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발견된 토막 시체를 다룬 미스테리, 가와이 간지의 『데드맨』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조건 유전자 명령을 거스를 것
도쿄의 고급 아파트 욕조에서 시체 한 구가 발견된다. 목 위에 응당 있어야 할 머리가 없었다. 범인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는 거의 없는 상황. 며칠 뒤, 같은 수법으로 몸통이 없는 사체가 발견된다. 다음에는 오른팔이, 다음에는 왼팔이 없는 시체. 여섯 번의 연속살인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 사건을 맡은 형사 가부라기 앞으로 ‘데드맨’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익명의 이메일이 도착한다. 이것이 미스터리 소설『데드맨』 줄거리다.
제32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대상’ 대상을 수상한 가와이 간지의 『데드맨』이 출간되었다. 일본 정통의 신인추리문학상인 이 상의 수상작이 국내에서 출간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와이 간지의 작품 중 최초로 번역되는 소설이기도 하다. 2012년 수상 당시 평단으로부터 “최고의 형사 추리물”, “기발하고 독창적인 작품”, “예기치 못한 반전”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새로운 인기 작가의 탄생을 예고한 가와이 간지.
『데드맨』으로 제32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하셨는데요, 당시 기분이 어땠나요.
내가 만든 이야기가 책이 되어 서점에 진열된다니. 이건 그야말로 꿈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지금도 서점에서 제 책을 보면 절로 웃음이 지어집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출판될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어서 이번 한국어판 출간은 그야말로 뜻밖의 기쁨입니다.
각 시체 부위를 접합시켜 새로운 인간을 만든다는 설정이 공포소설의 원조라 불리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킵니다.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창조한 새로운 생명체가 괴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데요. 이 작품도 과학기술을 향한 맹신에 경종을 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소설을 구상한 계기는 무엇인지요?
‘시체의 각 부분을 모아 접합해 되살린다’고 하는 불사(不死)에 대한 동경을 담은 매력적인 일루션(illusion)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예로부터 이러한 설정을 지닌 여러 작품이 나왔습니다만, iPS 세포(유도만능줄기세포)가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이 비정상적인 설정에 리얼리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은 토막 연속살인사건이라는 섬뜩한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인간을 향한 사랑이라는 휴머니즘적 요소가 공존합니다. 이 작품에서 담고자 한 가장 큰 주제는 무엇인가요?
첫눈에 사랑에 빠진 남녀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기억을 읽고 헤어지게 되었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 두 사람은 또 사랑에 빠지게 될까요? 『데드맨』에 담은 몇 가지 주제 가운데, 이것이 제가 가장 사랑하는 주제입니다.
이 작품은 피해자와 가해자, 선과 악의 고전적인 대립 구도를 깨뜨리고 있습니다. 특히 범인은 섬뜩할 정도로 잔인하면서도 애처롭고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하는 인물입니다. 이런 인물을 창조해낸 까닭이 있나요?
범인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여섯 사람을 죽여 토막을 냅니다. 그만한 정념과 각오를 지닌 인물이라면 동시에 다른 사람에 대한 깊은 배려와 자기희생적인 헌신의 마음, 그리고 대가 없는 사랑을 두루 지닌 인물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은 두 개의 시점으로 서술됩니다. 연속살인사건의 담당 형사인 가부라기를 중심으로 한 3인칭 시점과 ‘데드맨’인 ‘나’의 1인칭 시점이 그것인데요. 두 개의 시점을 교차 서술함으로써 기대한 효과가 있는지요?
데드맨의 시점을 1인칭으로 설정한 것은 마치 독자 자신이 ‘되살아난 시체’인 것처럼 체험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입니다. 나 자신도 작품을 쓰면서 실제로 시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야 했는데, 제게는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객관적인 시점으로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3인칭으로 묘사했습니다. 그 결과 마지막 장면은 주관(1인칭)과 객관(3인칭)이 역동적으로 교차하는 특이한 구성을 갖게 되었고,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긴박감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데드맨』은 가진 자와 빼앗긴 자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희생자들은 모두 부유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고, 권력층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기도 합니다. 현재 일본의 사회적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 사회 비판이나 풍자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게 목표였다면 다른 더 효과적인 수단이 있겠죠. 다만 현재의 사회문제에 대한 분노는 이야기를 쓰는 중요한 동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는 이야기를 쓰는 글쟁이로서 늘 약자의 편이며, 정의를 호소하고 싶습니다.
‘나’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에서 자작나무를 내려다보며 감상에 젖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자작나무의 새하얀 나무줄기와 푸른 하늘이 선명하게 대비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냅니다. 이 작품 속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로 등장하는 자작나무 숲은 어떤 상징을 가지고 있나요?
저는 늘 ‘영상’을 의식하고 글을 씁니다. 독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정경이 언어 이상으로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전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바라본 자작나무는 짧지만 행복했던 ‘꿈’의 상징이었죠. 형사 가부라기는 ‘그’의 그런 마음을 알 리 없지만,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자작나무가 아름답다고 느낀 순간 가부라기에게도 ‘그’의 마음이 틀림없이 전해질 거라고 상상했습니다.
본문 중에는 인간 실존에 관한 흥미로운 질문이 나옵니다. “뇌사 상태에 빠진 남자와 병에 걸린 남자가 있다. 병에 걸린 남자의 뇌를 뇌사 상태인 남자에게 이식하는 경우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이고, 죽은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인데요. 지금으로선 당장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 같지만, 충분히 고민해봄 직한 인상적인 질문이었습니다. 더불어 이 질문은 인간의 실존에 관한 물음과도 직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무엇이 나를 나답게 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고 생각하나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실존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누구건 상관없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유전자의 명령에 거스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생물 가운데 이것이 가능한 존재는 인간뿐일 테니까요.
평소 좋아하는 영화나 소설 또는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나요?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시마다 소지입니다. 소설이 지닌 여러 가지 한계를 파괴했고, 저로 하여금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밖에도 미스터리 소설계의 선배인 아야츠지 유키토, 오츠 이치, 요코야마 히데오, 교고쿠 나쓰히코, 다카하시 가쓰히코, 야마다 마사키의 작품을 즐겨 읽습니다. 어렸을 때는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 로버트 A. 하인리히, 레이 브래드버리, 필립 K. 딕 등의 SF 소설을 즐겨 읽었습니다.
다음은 어떤 작품을 구상하고 있나요? 선생님의 다음 작품을 손꼽아 기다릴 한국 독자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두 번째 작품도 일본에서는 이미 출간되었습니다. 제목은 『드레곤플라이』인데 『데드맨』에서 활약한 형사들이 다시 등장합니다. 이 소설은 댐 공사 때문에 수몰될 예정인 마을에 거대한 잠자리가 출현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또 12월에는 『데블 인 헤븐』이라는 세 번째 작품이 출간됩니다. 도쿄 만에 일본 최초의 카지노가 생기는데, 그 배후에서 무시무시한 음모가 진행된다는 근미래 소설입니다. 주제에 대헤서는 미리 설명하기보다 꼭 읽고 뭔가를 느껴주시면 좋겠습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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