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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치은 “언어를 통한 소통? 가능한가?”

『노예 틈임자 파괴자』로 5년 만에 신작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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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치은이 새 소설 『노예 틈입자 파괴자』를 들고 독자를 찾아왔다. 28세에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소설가가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4,5년마다 한 권씩 소설을 펴내는 과작(寡作)의 작가인데다, 신비주의 혹은 은둔형 작가로 처신한 탓에 작품의 깊이에 비해, 작가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작가는 직장 생활을 하는 틈틈이 지금도 계속 소설을 쓰고 있다.

이치은 작가의 작품은 심오하다. 모든 심오한 작품이 매력적인 건 아니나, 매력적인 작품 중 심오한 이야기가 많다. 『노예 틈임자 파괴자』는 어떤 소설일까. 두툼한 분량에, 형식적인 파괴도 눈데 띈다. 본문에 캡쳐 화면이나 회화를 넣었는가 하면, 본문 뒤에는 후주를 달았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차인형의 후손인 ‘나’의 기록에서 출발한다. ‘나’는 인간의 언어가 없어져, 인간이 만들어온 모든 세계가 파괴된 후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나’는 차인형의 일기장과 아직 말을 할 줄 아는 할머니에게서 들은 말, 그리고 도서관에서 찾아낸 책으로 차인형의 이야기에 다가간다.

 

차인형의 이야기는 복잡하게 전개된다. 꿈 속의 인물이 단서를 주고, 꿈 속에 다른 사람이 꿈으로 침입한다. 차인형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개인 차원에 머무는 이야기갔지만 소설이 전개될수록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소설의 결말을 공개하는 건 독서의 즐거움을 빼앗는 것이니, 이 자리에서는 밝힐 수 없는 노릇.

 

이치은


오랜만에 장편소설을 냈습니다 그동안 근황이 궁금합니다.


2009년에 『비밀 경기자』를 발표하고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면…… 우선, 회사에서 정신없이 일을 했고요, 틈틈이 가족들하고 놀았고, 짬짬이 친구들과 만나 술을 먹었고, 로베르토 볼라뇨의 작품을 일곱 권쯤 읽었고, 감기에 걸렸고, 한 편의 장편을 마쳤고, 한 편의 장편을 중간 정도 썼고, 몇 개의 핸드폰을 바꿨고, 그리고 새로 두 편의 장편을 구상했네요.


그동안 약간 신비주의를 고수했습니다. 필명으로 쓰는 “치은”이란 이름도, 부끄러워 숨는다는 뜻인데요. 이렇게 인터뷰에 응한 걸 보면,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인데요.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그때는 유명해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던 것 같고요. 지금은 유명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고요. 그게 차이점입니다.


『노예 틈입자 파괴자』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직접 작가의 입으로 들으면 좋겠습니다.


저한테만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소설이라는 게 원래 말하고자 하는 것, 의도하는 것이 늘 작가의 뜻대로 적용되는 공간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은 아주 자주, 제 의도라는 것이 소설을 써가면서 나중에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래서, 의도를 말하기보다는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설명하는 것이 나아 보이네요. 이 소설을 쓴 계기나 문제의식은 크게 두 가지인데요. 제 큰 애가 매우 어렸을 때인데, 어느 날 잠을 자기 전에 저한테, 무서운 꿈을 자주 꾼다며 자신의 꿈으로 좀 와달라고 하더군요. 그때 남의 꿈에 들어갈 수 있는 존재라는 매혹적인 모티브를 가지게 되었고요. 그걸로 소설을 써 보아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는데, 한편으론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싶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날 그전에 갖고 있던 또 하나의 문제의식, ‘현대에서의 언어를 통한 소통 (Communication)’을 ‘남의 꿈에 들어갈 수 있는 존재’라는 모티브에 결합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품이 다소 심오합니다. 독자가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후기에 쓴 내용이긴 한데요. 작가가 완벽한 독자가 되길 바라는 건 이상일 것입니다. 물론 제가 썼던 글을 완벽하게 망각할 수만 있다면, 이론상으로는 완벽한 독자가 될 겁니다. 하지만 그런 꿈은 허망하죠. 안타깝게도 작가는 자기가 쓴 글을 읽어낼 수가 없습니다. ‘나’를 제외한 독자라는, 내겐 전혀 보이지 않는 유령이 이 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매우 궁금하긴 하지만, 그 유령들에게 제가 ‘하고 싶은’ 혹은 ‘할 수 있는’ 말이 따로 있을 것 같진 없네요. ‘가이사의 몫은 가이사에게’인 셈이죠.


