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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최소한 세상이 나를 바꾸지는 못한다. 멋지지 않나?”

『팔꿈치 사회』 강수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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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1일,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벙커1.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에서 이날부터 ‘북 페스티벌 : 이것이 진짜 도서전이다’를 열었다. 이 행사의 첫 시간으로 『팔꿈치 사회』 의 저자 강수돌 교수가 초대됐다. 강 교수는 ‘경쟁과 분열에서 연대와 협동으로 : 나부터 세상을 바꿀 수 없을까’라는 제목의 강연으로 독자들과 만났다. ‘팔꿈치’로 옆 사람을 치며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치열한 경쟁사회를 상징하는 ‘팔꿈치 사회’, 우리는 매순간 다른 사람을 팔꿈치로 밀어내고 밀리면서 살고 있다.



팔꿈치 사회의 도래와 창궐

팔꿈치 사회. 1982년, 독일에서 올해의 단어로 선정됐던 말이다. 강 교수는 1980년대 초 본격 도래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 이전부터 그것이 싹 텄다곤 해도 대처 영국 수상과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를 펼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맞은 위기를 관통하며 자본과 국가가 새로운 전략으로 펼쳐낸 것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래였다. 국가의 간섭을 타파하고자 한 것이 고전주의적 자유주의였는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모순을 배태하자 탄생한 것이 신자유주의였다. 그리고 경쟁력 있는 기업, 개인만 살아남는다면서 경쟁력의 기준을 세계화시켰다.

“한국에선 김영삼 정권 때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당신의 경쟁 상대는 누구입니까?”라는 카피를 내건 광고였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고 조장한 것이 19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었다. 자기 인생을 설계하고 실현하는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자본은 끊임없는 돈벌이와 이권을 위해 움직이도록 한 배후조정자였다. 친구, 동료, 이웃을 경쟁상대로 여기게 하고 전쟁터에 있는 것처럼 우리를 긴장시키고 우리의 삶을 평화롭게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마비시켰다.”

이렇게 신자유주의가 창궐하는 팔꿈치 사회는, 우리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푸근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줬을까 아니면 스트레스 사회로 가게 했을까. 빤한 결론이다. ‘가방끈의 길이’라는 상징을 통해 강 교수는 과거와 지금의 차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과거, 우리는 가방끈이 짧아도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를 삶으로 가르치고 배웠다. 양적으로 가난하고 부족해도 작은 것이라도 귀하게 여기고 아주 작은 벌레라도 생명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강 교수는 되묻는다. 가방끈의 길이가 과거보다 길어지고, 등록금도 줄기차게 증가했으나 심성의 심화나 의식세계의 지평이 넓어졌는가. 공부에 투자한 시간과 돈과 열정이 높아졌음에도, 자율성과 공동체성이 더 충만하고 꽃피고 풍성해졌는가. 당연히, 아니다!

임금 수준을 놓고 ‘귀족노동자’로 불리는 현상에 대해서도 말한다. 강 교수는 “겉으로 보기에 임금의 격차가 심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상대적인 고임금을 받는다고 귀족노동자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아니라는 것이다. 귀족노동자로 지칭되는 사람들의 노동을 보면 기본급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잔업, 특근 등을 해야만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그러니 누군가는 365일 가운데 363일을 일한다. 목숨을 걸고 일을 한다. 과로사로 쓰러질 수 있는 위험을 품고서. 그런데, 왜, 도대체 왜?

그 절박함에는 국제통화기금(IMF)라는 트라우마(정신적 외상)가 우선 자리한다. 당시 엄청난 숫자의 노동자가 정리해고를 당했고, 노조도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했다. 살아 있을 때 돈 많이 벌어야 한다는 삶의 위기가 실존을 흔들었다. 강 교수는 둘째 이유로 우리 삶에 화폐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한국은 학비, 주거비, 노후 등에 대한 공적지출이 7~8%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20%대, 북유럽은 30%대임을 감안하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너무 크다. 한국은 삶의 비용 요인을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정도가 낮은 반면 사교육비, 주거비, 통신비 등 개인이 부담해야 할 화폐 의존도가 높다. 이를 사회적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정치적 무능함까지 겹치다보니 노동의 강도와 양은 점점 커지고 많아질 수밖에.

