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장혁 “늘 어둡지는 않아요. 작품은 제 일부일 뿐”
이장혁의 음악은 현실적이다
그의 음악을 들을 때면 늘 어떤 각오가 필요했다. 우울을 끌어안고 마음을 편치 않게 둘 수 있는 용기 같은 것
이장혁의 음악은 현실적이다. 소외되고 외롭고 서로 의도치 않은 상처를 남기는 인간 세계를 포장 없이 직시한다. 그래서 어둡다. 아픔에 눈감지 못해 우울하고, 고통의 근본적인 돌파구를 찾지 못해 낙담한다. 그는 환상이 제거된 예술을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음악을 들을 때면 늘 어떤 각오가 필요했다. 우울을 끌어안고 마음을 편치 않게 둘 수 있는 용기 같은 것.
그 음악적 정서에 압도된 탓일 것이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도 마음의 각오가 필요했던 것은. 왠지 까다롭고 예민할 것 같은 이 예술가에게 우리의 질문은 어느 지점까지 다가설 수 있을까. 그러나 이는 기우고 편견이었다. 직접 만난 이장혁은 꽤 소탈하고 분명하며 유연한 사람이었다. 단답과 서술을 오가며 틔운 이야기는 이리로 구르고 저리로 흐르며 6년 만의 신보를 넉넉히 설명하고 있었다. 노래답지 않게(!) 밝고 편한 시간이었다.
대표곡 「스무살」도 그렇고, 전작들이 청춘에 대해 노래했다면 이번 앨범은 나이가 좀 든 느낌이다.
그때는 아무래도 청춘에 가까웠으니까 그런 거고 지금은 청춘에서 멀어졌으니까요.(웃음)(그렇다고 꼰대는 아니지 않냐고 묻자) 꼰대같아요 저. (웃음)
과거에도 이장혁은 청춘을 마냥 밝고 긍정적으로 포장하는 가수가 아니었다. 그 접근법은 변함이 없으나 이번에는 나이 든 분들의 아픔까지도 함께 그리는 노래로 다가왔다.
첫 곡 「칼집」 가사가 좀 그런데, 늙어가는 몸뚱아리를 녹슨 칼집에 비유해서 쓴 거예요. 칼집이 녹슬면서 칼을 꺼내지 못하는 상황, 칼을 빼내지 못하니 결국엔 칼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는 뜻인데요. 나이 들면서 많이 느낀 게, 제가 좀 욱하는 스타일인데 나이가 드니까 그런 걸 꾹꾹 눌러야 할 때가 많아지더라고요. 그런 생각들 묶어서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타이틀 「불면」에서는 고양이 이야기가 나온다. 이장혁의 가사에는 고양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1집 앨범이미지도 고양이가 나오고 특별한 의미가 있나?
사실은 고양이보다 개를 더 좋아하는데.(웃음) 동네에 길냥이가 많다 보니 오다가다 자주 보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감정이입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거 같아요. 「불면」은 좀 많이 어두운 노래인데요, 가사에 드러난 것보다 더 많이 어두운 곡이에요. 맨 마지막에 고양이가 등장하는 것도, 고양이가 로드킬 되는 걸 많이 봤어요. 그래서 그런 내용이 좀 섞여 있는데... 더 말씀드리면 안 될 거 같아요.(웃음)
곡 중간에 연주곡이 들어간다.
「코끼리 무덤」은 예전에 만든 곡인데, 이 곡을 앨범 제일 처음으로 배치할까 라고도 생각했어요. 나중에 칼집을 만들고 보니 그게 인트로 격으로 더 어울리겠다 싶어서 지금의 리스트가 되었고요. 가사를 넣을 생각은 원래 없었어요. 베이스 라인에다가 사운드 쌓으면서, 그냥 코끼리 생각하면서 만든 곡이에요.(웃음)
「코끼리 무덤」 때문인지 이번 앨범은 베이스가 전보다 살아난 느낌이다.
베이스는 믹싱하면서 많이 올라온 거 같아요. 잘 된 건데, 다른 앨범보다는 베이스가 많이 두터워진 느낌이 있죠. 그 노래는 제가 베이스라인부터 만들어놓고 작업한 거예요. 그 위에다 하나씩 쌓는 작업을 했죠. 마음에 들어요.(웃음)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곡을 만드는 스타일인가?
네. 저는 굉장히 많이 생각해요. 무슨 곡을 만들든 간에 계속 상상해요. 「노인」 같은 곡도 마찬가지예요. 계속 이미지 떠올리면서 작업했어요.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그걸 서술한다고나 할까. 그렇게 가사를 쓰고 대부분의 작업을 해요.
