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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에 눈길을 주어야”

‘발견’하는 삶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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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11월의 마지막 금요일, 공덕동에 위치한 한겨레 신문사에서 안도현 시인과 함께하는 『안도현의 발견』 북토크가 열렸다.

창 밖으로 들리는 빗소리와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을 배경으로, 이날 질문자로 함께 자리한 <한겨레>의 최재봉 기자가 이 책에 실린 산문들 중 하나인 「내가 만약에」를 낭독하며 북토크의 문을 열었다.

 

내가 만약에 열여덟 살 소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버지가 읽는 신문을 매일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으리라. 혼자 높은 데로 날아오르기 위해 공부하지 않고 여럿이 낮은 데를 살피기 위해 공부하리라. 밥상 앞에서는 고기를 덜 먹고 채소를 먹으리라. 쪽지 하나 남기지 않고 이유 없이 가출을 해보리라.-『안도현의 발견』 中 「내가 만약에」 p. 34~35

 

『안도현의 발견』은 안도현이 2013년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1년 동안 <한겨레>에 연재했던 201편의 짧은 산문들을 생활, 기억, 사람, 맛, 숨이라는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누어 모은 책이다. ‘작고 나직한 기억되지 못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일상의 모습을 그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것들을 글로 소박하게 담아냈다.

 

최재봉: 이번에 『안도현의 발견』 도 나왔지만, 얼마 전에 『백석 평전』도 내셨잖아요. 아주 바쁜 한 해를 보냈다고 생각하는데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안도현: 책을 쓸 때 말로는 괴롭다고 하지만 굉장히 기분 좋은 상태로 글을 쓰고, 쓰고 나면 쾌감도 있어요. 그런데 책을 내고 나면 그때부터 괴로움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강의도 해야 하고 사인회나 인터뷰, 외부 강연도 다녀야 해서 일정이 빡빡합니다. 올 가을은 사실 좀 힘드네요. 어쨌든 버티고 있습니다.


최재봉: 누군가 내 책을 어떤 환경에서 어떤 자세로 읽을까 상상해본 적이 있으실 것 같은데, 그렇게 상상했던 독자들과 직접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도현: 물론 즐거움이 있죠. 그런데 이런 것도 있어요. 글 쓰는 사람이 책을 내면 책을 읽으신 분들이 약간의 신비감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책 뒤에 숨어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드러나면 좀 부끄러울 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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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질서의 반대쪽을 바라보는 일

 

최재봉: 제목이 『안도현의 발견』입니다. ‘발견’에 여러 함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제목을 정한 이유가 있나요? 그리고 다른 후보였던 제목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도현: 연재 시작하기 전에 신문사에 의견 냈던 것 중에 ‘발견’이 있었고 ‘잡문’, ‘잡설’도 있었어요.  약간 케케묵은 느낌은 있지만 스스로 쓰는 글을 잡스럽다고 낮췄는데 막상 읽어보면 잡스럽지 않더라 이런 반응도 괜찮거든요. 한자로 ‘잡(雜)’ 자가 잡놈이나 잡목처럼 하나하나 구별하지 않고 낮춰 부르는 말 같지만 저는 그 잡스러운 것이 좋아요. 이 책에 실린 것들도 실은 좀 잡스러운 이야기들이죠.


최재봉: <한겨레>에 연재될 당시 맨 뒤에서 세 번째 면에 글이 실렸었는데, 그 면이 주로 칼럼들이 실리는 지면이니까 그 당시의 현안이나 관심사들 같은 진지한 글들이 배치돼 있지 않습니까? 그 가운데 ‘발견’은 저에게 숨을 트이게 하는 숨구멍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안도현: 문학이 필요한 이유를 그 지면을 보고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문학은 교육적이고 교훈적인 측면도 물론 있지만 어떻게 보면 다른 글들에 비해 쓸 데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문학은 쓸 데 없는 이야기를 해서 세상을 쓸 데 있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 지면이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재봉: ‘작가의 말’에서 연재하는 동안 원고지 3.7매의 독방에 들어가 사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신문이라는 매체의 특성 때문에 정해진 분량에 맞춰 글을 써야 하는 제약이 있어서 독방이라고 표현하신 것 같아요. 그렇지만 한편으로 자유로웠다고도 말씀하셨는데, 감옥과 자유의 양면성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었나요?


