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여행가 안시내 “60대까지 청춘이고 싶다”
『우리는 지구별 어디쯤』 안시내의 ‘무지갯빛’ 아프리카 여행기
‘여러분이 생각하는 아프리카는?’이란 질문에 다들 ‘무서움’, ‘총’, ‘강도’ 이런 것만 말하더라고요. 저도 약간 그렇게 생각했어요. 무서운 것만 떠올랐어요. 가보지 않았는데 그런 편견을 갖는 것 자체가 안 좋은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가봐야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시절 여행기를 읽으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그는 “제일 예쁜 나이에 1년만큼은 반짝이며 지낼 거라고 늘 생각했”으므로 여행을 떠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냈다. 그의 나이 스물두 살이었다. 첫 번째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왔지만 다시 현실에 묶여 오랜 꿈이 조금씩 잊히는 듯했다. 안시내, 그는 그대로 지내지 않는 쪽을 택했다. 방법을 고민했고, 그가 찾아낸 것은 바로 ‘클라우드 펀딩’. 펀딩은 성공적이었다. 놀라운 사람들이 놀라운 응원을 보내왔다. 그의 여행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이 여행의 원동력이었다. 그들의 얼굴을 직접 그려 만든 티셔츠를 입고 그들을 떠올리며 킬리만자로에 올랐다(물론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킬리만자로는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지만). 그들과 ‘함께’ 다녀온 아프리카의 빛나는 이야기를 묶은 책 『우리는 지구별 어디쯤』은 인세 전액을 기부함으로써 다시 아프리카에 힘을 보태게 됐다.
이 흥미로운 여행을 만든 안시내는 아프리카를 ‘무지갯빛’이라고 말한다. 그곳에서 보살핌을 주었던 사람들, 별이 쏟아지는 하늘, 작은 아이들의 커다란 눈망울을 책에 꼭꼭 눌러 담았다. 지치고, 힘들고, 싫을 때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아프리카가 아닌가. 언제까지나 청춘일 ‘진짜 청춘’ 안시내의 아프리카가 여기 있다.
함께 한 여행
첫 책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출간 직후 곧바로 또 아프리카로 떠나셨어요. 그렇게 서둘러, 반드시 떠나야 했던 이유가 뭐였나요?
첫 여행 갔을 때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어요. 여행 작가분들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그분들이 어떻게 하면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셨어요. 학교에 한 탈북 소녀가 있었는데요. 어떻게 여행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 친구에게 알려주다가 비행기표는 이렇게 사면 돼, 하면서 보여주고 있는데 남아공까지 24만원에 갈 수 있는 표가 있는 거예요. 일단 이건 사야 된다(웃음) 생각하고 사버렸어요.
아무래도 첫 여행이 딱 저만을 위한 여행이었으니 또 그런 여행을 했다가는 그냥 도피가 될 것 같았어요. 의미 있는 여행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이렇게 프로젝트를 만들어 떠났던 거예요. 공정여행에 대해서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됐고요.
공정여행, 클라우드 펀딩, 인세 전액 기부, 이런 것들을 보면 안시내의 색깔이 보여요.
여행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잖아요. 그것이 또 일반인들에게는 가장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게 하는 상황이 됐어요. 또 공정여행은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알리고 싶었는데요. 제가 공정여행을 하면 사람들에게 많이 알릴 수 있고, 저처럼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획을 했었어요. 그런데 진짜로 제가 한 것을 보고 우물 만들기 프로젝트 등 많이 하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얘기 들으니까 또 뿌듯했고요.
쉽지는 않잖아요. 보통 생각하는 여행과 다른 모습이니까요. 어쩌다 이런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을까 궁금해요.
