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 작가와 두 아들 허윤, 허준
미국, 캐나다도 아닌 아프리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아프리카’를 선택할 수 있는 용감무쌍한 엄마가 과연 대한민국에 존재했단 말인가? 『아이가 말했다 잘 왔다 아프리카』의 저자 양희는 아이들이 더 크기 전 지금이 아니면 안 될 일을 고민하다가 기린과 얼룩말이 뛰어 노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일 년쯤 지내다 오자고 다짐한다. 정해진 굴레에서 벗어나,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이 귀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마흔이 된 엄마의 인생에도 쉼표가 필요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첫째와 일곱 살이 된 둘째는 “아프리카에서 살아 볼까?”라는 엄마의 제안을 덜컥 수락한다. 집은 아빠가 지키기로 하고.
『아이가 말했다 잘 왔다 아프리카』는 어느 날 갑자기 아프리카로 떠난 한 가족의 성장일기다. 출국 준비부터 아프리카의 첫인상, 아이들의 학교 적응기, 케냐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돌아본 풍경, 케냐의 일상, 아이들과 엄마의 성장기를 촘촘하게 기록했다. 한 번쯤은 아프리카에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이 책을 펴보아도 좋다.
양희 작가는 케냐에서 돌아온 지 6개월 만에 다시 EBS <명의> 팀으로 복귀를 했다. 아프리카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녀는 “사실 일하는 조건이나 스트레스, 어려움 같은 건 하나도 변한 게 없는데 이상하게 지치는 마음이 없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활력이 넘치고 에너지가 가득한 느낌”이라며, “아마도 아프리카에 있는 동안, 충분히 쉬었고 오래 생각했고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한다. 방송에 쫓길 때면 마음 속으로 ‘뽈레뽈레(스와힐리어: 천천히 천천히)’ 라고 주문을 외운다는 양희 작가. 드넓은 마사이마라 대평원이나 푸르고 단단했던 하늘을 떠올리기도 하고 느릿느릿 걷던 캐냐 사람들도 생각한다. 그러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빈 공간도 생긴다고.
“어떤 분들은 꼭 아프리카에 가야 하냐고 물으신다. 나는 아니라고 답한다. 당신과 아이가 환호하며 즐거워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고 말이다. 물론 아무데도 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에 휘말리지 않고 일상이나 피곤에 찌들지 않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라고는 말하고 싶다. 어쩌면 『아이가 말했다 잘 왔다 아프리카』는 엄마와 두 아이가 쉼표를 찾아 떠난 긴 여행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대자연 속에서, 사람과 세상에 대한 따듯한 마음을 찾아가는 긴 여정,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한 깊은 생각과 지혜를 얻었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이 긴 여행을 통해 인생의 나침반 하나씩을 얻었다. 굉장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당신에게 권하고 싶다. 꼭, 당신과 아이를 위해서 그런 충분한 시간을 가져 보라고 말이다.”
아프리카
많은 나라들 가운데 ‘아프리카’를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아이가 5학년이 되니, 주변에서 논술이나 영어몰입 교육 같은걸 시작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런데 나와 남편은 좀 다른 생각을 했다. 모두가 하는 사교육이나 선행학습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무한경쟁 속으로 밀어 넣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가 더 크기 전에 꼭 경험하면 좋을 것, 인생에 있어서 두고두고 힘이 되는 경험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처음엔 미국이나 캐나다 생각도 했지만 한국과 다를 바 없이 편리한 현대 문명이 기다리는 곳이라면 꼭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아프리카’라는 답이 나왔다. 처음엔 “아프리카…”라고 놀라던 아이들도 인터넷과 책을 찾아보더니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아마도 기린과 얼룩말을 직접 볼 생각에 쉽게 ‘오케이’한 것 같다.
워킹맘?! 슈퍼맘?!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워킹맘이라, 1년이라는 시간을 내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이렇게 큰 결심을 하게 된 동기가 있는지? 원래부터 용감(?)한 엄마였는지 궁금하다.
