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아이를 둔 아빠로 살아가기
『문어별 아이 료마의 시간』 저자 신보 히로시 모두 어우러지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
『문어별 아이 료마의 시간』은 자폐 아들을 둔 아빠의 이야기다. 저자인 신보 히로시의 아버지는 치매고, 어머니는 허리가 아프다. 이런 힘든 환경에서 아빠는 절망하지 않고 료마와 함께 한 발씩 걸어갔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네가 료마구나.
만나서 반가워.
드디어 이 세상에 와줬구나.
보고 싶었어.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하얀 천에 싸인 너를 처음 안았을 때
손에서 흘러내릴 정도로 무척 가벼웠지.
내 양손 안에서 작은 숨을 고르며 잠들어 있던
너의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나려 했어.
너의 모습을 몇 시간을 바라봐도 질리지가 않아.
회사에서 일할 때도
점심을 먹을 때도
네가 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즐거워서
아빠는 힘을 내 기운차게 일했지.
회사에서 돌아와 자그마한 너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기뻤거든.
조그마한 네 손이 내 검지를 꽉 쥐었지.
그 작은 손의 힘을 느꼈을 때,
나는 아빠가 됐다는 것을 실감했단다.
너를 지킬 거야.
네가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날까지
늘 함께 걸어갈 거야.
아빠의 마음을 처음으로 실감했던 순간
그곳에는 어느새 아빠가 된 내가 있었지. (8-9쪽)
료마는 태어날 때부터 생긋 잘 웃었다. 엄마나 아빠 모두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서 행복했다. 료마가 3세가 되었을 때, 아이에게 자폐 진단이 내려졌다. 충격이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는 자폐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애정을 쏟고 관심을 둬야 한다. 힘들 수밖에 없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던 두 사람은 마침내 료마가 6세 때 헤어지기로 결정한다. 료마를 맡은 건 아빠 쪽이었다. 『문어별 아이 료마의 시간』은 이런 힘든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료마를 키우면서 겪은 일을 틈틈이 써내려간 기록이다.
일본에서 책이 나온 이후, 많은 독자들께서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지난 12년 동안 홈페이지에 아들과의 일상을 기록했습니다. 여기에도 여러 분들이 성원을 보내주셨는데, 세상에는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분들도 많이 계시더군요. 책이 나온 뒤 저희 이야기를 읽어 주시는 독자 분들의 범위가 훨씬 폭넓어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처음 제 문장을 읽으신 분들은 “무척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와 같은 편지도 보내주셨습니다. 한국판을 받았을 때는 바다 건너 한국 독자들께도 제 마음이 전해졌다는 생각에 감개무량했습니다.
책을 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제목 정하기가 힘들 텐데요. 원래 일본 제목은 ‘산들바람 편지’입니다. 홈페이지 이름이기도 한데요. ‘산들바람’에 담긴 뜻은?
책을 읽은 독자 분들의 마음이 괴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속에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홈페이지의 제목을 그대로 책 제목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동안 썼던 편지 중에서 책에 미처 싣지 못한 글도 있을 것 같습니다. 책에는 빠졌지만, 료마에게 썼던 글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2004년 1월 25일, 홈페이지의 원기일기(元?日記)에 올린 시를 소개합니다.
너를 위해서라면(제134호)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거야
나는 너의 아빠니까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거야
네가 정말 소중하니까
너를 위해서라면 어디라도 갈 거야
너의 미래를 만들어줄 사람은 아빠밖에 없으니까
너에게는 긴 미래가 있어
힘겹고 버거운 길은
혼자서는 걸어갈 수 없어
그러니 함께 걸어가자
한 발자국씩이라도 느리더라도 아무 상관없어
가끔 다른 길로 새더라도
가끔 뒷걸음치더라도
천천히 천천히 걸어가자
바람이 되어 걸어가자
만약 지구의 마지막 날이 와도
너에 대한 마음은 변하지 않아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아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너를 지켜줄 테니
반드시 지켜줄 테니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거야
편지도 감동적이지만, 시도 뭉클합니다. 아버지의 문장력, 감수성이 료마가 크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고맙습니다. 그러나 저는 시인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아빠일 뿐입니다. 제 감수성이 료마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에 나오는 것처럼 제 마음의 중심에는 항상 료마가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런 마음이 료마에게 전해져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네요.