“피곤을 느낌에도 그것을 부정하다 쓰러지는 일중독 상태에 도달했다. 또 소비중독 세계와 맞물리면서 사람을 노동에 옭아매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삶의 질, 행복을 기준으로 보면 고임금 노동자도 행복하게 살고 있지 못하다. 아빠의 존재감은 월급날에야 드러난다. 지금,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아버지 상이 있다. 삶의 비용 상승과 기업, 노조 등을 더 이상 믿고 의지하기 힘든 사회다. 노조에서도 안전한 노동과 삶의 질을 요구하는 소리는 줄고 물량을 더 당겨와 잔업을 많이 가져오는 사람이 대의원이 된다. 비극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강 교수는 “경제 운영 논리가 ‘너 죽고 나 살자’로 가고 있다”면서도 “사람이 사는데 경쟁의 원리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역사를 봐도 협력하고 소통하는 부족이나 민족이 외침이나 자연 재해 앞에서 효과적으로 잘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경쟁을 어떻게 볼 것인지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

“이반 일리치의 『탈학교의 사회(학교 없는 사회)』를 보면 이반 일리치는 굉장히 근본주의적이다. 이 책은 학교라는 제도가 없어지면 학습동기를 더 키워준다는 내용이다. 교육이 제도화하는 바람에 사람은 뼈만 남고 통제 대상이 되고 차별과 편견의 근거가 됐다는 거다. 초중고 거치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게 시험이었지 않나. 학교가 스스로 발표하는 사람으로서 상호 소통하고 배우고 나누는 공간으로 발전한다면, 제도권 대학이 아니라도 공부의 공간, 학교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이런 면에서 이반 일리치의 탈제도화 테제는 중요한 아이디어 같다.”

그렇다면 자본이 요구하는 획일적인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강 교수, 삶의 인생관부터가 출발이라고 말했다. 제도에 나를 끼워 맞추기보다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인생을 멋지게 설계하면서 좋은 친구와 배우자를 만나, 마을이나 지역에서 신바람 나게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

“병원을 생각해보자. 지금의 많은 병원에는 호의, 우애, 우정, 환대가 결여돼 있지 않나. 병원이 제도화되다보니 치료 시스템은 잘 돼 있지만, 환자에게 공감하고 스스로 이겨내는 힘을 길러내는데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없는 거지. 제도의 서비스를 받는 대가는 비싸지고 개별적으로 각개 전투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많이 벌어야 하니 과로하거나 사기를 쳐야하고. 삶의 질이 떨어지고 도덕성을 타락하는 구도가 나온다.”

강 교수는 거듭 ‘나부터’라는 명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물론 나 혼자 변하기만 하면 된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다. 전체 변화를 꿈꾸고 소망하는 한편, 나부터 실천하려는 몸부림이 없다면,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손가락질할 때 힘이 없어진다는 것. 나부터 바꾸면 손가락에 힘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바람직한 사회상은 무엇일까. 팔꿈치로 옆 사람을 쳐야만 하는 경쟁과 분열의 사회가 아닌 협동하고 서로 돕고 소통하는 사회로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 사회로 어떻게 가면 될까. 강 교수는 한 반핵운동가의 이야기를 꺼냈다.




『민주주의에 반하다』라는 책을 보면 한 반핵운동가는 매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일마다 1인 시위를 한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왜 이렇게 하나, 이런다고 세상이 바뀌나? 그는 답한다. 이런다고 세상이 바뀌겠습니까. 나는 최소한 세상이 나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멋지지 않나. 우리말로 줏대 있는 삶이다. 주체성이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학벌, 자격증, 상 등은 우리가 입은 옷 중의 하나다. 철학, 소신, 생각이 우리의 본질이라면 본질에 충실한 삶이 세상을 바꿔나가는 미시적인 기초가 아닐까.”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꺼낸다. 밥상, 텃밭, 화장실, 아이 교육, 마을, 지역사회 등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고, 하게 됐다. 밥상머리에서 아이들에게도 “밥이 똥이고, 똥이 밥이라고 세뇌”시키면서 ‘나로부터의 출발’을 강조했다.

