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0년 3월 8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허트 로커>로 1929년 아카데미가 시상을 시작한 이래 여성으로서 처음 감독상을 탄 아름다운 왕, 캐서린 비글로. 그것보다 더 아름답고 감동적인 순간은, 그의 수상 소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전 세계에서 목숨을 걸고 군 복무를 하고 있는 파병 군인에게 이 상을 바친다. 그들이 안전하게 돌아오길 바란다.” 우리가 여전히 전쟁의 세기에 살고 있음을 각인시킨 그의 한마디. 전쟁, 남의 일 아니다. 아카데미가 왜 <아바타>가 아닌 <허트 로커>를 택했는지 생각하게 만든 작고 사소하지만 큰 울림.
#2. 기억 회로를 돌려 보자. 2003년 3월 20일. 무슨 날이냐고? ‘WPE’(Worst President Ever, 역대 최악의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폭죽 당기듯 펑 퍼트린 최악의 사건. 오바마에 와서도 아직 현재 진행형이고, 세계는 아직 피를 흘리고 있다. 그날, CNN을 통해 전 세계로 퍼진 화염과 폭발 장면을 나는 기억한다. 불꽃놀이를 방영하듯, 미디어는 전쟁의 현장을 안방으로 전했다. 전쟁, 아니 이라크 침공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펑하고 시작됐다.
대량 살상 무기? 그 말, 뻥인 것 개도 안다. 부시는 ‘승리’를 선언했지만, 정신줄을 놓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것을 ‘승리’라 여기지 않았다.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당신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 증거가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개시 즈음, 국제 유가는 배럴당 30달러였다. 침공 이후 한때 우리는 100달러가 넘는 유가에 시달렸다. 현재는 80달러대다. 이라크 침공 5년이 된 시점에서 10만 명이 사망했고 3조 달러(조셉 스티글리츠 교수가 추정한 미국의 이라크?아프간 전쟁 비용)를 날렸다. 뭣보다 전쟁으로 인한 생채기, 트라우마 때문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지불되고 있다.
더구나, 대한민국도 엄연한 참전국. 혹시 잊진 않았겠지? 아버지 칠순 잔치에 꼭 돌아오겠다던 김선일 씨는 “구해 달라……”는 울부짖음이 무색하게, 주검으로 고국의 땅을 밟았다. 윤장호 하사 역시, 앞선 비극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우리의 잘못에 꽃다운 젊음을 접어야 했다. 우리가 이 전쟁 아니 테러이자 침공과 무관하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당신의 양심에 현미경을 들이대야겠다. 아마 그 양심엔 털이 숭숭 삐져나와 있을 테니. 우리의 의사가 그렇지 않았대도 우리의 나라는 참전국이 됐고, 나와 당신은 원하지도 않았지만, 누가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도 않았건만, 전범국의 국민이 됐다. 젠장.
미국의 이라크 침공, 그 7년
그렇게 우리에게도 전범국의 국민이라는 딱지를 붙여 준 그 악몽이 딱 7년이 된 지난 3월 20일, 서울 동교동 아트앤스터디 ‘인문?숲’(
www.artnstudy.com)에서
『리영희 프리즘』(김동춘 외 지음 | 사계절 펴냄) 출간 기념으로 김동춘 교수(성공회대 사회과학부)의 강연이 있었다. 이 책은 리영희 선생님의 팔순(2009년 12월)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됐고, 10명의 필진이 각각의 테마를 갖고 선생님을 다시 불러냈다.
잠깐 책의 서문을 보자. 홍세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www.ilemonde.com) 편집인은 이렇게 말했다.
“고병권이 강조했듯(「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리영희에게 인간의 반대는 동물도, 식물도, 무생물도 아닌 노예다. 따라서 인간이 된다는 것은 노예로부터 벗어나 자유인이 된다는 것이다. 리영희에게 인간은 “자유를 원초적 본성으로 갖는 생명체”인데, 그런 ‘리영희의 인간’과 ‘인간 리영희’에 가깝다는 점에서 리영희보다 앞선 이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책의 초점은 ‘인간 리영희’를 말하는 데 있지 않다. 인간은 자기 시대를 선택하지 못하고 각 인간의 삶은 시대의 특수성을 갖는다. 하지만 ‘리영희의 인간’은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갖는다, 이 책에는 ‘인간 리영희’라는 프리즘을 통해 오늘 ‘리영희의 인간’에 관해 고민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p.8)
그러니까, 김 교수가 집필한 「리영희와 전쟁 : 전쟁의 세기」는,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20세기와 다를 바 없이 전쟁의 세기를 잇고 있는 현실을 ‘리영희’라는 프리즘으로 어떻게 볼 것인지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전쟁은, 그저 포탄이 오가면서 사람들이 죽는 것만이 아니다.