「노인」의 가사는 어떻게 쓰게 되었나.
예전에 신문 편집 디자이너를 할 때 청량리 쪽 회사를 다녔는데, 몇 년 전 이른 봄 출근길에 갑자기 비가 쏟아진 적이 있었어요. 잠시 비를 피해 있는데 제 옆에 노인 한 분이 비를 맞아 옷이 젖은 채로 서 계시더라고요. 소나기가 그치기 기다리면서 거리를 계속 바라보시는데,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생각들을 노트에 적어놨다가 한 2년인가 3년 뒤쯤 노래로 만들어서 바로 그 다음날 공연에 처음 불렀어요. 보통을 몇 달 동안 묵혀 놨다가 부르는데, 그때 불러서 이 앨범까지 오게 됐네요.
이장혁씨는 노인이 아닌데 노인의 마음에 이입을 할 수 있었나?
많은 상상을 했죠. 사실 그 노래는 거의 상상이고요. 처음에는 제 시점으로 시작해서 노인의 시점으로 이동을 하는데, 잘 만든 거 같아요.(웃음) (담담하게 이야기해서 더 슬프게 들렸다고 하자) 멜로디가 단조가 아니라 장조라서 더 그런 거 같아요.
「매미」도 이미지를 많이 느낄 수 있는 노래인 것 같다. 매미는 좀 빨라서 그럴까 그동안의 음악과는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모르겠어요.(웃음) 「매미」는 사실 2집에 들어갈 뻔 했던 곡이에요. 가사 빼고 거의 모든 걸 다 만들어 놓았었는데 가사를 다 못써서 넣질 못했고요. 작년인가 재작년에 가사를 다 쓰게 돼서 이번에 싣게 됐어요.
이장혁 음악은 쉽진 않은데 난해한 게 없다. 들으면 그냥 그 이미지가 떠오른다.
네. 저는 난해한 게 없어요. 저는 절대 어렵게 곡 안 만들어요. 연주도 사실 어려운 게 없고 코드도 단순하게 가는 편이고, 단순하게 가는 게 좋아요. 어렵게 못 해서요 사실은.(웃음) 그래서이기도 하지만, 굳이 어렵게 할 필요가 없는 거 같아요, 제가 볼 때는. 꼬지 않는 게 좋은 거 같아요.
그렇다고 음악이 그렇게 또 단편적이진 않지 않은가?
그건 가사가 끼어들어서 그런 거 같아요. 저는 작업할 때요, 세션들에게 처음 곡을 들려줄 때 타이트하게 짜지 않는 편이에요. 단순한 코드랑 특정 라인만 잡아주면 세션들이 만들어오는 식이죠. 그러면서 라인이 복잡해진다거나 그렇게 되는 면도 있고, 제가 단순하게 줬지만 세션들이 세밀하게 만들어오면 그게 음악적으로 타이트하게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앨범에서 연주 비중이 커져서 밴드가 필요할 시점이 아닌가 싶었다. 밴드를 다시 할 생각은 없나?
사실 필요한 시점이에요. 그렇지만 밴드는 힘들 거 같아요. 지금도 공연 때문에 첼로, 드럼 같이 하고 있는데 활동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다들 바쁘니까 스케줄 맞추기도 어렵고. 제가 만약 밴드를 하면 앨범도 더 빨리 나올 거 같아요. 공통된 목표를 향해 가야하니까. 혼자하면 힘들고 그만큼 결과물이 늦게 나오더라도 솔직히 이게 편해요. 밴드 하는 맛도 있고 혼자 하는 맛도 있죠 물론.
1,2집과 다른 3집만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
3집을 만들면서 색을 어떻게 잡아야겠다고 의도한 건 없어요. 이번 앨범은 어느 기간 동안 만들어진 걸 쭉 배치를 한 다음에 낼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하고 보니 1집과 2집의 중간쯤이 된 거 같아요. 1집은 좀 밴드스타일이고 보컬도 로킹했다면, 2집은 어쿠스틱한 느낌이 많은데 이번 3집은 딱 그 중간의 앨범 같아요.