“국정지표를 걱정하는 대통령이라면 국정과제 1호로 농업, 식량자급을 내걸어야 한다. 집의 밥상을 어머니가 차린다면 국민의 밥상은 농민은 차린다. 농사가 살아나야만 세계에 나가도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현미밥을 먹은 게 10년이 넘었고, 텃밭을 하면서 스스로 생명을 일궈서 내가 생명계의 순환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이 크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도 베란다에 텃밭을 가꿀 수 있다. 쿠바는 소련이 붕괴하면서 각종 경제 지원 등이 끊기자 유기농으로 채소와 과일을 심고, 소식을 하면서 자급률이 95%를 넘었다. 우리나라는 진정한 의미의 자급률은 5% 밖에 안 된다. 농민과의 태도, 흙과의 태도를 나부터 바꾸고 실천하는 것이 나라 정책을 바꾸는 미시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 미시적인 변화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문제는 탐욕이다. 적정함을 우리는 잊었다. 먹고 사는데 필요한 만큼 있어야 하고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면 더 좋으나 우리는 탐욕을 끊임없이 증식시킨다. 강 교수는 나부터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을 넓혀가고 사회적인 요구를 하는 것에도 신경 쓸 것을 권했다. 그는 자신부터 실천하는 것 중의 하나를 꺼낸다. 길을 가다가 나무 의자나 탁자를 발견하면 이를 주워 와서 고쳐 쓴다. 이것을 기쁨이라고 했다. 삶의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의 학교는 개성을 말살한다. 고비용 저효율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부터 실천을 확장해서 마을이나 지역의 교육이나 문화를 바꿔 내거나 공론의 장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그럼으로써 더불어 하는 실천으로 확장할 수 있다. 나부터 실천하는 경험이나 의지가 강할수록 더불어 하고 싶은 마음도 개방적으로 나올 수 있다. 나부터 끈질기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비슷한 사람을 보면 동지를 만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마음을 통해서 협동조합이나 마을기업을 만들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바닷물은 짜다. 소금은 얼마나 들어가 있을까. 바닷물 100g에 소금은 3~4g이다. 바닷물 100g에 이 정도만 들어있어도 짠 맛을 낸다. 세상을 바꿔나가는 실천도 3~4명이 시작해도 가능하다. 제대로 토론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중단 없이 옹골차게 나간다면 세상을 바꿔나가는 유기농 밑거름이 될 것이다.”




Q&A

경쟁을 내면화하고 싶지 않다. 회사생활 등에서 강제하는 압박에 대해 어떻게 처신하면 될까?

우리가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현실이 아닐까. 두 가지 방향에서 말하고 싶다. 하나는 내가 느끼는 현실을 말해야 한다. 자꾸! 또 그 현실에서 최소한의 인간적인 조건은 있지 않겠는가. 그것을 찾아야 한다. 주어진 시스템 안에서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노동의 방식 등을 마음속 아우성으로만 담아 놓지 말고 펼쳐내야 한다. 말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말하기는 정치적인 행위다. 노조도 목소리 내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둘째로 경쟁이 없는 사회, 경쟁을 지양하는 사회에 대한 상상이나 실천을 할 필요가 있다. 독일 경영학 용어 중에 ‘내면적 사표’라는 말이 있다. 직장에 속해 있으면서도, 만약 직장이 나의 자아실현이나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몸은 직장에 있지만 내면은 직장을 떠나는 것이다. 대안을 찾을 때까지만 그 직장에 있는 거지.


아울러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율성과 공동체성을 담보할 수 있는 형태의 경제방식, 활동방식을 만들면 좋겠다. 기업이나 정부는 이미 사람들에게 일자리, 삶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능력에서 한계에 부딪혔다.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것을 찾아내고 함께 만들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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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꿈치 사회 강수돌 저 | 갈라파고스
『팔꿈치 사회』는 한국사회의 체제를 규정하고 강제하는 ‘경쟁’의 다층적 의미를 사회학적 담론에 편입시켜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 경쟁의 기원과 그것이 갖는 기능과 부작용, 경쟁에 내재된 현대인들의 이데올로기와 무의식을 정치 경제 사회 권력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탐문하고 있다. 강수돌 교수는 한국사회가 경쟁이 끊임없이 내면화되고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팔꿈치 사회, 승자독식 사회, 일중독 사회가 되어버렸다고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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