“실제로 전쟁은 물질적인 모든 것을 파괴하고 새롭게 건설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지만, 동시에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관계들도 파괴하고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래서 전쟁은 일종의 혁명이지만, 가장 파괴적이고 비극적인 방식으로 정치, 경제, 사회, 국제 관계의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린다.”(p.59)
통역 장교로 한국전쟁을 겪고, 기자로 베트남전을 바라본 리영희 선생님이었다. 전쟁이 리영희의 사상과 생각에 어떻게 삼투압하고 어떤 사상적 태도를 형성했을까. 그것은 우리가 우리 시대의 전쟁을 사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단초가 된다. 더구나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60년. 전쟁을 겪은 세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지만, 진짜 우리에게 전쟁은 끝이 났을까. ‘국가보안법’이라는, 전시 체제에나 있을 법한 유령이 여전히 우리를 옥죄고, 전쟁과 기본 메커니즘이 같은 ‘시장’이 전쟁 같은 삶을 강요하는 지금-여기. 준전시 체제나 다름없는 우리네 일상.
전쟁으로 현실을 자각하다
김 교수는 14년 전, <역사비평> 1996년 여름호에서 리영희 선생님과 한 대담(‘냉전이데올로기의 우상에 맞선 이성의 필봉’)의 기억을 끄집어내며 이야기를 풀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리영희 선생님이 사상적으로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1946년 초 북한에서 토지 개혁이 시작됐는데, 지주나 기독교인은 일찍이 남쪽으로 내려온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사람들은 반공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았는데, 리영희 샘은 독특한 경우다. 이런 사례가 거의 없다. 사적인 얘기를 하자면 (리영희 선생님은) 향우회 한번 안 가고, 고향 동료들을 만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조선일보에 간 것은 북한 출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내 추측이고, 물어보진 마라.(웃음) 그때만 해도 선생님이 사상적으로 반공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진 않았다.”
김 교수가 말하는 리영희 선생님은, 남자가 가사를 돌보는 것에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않는, 기본적으로 리버럴한 면모를 지닌 그런 분이다. 특히, 사상적으로 사회주의에 공명했다기보다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에 일찌감치 자각한 분이다. 그 계기는 바로 전쟁이었고. 이십 대의 나이에 썩어 빠진 남쪽 군대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느낀 환멸감이 일생에 걸쳐 가장 중요한 경험이 됐을 거라는 것.
“그런 경험과 본인이 가진 지식인으로서의 양심과 성실함이 결부돼 60년대 합동통신 기자를 하면서 필명을 날리기 시작했다. 여러 특종도 하고 그러면서 조선일보에 발탁되지 않았나 싶고. 대담이나 만나 뵐 때, 정체성을 기자에 두느냐, 학자에 두느냐, 물으면 대답은 안 하신다.(웃음) 그런데 선생님은 아카데믹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파고드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서 기자다. 펄떡펄떡 뛰는 이슈를 끌어안고 거짓을 뒤집거나,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고 정부가 덮으려는 걸 들춰내서 진실을 고발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전형적인 기자다. 본능적인 기자!”
무엇보다 리영희 선생님이 당시 사회에 던진 충격은 베트남전에 대한 시각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베트남전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인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것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당연한 것이었다. 한국전쟁 때 미국이 우릴 지켜 줬으니 돕는 것은 당연지사요, 베트남이 공산화될 위험에 처했으니 자유세계를 위해서라도 파병은 당연하다는 것이 국민들 거의 전부의 생각이었다. 99퍼센트의 한국인이 의심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면, 1퍼센트도 안 되는 지식인들만이 ‘베트남전은 더러운 전쟁이고 미국 이권을 위한 전쟁’임을 자각했다고나 할까.