“남의 꿈에 들어갈 수 있는 존재라는 모티브”에다, “언어를 통한 소통”이란 주제의식을 더했는데요. 작품에서는 이런 소통 방식을 부정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소통에서 내용보다는 형식, 즉 무엇을 가지고 소통하는가(예를 들면 인터넷, 스마트폰, SNS 등등)가 훨씬 중요해지더라고요. 소통의 수단과 기술이 점점 더 발달하면서, 소통의 양은 점점 늘어났지만, 정작 소통의 핵심인 내용은 점점 더 부차적인 것으로 변해가요. 상업적인 부가가치를 낳을 수 있는 소통의 형식만이 남고 그 내용은 완전히 사라져, 결국 껍데기뿐인 소통의 공해 속에 인간들이 둘러싸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리하자면, ‘남의 꿈에 들어갈 수 있는 존재’와 ‘언어를 통한 소통이 이제 거의 불가능해진 게 아닌가? 혹은 언어를 통한 소통이 꼭 필요한가?’라는 두 가지 계기 혹은 문제의식이 이 소설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작품의 주요 골격이 틈입자와 파괴자입니다. 왜 파괴자는 인간의 언어와 인간의 소통을 파괴하려고 했을까요?


작가가 그렇게 썼으니 그랬겠죠(웃음). 앞서 말했듯, 현대에서 언어를 통한 소통이 정상적인가라는 질문이, 언어를 통한 소통이 과연 꼭 필요한가로, 더 나아가서는 차라리 이럴 바에는 소통이 깡그리 없어지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변해 가면서, 급기야는 언어를 파괴하는 파괴자라는 인물이 제 머릿속에서 태어난 게 아닌가 싶어요. 이 파괴자는 언어를 파괴하고 대신 꿈을 통해 소통하려 하죠.


“서기 1900년부터 2000년 사이 지구 위에 서식하고 있던 사람들의 80퍼센트 이상이 말을 할 수 있었고, 5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글을 쓰거나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존재하고 있는 지금 여기엔, 말도 글도 그리고 소통도 더는 없다. 사라져 버렸다, 거의 완전하게.”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런 극단적인 파국이나 재앙은 현대의 여러 장르에서 자주 모습을 보이는데요. 국가-가족 이데올로기라는 관습-상업영화의 규칙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할리우드 영화를 젖혀두고 생각해 보면, 재앙 영화나 재앙 문학, 그리고 재앙 만화의 근원이란 대부분 현실에 대한 전복 의지가 어떤 실천적인 방식으로 모색될 수 없을 때 나타나는 돌파구나 도피처 같은 게 아닐까요? 즉, 언어가 언어로서 기능을 못하는 현대 사회의 소통이 맘에 들진 않지만, 그렇다고 단단하고 명쾌한 실천적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제 머리와 몸이 만들어낸 괴물이 바로 파괴자가 아닐까 싶네요.


이 작품을 쓸 때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 있나요?


