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사람도 3D 입체 영화를 보고 싶어했다
구례 화엄사 사사자 석탑은 통일신라판 3D 그래픽 옛날 사람은 불탑을 만들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주수완 박사는 독자들이 그리스 신화와 인도의 불교가 만났다는 사실만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기를 부탁한다. 헤라클레스가 왜 금강역사로 변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스스로 해석해 보기를 권했다. 이러한 맥락으로 그가 마지막에 소개한 탑은 구례 화엄사 사사자 석탑이다. 주수완 씨가 말하기로는, 이 탑은 통일신라판 3D 그래픽이다.
자유무역, 인터넷, 운송기술의 발달 등으로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종족이나 국가 간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갖는 방향으로 문명이 흐르는 듯하다. 그럼에도 각 민족국가는 수천 년 동안 자신들의 전통을 쌓았다. 이러한 전통이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한 나라의 정체성을 볼 수 있을까. 각 국가의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를 확인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국가는 화폐를 발행하고, 이 화폐에는 공동체가 존경하는 인물이나 그 사회가 자랑하고 싶어 하는 문화재, 자연유산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한국은 어떨까. 유교와 관련한 인물이 지폐나 동전을 차지하고 있다. 신사임당은 유교 사회에서 이상적인 여성상이었고 이황이나 이이는 세계적인 유학자다. 이순신은 충효, 양면에서 모범을 보인 영웅. 한국 화폐에 이렇듯 유교와 관련한 인물이 들어간 것은 유교적 가치가 현대에도 유효하다는 점을 증명한다. 유교는 조선의 건국 이념이었고 조선 후기부터는 성리학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어땠을까. 불교가 있었다. 실제로 10원권 동전에는 불국사 다보탑이 그려져 있다.
스투파, 도파, 탑파, 탑
한눈으로 봐도 불국사 다보탑은 아름답다. 석가탑과 함께 놓고 보면 다보탑의 조형미는 더 뛰어나 보인다. 그래서인지 다보탑을 뛰어난 예술작품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저 아름답다, 정도로만 그친다면 다보탑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에 산재하는 탑 대부분에도 적용된다. 탑은 붓다 사후, 불상과 더불어 붓다를 대신할 중요한 상징이다. 얼마나 많은 장인이 탑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고심했을까. 『솔도파의 작은 거인들』은 탑 속에 담긴 상징을 설명하는 책이다.
이 책은 주수완 박사의 글과 유남해 작가가 찍은 사진을 담았다. 주수완 박사는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 동국대학교에서 석사,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불교조각사 및 불교도상학을 연구하고 있다. 유남해 작가는 1983년부터 30여 년 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근무하며 한국 문화재, 한국의 자연을 촬영해왔다. 『솔도파의 작은 거인들』 출간을 기념하여 다할미디어가 주최하고 예스24가 후원한 주수완 박사의 강연회가 대학로 The Four Gallery에서 열렸다.
주 박사는 책에 쓰인 ‘솔도파’라는 명칭부터 설명했다. 인도의 무덤인 ‘스투파’가 중국으로 건너오며 ‘솔도파’라는 말로 변한다. 이 말이 줄어서 ‘도파’가 되고, 한국으로 건너오면서는 ‘탑파’로 바뀐다. ‘탑파’에서 또 준 게 바로 ‘탑'이다. 그러므로 ‘솔도파의 작은 거인들’이라는 제목을 풀면 ‘탑에 새겨진 작은 거인들’ 정도로 볼 수 있다.
책은 총 20곳의 대한민국 탑을 다룬다. 10개가 불탑, 10개가 승탑이다. 이날 강연에서는 각각의 탑을 이야기하기보다는 탑의 의미, 탑의 전래 과정 등 서론에 해당하는 내용을 설명했다. 불탑이든 승탑이든, 탑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죽은 뒤 세우는 건축물이다.