일단은 사운드 면에서 1,2집에 비할 바가 아닐 만큼 확 좋아졌어요. MP3로 들으면 잘 못 느끼실 거예요. 근데 시디로 들으면 굉장히 차이가 나요. 믹싱과 마스터링의 차이인데요. 1집 때는 믹싱과 마스터링에 신경을 많이 못썼어요. 근데 이번에는 회사에서 투자를 좀 해 주셔서 믹싱도 공들여서 했고, 그러다 보니 사운드가 많이 좋아진 거 같아요. 그리고 나머지는... 글쎄요. 저는 2집에 비해 3집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2집은 멜로디가 좀 심심하고 밋밋했다고 생각하는데 3집은 멜로디도 괜찮게 들어간 거 같아요.
가사의 측면에서는 어떤가? 나이가 들어 낸 앨범인데 2,30대 때와는 다른 변화는 없나?
변화하는 거 없어요. 변해 봤자 「칼집」 정도고요. 사실 나머지 곡들은 거의 사랑노래예요. 「빈집」도 그렇고. 그런데 그런 거 나이 들어도 많이 변하나? 모르겠네요. 솔직히 사랑노래라고 해봤자 결국엔 어둡게 가기 때문에.(웃음) 저는 솔직히 그렇게 어둡게 못 느껴요. 제가 어둡게 쓰는 게 편해서요. 일단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래긴 한데,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내가 예전에 사귀던 사람과 자주 오던 곳이면 기억들이 살아나고 그 기억이 자극이 돼서 끄적이고 나중에 노래로 만들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게 그렇게 어렵지 않는... 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음악적으로 변한 건 모르겠어요.
나이 들어서 힘든 건 있어요. 노래 쓸 때 뭐랄까. 예전에는 딱 쓰면 이거 괜찮다고 딱 느낌이 올 때가 많은데 지금은 그게 드물어졌어요. 한 번 더 의심하게 되고, '아 이거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 들고.
곡을 쓰면 좋은 곡이구나 하는 느낌이 한 번에 오는 편인가?
예전에는 그게 자주 있었어요. 10개 정도 그러면 그중 2개 정도 건지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이게 좋은지 나쁜지 모르니까 한참 더 보게 되는 거 같아요. 「노인」이라는 곡이 특별한 이유가 만들자마자 그럼에도 좋아서 특별하게 여겨지는 거고요. 나머지는 길게는 1년 짧게는 몇 달? 계속 모니터를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사실 「에스키모」도 만든 지 한참 됐지만, 2년 전에 만약 앨범을 냈으면 지금이랑 좀 달랐을 거예요. 특히 코러스 멜로디가 마음에 많이 안 들었는데 그걸 올해 초에 바꾸면서 마음에 들게 됐어요. 만약 올해 초에 냈으면 굉장히 후회했을 거 같아요. 바꾼 게 다행히 더 맘에 들어서 이번 앨범에 쓰게 됐고요.
이장혁 음악은 상처받는 사람들에게 더 다가오는 음악 같다.
공연하거나 할 때 제 팬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내성적인 분들 많은 거 같아요. 제 홈페이지 글을 남길 때도 대부분이 비공개 글을 남기시더라고요. 그래서 '아, 혼자 지내기 좋아하는 분들이 제 노래를 많이 좋아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공연 보러 오셔도 사인만 받고 딱 가시는 분들 많아요. 그래서 그런 분들이 제 노래를 좋아해주시는구나 라는 것만 제가 캐치하고 있어요.
실제 성격도 좀 어두운가? 작품과 본인은 얼마나 닮아 있나?
솔직히 작품은 일부일 뿐이에요. 재능이 어두운 쪽으로 향해 있기 때문에 그쪽으로 적합하게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저는 친구들이랑 술 마시면서 웃고 떠드는 거 좋아하거든요. 장난 아닌데.(웃음) 그런 것도 일부고 이런 것도 제 일부죠. 그런데 저는 어쨌든 음악으로 대중과 만나니까, 대중에게 드러나는 것은 어두운 부분이니까, 사람들이 이게 전부인 줄 알고 저한테 접근하는 경우가 있는데 안 그렇거든요.(웃음) 이게 좀 더 내밀한 제 일부죠. 일기장에 쓸 만한 것들이 가사로 주로 되니까. 어쨌든 두 가지 다 제 모습이에요. 저는 사람들 모인 자리에서 우울한 거 정말 싫어해요. 사람들 많으면 분위기 좋고 그런 게 좋지, 제가 가서 분위기 깨고 그런 거 정말 싫어해요. 특히나 제일 싫어하는 게 분위기 깨는 거!
인터뷰 : 김반야, 윤은지
사진 : 이한수
정리 : 윤은지
2014/12 윤은지 (theothers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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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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