일단 클라우드 펀딩이라는 것 자체에 무척 흥미를 느꼈어요. 아무것도 없고 아이디어만 있는데 여기에 투자를 해준다는 게 정말 매력적이더라고요. 제가 딱 그랬어요. 가진 건 없는데 번뜩이는 생각만 있었죠. 이런 생각만 있는데 누군가 나의 청춘에 투자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진짜 생각 외로 잘 된 거예요. 준비할 때 너무 힘들거든요. 혼자서 다 해야 하고 후원한 사람들에게 제가 해드려야 할 것도 있고요. 힘들었지만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사람들과 정말 가까워졌어요. 특별한 사이가 됐어요. 후원해주신 분들과 단체 대화방도 열어서 아프리카 여행하는 내내 얘기하고 그랬어요. 사람들과 밀접하게 소통할 수 있기도 하고, 의미 있는 여행을 하고 싶어서 프로젝트를 했던 게 결과적으로는 정말 잘 됐던 것 같아요. 좋았어요.
완전히 낯선 사람들과 그런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는 건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잖아요. 살아온 배경이나 모든 것이 다른 사람과도 가장 친한 친구처럼 우정을 나눠요.
맞아요. 저는 사람 만나는 걸 정말 좋아해요. 어떤 사람이든 하나씩은 다 본받을 점이 있더라고요. 클라우드 펀딩 했을 때도 정말 다양한 분들을 만났어요. 특히 아무래도 20대 분들이 많이 해주셨는데요. 저보다 어린데도 벌써 작가로 활동하는 친구도 있고, 정말 힘들게 사는데 제일 큰 금액을 후원한 분도 있고요. 이걸 하면서 개인적으로도 연락을 하게 됐거든요. 그러니까 혼자 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천군만마를 얻고 가는 느낌이었어요. 킬리만자로 올랐을 때도 정말 포기하려고 했었는데 사람들의 얼굴을 그린 티셔츠를 입고 올라갔잖아요. 정말 이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여기서 지면 안 돼,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여행의 동력이기도 했네요.
네, 정말 힘이 됐어요. 당시에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분들이 ‘우리는 시내 씨만을 응원한다’고 단체 대화방에서 응원해주셨어요. 진짜 힘들 때였는데 정말 힘이 됐어요.
첫 여행은 오랜 꿈을 이루고자 떠났다면 이번 여행은 좀 다른데요. 이 두 여행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후원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떠난 여행은 많이 달랐을 것 같아요.
솔직히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어요. 부담감도 있고요. 이전 여행에서는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다녔잖아요. 그런데 사람들과 함께 간다는 생각을 하니까 행동 하나도 예전처럼 자유롭지 못했죠. 아무래도 함께 걱정해주시고, 같이 떠나는 것처럼 보고 계시니까 걱정 끼칠 일도 하기 싫고요. 행동도 항상 조심하게 됐어요. 예전 같았으면 여기서 뭘 보고 어떻게 느끼느냐, 내 자신이 어떻게 변화하느냐를 항상 생각했는데요. 이번에는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제가 여행하는 것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아프리카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게 있었어요.
보다 관찰자의 느낌으로 여행을 한 거죠?
네, 여행에 아예 들어간 게 아니라 한 발 떨어져서 보는 느낌이었어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아프리카는?
프롤로그에 ‘여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미지의 세계에 갇힌 또 다른 삶 속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고 하셨었거든요. 출발 전에 생각했던 미지의 세계 속 삶이란 무엇이었나요?
제가 생각하는 아프리카 또한 다른 사람들의 아프리카와 똑같았거든요. 한 번 글을 올린 적이 있어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아프리카는?’이란 질문에 다들 ‘무서움’, ‘총’, ‘강도’ 이런 것만 말하더라고요. 저도 약간 그렇게 생각했어요. 무서운 것만 떠올랐어요. 가보지 않았는데 그런 편견을 갖는 것 자체가 안 좋은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전 여행에서도 그걸 느꼈는데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 생각이 제게 있더라고요. 일단 가봐야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다채로운 아프리카를 보고 싶어서 가게 된 거예요. 결론은 진짜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는 것을 느꼈어요.(웃음) 엄청 좋았어요.
항상 예상과 다르게 펼쳐지는 게 또 여행일 텐데요. 떠나기 전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듣고 싶었어요. 물론, 좋으셨겠죠?