안도현: 말이 3.7매이지 사실은 글자 수를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3.7매에 맞춰서 원고를 보내고 나면 나중에 신문사 쪽에서 다섯 글자만 줄여줄 수 없느냐고 연락이 와요. 정해진 지면의 크기가 있는데 넘치니까요. 이런 사소한 어려움들이 있기도 했는데, 저는 이번에 연재할 때 습작시절로 되돌아가서 마치 백일장 하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짧은 분량 속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야 하니까 문장연습도 많이 된 것 같아요.


최재봉: 글들을 살펴보면 소재가 매우 다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성 있게 흐르는 중심이 있다면 작고 나지막한 것들이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작고 나지막한 것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도현: 저는 문학적인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세상 질서의 반대쪽을 자꾸 바라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더 빨리 가려고 하고, 더 풍요로워지려고 하는 욕망들 속에 살아가고 있잖아요. 여기에서 문학은 그 반대쪽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빨리 가면서 놓쳤던 것들,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에 눈길을 주면서 우리를 성찰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어서 책에 실린 글들 중 두 편을 안도현 시인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긴 것은 기고 아닌 것은 아니다 말하게 하소서. 눈치 보느라 눈이 한쪽으로 몰려 붙은 도다리로 살아온 시간을 뉘우치게 하소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다시는 입 밖에 꺼내지 않게 하소서. 절실하게 사랑해야 할 것들과 죽도록 미워해야 할 것들 것 구별할 수 있게 하소서. 길이 없다고 두리번거리지 말고 길이 되어 걸어가게 하시고, 내가 내 운명의 주인임을 아프게 새기며 살아가게 하소서.-『안도현의 발견』 中 「기도」 p. 112

 

나는 딱새의 육아를 2시간 가까이 방해한 나쁜 인간이었다. 방문을 닫고 마당 한쪽으로 가만히 몸을 피했다. 지렁이를 입에 문 딱새 어미가 재빠르게 처마 안쪽으로 날아들었다. 이어서 딱새 아비가 작은 벌레를 물고 뒤를 따랐다. 이들이 나 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생각해보니 작업실은 내 집이 아니었다. 그곳은 딱새네 집이었다.- 『안도현의 발견』 中 「딱새네 집」 p.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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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발견하는 사람

 

『안도현의 발견』 중 ‘맛의 발견’이라는 장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안도현 시인은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음식을 만드는 것도 좋아해서, 평소 좋아하는 웬만한 음식은 직접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날 북토크에 참석한 독자들에게 그는 평소 즐겨 먹는 요리의 레시피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시를 쓰는 것이 음식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안도현: ‘시’라는 것이 음식 만들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내가 먹어본 음식을 언어라는 장치를 통해 읽는 사람들에게 맛을 보여주는 게 시라고 생각해요. 지금 제가 전주에 살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전주하면 비빔밥을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저는 전주에 손님이 오면 비빔밥 집에 데려가고 싶지 않아요. 비싸고 생각보다 맛없기도 하고요.


최재봉: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책을 보면 아이들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고등학생이나 젊은이들의 이야기도 있어요. 젊은 사람들에 대한 시인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안도현: 제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제자들도 그렇고, 요즘 젊은 친구들은 ‘곤조’가 없는 것 같아요. 순화해서 말하면 깡다구적인 고집이 없어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지도 않고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해요. 좀 나약한 것 같아요.


최재봉: 제목도 『안도현의 발견』이고, 시인은 발견하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발견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발견이 시인에게 왜 필요한 자질인지 궁금합니다.


안도현: 초등학교 다닐 때 소풍 가면 보물찾기를 하잖아요. 사실 보물을 찾아 봤자 공책 한 권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사소한 차이인데도, 찾았을 때의 우쭐한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거든요. 시도 마찬가지예요. 시인이 발견하는 것이나 일반인이 발견하는 것이나 아주 작은 차이예요. 제가 대단한 것을 찾은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것을 찾아내는 것일 뿐인데, 다른 사람들이 저에게 어떻게 그런 것을 발견했냐고 물을 때면 가끔씩 글 쓴 사람으로서 뿌듯할 때가 있어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듯이 안도현 시인은 작년 7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른바 ‘절필 선언’을 한 바 있다. 그는 이 절필 선언에 대한 비화를 독자들에게 살짝 공개하기도 했다.

