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도 교수 “서재는 트렌드를 읽기 위해 돋보기를 대보는 곳”
누군가가 불러도 나가고 싶지 않은 공간, 나의 서재
전작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을 통해 청년들을 위로했다면, 『김난도의 내:일』은 사회적인 문제와 대안을 다룬 김난도 교수의 고민과 대답의 산물이다. 김난도 교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이탈리아의 1,000유로 세대부터 노동경제학의 대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등을 직접 발로 뛰어 찾아 다니며, 일자리 문제의 대안을 묻고 각 청년들이 일자리를 잡기 위한 전략을 담았다.
“어릴 때는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 소년이었습니다. 특별히 기억나는 건 중고등학교 무렵 문예반 활동을 했다는 것 정도일까요? 제가 이 얘기를 하면 그때부터 문학적인 소질이 있었나 보다, 지레짐작하는 분도 있는데요. 그건 아닌 것 같고요(웃음). 지역 백일장 같은 곳에 나가면, 책을 가슴에 품은 문예반 소녀들이 잔디밭에 앉아서 단아하게 글을 쓰잖아요. 그게 참 예뻤어요. 그 소녀들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은 한 번도 받지 못했지만, 열심히 문예반활동을 계속했지요. 하지만 혹시라도 문예반 소녀들과 말할 기회가 생겼을 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면 안 되니까, 집에 들어가서는 이런저런 책도 열심히 찾아 읽었던 것 같아요. 어려서는 소년소녀 세계명작 같은 것들을 열심히 봤고, 지금까지도 가끔 찾아 읽는 『오스카 와일드 단편선』 같은 책도 학생 때부터 좋아했어요.”
“청년기는 진로를 찾아 헤매고 또 수정하느라 고민도 많고 흔들림도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법과대학에 입학해서 다른 친구들은 다 자연스럽게 사법고시를 준비하는데, 저는 법에 큰 흥미를 느낄 수가 없었어요. 이미 일어난 사건들을 파헤치고, 변론하고, 각양각색의 인간사를 법이라는 정해진 기준 하에 판결해야만 한다는 게 제겐 잘 맞지 않는 일처럼 느껴져서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한 지역의 살림살이를 챙기고 지역에서 이런저런 창의적인 일들을 모색하는 군수가 되고 싶기도 했고요. 뛰어난 행정학자가 되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 돌아 마침내 찾아낸 ‘내 일’이 선생이었지요.”
“친구가 되어준 책들은 오래된 고전이었습니다. 현실이 외롭고 괴로울수록 오랫동안 살아남은 책들이 그건 너만의 괴로움이 아니라고 토닥이곤 했습니다. 청년기에 인상 깊게 읽었던 고전들은 지금도 제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부터 다시 찾아 읽곤 하는데요. 『논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책들이죠. 괴테의 『파우스트』도 어렵기는 해도 영감을 주는 책입니다. 또 시집을 많이 읽으려고 했습니다. 운율, 어휘, 이미지, 문체에 대한 ‘느낌‘을 늘 가지려고요.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유안진의 『절망시편』 『걸어서 에덴까지』 등은 지금도 서가 한복판에 꽂혀 있습니다.”
“서른 즈음에는 연봉 500만 원 가량의 시간강사로 살면서 아들까지 태어났는데요. 가족들에겐 너무나 미안하고 나 자신의 마음도 마구 괴롭히던 시절이었어요. 그때, 무력감 속에서 밤부터 새벽까지 테트리스를 하며 시간을 보낸 적도 있는데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멍하니 모니터를 보면서 벽돌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새벽 너덧 시가 되는데, 그 즈음이 되면 눈에서 눈물이 좍좍 쏟아졌죠. 그 눈물이 컴퓨터 모니터화면을 너무 오래 봐서 눈이 아파 쏟아지는 건지, 아니면 내 삶이 부끄럽고 서러워서 쏟아지는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었죠. 그렇게 기약 없이 막막하게 임용을 기다리던 시절에, 저를 일으킨 한 구절이 있어요.
‘장미라면 언젠가 꽃을 피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나온 말인데요. 이 말이 그땐 왜 그리도 큰 위안이 되었는지요. 『로마인 이야기』는 장구한 역사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수많은 희로애락과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는 책인데요. 지금의 내 고통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찌 보면 이 고통조차 나라는 인간의 역사의 한 장일 뿐임을 깨우치게 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같은 책도 제게 큰 영감이 되었어요. 또 이 시기에 소비자들의 세계에 대해 매료돼서 본격적으로 소비자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됐는데, 이 때 감탄하면서 본 책이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입니다.”
