 솔직히 잘 안 될 걸로 예상했는데. 관련해서 생각이 많다. 10년 전이었다면 과감하게 냈을 거 같다. 지금은 스케줄도 많고 일도 많다 보니 함부로 기획하기가 무섭다. 또 출판사에 폐 끼치는 것 같기도 하고.
조수의 필요성은 없나.
몇 년 전에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일이 어느 순간 많이 들어온 때가 있었다. 개중에 조건이 안 맞아서 못 했던 책들도 몇 권 있었다. 그만큼 책이 많이 들어올 시기였다. 그때는 그걸 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다르다. 혼자서 모든 걸 책임지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게 번역가 본분에 가장 가깝다. 또 조수를 둔다는 게 자식을 키우는 거랑 비슷하다. 조수한테 경제적으로든 뭐든 간에 보상을 해줘야하는데 그게 힘들다.
번역가가 가져야 할 기본 자질은?
번역가는 모든 걸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책에 자기 이름이 들어가고 텍스트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모두 맡는다. 다른 사람들과 상의를 해서 일을 만들어가는 걸 재미있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혼자서 모든 일을 만들어가는 걸 재미있어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번역가는 혼자 하는 데서 재미를 느껴야 한다.
그럼 번역가가 되기 위한 조건이 있다면
앞에 얘기한 것과 관련 있는데 제일 중요한 건 성격이다. 혼자 있는 걸 견뎌야 한다. 하루에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있어도 심심하지 않을 성격, 오래 앉아있어도 괴로워하지 않을 성격. 그 외는 다음 문제다. 그리고 하고 싶은 책만 번역할 수 없다. 그냥 음악 책만을 번역하는 건 다른 직업을 하면서도 가능하겠지만 번역가를 한다면 다루고 싶은 것만 한다고 해서 되지 않는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문학, 과학, 경제, 경영 심지어 말도 안 되는 글까지 파고들어서 번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관심 가고 좋아하는 몇 개를 번역하는 거다.
소재에 딱히 구애받지 않으니 번역가로서는 책이 없어서 일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닐 것 같다. 조금은 마르지 않는 샘이겠다.
놀랍다. 내가 원하는 책이 계속해서 마르지 않고 나오게 될 줄 몰랐다. 음악이란 것도 그렇다. 사실 옛날부터 있어왔던 것인데다가 특히 대중음악에서는 새롭다 할 게 딱히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음악에 대한 해석이나 음악을 듣는 방식은 계속해서 바뀌고 있지만. 이 상태에서 재밌는 책이 계속해서 나올까 생각했었는데 막상 요즘 나오는 추세를 보니 신기하다.
대중음악이 전설이 되려는 경향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아닐까.
맞다. 그런 것 같다. 역사가 되고 있다. 그리고 요즘에는 뮤지션들이 은퇴하면서 일제히 자서전이나 회고록 같은 책을 쓴다. 패티 스미스, 엘비스 코스텔로도 그랬고 또 브루스 스프링스틴도 올 9월인가에 책을 낸다고 한다. 이게 장난이 아니다. 자신과 같은 세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겨냥한다. 전성기 지난 밴드들이 나이 들어서 공연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세대 즉, 베이비부머들이 책에 익숙한 사람들이지 않았나. 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책이 팔리는 것 아닐까. 반면 지금 자라나는 세대는 책보다는 화면에 익숙한 세대다. 음악 도서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추이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거는 또 모르는 일이다. 책에 있는 글도 텍스트고 화면에 나온 글도 텍스트다. 오히려 문자 해독률이 더 높은 지금 세대가 더 나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해석 또한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또 한편으로는 이쪽 일을 점점 더 많이 하다 보니 좋은 책들이 내 눈에 많이 띄어서 그렇게 해석하는 걸 수도 있다. 객관적으로 많은 걸 수도 있고 내 눈에 많이 보이는 걸 수도 있고. 요즘처럼 음악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책이 나오고 했던 적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번역가로서 힘든 점은?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의사나 정치인, 연예인들처럼 양적, 질적으로 누구를 꼭 만족시켜야 할 필요는 없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좀 더 의미 있는 곳에 쓰고 싶다 정도의 일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 있어 번역은 사회적 파급력이라는 측면에 있어 상당히 제한돼있다. 책이나 번역이 아무 사람들에게라도 영향을 좀 준다면 힘이 날 텐데 딱히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좀 맥이...
섭섭할 수도 있겠다. 나만 해도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얘기할 때 저자 니콜라스 쿡을 꺼내지, 번역가 장호연을 꺼내진 않는다.
의외로 그런 건 없다. '나라는 번역가 아니면 누가 이런 책을 내' 같은 생각도 한다. 섭섭한 건 없다. 하지만 좀 더 크게 보자면 보람을 크게 못 느낀다는 게 아쉽다. 앞에서 얘기한 것과 비슷하다.
