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폭력은 왜 일어나나 - 김동춘 교수 『대한민국 잔혹사』
보다 잘 살고자 하는 욕망이 전쟁으로 이어진다
국가 폭력의 대표적인 예가 전쟁이다. 지금도 북한은 시시각각 전쟁 위협을 하며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김동춘 교수는 ‘욕망’이 전쟁 원인이라고 말한다. 故 권정생 씨도 이라크 전쟁을 끝내려면 욕망을 줄여야 한다고 썼다. 더 큰 아파트, 더 좋은 차를 원하는 데에서 전쟁이 발생한다.
3월의 어느 날, 대학로 벙커원(Bunker 1)에서 김동춘 교수의 강연이 열렸다. 이날 강연은 『대한민국 잔혹사』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로, 한겨레출판이 주최하고 예스24가 후원했다. 예스24와 벙커원에서 사전에 강연을 신청한 사람 70여 명이 자리를 빛냈다.
김동춘은 현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로, 국가 폭력에 관해 발언해 온 학자다. 한겨레 21에 이와 관련한 글을 다수 기고했고, 이를 바탕으로 낸 책이 『대한민국 잔혹사』이다. 이 책은 21세기에 일어난 국가폭력을 20세기의 그것과 연관하여 풀어냈다. 예를 들어, 책에서 그는 21세기의 용역을 해방 전후에 활동한 서북청년단과 관련하여 설명한다. 과거의 폭력은 현재의 폭력과 이어진다. 이를 감시하는 게 시민사회의 역할. 김동춘 교수는 글을 쓴 취지를 설명했다.
“용산 참사를 TV로 봤다. 끔찍했다. 이명박 정권이 보수적이라 해도, 생존을 위해 농성하던 사람을 진압해서 일반인 5명과 경찰 1명이 죽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과거의 국가폭력이 해결되지 않고 현재 진행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난 뭘 하고 있나, 자괴감이 생겼다. 국가 폭력은 현재 진행형이고, 이런 사실을 주변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침 한겨레 21에 연재 제안이 왔다.”
폭력은 왜 발생하는가
현재 20대나 30대에게 국가 폭력은 낯설다. 학살, 고문을 교과서에서나 봤지 실제로 겪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학교폭력, 가정폭력, 사회적 폭력이 더 익숙하다. 이런 점에 김동춘 교수도 공감한다. 확실히 국가폭력이 과거보다는 줄었다.
우리는 폭력을 나쁘다고 배웠고, 어떤 지도자도 폭력을 사용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국가폭력은 벌어진다. 왜일까. 폭력에는 경제적 효과가 있다. 한 사람을 패서 열 사람을 복종시키는 게 폭력의 효과다. 저자는 ‘학교폭력’을 예로 들었다. 70, 80년대에 교사가 학생을 패는 일이 흔했다. 학년이 올라가면 담임도 바뀐다. 조용하던 학생들이 1주일 지나면 떠들기 시작한다. 그때 선생님이 말한다. “너 나와.” 그 학생을 무자비하게 때리면, 나머지 학생은 얌전해진다. 선생님 처지에서는 한 번의 폭력으로 1년을 편하게 보낼 수 있다.
위에 예로 든 건 물리적 폭력이다. 김동춘 교수는 지금 시대의 폭력은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문화적 폭력이 주된 형태라고 말한다. 이때 폭력은 소통과 반대되는 의미다. 지도자가 반대 의견이 올라왔을 때 답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관철하는 태도도 폭력이다. 답변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것도 폭력이다. 최근 임명된 장관이 5.16을 대하는 태도에서 저자는 폭력을 본다. 대법원에서 이미 5.16은 쿠데타이나 좋은 역할을 했다고 판결했으나, 여러 장관들이 한결같이 5.16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직자는 헌법, 법에 따라 말해야 한다. 대법원에서 이미 판결한 내용에 따르지 않고 대통령이 생각하는 바에 따라 답변하는 모습은 폭력이 발생하는 메커니즘과 맞닿아 있다. 폭력은 보편적인 법, 사회적 가치가 아니라 상관이 어떻게 여기는가를 염두에 두고 행동할 때 발생한다. 4.3 제주항쟁을 비롯해 한국전쟁 때 벌어진 민간인 학살 등 많은 사건이 그랬다. 21세기 대표적인 예가 용산참사다.