가기 전엔 두려움이 있었는데요. 막상 다른 여행지와 다를 게 없더라고요. 정말 주의해야 해요. 가지 말라는 곳은 가지 말아야 하고요. 여행자를 위한 길이 있어요. 아프리카 국민 루트가 있는데요. 저도 잠시 모잠비크로 새긴 했지만 국민 루트로 가면 다른 여행지처럼 여행자도 많고 따뜻한 사람도 많아요. 물론 사기 치는 사람도 많고, 인종 차별하는 사람도 많지만 말이에요. 가기 전엔 무서웠는데 이제는 한 가지로 표현할 수 없는 곳이란 걸 알아요. 아프리카를 다녀온 사람들은 항상 ‘무지갯빛’이라고 하더라고요. 다채로운 색이라고 하는데 저도 똑같은 생각이에요. 하나도 정의 내릴 수 없는 곳인 것 같아요.
달라졌어요. 이제는 빈곤, 기아, 이런 이미지가 아니에요. 그곳에도 아이폰 쓰는 사람도 있고요.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아프리카도 다른 곳과 똑같다는 말이 좀 의외기도 하네요.
저는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는 아무 일 없다가 유럽에 가자마자 바로 소매치기 당하고 그랬었거든요.(웃음) 그것처럼 아프리카라고 해서 무조건 위험한 일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에요. 여행 중에 일이 생긴 건 저뿐이었어요. 정말 다른 여행지와 다를 게 없었어요. 조금 다르다고 한다면 자연이겠죠. 매일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렸으니까요.
무척 솔직한 글이었어요. 지친다, 싫다, 여기는 아프리카다, 이런 얘기들은 진짜 몸으로 겪은 이야기를 적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을 쓰면서 세운 어떤 원칙이 있었나요?
감정 하나, 세포 하나까지 다 담아내려고 그 순간에 글을 썼어요. 너무 힘들고, 풀 데가 없기도 했고요. 너무 지치고, 짜증나고, 집에 가고 싶은 감정을 글로라도 풀어내면 속이 풀리더라고요. 엉켜있는 실타래 같던 생각도 글로 쓰면 어떤 부분에서 짜증이 났었는지 알게 되고 풀렸어요. 그게 좋기도 했고요. 진짜 날 것 그대로를 드러내고 싶었어요. 힘든 일이 있을 때는 항상 그 당시, 일을 겪자마자 썼던 것 같아요. 나중에 쓴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그런 부분들은 아무리 힘들었어도 미화가 되거든요. 그게 싫었어요. 그대로 드러내려고 했어요. 미화된 감정으로 책을 썼다간 그것대로 오해를 낳을 수도 있으니까요.
킬리만자로 이야기도 잠깐 하셨는데, 아프리카 여행 중에 정말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었다면 하나 들려주세요.
제일 좋았던 것도, 제일 싫었던 것도 배낭 잃어버린 일이에요. 그때 정말 처음 깨달았어요. 안 그럴 것 같지만 우습게도 여행 떠나면서 고데기 챙기고, 화장품 챙기고 그랬거든요. 그런 걸 통째로 한 번 잃어버리고 나니까 완전 빈털터리로 여행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좋은 거예요. 가방이 가벼우니까 숙소도 자유롭게 알아볼 수 있고요. 살아가는 데 별다른 짐이 필요 없다는 사실이 그때 너무 크게 와 닿았어요. 그 교훈으로 다시는 배낭을 5kg 이상 안 싸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어요. 여행 하는 데, 그리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딱히 필요한 게 없더라고요. 비누 한 개 정도(웃음) 들고 가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 사건이 정말 좋았어요. 함께 배낭 잃어버린 친구와 정말 많이 웃었거든요. 너무 바보 같고, 좋아서요.
타카는 말했다.
“그건 우리가 바보이기 때문이야!”
어차피 일이 벌어진 상태에서는 좀 더 바보가 되면 편하다고. 바보가 한 명이면 그냥 슬픈 거지만 지금은 바보가 두 명이라서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즐거운 거라고. 우리는 복잡하지 않은 사람이니까, 여행자니까. 그리고 여행 중엔 가끔은 바보여도 괜찮다는 말을 덧붙이며 좀 더 날 것의 감정을 즐겨도 된다고.(188쪽)
역시 그 장면이 읽으면서도 가장 좋았어요. 빛나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페이지를 접어두기도 했고요.
