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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칼럼니스트 현정, 교육적인 책인데 19세라니요?

『나를 만져요』 출간한 현정이 털어놓는 야하지 않은 이야기 갈수록 사랑의 가치가 옅어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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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남성 잡지 「아레나」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섹스와 연애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 현정. 그녀는 스스로를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라 소개한다. 그럼에도 이번에 낸 책은 19세 등급을 받았다. 19세 등급이라 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나, 적어도 19세 미만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은 책이라는 뜻이다. 대체 어떤 책이기에 빨간 등급을 받았을까. 저자의 말로는, 교육적인 책이라고 한다.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에 이어 두 번째로 낸 책이 『나를 만져요』인데요. 전자책으로만 『나를 만져요』를 출판한 이유가 있나요?

 

웅진출판사에서 ‘달밤’이라는 전자책 브랜드를 내면서 나온 첫 번째 책입니다. 제가 쓴 첫 번째 책이 종이책으로도 나왔지만 전자책도 많이 팔렸다고 하더라고요. 전자책으로 다루면 괜찮을 소재라 새로운 시도를 해 봤어요. 그렇다고, 종이책을 안 내겠다는 건 아니고요. 반응이 좋으면 종이책으로도 낼 거예요.

 

이전에 낸 책과 이번에 낸 책의 묘사 수위가 비슷한데요. 전작은 안 그랬지만 『나를 만져요』는 19세 등급을 받았습니다.

 

다소 아쉽습니다. 쓴 책 2권 모두 교육적이에요. 청소년, 젊은 친구들이 알아야 하는 내용인데요. 어떤 이유에서 19세 판정을 받았는지 잘 모릅니다만, 출판사로부터 19세 등급을 받았다고 들었을 때는 대한민국에서 섹스칼럼니스트의 입지가 좁구나 싶었습니다. 차라리 소설을 쓸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비도덕적이고 외설적인 장면이 등장하는 소설도 많은데, 그 작품들이 다 19세 등급을 받지는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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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에 섹스 칼럼니스트가 되겠다는 결정을 했잖아요. 계기가 있었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섹스앤더시티’를 즐겨보다 보니 캐리 브래드쇼처럼 연애에 관해서 글을 써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연애할 때 일기를 쓰잖아요. 개인 블로그에 글을 썼는데 그때 반응이 좋았어요. 특히 이별했을 때 쓴 글에 공감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렇게 블로그를 운영하다, 칼럼을 쓰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지요. 그렇게 매주 꾸준히 글을 쓰다 보니 책을 내보자는 제안이 왔어요. 제가 특출나게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은 해본 적은 없어요. 성실함을 보고 그런 제안해주셨다고 생각해요. 빛나는 재능보다는 성실함이 기회를 만든 것이 아닐까 싶어요.

 

‘현정’으로 이름을 사용하잖아요. 보통 여성주의자들이 성을 빼고 이름만 쓰곤 하는데요.

 

정치적 의미로 쓰는 건 아닙니다. 본명이 너무 흔하디 흔한 이름이라서요. 차별화된 이름을 쓰고 싶었는데 가명이나 필명을 쓰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섹스라는 소재를 쓰며, 가명이나 필명을 쓰면 숨는 느낌이 들잖아요. 그래서 '현정'이라고 성만 뺀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즐겁게 섹스를 할 수 있는지에 관해 책 2권을 썼습니다. 성에 관한 담론이 활발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섹스를 할 만한 환경이 구축되지 않은 문제도 있는 듯해요. 성욕이 왕성한 젊은이들에게는 공간이 없잖아요. 집값이 비싸니까요. 그렇다고 섣불리 독립하거나 계속 모텔을 전전할 수도 없고요. 돈을 벌기 시작하고부터는 생업 활동에 바쁘잖아요. 결혼하고 자식을 낳은 뒤에는 양육에 힘을 쏟고요.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즈음 성에 관한 담론이 활발하게 쏟아지는 것 같아 보였죠. 하지만 자유로운 섹스 그 이상을 넘어선 삶의 자세로써 섹스를 다루는 것까지는 오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한국사회가 여러모로 경직되어 있는 탓이겠죠. 다들 남들과 다른 속도, 다른 방향으로 사는 걸 두려워합니다. 저도 완벽하게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죠. 하지만 섹스를 소재로 글을 쓰면서 하면 되는 것이니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섹스도, 연애도, 관계도 모두 공부가 필요하고 그 바탕에는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더군요. 생의 목표가 잘못 되어있다면 섹스를 즐길 수 없는 게 당연하겠죠. 획일화된 삶의 자세로는 늘 남들과 비교만 하고 후회하다 끝나겠죠.

 

계층양극화는 섹스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사회에서 섹스를 해도 무방하다고 용인된 20대에 삶을 꾸려나가기가 버거워 연애를 포기하고 섹스리스를 견디는 젊은이들이 많죠. 섹스가 음란한 행위라도 되는 듯 금기시하기에 생기는 10대의 성문제와는 또 다른 문제죠. 그런데 섹스하지 않는 삶에 대해 더 잘 살기 위해서 욕망을 억누르는 개념으로 접근한다든지, 우선순위가 아닌 문제로 취급한다면 분명히 사회적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해요. 누구나 사랑을 받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긍정 받고 싶어합니다. 섹스야말로 사랑과 긍정을 느낄 수 있는 행위이고 그런 섹스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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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가끔 상담 내용을 공개하잖아요. 상담 내용 중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궁금합니다.