책 곳곳에 있는 사진을 보면 료마를 향한 아버님의 애정이 느껴집니다. 료마는 사진 찍는 걸 어떻게 생각했나요?
글쎄요, 료마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건 저도 물어본 적이 없네요. 료마와의 일상은 항상 기록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매 순간 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늘 료마와 보내는 일상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느끼는 것은 료마의 표정이 무척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그 표정을 보면 료마는 분명 ‘아빠, 잘 찍어줘!’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덧붙이자면, 30장쯤은 찍어야 한 장 정도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더군요.
작년에 홈페이지 업로드를 끝냈다고 들었습니다. 홈페이지 업로드를 더는 안 하는 이유가 있는지요?
어떤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도 찾아오는 법이지요. 저와 료마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9년 동안 평일에는 떨어져 지냈습니다. 료마와 만나지 못하는 시간 동안 저는 홈페이지 <산들바람 편지>를 중심으로, 팟캐스트 <주간 자폐증 뉴스>나 자폐증 아이들이 편히 놀 수 있는 장소를 취재하는 <외출 레포트>를 진행하거나 아버지 모임에 참가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료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온 가족이 다시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생활 패턴을 바꾸었지요. 이 시기를 계기로 홈페이지 업로드도 끝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지내지 못할 때는 그 에너지를 여러 활동에 쏟았지만, 지금은 료마와 보내는 시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산들바람 편지>의 취지와 정신은 이후 세운 사단법인 <산들바람 편지>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요즘 료마와 아버지는 어떻게 지내나요? 두 사람이 즐겨서 함께 하는 활동이 있나요?
료마는 지금 아버지인 나와 휠체어 생활을 하는 할머니, 치매 증상이 있는 할아버지와 함께 아주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부터는 마음도 무척 평안해졌는지 온화한 표정을 자주 보입니다. 가족들에게도 료마는 없어서는 안 될 등불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평일에 료마는 집 근처에 있는 시설에 다니고, 저는 료마를 시설로 데려다 준 뒤에 일을 하러 갑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평범한 19살 청년과 그 아버지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시간을 보냅니다. 료마에게 장애가 있다고 해서 항상 옆에 착 달라붙어서 지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평범한 부자 관계처럼 말이지요. 또한, 저의 일방통행일는지 모르겠지만, 료마에게 제 기분을 이야기합니다. 지난 19년 동안 료마를 키우면서 료마가 제 이야기를 모두 이해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료마에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인풋은 확실히 되는 것 같고, 다만 아웃풋이 어려울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보통 19살 아들을 대하는 것처럼 료마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둘이서 같이 하는 활동이라고 하면 주말에 드라이브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함께 드라이브를 하면서 보내는 주말은 우리 부자에게는 아주 귀중한 시간입니다.
료마가 태어나고 20여 년이 흘렀는데요. 아버님께서 느끼기에 20년 전과 지금, 자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어떻게 변했나요?
변해가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05년 일본에서는 발달장애자지원법이라는 법률이 시행되었습니다. 20년 전에 비하면 TV, 신문, 영화 등의 미디어에서도 자폐증이나 발달장애를 다루는 빈도가 늘었습니다. 자폐증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20년 전보다는 전반적으로 이해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자폐증이나 발달장애에 대해 오해하는 분들도 여전히 많아 아직은 과도기인 것 같습니다.
정상ㆍ비정상이라는 구분이 한국 사회에는 꽤 공고합니다. 실제로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살기에 한국 사회는 굉장히 불편한데요. 일본은 어떤가요?
일본에도 여전히 일부 비슷한 인식이 존재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물론 아직 완벽한 노멀라이제이션(normalization)에 도달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착실히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길거리에서 장애가 있는 분들도 자주 볼 수 있고요.
책에도 썼지만, 장애를 공동체 차원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대처해야 할까요?
노멀라이제이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용어도, 장애인이니 아니니 하는 인식도 사라지고, 모두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사회야말로 제대로 성숙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발달ㆍ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아주 평범하게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관련태그: 신보 히로시, 문어별 아이 료마의 시간, 자폐
티끌 모아 태산.
<신보 히로시> 저10,800원(10% + 5%)
성장이 더딘 아들 료마와 아빠,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시간의 기록 일본의 많은 이들에게 격려를 받고 있는 료마와 히로시 씨는 지난 해 6월, 홈페이지에 기록했던 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그들의 소중한 기록을 《문어별아이 료마의 시간》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히로시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