누군가가 불러도 나가고 싶지 않은 공간, 나의 서재
매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와 함께 『트렌드 코리아』를 집필하는 김난도 교수는 페이스 팝콘의 『클릭! 미래 속으로』라는 트렌드 서적을 읽고 영감을 받았다. 이 책은 앞날을 연구하고 내다보는 것도 학문의 영역이 될 수 있다는 것, ‘트렌드’라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분야인가를 깨닫게 했다. 책 제목의 ‘클릭(Click)’은 ‘클릭한다’의 의미도 되지만, 각각의 글자가 미래 키워드 다섯 가지의 머리글자가 된다. 김난도 교수가 매년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그 해의 띠 동물에 맞춰서 열 가지 키워드를 한 단어로 함축해 발표하는 것도 이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다. 최근 펴낸 『김난도의 내:일』에서 발표한 여섯 가지 잡 트렌드 ‘FUTURE’, 다섯 가지 일자리 전략을 ‘MY JOB’이라는 키워드로 완성한 작업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전작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을 통해 청년들을 위로했다면, 『김난도의 내:일』은 사회적인 문제와 대안을 다룬 김난도 교수의 고민과 대답의 산물이다. 김난도 교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이탈리아의 1,000유로 세대부터 노동경제학의 대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등을 직접 발로 뛰어 찾아 다니며, 일자리 문제의 대안을 묻고 각 청년들이 일자리를 잡기 위한 전략을 담았다.
요즘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차이나』를 집필하고 있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에 이어 올해는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인 중국 시장을 분석하고 중국인들의 소비 DNA를 추적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도 여러 차례 오가며 중국인들의 삶과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눈 여겨 읽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인’으로 불린다는 중국 저널리스트 후수리의 『중국, 세계경제를 인터뷰하다』, 각계각층 중국인들의 일상과 초상을 생생하게 그렸다는 자젠잉의 『중국인의 초상』도 읽을 계획이다.
트렌드 전문가이자 에세이스트로서 어떤 기준이나 편견 없이 다양한 책들을 섭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책을 선택할 때는 제목, 서문, 차례를 읽은 후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와 맞닿아 있으면 읽기 시작한다. 다만, 문학서든 연구서든 반드시 적용하는 그만의 기준이 있다. 글을 쓸 때 퇴고를 여러 번 거친다는 것.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완고를 넘기고도 마지막까지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는 걸 보고, 담당 편집자로부터 “천 번을 고쳐야 책이 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김난도 교수는 “퇴고를 하다 보면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글이, 책이 더 좋아지다 보니 이런 습관이 생긴 것 같다”고 말한다. 퇴고의 흔적은 일단 문장에 남고, 비문이 없고, 굳이 쓰지 않아도 될 수식어나 부사들을 남발하지 않는지, 책 앞부분을 보면서 ‘여러 번 고민해서 쓴 문장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서재에 이름을 붙인다면, 놀이터라고 부르고 싶어요. 이번에 제 신간이 나온 출판사 이름이 ‘오우아(吾友我)’인데요. ‘책과 벗하여 스스로 놀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작업실은 때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한 번 쓴 원고를 천 번을 고치며 고민하는 곳이기도 하고, 학생들이 놀러 와 이것저것 묻는 곳이기도 하고, 좁은 공간에서 드넓은 세상의 트렌드를 읽기 위해 돋보기를 대보는 곳이기도 하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곳에서 저 스스로가 재미를 느끼고 지식과 감동을 발견하는 작업들을 꾸준히 해나가고 싶어요. 저녁에 해가 지면 엄마가 놀이터에 있는 아이를 불러도 들어가기 싫어하는 것처럼, 저에게도 이곳이 나중에 아무리 누군가가 부르고 유혹해도 나가고 싶지 않은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명사의 추천
클릭! 미래속으로
『트렌드 코리아』을 쓰기 까지 많은 영감을 받은 책입니다. 앞날을 연구하고 내다보는 것도 학문의 영역이 될 수 있다는 것, ‘트렌드’라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분야인가를 마치 감전된 것처럼 깨닫게 해줬습니다.
The Great Gatsby (위대한 개츠비) (Blu-ray) (2013)
눈과 귀를 만족시키는 화려한 비주얼과 영상미가 압권이더군요. 원작의 아우라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왔던 옛날 작품이 더 있었던 것 같지만요. 소설 속 배경인 1920년대 뉴욕을 풍미했던 건축, 패션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세공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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