번역의 퀄리티나 효과적인 내용 전달, 문체, 대중의 소화력 등 여러 요소를 고려했을 때 지금까지의 번역서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하나 꼽아 달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래 생각하다가) 대충 한 권이 보이긴 한다. 제일 많이 팔렸던 책. 존 파웰(John Powell)의 『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How Music Works)』이다. 만 권이 팔렸다. 이건 원서 자체의 난이도가 같다. 그냥 번역해놓으면 술술 읽힌다. 질문이 당혹스러웠다. (웃음) 번역의 퀄리티나 그런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
원래의 콘텐츠를 전체적으로 얼마나 우리말로 잘 전달했느냐가 번역의 기준 아닌가.
놀라운 것 중 하나는 번역에 대한 생각이 어느 시점부터 계속해서 바뀐다는 것이다. 어떨 때는 이러이러한 식으로 번역하는 게 맞으면서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닌 거 같다. 여기엔 정답이 없다. 번역에 대해 많이 알고 많이 생각한다고 해서 번역이 잘 되는 건 아니다. 쉽게 말하면 이건 타협과도 같다. 완벽하게 우리말로 바꾸는 게 이상적이지만 불가능하다. 여태까지 냈던 책들 보면 호흡상으로는 죽 읽히는데도 세세하게 보면 이상한 문장이 많이 보이는 일이 있다.
그런 점에 있어 자서전 『에릭 클랩튼』은 굉장히 눈에 잘 들어왔다.
번역가는 선택해야 하는 것 같다. 정확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원문을 맘대로 고치는 걸 싫어하는 번역가도 많다. 그런 사람들은 사족 같고 오해도 불러일으킬 것 같고 우리 정서와 안 맞는 문장도 꼭 가져간다. 그에 반해 흐름에 관심을 두는 사람도 있다. 나는 '속도'에 관심을 둔다. 한 문단을 쭉 읽었을 때 쭉쭉 들어오는 연결에 중점을 둔다. 또 유명한 작가라고 해서 글을 잘 쓰는 건 아니지 않나. 거친 글마저도 살리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는 번역가도 있다. 그럴 때에는 내 경우엔 '최소한의 개입'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급적으로는 원문을 안 건드리는 게 좋지만.
그럼 번역에 대한 만족도를 떠나서 낸 것 가운데 자랑스러운 책이라고 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냈을 때. 우리나라에서 내가 기획하고 소개해서 낸 책들. 이에 대한 기준이 뭘까 하고 생각해봤는데 그간 우리나라에서 없었다는 것이 그 기준이었던 것 같다. 국내 독자들이 한 번도 접하지 못 했던 부류의 책을 내고 싶다는 게 소망이다. 음악 분야 책들이 요즘 전성기를 맞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음악 책이 무지막지하게 쏟아진다. 음악을 다양하게 분석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읽을 책이 많아졌다. 그중에서 국내 독자들에게 신선하게 읽힐만한 책들을 위주로 보고 음악을 굉장히 큰 시각으로 바라본 책들을 위주로 본다. 2004년에 낸 니콜라스 쿡의 『음악이란 무엇인가』도 그런 기준에 맞는 책이었다.
관심을 갖는 게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책이라고 했는데 그중에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책을 가리키는 건가.
음악을 넓게 보는 책이라고 할까. 여기서 넓다는 것은 음악의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포괄적으로 음악을 논하는, 쉽게 말해 대중음악, 클래식을 다 포괄한다는 의미다. 음악의 소리뿐 아니라 음악을 둘러싼 수용, 사용의 맥락도 보는 책을 말한다. 그와 관련해서 제가 특히 애착을 갖는 책이 음악평론가 알렉스 로스(Alex Ross)의 『리슨 투 디스(Listen To This)』와 음악가 하워드 구달(Howard Goodall)이 쓴 『하워드 구달의 다시 쓰는 음악 이야기(Story Of Music)』라는 책으로 모두 '뮤진트리' 출판사에서 나왔다. 이 작업을 한 건 자랑스럽다. 두 권 다 클래식 관련 공부를 한 사람이 쓴 책이지만 대중음악을 적극적으로 포섭하고 있어서 애착을 갖고 있다. 예전에 내가 공부하려고 했던 것도 이런 관점이었다.
나온 책들 말고 현재 작업 중인 책들 중에서 악센트를 두고 싶은 게 있나.
아직 나오진 않았다.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데이비드 번(David Byrne)이 낸 『How Music Works』라는 책이 있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음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쯤 될 텐데 스티비 핑커의 『How The Mind Works』를 패러디한 거 같기도 하다. 원고를 넘기지 3년이 됐는데 아직도 안 나왔다.
인터뷰 : 임진모, 이수호
정리 : 임진모
사진 : 이수호
엘튼 존데이비드 버클리 저/장호연 역 | 뮤진트리
뮤진트리의 뮤지션 시리즈 여섯 번째 책으로, 음악 전문 작가 데이비드 버클리가 쓴 엘튼 존 전기이다.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슈퍼스타이자 가장 존경받는 뮤지션 가운데 한 명인 엘튼 존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2억 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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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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