“리영희가 체험한 한국전쟁, 그리고 기자로서 취재하고 분석했던 1960년대의 베트남전쟁도 가장 정치적인 전쟁이었다.”(p.68)
반공주의적인 시각이 한국을 지배할 때, 베트남전의 더러움과 비열함을 정리한 것이 리영희 선생님의 논문이었던 것. 그러니까, 리영희 선생님에게 당시 베트남전은 한국 사회나 한국 정치를 볼 수 있는, 한미 관계를 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당시 대부분 한국인들은 미국과 우리는 한몸이고 미국에 간택된 나라라는, 제1세계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한마디로 착각도 가지가지.
“리영희 선생님의 글에는 국가 정체성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그 반성은 당시 모든 것에 대한 전면적인 재고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당연시해 왔고 철썩 같이 믿었던 미국, 반공주의, 박 정권 등 모든 것에 대해 전면적으로 새롭게 생각하게 해 줬다. 물론 북한에 대해서는 말도 못 꺼냈지만, 나머지 문제에 대해선 ‘이게 뭐야?’라고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 리영희 선생님의 역할이었다.”
김 교수가 전쟁을 꺼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전쟁은 예외적인 현상이라 생각하는데, 전쟁보다 국가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것은 없다. ‘전쟁은 모든 것의 왕이고 노예와 자유로운 사람을 만들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다. 모든 것 중에 전쟁이 가장 위에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뒤집는데 전쟁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쟁에 대한 이해는 그 사회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정점이다.”
책에 나온 전쟁에 대한 설명도 살펴보자.
“전쟁은 언제나 단순한 군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권력 현상이며, 정치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평화 역시 추상적이고 도덕적인 이상이 아니라, 전쟁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구체적인 정치적 지배질서의 변혁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는 매우 구체적 목표다.”(p.63)
전쟁과 평화, 일생의 화두
김 교수가 미국에서 경험한, 한국을 이해하는 미국의 시각. 미국 학교의 세계사 교과서에 한국편은 딱 두 페이지다. ‘한국전쟁’과 ‘경제 발전’.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은 한국전쟁과 경제 발전으로 한국을 이해한다.
사실이 그렇다. 20세기의 모든 것은 전쟁으로부터 나온다. 세계사를 봐도 그렇다. 한국전쟁은 남북한의 이데올로기 전쟁이지만, 식민지 체제의 연장을 위한 전쟁이기도 했다.
“한국전쟁을 통해 일제 식민 세력과 국가보안법이 부활했고, 친일 경찰?친일 군대가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식민지 체제를 냉전 체제로 모습을 바꿔 생명을 연장하도록 했으며, 한국전쟁을 통해 일본이 물러가고 미국이 그 자리를 메웠다.” 생각해 보라. 오늘날까지 이 땅을 배회하는 유령을 봐라. 빨갱이니, 좌파니 하는 말장난들. 진짜 개념도 모른 채, 아니 알면서 그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이권을 취하기 위한 레토릭으로만 활용되는.
“오늘날의 반공 이데올로기나 빨갱이 사냥, 이 모든 것이 한국전쟁으로부터 시작된다. 리영희 선생님의 일생을 지배한 것도 한국전쟁이다. 베트남전에 관심을 가진 것도 한국전을 겪어서 자꾸 비교하게 되고. 물론 베트남 분단은 내전형 분단이고 한국은 미국과 소련이 개입해 성격이 다르다고 알고 있었지만, 지식인이라면 어떻게 한국과 베트남 비교를 안 하겠나. 당연히 베트남과 한국을 같이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 교수가 보기에, 리영희 선생님은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베트남전을 취재하면서 평화의 문제를 일생의 화두로 잡고 있다.
“내전으로서의 한국전쟁, 식민지의 야만적 폭력에서 벗어난 지 5년도 안 된 시점에 발생한 한국전쟁은 양심을 가진 사람이 정면으로 대결하기에는 너무도 힘겨운 현실이었으며, 리영희가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였듯이 반인간성, 비인간성, 비생명성 그 자체였다. 전쟁에서 잔인무도한 짓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군대에 대한 증오감 등을 느끼면서 그는 평화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강렬해졌다. 전쟁이라는 최고의 현실은 그것을 뼈와 살로 겪은 소수의 맑은 사람들에게는 필생의 숙제를 던져 주었다.”(p.63) 아울러 반공주의 하에서 천민자본주의를 비판하다 보니 그걸 주입한 미국 자본주의를 비판하게 되고, 천민자본주의와 반공을 지탱하고 있는 남한의 지식인들에 대해 비판을 하게 되는 맥락.