“붓다는 후세 사람이 자신의 무덤을 세우는 것에 반대했을 것이다. 인도 세계관으로 보면, 태어나지 않는 게 해탈이다. 무덤을 세우고, 그 무덤에 뭔가를 넣는 행위는 윤회를 바라는 행위로 비칠 수도 있다. 게다가, 탑과 같이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는 작업은 당시 사람에게 민폐다. 붓다가 이러한 점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탑돌이는 왜 하나
실제로 붓다는 오로지 자신이 말(다르마, 법)에 의존하라고 했지, 붓다 자신을 절대화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교주의 바람과 교도의 희망은 종종 다를 때도 있다. 붓다 사후, 그를 떠올리고 싶어했던 교도들은 탑을 세웠고, 그 탑은 인도를 넘어 중국으로, 한국으로 퍼졌다. 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신도들은 탑을 중심으로 세 바퀴를 돈다. 이른바 탑돌이로, 중요한 불교 의례다. 붓다 생전 인도에서는 높은 어른에게 존경을 표하기 위해 상대방을 중심으로 세 바퀴를 돌았다. 이것이 불교에서는 탑돌이라는 중요한 의례로 굳어진다. 한편, 탑돌이는 한국으로 건너와 강강술래로 이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리 신심이 깊더라도, 그냥 탑을 돌면 심심하다. 사람들은 탑 주위에 장식을 했다. 인도에는 붓다의 생애를 탑 주변에 새겼다. 이에 비해 중국이나 일본 탑에는 조각이 없는 편. 한국 탑에는 장식이 많다. 그런데 인도와 달리 붓다의 생애가 아니라 다른 상징을 그렸다. 책 제목이 표현하듯 '작은 거인들'이 그들이다. 책에는 12지신, 금강역사, 팔부중, 미륵불을 포함한 다양한 부처 등을 분석했으나 이날 강의에서는 팔부중의 하나인 팔부중과 금강역사만을 다뤘다.
“팔부중 중 하나인 아수라는 마징가 Z에 나오는 그 아수라다. 만화에서 아수라 백작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 표현되는데, 신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수라는 해와 달을 동시에 지녔다. 이는 시간을 초월한다는 의미다. 붓다의 가르침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 을 아수라를 탑에 새김으로써 표현했다. 금강역사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다. 그리스의 헤라클레스가 인도로 넘어와서는 붓다를 수호하는 역할을 떠맡는다.”
우리가 탑을 보며 생각해야 할 것
주수완 박사는 독자들이 그리스 신화와 인도의 불교가 만났다는 사실만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기를 부탁한다. 헤라클레스가 왜 금강역사로 변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스스로 해석해 보기를 권했다. 이러한 맥락으로 그가 마지막에 소개한 탑은 구례 화엄사 사사자 석탑이다. 주수완 씨가 말하기로는, 이 탑은 통일신라판 3D 그래픽이다. 얼핏 보면 4마리의 사자가 탑을 받치고 있는 특이한 모습이나, 사자만 제외하면 전형적인 불탑이다. 왜 굳이 탑 아래 사자를 배치했을까?
만약 할 수만 있었다면 이 탑의 설계자는 삼층석탑을 공중에 떠있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거의 가운데 부처의 머리 위에 삼층석탑을 이고 있는 형태로 만들고 싶었겠지만, 그러기에는 구조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사자 네 마리를 배치하여 마치 탑을 이 네 마리 사자가 들어올리는 것처럼 표현한 것이다. (중략)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장인들이 보여줄 수 있었던 최고의 3D 영화다. 탑을 들어올려 부처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드러내는가 하면, 기단부에서는 스테레오 사운드, 아니 돌비 시스템으로 풍악을 올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적인 조각기법에서 기인한 것이다. 늘 명심하자. 아득한 오래전의 장인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늘 움직이는 역동적인 장면을 묘사하고 싶어했다. (135~145쪽)
온 힘을 다해 역동적인 장면으로 묘사하려고 했던 탑. 그 탑은 붓다의 무덤이다. 무덤을 만드는 이유는 그 사람의 인생을 후세가 기억하기 위해서다. 우연히라도 한국 곳곳에 있는 절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탑을 보며 붓다는 어떤 인물이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브라만교라는 주류와 카스트제도라는 사회구조에 반대하며 그가 지키려고 했던 가치는 무엇이었으며, 해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탑돌이를 하며 고민해보자. 탑돌이로 삶이 더 평온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티끌 모아 태산.
<유남해>,<주수완> 저25,200원(10% + 5%)
한마디로 탑을 장식하고 있는 부조상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불교미술에서는 불상과 보살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탑에 새겨진 금강역사, 십이지, 사천왕과 같은 수호신상들은 그저 보조적인 존재로서만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예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불상이건 보살상이건 혹은 이렇게 탑에 새겨진 수호신의 상이든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