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트위터처럼 시 읽기] 황지우「뼈아픈 후회」
「뼈아픈 후회」
황지우는 생에 대해 인정사정 없는 묘사를 들이댄다. 그의 가차없는 시선 앞에서 생은 난도질 당한다. 그런데 시원하다. 그의 시를 읽는 이유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 「뼈아픈 후회」 中 64글자
“너는 사랑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야!”
청춘시절, 잘 사귀던 여자친구와 갑작스럽게 헤어진 적이 있었다. 그만 만나자는 그녀의 이유는 황당했다. 나보고 사랑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라니. 만나는 동안 내가 그녀에게 바친 것은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알쏭달쏭한 그 뜻을 헤아리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나는 깨달았다. 황지우 식으로 이야기하면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오로지 나의 즐거움과 열망을 위해 사랑이라는 행위를 했던 것이다. 그녀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날 위해 했던 것이다. 어떻게 그녀가 그 나이에 그렇게 깊은 ‘사랑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말은 두고 두고 내 인생에 앙금처럼 남았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들은 대부분 한 두 번쯤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한 적이 있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정말 사랑했었는지,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었는지.
사실 밀도 있는 사랑은 ‘나를 위해서’하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 바쳐진 사랑일 것이다.
시인은 후회한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뼈아프게 후회를 한다.
황지우의 시에서는 삶의 주름들이 느껴져서 좋다. 위에 인용한 시는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문학과지성사)에 등장하는 시다.
시집의 제목이 된 표제시에서 그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는 자기 자신을 묘사한다. 편안해진 가죽부대 같은 몸뚱이로 시끄러운 잡담을 들으며 술잔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중년의 남자다. 그러면서 그는 외친다. “아름다운 폐인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그의 진술대로라면 생의 어느 순간 누구나 ‘아름다운 폐인’이 된다. 생명력의 정점에서 내려와 자기를 돌아봐야 하는 시기가 온다. 그런 날이 왔을 때 남는 문제는 내 자신이 내 모습을 견뎌낼 수 있느냐다. ‘폐인’이 된 나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인생. 그런 인생이 행복한 인생 아닐까?.
황지우는 생에 대해 인정사정 없는 묘사를 들이댄다. 그의 가차없는 시선 앞에서 생은 난도질 당한다. 그런데 시원하다. 그의 시를 읽는 이유다.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거다 황지우 저 | 문학과지성사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는 지금-이곳을 살아가는 동시대인의 객관적인 삶의 이미지와 시인의 개별적인 삶의 이미지가 독특하게 겹쳐져 있는 특이한 시집이다. 슬픔과 연민, 정념들로 노출되는 시인의 사생활은 칙칙함이 아닌 투명성으로, 그리고 객관적인 삶의 풍경에는 개별 삶의 섬세한 주름들이 그대로 살아 어른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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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지금-이곳을 살아가는 동시대인의 객관적인 삶의 이미지와 시인의 개별적인 삶의 이미지가 독특하게 겹쳐져 있는 특이한 시집이다. 슬픔과 연민, 정념들로 노출되는 시인의 사생활은 칙칙함이 아닌 투명성으로, 그리고 객관적인 삶의 풍경에는 개별 삶의 섬세한 주름들이 그대로 살아 어른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