그렇다고 리영희 선생님이 내놓은 글이, 대단히 어려운 기밀 정보를 빼낸 것도 아니며, 특별해야 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선생님이 특별한 게 아니고 한국 사회가 특별한 거다. 정상적 사회라면, 동시대에 이런 인물이, 열 사람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워낙 없으니까, 선생님이 부각된 거다. 또 싸우려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용기도 있으니까. 이분은 운동가도 아니다. 전형적인 지식인 스타일이지, 조직과는 거리가 먼 분이다. 그런 분이라서 자기 스타일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우리 사회가 그런 엄혹한 시절을 겪었으면 열 사람 이상은 있는 게 정상인데, 워낙 희소하니까, 부각된 것도 있다.”
김 교수는 리영희 선생님이 겪은 전쟁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역정 나의 청년시대』(리영희 지음 | 한길사 펴냄)를 꼽았다.
“전쟁이 얼마나 사람을 비인간화시키는지, 이데올로기를 떠나 생생한 느낌을 전한다. 전쟁기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피해를 당하고, 밑바닥 병사의 체험까지 담아 낸다. 리영희 선생님이 겪은 군대와 나와 내 아들이 겪은 군대가 별 차이가 없다. 한국 군대에서 병사는 소모품이다. 비인간화되는 막장이다. 군대에서 죽으면 개 값도 못 받았다. 군 자살자, 사고자 등 80년대까지 그랬다. 군대에서 1년 동안 죽는 병사 숫자가 수백 명이었고 90년대 들어 줄었지만, 그렇게 군대서 죽은 사람들을 사인도 밝히지 않고, 부모를 불러 처리하는 게 한국이다.”
“인간 세상에서 전시만큼 불평등한 세상, 권력과 민중의 격차가 극대화되는 시기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말은 전쟁으로 사람이 죽고 다치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만이 아니라, 전쟁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타락시키고 부패를 극대화하고 사회의 안정된 질서와 규범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기 때문이다.”(p.66)
우리가 제대로 사회를 볼 수 있는 방법
김 교수는 군대라는 막장(!)을 예로 들며, 어떻게 우리 사회를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사회의 어떤 핵심적인 진실을 보려고 할 때, 물론 그 사회의 진실은 두루두루 퍼져 있지만, 밑에선 그 사회의 모든 것이 보인다. 즉 밑바닥 사회의 눈으로 보면, 한국 사회가 보인다. 지금은 노동자들, 그중에서도 이주 노동자들, 그중에서도 여성 이주 노동자들이 되겠지. 마찬가지로 이등병의 눈으로 보면 한국이 보인다.”
세상 어디에든 늘 밑바닥이 있다. 그들은 가장 먼저 해를 입고, 혹은 죽는다. 최근 서해상에서 침몰한 초계함 ‘천안함’을 보라. 장교들만 모두 생존했다. 왜냐고? 답은 여기에 있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다가오지만 질병은 그렇지 않듯이, 전쟁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닥치지만 직접 전쟁에서 죽을 확률은 사람마다 다르다. 미국은 20세기의 거의 모든 전쟁에 관여했지만, 한 세기 동안의 모든 크고 작은 전쟁에서 죽은 미군 병사의 총수는 3년 동안의 한국전쟁 당시 죽은 한국인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쟁은 장교나 병사 모두에게 죽음의 가능성을 극도로 높이지만, 철통 같은 경비를 받는 CP 깊숙이 근무하는 대대장급 이상의 지휘관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은 매일 몇 시간씩 순찰해야 하는 말단 병사들이 죽을 확률의 1퍼센트에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이 돈 많은 사람과 돈 없는 사람 간의 계급적 차별의 원칙이 적나라하게 작동되는 현장이듯이, ‘전장’도 이러한 계급 원칙이 매우 적나라하게 관철되는 현장이다. 죽을 확률이 0.1퍼센트에도 미치지 않는 군인과 죽을 확률이 10퍼센트가 넘는 사람을 같은 군인으로 취급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으며, 이들 모두를 전쟁의 피해자라 말하는 것도 모순이다.(p.65)
리영희 선생님에게도 군대는 바로 한국 사회 그 자체였을 거란다.
