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100분 토론보다는 무릎팍 도사 나가고 싶다 -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의 최초 철학 강연 일, 놀이, 사랑, 연대는 행복하게 살기 위한 4가지
비록 논리 정연하게 정리하기 어려운 질문이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유시민 씨는 이렇게 정리했다. 일하고, 놀고, 사랑하고, 연대하자. 일, 놀이, 사랑, 연대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4가지다. 이 4가지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이 다룬 4가지 소재이기도 하다.
3월 21일 목요일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유시민 저자 강연회가 열렸다. 이날 강연회는 예스24와 한겨레신문사, 아포리아 출판사가 공동 주관했다. 유시민 씨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출간한 뒤 매체와 인터뷰를 몇 차례 가졌으나 출간 기념 강연은 최초. 그에 대한 기대감 덕분인지, 유시민 씨의 강연을 듣기 위해 예스24 홈페이지에서 미리 신청한 독자는 무려 300여 명. 공간적 제약 탓에 강연회에 초대받은 사람은 100명, 이들은 차분하게 유시민 씨가 연단에 서기를 기다렸다.
경제도 정치도 아닌, 유시민의 철학 강의
7시 30분, 예정된 강연 시각이 되자 그가 등장했다. 독자들은 박수로 유시민 씨를 환영했다. 그는 강연에 익숙한 저자다. 정치인으로 활동하기 이전에 이미 대학 강단에 섰다. 그때는 주로 연구했던 분야인 경제학적 지식을 학생에게 전달하는 강의였다. 그러던 중 2002년, 유시민 씨는 개혁국민정당 창당 과정에서 정치계에 입문한다. 정치인이 된 이후로 그가 했던 강연에서는 정치 관련 이슈를 다뤘다. 이날 강연은 앞선 두 종류와 성격이 다소 달랐다. 경제도 정치도 아닌, 철학이 강연의 주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처음 해보는 왕초보 철학 강의”였다.
최근에 출간한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제목에서부터 인문학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책이다. 책에서도 밝혔듯, 유시민 씨는 정치보다는 책 읽고 공부하고 글 쓰는 행위를 좋아한다. 공부 중에서도 인문학에 관심이 많다. 경제가 아니라 철학이나 영문학을 전공으로 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도 한다고 한다. 철학이나 영문학은 유시민 씨의 아버지가 그에게 권했던 전공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날 강연에서는 정치적인 이야기보다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실존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답은 없다
저자는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자.”라는 말과 함께 강연을 시작했다. 연사와 청중은 사진 2장을 함께 감상했다. 먼저 보인 사진은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쫓는 장면이다. 이어서 1994년 퓰리처상을 받은 케빈 카터의 ‘독수리와 소녀’라는 작품이 등장했다. 논리적으로 분석한다면, 두 사진은 비슷한 사진이다. 강한 존재가 약한 존재를 먹는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앞의 사진보다는 뒤의 사진에서 불쾌감과 분노를 느낀다.
이어서 유시민 씨는 구제역 때문에 도살 처분한 가축의 예를 들었다. 구제역을 예방하기 위해 도살 처분한 돼지에게는 연민과 슬픔을 느낀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한다면 어차피 인간이 먹으려고 키운 돼지다. 구제역이 아니라도 이 돼지들은 도살장에 끌려가야 하는 운명. 그렇지만 도살장에서 죽는 돼지에 연민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렇듯 논리적으로 깔끔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게 세상에는 많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이 질문에 대한 답도 깔끔하게 나오기 어렵다.