저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진짜 꼬질꼬질했어요. 버스도 엄청 오랜 시간을 달려서 흙먼지 다 묻고 그랬거든요. 안 그래도 더러운데 짐까지 잃어버렸으니 씻을 것도 없잖아요. 한편으로는 어떡하나 싶고 너무 허탈해서 웃음이 나왔죠. 중요한 것들을 따로 챙겨둔 작은 배낭 안에 그 친구는 케첩, 저는 고추장이 들어있었어요. 그게 너무 웃겼어요. 우리는 진짜 바보구나 그랬어요. 그 친구는 1년을 여행하면서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저와 있어서 그랬다며 ‘언럭키걸’이라고 하면서 또 엄청 웃고요. 그러면서 둘 다 참 좋아했어요. 언제 이렇게 가볍게 여행을 해보겠나 싶었죠. 그래서 책에 실린 사진을 보면 시작과 끝 모습이 달라요. 화장품이 없어서 민낯으로 다녔거든요.(웃음)
쉽지 않은 여정이잖아요. 정말 고생도 많이 했고요. 만약 똑같이 그 여행을 떠나야 한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일단 킬리만자로는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고요.(웃음) 정말 힘들었으니까요. 다시 가보고 싶은 곳도 있어요. 항상 저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고 싶거든요. 그 중에는 휴대전화도 있고, 연락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도 있잖아요. 휴대전화도, 이메일도 없는 친구들,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나러 가는 여행을 하고 싶긴 해요.
여행에서 결국 남는 건 다시 또 사람들인가 봐요.
네. 책을 아프리카로 보내줘야 해서 주소도 받아놨거든요. 한국 과자나 잡다한 것들 사서 함께 보내려고요. 그러면 정말 좋아할 것 같아요. 저는 많은 보살핌을 받았는데 제가 줄 수 있는 건 이 조그만 책 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읽지도 못하니까 그곳에서 접하지 못하는 한국 물건을 보내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기뻐할 모습 생각하면 제가 더 신나요.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일
자신만의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었나요?
지난 여행기부터 해서 저와 똑같은 루트로 여행을 가시는 분도 많고, 아프리카를 이 책 들고 가신다는 분도 있더라고요. 에세이는 가이드북이 아니라서 들고 가거나 그러면 절대 안 되겠지만요. 어찌됐든 한 발 더 친근하게, 그러면서 환상을 깨주는 그런 물밑 작업들이라고 생각해요. 한 번 읽어보고 떠나도 좋을 것 같고요. 여행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어디를 여행해야 할지, 어떻게 여행해야 할지도 모를 수 있는데요. 저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오히려 같은 초보 여행자 입장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참 좋기도 하면서 걱정도 되는 게 제 책에 쓴 사람들을 만나러 가서 사진만 찍고 가고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건 자제해주시면 좋겠고요. 책에 나온 사람들과 인연들을 제가 느낀 것처럼 사랑스럽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처음 여행하려는 사람들에게는요?
겁이 많은 건 참 좋은 거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여행에서 겁 내지 마라, 하는 것도 좋긴 한데요. 방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겁을 먹고, 여기는 위험하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으면 항상 긴장하게 되고, 주의하게 돼서 더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요.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는 항상 ‘여기는 좀 편하다’ 이렇게 방심했을 때거든요. 이 겁은 내게 도움이 되는 겁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니셔도 좋을 것 같아요. 저처럼 겁 없이 다니다가(웃음)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무척 밝으신 것 같은데요. 평소와 여행지에서 많이 달라지나요? 달라진다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궁금해요.
저는 여행지에서 아주 감성적이 돼요. 평소에는 말 많고, 다른 여대생처럼 시끄럽고, 술 마시는 거 좋아하고 그런데요. 여행지에 가면 정말 나 혼자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런 상황이 평소에는 절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타지에 나가서 혼자가 되는 순간부터는 엄청 깊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저 자신에게 깜짝 놀라기도 해요. 무슨 일이 터져도 평소보다 훨씬 깊게 생각해요. 한국이었으면 별 일 아니라고 했을 텐데 여행지에서는 엄청 깊게 생각해서 좋더라고요.