“선생님은 통역 장교였지만, 군대에서 봤던 현실이 전쟁이고, 그 속에서 한국 사회의 속살을 봤을 거다. 군인들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도 봤고. 그 상황에서 전쟁과 사회 체제의 문제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셨을 거다. 민주주의, 여성, 부패 등의 문제가 군대에 농축돼 있고, 이 문제를 통해 사회를 볼 수 있다. 나 역시 한국전쟁을 통해서 지금의 한국을 보려 하고 있다.”
그는 미군 통역을 하면서 미군의 참전은 결국 그들의 정치경제적 이해를 위해서라는 것과, 미군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이승만 정부와 한국의 적나라한 처지를 이해하였다. 결국 그가 본 한국전쟁은 그의 국가관, 전쟁관, 미국관, 한국 정치관, 사회관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경험보다 더 좋은 교사는 없는 법이다.(p.69)
단순히 생각하듯, 한국전쟁은 군사적인 대결로서만 존재하는 전쟁이 아니다. 주체만 바뀐 식민 지배의 연장이었고, 오늘날 한국 사회의 지배 엘리트와 지배 이데올로기를 잉태했고, 지배 세력은 전쟁을 통해 체제 정당화를 꾀했다. 그 와중에 희생자들은 늘 존재하는 법. 김 교수는 ‘어버이 단체’ 등을 표방하며 시위에 나서는 노인들을 거론했다. 그것이 동원이 아닌 소신에 의한 것이라는 전제하에, 두 가지 가능성을 들었다.
“우선 이십 대에 전쟁을 경험했을 가능성이다. 이분들은 전쟁기의 좌우 폭력에 굉장히 익숙하고 법과 상관없이 두들겨 패는 것을 경험했다. 두 번째는 노인의 소외 문제다.(시위 참가자 대부분은) 단순한 노인이 아니고, 많은 분들이 참전 용사들이다. 그들이 제대로 대접받고 있나. 철저히 대한민국에서 소외당하고, 제대로 된 보상도 못 받고 비참하게 사는 참전 용사들이 많다. 그러니까, 시위는 젊은 세대에 대한 일종의 인정 투쟁의 성격도 있다고 본다. 참전 군인도 희생자다. 바로 그런 시각에서 전쟁을 볼 필요가 있다. 전쟁을 통해 돈을 벌고,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치고 보상도 못 받고 불행해지는 사람도 있다.”
김 교수는 그 같은 비인간화의 고통이 한국전쟁 60년이 될 때까지 의제로 떠오르지 않아 아쉽다고 토로했다. 기득권은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이를 정당화했고, 당한 사람들은 악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숨죽이면서 살아야 하는 전도된 현실. 그것이 바로 한국전쟁의 진짜 이야기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전쟁을 통해 기득권이 된 세력들은 반공주의를 우려먹으면서 참전 용사들에게 기껏 하는 것이, ‘당신 애국자다’라는 정신적 위로밖에 없다. 조선일보 같은 데를 보면, 그런 참전 용사 이야기가 실린 적이 거의 없다. 자신들이 도덕적이라면 그런 점을 부각시켜야 함에도, 잘나가는 사람들 얘기만 싣고 나라를 위해 희생당한 사람은 싣지도 않는다.”
전쟁과 시장은 같은 메커니즘을 지녔다
전쟁을 거칠게 단순화시키자면, 그건 이권 투쟁이다. 어떤 대의명분을 내세워도, 그 안에 숨은 진짜 의도는(기득권의) 자리 유지 혹은 자기 증식이다. 전쟁이 곧 시장의 논리와 일맥상통하는 이유다. 전쟁과 시장, 전혀 무관한 듯해도 동종 교배가 될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적나라한 시장의 논리가 사람을 위기에 빠트리듯, 적나라한 전쟁의 논리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전쟁이건, 시장에건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부터 희생당한다. 당장 떠올려 보라. 경제가 어렵다고만 하면, 누구부터 잘려 나가나. 정권이 바뀌는 것도 상관없다. 기득권들은 어떻게든 위에 붙어 있고, 밑에 있는 사람들은 매한가지로 바닥만 긁는다.
김 교수가 꺼낸 전쟁과 시장의 공통점은, ‘학살’이다. 한국전쟁을 통해 우리 사회의 속살을 들춰 볼 수 있는 부분이 학살이었는데, 지금도 그것은 유효하다는 것. 생명권 침해를 대수롭지 않게 하는 사회.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사회에서 사람을 함부로 해고하는 사회가 됐다. 함부로 죽이고 해고하는 건 똑같다. 영어에서도 똑같은 단어를 쓴다. ‘해고됐어’와 ‘총 맞았어’ 모두 ‘파이어드(fired)’. 똑같잖나. 우리말도 그렇다. ‘모가지 잘렸다’, 목이 잘리면 금방 죽지만 회사에서 잘리면 천천히 죽는 차이만 있다.”