일, 놀이, 사랑, 연대의 중요성
비록 논리 정연하게 정리하기 어려운 질문이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유시민 씨는 이렇게 정리했다. 일하고, 놀고, 사랑하고, 연대하자. 일, 놀이, 사랑, 연대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4가지다. 이 4가지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이 다룬 4가지 소재이기도 하다. 일에 관해 책에서 묘사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인생의 성공은 멀리 있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것을 남들만큼 잘하고, 그 일을 해서 밥을 먹고 살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한 인생이다. 돈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해서,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또는 사회의 평판 때문에 즐겁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다면 그 인생은 처음부터 절반 실패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꼭 즐겁지 않더라도 최소한 괴롭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166쪽)
다음은 놀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이야기를 꺼냈다. 유시민 씨는 “두 분 다 훌륭한 분인데, 노는 방법을 몰랐다. 현재 대통령도 잘 노는 것 같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저자는 “놀이로 스스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남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말을 덧붙였다. 훌륭한 대통령의 요건으로 ‘재밌게 노는 방법을 알 것’을 꼽은 셈이다.
사랑을 논할 때는 두 가지를 말했다. 연인을 향한 사랑, 가족을 향한 사랑이 그것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부 사이에서는 아내이자 연인으로, 남편이자 연인으로 보이기 위해 서로 힘써야 한다. 가족도 중요하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고독한 존재이나, 고독을 가장 넓게 공유할 수 있는 게 가족이다. 가족에게는 공통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 씨는 법적인 가족이 아니라 정서적인 가족을 강조한다. 그가 보기에 기러기 아빠는 가족이 아니다. 가족은 함께 뒹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
연대는 ‘편한 마음’과 관련 있다. 저자가 연대의 사례로 꼽은 것은 헌혈과 태안반도 자원봉사 그리고 촛불집회였다. 이제 한국도 전혈은 자급자족하는 사회가 되었다. 태안반도에 기름이 유출되었을 때, 무려 130만 명이 자원봉사에 나섰다. 이런 면에서 한국 사회는 평소에 연대하지 않는 듯해도 할 때는 무섭게 한다. 왜 연대할까.
“연대하지 않으면 불편하다.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이때 나는 잠깐 딴 데 봐야지, 하려는 순간 불편함이 생긴다. 연대를 어디까지 해야 하나,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없다. 연대를 하지 않는다고 나쁘다고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 연대는 내가 당당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00분 토론보다는 무릎팍 도사나 힐링 캠프 나가고 싶어
저자가 준비한 강연이 끝나고 독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최근 정계 은퇴를 발표한 점에 대한 서운함이 느껴졌다. “정계 은퇴를 번복할 생각은 없는가?”, “앞으로 100분 토론에서 볼 수 없는가?” 등의 질문이 그랬다. 이에 대해 유시민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정계 은퇴를 번복할 생각은 없다. 다른 일을 하면서 즐거울 수 있다면 다른 일을 하는 게 옳다. 정치가 아닌 다른 일로 즐거울 수 있다. 내게는 책 읽고, 공부하고 글 쓰는 일이 그것이다. 직업으로써 정치를 관뒀지만 시민으로서는 여전히 정치 활동을 한다. 지금은 진보정의당 평당원이다. 평당원이 정당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정치 토론에 나갈 수는 없지 않나. 국민연금 개정과 같은 사안을 토론하는 자리라면 가능하겠다.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에 했던 일과 관련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자리보다는 무릎팍도사나 힐링캠프에 나가고 싶다. 나는 논문 표절하지도 않았고, 군수업체나 제약회사의 사외이사로 일한 적도 없다. 촬영분이 취소될 일도 없을 텐데... (웃음)”
정치 외에도 다양한 방면에 걸친 질문이 나왔다. 독서론, 청춘, 죽음 등이다. 저자는 질문 하나하나에 성실하게 답했고 질의응답 시간은 40분 가까이 이어졌다. 질의응답이 끝난 뒤에는 사인회가 열렸다. 고정 독자층이 많기로 유명한 유시민 씨인지라, 사인을 받기 위해 줄 선 행렬은 사인회 장소를 가득 채웠다. 사인과 함께 흔쾌히 독자와 기념 사진도 촬영한 그에게서는 여유와 행복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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