아무래도 혼자 모든 걸 다 책임져야 하니까 더 그럴 수 있겠네요.
제가 알아서 다 해야 하니까요. 또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한테 친한 척 못하는데, 외국만 가면 잘하는 것도 너무 신기해요. 여행지에서 한국인만 보면 너무 반가워서 달려가 끌어안고(웃음) 그래요. 외국인 친구들이라고 해도 진짜 반가우니까 먼저 가서 어디서 왔는지, 어디 여행하는지 말 걸고 그래요. 친구 만들고 싶어서요. 성격이 훨씬 더 극대화되는 것 같아요. 원래 가진 면들이 더 커진 상태로 여행을 다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건 다들 그런 것 같아요. 여행만 가면 다들 시인이 되고(웃음) 그렇더라고요. 저만 느끼는 감정은 아닌 것 같아요. 주변 여행자 친구들도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들었어요.
여행을 가겠다고 처음 마음먹은 건 왜였을까요?
내가 제일 예쁜 나이에 1년만큼은 반짝이며 지낼 거라고 늘 생각했어요. 그게 여행이었는데요. 왜 여행이었느냐면 책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학원을 따로 다니거나 하지 않아서 유일한 친구가 책이었어요. 매일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는데요. 책 한 권 읽을 때마다 이런 세계가 있구나, 이런 세상이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 여행기를 읽으면 잠깐 읽으려다가 끝까지 읽곤 했어요. 다른 세상을 여행할 수 있다는 게 참 좋더라고요. 여행도 여행이지만 그 여행을 나도 글로 써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21살, 대학에서 성적이 제일 잘 나왔을 때 지금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너무 숨이 막혔어요. 17살, 세계 여행을 꿈꾸던 시내는 오간 데 없고 어디가 취업이 잘 되는지 같은 얘기만 하고 있었죠. 성적을 잘 받아도 누군가 뒤에서 채찍질 하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그 쳇바퀴 속에 머물게 되는 게 아닌지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 딱 느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성적을 보고 내가 어느 새 꿈꾸던 건 잊은 채라는 걸 알았죠. 자크 라캉의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이 딱 내 말인 것 같더라고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건 아니었나 싶고, 숨이 턱턱 막히더라고요. 이기적으로 살아야겠다, 나를 위해서 살아야지, 다짐하고 여행을 갔어요.
결과적으로는 그 다짐이 삶의 큰 전환이 되었잖아요.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처음에 페이스북에 여행기를 업로드 하며 다닐 때는 친구들도 길다, 스크롤 압박이다, 이런 것들만 댓글 달렸었거든요. ‘좋아요’도 얼마 없고요. 점점 사람들이 읽어주니까 친구들도 제 글을 읽더라고요. 기분이 참 묘하면서도 좋았어요. 글 속에서 제일 솔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여행 자체를 욕망했다기보다 처음부터 여행과 글쓰기를 상상했었던 거군요.
어머니가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신데요. 혼자서 저희를 키우시다보니 결국 시집도 못 내셨어요. 그렇게 살아온 삶이 엄청 가슴 아프더라고요. 글 쓰는 것도 엄청 좋아하시는데 말이죠. 어머니가 못 다 이룬 꿈을 나라도 이뤄야지, 생각하기도 했고요.
어머니께서 참 좋아하시겠네요.
네. 어렸을 때 강제로 글쓰기 시키셨거든요. 초등학교 때부터 주제 하나씩 주고 글을 쓰라고 하셨어요. 점수도 매겨주셨는데 늘 A 아니면 A 였어요.(웃음) 그래서 저는 제가 굉장히 글을 잘 쓰는 줄 알았거든요. 알고 보니 저를 북돋아 주셨던 거예요.
벌써 책이 두 권이나 나왔잖아요. 어머니는 뭐라고 하세요?