확실히 시장과 전쟁은 형제지간이다. 전시에 민간인 희생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언제나 ‘군사적 필요’의 급박성이다. (…) 군사적 필요의 급박성은 시장이라는 전쟁터에서 생사의 기로에 놓인 기업의 논리와 동일하다.(pp.74~75)
김 교수가 바라보는 한국 사회는 그래서, 전쟁 체제요, 학살 체제다. 준전시 상태인 셈이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학살이다. 옛날에는 가족을 죽였다면 지금은 본인만 죽인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까. 기본 메커니즘은 똑같다. 생명권을 박탈할 수 있는 권한을 군경이 갖고 있는 사회는 민주 국가가 아니다. 그런 사회에서 인권을 얘기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의 인권 문제는 평화 문제와 함께 간다. 사회적으로 소수자나 낙인찍힌 사람, 빨갱이로 몰린 사람을 배제하고 재기 불능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은 전쟁 때나 지금이나 같다. 준전시 하의 남북한에선 인간이 설 자리가 없다. 준전시 상태를 해체하지 않고선 우리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시킨 대로 복종만 하면 괜찮지만, 인간이 그럴 수만 있나.”
송두율 교수를 둘러싼 우리의 모습을 다룬 다큐멘터리
<경계도시 2>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전쟁으로부터, 전시 체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자유 시장 경제? 우리는 아직 자유의 진짜 뜻을 모른다.
“그런데 냉전도 사실상의 전쟁이라 볼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냉전 체제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 아래 다수의 정치적 반대자를 ‘빨갱이’로 덧칠하여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시킬 수 있는 체제다. 냉전 체제는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조차 국가의 적으로 모는 자본 독재 체제다.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작동하더라도, 매카시즘이라는 유령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반공과 국가 안보의 폭력과 고문, 국정원?기무사?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의 권력화, 이들 정보기관이 지목하는 내부의 적에 대한 일상적인 사찰과 감시가 지속되는 체제다.”(p.73)
‘리영희’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전쟁과 시장이라는 이름만 다를 뿐, 준전시 태에 있는 대한민국의 속살. 한국 전쟁 60년, 우리가 제대로 봐야 하는 것. 지금 우리의 발가벗은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
“우리나라에서 리영희 선생님을 아는 사람은 전 인구의 20~30퍼센트? 아니 2~3퍼센트?, 그런 안타까움이 있다. 선생님은 사상적으로 급진적인 자유주의라기보다 상식인이자 교양인이다. 상식인?교양인의 기준으로 하는데도 우리 사회는 그런 사람도 허용하지 않는 사회다. 인권?평화도 상식과 교양의 수준에서 접근할 수 있다. 전쟁이 추상적이지 않듯 평화는 추상적이지 않다. 전쟁의 이름으로 희생당한 분들의 목소리가 평화의 출발점이다. 평화 체제 수립 없이 인권은 없다.”
전쟁의 시기가 아니라고 ‘리영희’라는 프리즘이 소용없다고? 아니. 맥락이 다르고 조건이 다르다 보니 이슈가 다르게 보이는 측면이 있지만, 결국 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던가. 리영희 선생님이 지금 청장년 시절을 관통하고 있다면, 환경 문제를 다뤘을 수도 있다. 삽질과 포크레인을 내세워 우리 삶의 터전에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지금 정권을 보자면. 그러니까, 그 정신은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그것이 우리가 여전히 ‘리영희’를 읽어야 하는 이유. 총칼 없는 전쟁터인 이 시장 만능주의 사회에서 ‘인간’으로 남아 있기 위해 필요한 것. 리영희 선생님이 국가라는 우상을 파괴했듯, 나와 당신 안의 우상(시장)을 파괴해야 하는 이유.
리영희가 언제나 강조하였듯이 군사 외교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하면 힘없는 백성들의 ‘생명’은 외세의 무력에 내맡겨지게 된다. 그리고 시장과 자본주의의 미덕을 과도하게 찬양하거나 도그마로 받아들이면 시장의 실패자, 사회 내지 약자는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올 수 없다.(pp.7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