2007년부터 EBS의학 다큐멘터리 <명의>를 집필했다. 내게는 병원이 인생의 학교였다.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의사들을 만나면서 ‘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죽음은 삶의 지척에 있다. 그것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인생을 허비할 때가 많다. 나는 폐암이나 간암 같이 큰 수술이 있는 날엔 병원에 가서 환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물었다.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다시 건강해 지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으세요?‘ 놀랍게도 대부분의 환자들은 아내 혹은 남편 그리고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과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이들이, 놓쳐버린 인생의 순간은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용기가 많은 편이 아닌데, 이런 만남들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칠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놓쳐버린 인생의 한 시절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두려움
케냐로 떠나기 전, 가장 두려웠던 것은 무엇인가? 또한 케냐에서 배운 것들 중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떠나기 전엔 그곳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아빠 없이 아이들만 데리고 가려니 더 두려웠다. 막상 도착하고 나니, 그렇게 두렵진 않았다. 나이로비는 생각보다 발전한 도시였다. 그런데 집을 얻고 살기 시작하니 소문이 두려웠다. 위험하니 함부로 집 밖을 나가지도 말라는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케냐 사람들을 경계했다. 오죽하면 2~3주 동안은 아파트 밖에 나가 산책도 못했다. 그러다 주변의 케냐 사람들과 조금씩 친해지며 경계가 풀렸다. 그러고 나니 모두 도둑이나 강도로 보이던 사람들이 친절한 이웃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수하고 정이 많고 유머가 있었다. 케냐는 모든 게 느렸다. 사람도 느리고 차도 느리고 하다못해 길가의 염소도 느리게 걸었다. 처음엔 너무 불편했는데 점점 적응이 되면서 그 ‘느림’이 좋아졌다. 아프리카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살수 밖에 없는 곳이다. 인간이 자연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환경에 순응하고 느리다. 하지만 늦는다고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삶의 여유가 더 생긴다. 지금도 바쁜 방송 일에 쫓길 때면 그곳의 느림을 생각하며 여유를 찾는다.
후회, 갈등
케냐 생활 초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어떤 생각으로 견딜 수 있었나? 한국이 그리웠던 때는 없었는지?
둘째가 아침마다 울면서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할 땐 ‘돌아갈까?’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대해 제대로 경험하지도 못하고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뭔가 지금의 고통을 보상해 줄 것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한 달을 보냈다. 한달 쯤 지나, 용기를 내어 아이들과 나이바샤 호수라는 곳엘 갔다. 작은 배를 얻어 타고 호수로 나가니 물 속엔 하마들이 있고 호수 반대편엔 얼룩말과 기린이 뛰놀았다. 아이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케냐가 불편하고 무섭고 답답한 곳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 놀라운 일이 생기는 곳이란 걸 알게 된 것이었다. 케냐의 생활이 어렵고 힘들지만 분명, 아이와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큰 힘이 될만한 경험이란 생각을 하니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더구나 딱 1년이었다. 돌아갈 날이 정해져 있다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소중한 선물 같았다. 분명, 한국에 돌아가면 케냐가 그리워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들과 매일매일 발코니에 서서 노을을 감상했다. 우리에겐 늘 처음이자 마지막인 하루였다.
변화
‘아프리카는 아이들을 달라지게 한다’는 제목으로 두 아들의 12가지 변화를 책에 소개했다. 가장 기쁜 아이들의 변화는 무엇이었나?
몸과 마음이 폭풍성장을 했다. 큰아이 윤이는 긍정적이고 따듯한 아이지만, 승부욕이 지나치게 강한데다, 어떤 때는 에너지가 과하게 많아서 항상 엄마의 마음을 졸이게 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케냐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친구를 사귀고 영아원에 봉사를 다니면서 많이 달라졌다. 승패보다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다른 친구들을 배려해야 하는 마음이 생겼고 거대한 자연 앞에 순응하며 어울리는 방법도 배웠다. 무엇보다 자신의 에너지를 긍정적이고 따듯하게 사용할 줄 알게 된 것이 기쁘다. 둘째는 차분하고 생각이 깊지만 겁이 많고 소극적인 아이다. 하지만 케냐에서 스스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영어의 장벽을 넘으면서 대단한 자신감이 생겼다. 아마 스스로 고비를 넘기고 무엇인가를 성취했다는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 같은 게 생긴 것 같다. 한국에 와서는 예전보다 적극적이고, 여러 친구들과 잘 지내서 케냐에 참 잘 갔다 왔단 생각이 든다.
적응
다시 한국으로 돌아 왔을 때,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아이들이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싶어 하거나 후유증은 없었나? 아이들은 자신이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나?
큰아이 같은 경우 한국에 돌아와 중학생이 되었다. 공부에 대한 중압감이 커서 그런지 시험기간이면 케냐의 학교에 다시 가면 좋겠단 말을 한다. 시험에 대한 인식이나 스트레스가 달라서 그런 것 같다. 둘째는 처음엔 한국에 와서 좋기만 하다고 하더니 요즘 케냐를 너무 그리워한다. 특히 함께 놀던 친구들과 수많은 동물들을 만났던 대평원에 가고 싶어한다. 두 아이들은 어떤 일이든 적극적이고 자신 있게 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모두들 먼저 하기 싫은 일이 있거나 아무도 나서지 않으려고 하며 ‘내가 먼저 할게‘라고 말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일 때도 있고, 친구들보다 다양한 경험을 해 보았기 때문에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다.