글쎄요, 더 잘 될 거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부담스럽기도 해요. 저는 글을 잘 쓰는 건 아니지만 글 쓰는 걸 너무 좋아하니까 글 쓰며 살아갈 거라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어머니는 욕심이 많으셔서 강연도 하라 하시고 그래요. 솔직히 홍보 영상 같은 것도 찍고 요즘 다양하게 많이 하거든요. 지금은 싫은 것도 하고 있는 중이에요. 글만 쓰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살려면 우선 다른 작업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이것들이 나중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다 괜찮은 것 같아요.
60대까지 청춘이고 싶어요
다음 계획이 자연스럽게 궁금해지네요.
아프리카를 두 달에 다녀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시간이에요. 그래서 다시 한 번 가고 싶어요. 인도도 다시 가고 싶고요. 가장 가고 싶은 곳은 파키스탄의 훈자마을이라고, 여행자 3대 블랙홀 중 하나예요. 방콕 카오산로드, 이집트 다함과 함께 꼽히는 곳인데 그곳을 못 가봤어요.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천국이란 수식어가 붙은 곳인데 어찌 안 가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베리아 횡단 열차도 친구들 다녀오는 것 보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코카서스 3국,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같은 곳도 가고 싶어요. 엄청 물가가 싸대요. 제가 선택하는 여행지 첫 번째가 물가가 싼 곳이거든요.(웃음) 아시아, 유럽과 아시아 사이쯤이 늘 끌려요.
여행 얘기하니까 눈이 반짝반짝 빛나요. 꿈이 뭔가요?
자주 얘기해서 부끄럽긴 한데요. 제가 여행을 다니고, 다녀도 보면 다닌 데가 없더라고요. 안 간 나라가 훨씬 많아요. 20대 때는 계속 여행을 다니면서 살 것 같아요. 제가 예술을 전공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30대 때는 예술에 관한 기행문을 쓰거나 예술 평론 쪽으로도 해보고 싶고요. 청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연애라고 생각해서 40대에는 곽정은 작가 같은 칼럼니스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웃음) 50대가 되면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하니까 동화 작가가 돼서 다시 순수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60대가 되면 그때까지 모은 돈으로 캠핑카를 딱 사서 전국 일주를 하며 다시 여행을 할 것 같아요. 그게 제 꿈이에요.
굉장히 구체적이에요.
이걸 일부러 다 말하고 다녀요. 여행 갈 거라고 주변에 계속 말하면 나중에는 주변에서 여행 안 가냐고 묻잖아요. 그런 것처럼 한 번 흘린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려고 일부러 더 말하고 다녀요. 만 번을 말하면 이루어진다는 인디언 속담도 있더라고요. 지켜봐 달라는 각오기도 해요.
큰일인데요. 이 이야기는 인터뷰 기사로 계속 기록될 테니까요.(웃음)
네, 지금 마음 같아서는 그 꿈대로 살고 싶어요.(웃음) 계속 철이 없고 싶어요.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철이 없어야지, 하고 생각해요. 계속 철딱서니 없이 60대까지 청춘이고 싶어요.
우리는 지구별 어디쯤 안시내 저 | 상상출판
고단한 삶도 그녀의 ‘꿈’을 꺾어내진 못했다. 어머니의 병원비를 내고 남은 돈 350만 원으로 세계여행을 떠났고, 돌아와 쓴 한 권의 책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나’만을 위한 여행이었다. 1년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겠다는 나를 위한 여행. 그 후 한 살 더 먹은 나이만큼 한 뼘 더 성장한, 그렇지만 155cm의 작은 키는 여전한 그녀는 또 하나의 꿈을 꾸게 된다. 이제는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한 여행을 해야겠다고.
[추천 기사]
- 김동영, 김병수 “불안은 불안이고 내 삶은 내 삶”
- 손미나 “페루, 다 괜찮다고 위로해줬다”
- 정의석 “죽음을 지켜보는 일, 나에게는 일상이다”
- 박성호 “기업은 안다. 자본주의 체계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 작가 이외수, 자뻑이 필요한 시대
관련태그: 안시내 , 우리는 지구별 어디쯤
읽고 씁니다.
12,600원(10% + 5%)
10,800원(10%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