“설마 이명박 전 대통령이, 법을 어겨서라도 진압하라고 이야기는 안 했을 것이다. 김석기 청장이 대통령의 의중을 살피다 벌어진 일이 아닐까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평소에 농성하는 사람을 떼잡이라 불렀고, 서울 경찰청에서는 도심 테러범이라 이야기했다. 보통 생활인이지만, 도심 테러범으로 지목되는 순간,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공감할 수 있는 영역 밖으로 간다. 빨갱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 사람에게는 어떤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 존재로 전락한다. 유럽에서의 유대인이다. 용산이 이런 메커니즘이다. 사회 분위기를 형성했다. 이들을 잘못 진압해도 처벌받지 않지만, 명령을 어겼을 때 처벌받는다면 공무원은 당연히 전자를 선택한다.”
국가와 정권이 혼동되는 순간, 국가폭력은 발생한다. 그렇다면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 때는 괜찮았나? 김동춘 교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때도 국가폭력은 존재했다고 판단한다. 관료 조직에는 군사정권, 일제시대 관성이 아직 남아 있다. 공권력이 국가와 국민에 복종하지 않고 대통령에 복종할 때, 국가폭력은 언제나 발생한다.
국가 폭력의 대표적인 예가 전쟁이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김동춘 교수는 ‘욕망’이 전쟁 원인이라고 말한다. 故 권정생 씨도 이라크 전쟁을 끝내려면 욕망을 줄여야 한다고 썼다. 더 큰 아파트, 더 좋은 차를 원하는 데에서 전쟁이 발생한다.
반공주의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러시아 혁명을 계기로 미국의 부자들이 공산주의를 두려워하고 혐오하게 된다. 러시아 국채에 투자를 한 부자들이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이것이 세계 반공주의의 기원이다. 반공주의도 따지고 보면 욕망과 맞닿아 있다.
현재 폭력과 과거 폭력은 어떻게 다른가
자본주의는 ‘자기 재산을 지키려는 욕망’으로 움직이는 사회다. 용역 깡패도 마찬가지다. 이들 중에서는 대학생도 있다.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용역 깡패로 나선다. 이승만 정권 때 활약한 서북청년단과 똑같다. 이들은 가해자이면서 희생자다. 2011년 대구에서 자살한 청소년의 사례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 아이는 처음에는 가해자였다가 나중에는 피해자가 된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현실, 민주화 이후의 폭력을 설명하는데 더 적합하다.
“일본과 한국에 왕따가 많다. 한국의 정치 사회와 관련해서 설명 가능하다고 본다. 한국은 소집단 전체주의 경향이 강하다. 전체주의란 힘센 사람에게 복종해야 하고 복종하지 않으면 왕따가 되는 것이다. 기업, 학교, 공장에 소기업 전체주의가 만연하다. 의로운 소수가 있으면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이들이 사라졌다. 군사주의 문화에 신자유주의의 약육강식 논리가 결합하면서 욕망의 논리가 도덕의 논리나 정의의 논리를 압도한다.”
옛날에는 두려워서 복종했으니 이제는 자기 이해 관계 때문에 스스로 복종한다. 지금 젊은이는 옛날보다 훨씬 실리적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그렇게 하는 걸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힘센 사람, 돈 많은 사람에게 복종한다. 여기서 사회적 폭력이 탄생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폭력을 막을 수 있을까. 저자는 ‘내부 고발자’에 주목한다. 내부 고발자를 법적으로 보호해준다면, 국가는 좀 덜 폭력적인 형태가 될 수 있다. 김동춘 교수는 젊은이에게 ‘패기’를 주문했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보다는 국가 폭력을 덜 겪었기에 당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저자는 아직 한국 사회가 갈 길이 멀었다며, 다음과 같은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세계2차 대전 때 미국에서 이미 수천 명이 참전을 거부했다. 바로 퀘이커 교도다. 하지만 미국은이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았다. 사회 봉사에 처했다. 이미 70년 전에 미국은 이렇게 했다. 한국은 아직 안 된다. 병역 거부하면 바로 감옥행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런 차이를 주장하는 게 매우 큰 모험, 두려움이다. 모이면 힘이 세진다. 1명이 옳은 말을 한다고 하자. 이 사람을 팰 수 있다. 10명이면 함부로 못 건드린다. 100명이나 1,000명이 되면? 10,000명으로 늘어나면 법이 바뀐다. 당당하게 자기 주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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