가정
케냐에 다녀온 후, 가정 생활의 변화가 있나?
아프리카라는 커다란 폭풍우를 함께 견디고 경험했다는 것 때문에 그런지 가족간에 동지애 같은 게 있다. 아주 커다란 믿음이고 사랑이다. 함께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갈 수 있다는. 그래서 좀 어려운 곳에 도전해보기 시작했다. 지난 1월에는 가족 모두 히말라야 등반을 했다. 15일 동안 머물렀는데, 산에 오르며 서로를 격려하고 도와주고 또 하루 종일 같이 놀아서 서로에게 밀착된 것 같은 좋은 느낌을 받았다. 특히 올해 중2가 되는 큰아이와 얘기를 많이 했다. 요즘엔 약간 사춘기적 특징이 보이지만 그래도 아주 밝고 따듯한, 그 아이의 본성은 잃지 않는 것 같다. 또래들과 달리,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얘기를 많이 한다. 모험과 여행을 즐기고 어떤 일이든 가족들이 함께 의논하고 공유하려는 것이 우리 가족만의 분위기 같다.
여행자
아프리카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세 가지 조언은?
먼저 물건에 대한 미련, 편리함에 대한 미련을 한국에 두고 떠나라. 사실 아프리카는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는 여행지다. 아프리카의 실상과 마주하면 가슴이 먹먹하고 무력한 자신이 미워질 수도 있다. 최소한의 것만 갖고 그 가진 것도 감사하며 떠나라. 둘째, 대자연 앞에 설 수 있는 계획에 세워라. 끝없이 펼쳐진 마사이마라 보호구나 극한의 사막, 5천 미터 이상의 높은 산을 만나게 되면 자연 속에서 지극히 일부인 자신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생명의 고귀함이 느껴지고 아프리카가 소중해진다. 그 다음엔 아프리카 사람들과 가까워 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라. 재래시장에서 과일을 사고 커피 농장이나 기차 안에서 사람들을 사귀어라. 그러면 아프리카가 친구의 나라가 된다. 계속 마음에 남게 돼 결국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되고 다시 찾아가게 된다.
부모에게 하는 조언
아이와 함께 장기 여행이나, 단기간 해외 체류를 고려하는 부모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장기여행이나 해외체류는 ‘여행자’와는 조금 다른 포지션을 준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거주자’ 즉 여행이 생활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의 시선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으로서의 마음과 기억을 갖게 된다. 그래서 특히 아이들과 함께 갈 때는 그곳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 그곳의 어떤 면을 아이와 함께 느끼고 싶은가를 생각해 보고 장소와 기간을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친구를 사귀게 되고 좋아하는 빵집과 자주 가는 산책로, 색다른 놀이터를 갖게 될 것이다. 단순히 쉬기 위해 여행했던 리조트나 바닷가는 아이들이 자라서 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래 머물렀던 곳은 다르다. 만일 케냐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아프리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은 더 깊이 생각하고 고민할 것 같다. 그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깊이의 차이가 될 것이다.
Again 케냐
다시 케냐를 방문할 계획이 있는지?
아이들이 케냐를 몹시 그리워한다. 아직 그곳에 대한 따듯한 마음이 남아있을 때 한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으니, 학교 친구들과 다시 축구를 하고 친구 집에서 놀면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15시간짜리 기차를 타고 몸바사에도 가고 라무에도 다시 여행하자고 한다. 나는 친하게 지냈던 케냐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1 년 내내 수시로 드나들던 사시니 커피 농장에 가서 커피 피커들과 웃으며 커피를 따고 싶고 6개월 동안 다큐멘터리를 가르쳤던 키베라 영화학교에 가서 제자들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딸처럼 여겼던 아기 에스더가 입양된 집에 다시 방문해 얼마나 자랐는지 한번 안아보고 싶다. 1년 안에 다시 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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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말했다 잘 왔다 아프리카 양희 저 | 달
얼룩말과 기린이 뛰어노는 곳에서 아이들이 일 년만이라도 살다 오면 얼마나 좋을까? 두 아이들을 데리고 아프리카로 떠난, 조금은 용감한 한 엄마가 있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 지금이 아니면 안 될 일을 고민하다가 기린과 얼룩말이 뛰어노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일 년쯤 지내다 오자고 다짐한다. 그렇게 떠난 아이들은 그곳에서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이 그저 해맑게, 말 그대로 폭풍성장한다. 무한경쟁 속 사교육과 선행학습이라는 밀림, 그 반대편에서의 300일을 기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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