 

헤어졌는데도 관계를 쉽게 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많은 사람이 물어봐요. 결별을 인정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할 용기가 안 생기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끝난 관계를 더 꽉 쥐려고 합니다. 하지만 모래를 꽉 쥐면 쥘수록 모래가 빨리 빠져나가잖아요. 그럴 때는 놓아야죠. 손바닥을 벌리면 새로운 모래를 올릴 수 있듯, 끝난 관계는 놓고 정리하라고 조언해요.

 

유독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나요.

 

기억에 남는다기보다는 변하는 풍토를 느껴요. 상담을 4년 가까이 했는데요. 초반에는 원나잇에 관한 상담은 주로 20대 후반으로부터 받았는데요. 요즘은 그 연령대가 많이 낮아져서 20대 초반이 그런 질문을 많이 해요. 연애를 하지 않고, 성생활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죠. 일반화해서 받아들이는 건 무리가 있겠으나, 요즘 소위 말하는 사랑은 여러모로 가치가 옅어진 느낌입니다. 사랑은 헌신이나 배려가 일부 필요한 활동인데 그런 건 싫고 쾌락만 추구하고 싶은 거겠죠. 연애하며 감정을 소모하는 것도 겁을 냅니다. 상처받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는 인상을 받아요. 발끝만 살짝 담가보려는 것 같아요. 연애는 단지 좋기만 한 행위가 아닙니다. 서로 낯선 두 사람이 만나 합일을 이뤄나가는 과정인데 고통이 뒤따라는 게 당연하죠. 아플 수 있어요. 물론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말 무척이나 싫어합니다. 누군가는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고 망가질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연애나 사랑은 성장동력을 얻고 자아성찰을 하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두 발을 모두 담그고 모험을 떠나보길 바랍니다.

 

섹스가 몸으로 하는 행위잖아요. 그러다 보니 성담론을 주도하는 게 의학이죠. 이런 쪽으로 따로 공부하시나요?

 

생물학적인 섹스가 아니라 감정적인 섹스를 주제로 쓰는지라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정보를 습득하는 정도입니다. 궁금한 게 생기면 저도 찾아보고 의사선생님을 만나면 물어보곤 하죠. 생리학적인 질문이 오면, 전문가를 찾아 가도록 조언합니다. 어설프게 제가 조언을 했다가 잘못되면 안 되잖아요.

 

상담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권위가 필요할 것도 같은데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저 다정한 두 귀를 가진 사람입니다, 스스로를 상담사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다만 이 분야가 워낙 누군가에게 터놓기 힘든 사적인 영역이다 보니 차라리 누군지도 모르는 저에게 털어놓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상담 메일을 보내고 거기에 답변하다 보니 상담을 시작하게 된 것이죠. 지금까지 제가 써 온 글이 경험을 화려하게 뽐낸다거나 훈장질을 하고 있진 않습니다. 저와 제 주변의 실수와 실패를 기록하고 있죠. 담담하고 솔직하게 공감 가능하면서도 여성들이 읽기에 감성적이고 남자들이 읽기에도 충분히 감각적이기에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해주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특별히 더 나은 사람이거나 더 많이 배우고 알아서 이런 일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20대에 몰랐던 걸 지금은 30대이니 아는 거죠. 물론 경험을 했다고 알게 되는 건 아닙니다. 저는 어떤 관계든 치열하게 고민했고, 입은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직면하려고 했답니다. 그래서 이제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도 잘못되거나 틀리지 않게 된 것이죠. 뭐 다시 실수하게 되더라도 반성하고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사실 제가 받는 상담 사연 대부분이 엄청난 장문이에요.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상황이 정리가 되잖아요.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생겨요.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도 그 글 속에 이미 답을 가지고 있어요. 그저 제게 "이게 맞는 거죠?" 하고 물어볼 뿐이죠. 그러면 저는 공감하고 다독여주고 그 결정에 대해 용기를 북돋아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주로 어떤 책을 읽나요? 추천할 만한 책이 있다면요.

 

제게 책 읽기는 휴식 같은 거라 말랑한 책을 주로 봐요. 제가 좋아하는 책은 아니 에르노가 쓴 『단순한 열정』입니다. 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입니다. 그 책은 어떻게 보면 외설적이라 할지도 모르지만 진짜 깊은 사랑을 해본 여성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차 있어요. 그리고 실비아 플러스가 쓴 『벨자』를 추천합니다. 문장이 날이 선 듯 예민하고 우울해서 읽어 나가는 게 괴로울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호물밭의 파수꾼』, 『위대한 개츠비』가 남자들이 많이 읽는 성장소설이라면 여성을 위한 성장소설은 『벨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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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질문 드리겠습니다. 섹스란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이 제일 어려운 건데 말이죠. 섹스는 사랑 받고 사랑하고 싶은 욕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 섹스는 생식차원을 뛰어 넘은 문제가 되었습니다. ‘섹스가 무엇이다’라는 질문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차라리 좋은 섹스가 무엇인지 스스로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섹스는 저의 첫 번째 책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이나 이번에 새로 나온 『나를 만져요』를 통해서 답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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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손민규(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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