 

최재현: 이 산문들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도중에 절필을 선언하셨어요. 제가 그 당시 특종으로 단독 기사를 써서, 절필을 기정사실화 했다고 친구들에게 질타를 받기도 했는데요.


안도현: 제가 휴대폰은 사용하지 않지만 트위터는 하는데요. 세상이 돌아가는 게 슬퍼서 술을 한잔 하고 집에 가서 컴퓨터를 켜고 트위터를 하는데, 시를 안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박근혜가 대통령인 나라에서는 시를 쓰지도 않고 발표하지도 않겠다. 다만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썼어요. 그랬더니 다음날 이 기자가 ‘안도현의 절필선언’ 이라고 기사를 딱 내보낸 거예요. 들으면 마치 안도현이 50년 넘게 밥을 먹다가 곡기를 끊은 것처럼 심각한 상황이 된 거죠.


최재봉: 독자들이 오랫동안 안도현 시인의 신작 시를 못보고 있어요. 언제쯤 시로 돌아오실지 궁금할 것 같습니다.


안도현: 실제로 연재할 때 일주일에 월화수목 네 번을 써야 하니까 어떤 날은 소재가 쉽게 떠오를 때도 있는데 어떤 날은 막힐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예전에 시로 쓰려고 메모해둔 것들 중에서 몇 개를 끌어와서 쓴 것도 있습니다. 그 소재들이 시가 되면 더 좋았을지 아니면 이렇게 산문으로 나오는 것이 좋았을지는 모르겠지만 ‘남아일언중천금’이잖아요. 그리고 제가 현 정권이라는 단서를 분명 달아놨습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이날 참석한 독자들이 평소 안도현 시인에게 궁금했던 것을 종이에 미리 적어냈다. 마지막으로 그 질문들에 대한 그의 대답을 들어보는 시간이 이어진 후, 이날 북토크는 끝이 났다.

 

 예전에 썼던 시집을 다시 들춰보실 때가 있나요?


안도현: 가능하면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얼굴이 붉어질 때가 많아요. 왜 이렇게 과장했지, 왜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지, 왜 이렇게 주절댔지 하는 여러 가지 반성들이 많이 들어서 가능하면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요즘 시상이 떠오르면 어떻게 하시나요?


안도현: 시를 써야 될 때는 마치 몸이 가려운 것처럼 머리 속에 생각이 복잡해요. 그래서 자다가도 일어나서 메모하고 그러는데, 시를 쓰지 않겠다고 말한 후에는 그럴 일이 없어졌으니 잠은 잘 와서 좋고요. 마감 날짜를 지키려고 끙끙대지 않아도 돼서 좋습니다.

 

 오늘 하루 어떤 것을 오랫동안 들여다 보셨나요?


안도현: 찔립니다. 제가 어제 저녁에 서울에 와서 서초동에 강연을 하러 갔는데 길을 못 찾아서 그 근처를 40분 동안 돌았어요. 강연 끝나고 바로 자고, 그래서 오랫동안 뭘 들여다볼 틈이 없었습니다. 오늘도 점심에는 출판사 관계자와 만나고, 인터뷰하고, 지금 북토크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내일 아침에는 보성에 가야하고, 오후에는 나주를 가야 돼요. 오늘 지하철 타고 오면서 노선도를 오랫동안 바라봤습니다. 어디서 갈아타야 할지 몰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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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발견안도현 저 | 한겨레출판
『안도현의 발견』에는 시간의 무게와 함께 쌓인 시인의 문학과 삶, 사람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 사람, 맛, 숨, 그리고 생활이라는 다섯 개의 부로 나뉘어 단순하지만 순수하게 투박하지만 담백하게 담겨 있다. 〈한겨레〉에 연재 당시 3.7매라는 지면의 한계로 규격화될 수밖에 없었던 글은 책으로 나오면서 조금 더 숨 쉴 수 있게 되었고, 시인의 진정성 있는 목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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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지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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