소설을 쓸 때 염두에 두는 작품이 더러 있기도 한데요. 예를 들어 전작인 『비밀경기자』를 쓸 때에는, 짧은 글들을 처음 써보는 터라, 보르헤스같이 짧고 압축적인 얘기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소설은 그다지 그렇게 염두에 둔 작가나 작품 없이 써나간 축에 속하는데요. 다만 형식적인 부분에서, 로브 그리예의 『되풀이』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 작품에서는 매우 많은 ‘주’가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소설에서 ‘주’라는 건, 꼭 필수적인 요건이 아닌 데다가 단다고 해도 번역자가 다는 것이지 작가가 다는 건 아니잖아요? 보르헤스라는 예가 있지만요. 하지만 로브 그리예의 소설에서는 이 작가가 단 ‘주’들이 점점 잦아지고, 길어지고 하다가, 나중에는 ‘주’가 원문을 넘어 이야기를 형식적으로 전복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소설 속에서 가장 멋지게 ‘주’를 소화한 예라고 생각했고요, 그 후로 언젠가 나도 ‘주’가 많은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소설에서 ‘주’는 그런 형식적인 전복을 노렸다기보다는 화자와, 아마도 화자의 입-손을 빌려 쓰였을 내용을 일부러 떼어놓은 효과를 주기 위해 사용한 듯합니다. 아, 그리고 이 소설을 마친 후에 비로소 코맥 맥카시의 『The road』를 읽었는데요, 멋진 디스토피아 소설이지요. 세 번째 부분인 <파괴자>를 쓰기 전에 이 소설을 읽었었더라면 더 멋지게 <파괴자>를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짧게나마 했습니다.


 “이건 아주 먼 옛날이야기이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2003년을 시간적 무대로, 한국의 서울을 공간적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2014년을 사는 현재의 우리에게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죠. 그런데, 소설의 화자인 ‘나’는 적어도 21세기의 인물은 아닌 것으로 나옵니다. 게다가 시간도 언어도 의식도 모두 파괴된 세계에 속하는 자이죠. 시간도 언어도 의식도 모두 파괴된 사람이 어떻게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까요?


설명이 좀 부족했나요. 일단 화자는 파괴된 이후에도 언어를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예외적인 존재로 설정됩니다. 파괴자와 틈입자의 유전자를 받아서인지, 언어가 파괴된 이후에도 여전히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거죠. 언어가 없어진 세상에서 홀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화자가 자신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아버지가 남긴 일기장을 그리고 다른 기록들을 그리고 할머니를 통해 들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예전에 있었다고 스스로 생각, 상상한 이야기를 만든 거죠.


소설 속에는 언어 추리, 수학 등식을 이용한 추리 등이 등장하고, 각주나 그림 등이 등장하고 각주 속에는 화학 분자 구조도 등장합니다. 혹시 공대를 졸업했다는 소설가의 이력과 관계가 있겟죠?


아무래도 이런 기다란 글을 쓰다 보면, 밑천이 드러나기 마련이 아닐까요? (웃음) 밑천이라는 게 늘 좋아하는 것만으로 빚어지는 건 아닌 법이라……. 그림은 많이 좋아해요. 화집을 넘기면서 그림 속에 잠겨서 시간을 보내는 건, 책 속의 활자들을 해부해 내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거든요. 화학구조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 조금 더 아는 수준인 거지, 좋아하거나 특별히 흥미가 있는 건 아니고요. 추리소설은 제 아주 오래된 도락 같은 건데요. 중 2때, 제가 태어나 처음으로 가졌던 진지한 ‘장래희망’이 추리소설 작가였거든요.


지금은 어떤 작품을 쓰고 있는지, 향후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기억’과 ‘기억 잃어버리기’에 대한 글을 하나 마쳤습니다. 인간이나 꿈이 아니라 장소가 주인공이 되는 소설을 하나 손에 댔다가 반 정도 썼고 잠시 쉬고 있어요. 그리고 그림에 대한 짧은 글들, 집착-질투에 대한 글도 생각해 둔 게 있는데, 게으르기도 하고 이야기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아직 확신이 안 서서인지 아직 시작을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는데 올 하반기 정도에나 뭐 하나 잡고 쓰기 시작해 보려고요.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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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틈입자 파괴자 이치은 저 | 알렙
이치은의 신작 장편이 출간되었다. 『노예 틈입자 파괴자』라는 파격적인 제목의 이 소설은, 꿈과 언어 그리고 소통에 관한 묵시록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펼쳐 보여준다. 이치은은, 2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과 이어 발표한 일련의 장편을 통해, 독특한 실험 정신과 심도 깊은 주제 의식을 선보인 바 있다.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 또한 거대한 (의식) 세계의 파괴 음모를 실험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꿈, 언어, 그리고 소통이란 무엇일까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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