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트위터처럼 시 읽기] 폴 엘뤼아르 「그리고 미소를」
엘뤼아르를 어찌 그 시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옛날 민음사 세계시인총서는 내게 밥과 같은 존재였다. 공교롭게도 대학 신입생 시절 세계시인총서 값은 학교식당 비빔밥과 가격이 같았다. 시에 막 눈을 뜨기 시작할 무렵, 세계시인총서를 사서 모으는 재미에 푹 빠졌던 나는 점심시간마다 고민에 빠져야 했다. 용돈이 부족한 시절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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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엘뤼아르 @ 폴 엘뤼아르
밤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주장하기 때문에
슬픔의 끝에는 언제나
열려 있는 창이 있고
불 켜진 창이 있다.
언제나 꿈은 깨어나며
욕망은 충족되고
배고픔은 채워진다.
관대한 마음과
내미는 손 열려 있는 손이 있고
주의 깊은 눈이 있고
함께 나누어야 할 삶
삶이 있다.
- <그리고 미소를> 中 133글자
#엘뤼아르
#청춘 #밥 #시
#세계시인총서 #낭만
옛날 민음사 세계시인총서는 내게 밥과 같은 존재였다. 공교롭게도 대학 신입생 시절 세계시인총서 값은 학교식당 비빔밥과 가격이 같았다. 시에 막 눈을 뜨기 시작할 무렵, 세계시인총서를 사서 모으는 재미에 푹 빠졌던 나는 점심시간마다 고민에 빠져야 했다. 용돈이 부족한 시절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이야 판형이 달라졌지만 당시 문고판 크기의 총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표지에는 촛불을 형상화한 디자인이 있었고, 내지에는 밀레가 그린 「땔감을 나르는 사람들」이라는 스케치가 은은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어쨌든 점심시간마다 에즈라 파운드, 보들레르, 랭보, 로트레아몽, 스테판 말라르메... 이런 대가들이 비빔밥과 대결을 벌여야 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대문호들이 비빔밥을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 시절 비빔밥에게 승리를 거둔 시집 중에는 폴 엘뤼아르의 「이 곳에 살기 위하여」가 있었다. 사람들은 주로 이 시집에서 「자유」라는 시를 좋아했지만 나의 눈을 사로잡은 건 「그리고 미소를」이라는 시였다. 첫 단어부터 마지막 단어까지 단 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이 시는 내게 막연한 희망의 윤곽을 보여주었다.
아마 나는 당시 내 청춘을 ‘어두운 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밤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는 계시를 내려준 시 였으니 그 감동이 오죽했을까.
사실 엘뤼아르는 ‘혁명의 시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감미로웠고, ‘낭만 시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혁명적이었다. 바로 이 묘한 지점에 엘뤼아르의 시가 존재한다. 새로운 여인과 사랑에 빠질 때마다 시 세계가 바뀌었다는 시인. 그러면서도 자기가 살았던 시대적 책무를 멀리 하지 않았던 시인. 엘뤼아르는 그렇게 인간적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시집에는 엘뤼아르의 면모를 보여주는 「야간통행금지」라는 시도 실려 있다.
“어쩌란 말인가 문은 감시받고 있는데 /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갇혀 있는데 / 어쩌란 말인가 거리는 차단되었는데 ...(중략)... 어쩌란 말인가 밤이 되었는데 /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데.”
삼엄한 사회 분위기에 대한 저항시를 쓰면서도 ‘사랑’으로 결말을 내고야 마는 엘뤼아르를 어찌 그 시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이곳에 살기 위하여엘뤼아르 저/오생근 역 | 민음사
초현실주의 시인이자 열렬한 저항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P. 엘뤼아르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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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시인이자 열렬한 저항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P. 엘뤼아르의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