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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자 그리 어렵게 나무를 깎고 처마를 휘었을까.’ - 『사라진 건축의 그림자』

“배흘림기둥의 목적은 미감의 만족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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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건축을 만든 (목수)할아버지는 절박한 상황에서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집을 만들까, 하고 온갖 것들을 다 계산하면서 시행착오 끝에 만든 거에요. 결국 이 모습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 그 진화의 결과이지 누군가가 보기에 아름답기 위해서 만든 결과물이 아닐 거라는 겁니다. 저도 그래요. 건물 만들 때 처마를 들고 그런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비 들이치는 것, 맞바람 드는 것 이게 훨씬 더 중요하거든요.”

“과연 정말 그럴까?” 이 질문은 때때로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는다. 감춰졌던 진실을 밝혀내기도 하고 잘못된 통념의 방향을 바로잡기도 한다. 건축가 서현은 한국의 전통건축을 바라보며 같은 질문을 품었다. ‘배흘림기둥은 착시현상을 보정하기 위한 선택이고 용마루와 처마의 곡선은 뒷산 능선과 조화를 이루기 위함이다’, 이 일반적인 해설은 사실일까? 저자는 궁금했다. 그것은 곧 『사라진 건축의 그림자』의 시작이었다.


단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자
그리 어렵게 나무를 깎고 처마를 휘었을까.





버선코와 뒷산을 닮은 처마곡선은 자연에 순응하는 우리의 미의식이다, 기둥의 배흘림과 안쏠림은 착시 보정을 위한 것이다, 다포식은 주심포식보다 화려하여 조선 시대에 쓰이기 시작했다……. 여지없이 이런 설명이 등장한다. (중략) 그렇다면 목수들은 과연 화려해 보이려는 의지만으로 그 구조물을 어렵사리 올려놓았을까. 단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자 그리 어렵게 나무를 깎고 처마를 휘었을까. (p. 9)



건축가인 저자의 눈에 비친 전통건축은 ‘자연친화적 미감과 민족적 미의식이 반영된 결과’만으로 보기에는 너무 버겁고 무거운 형태다. 추녀곡선이 없다면 건물은 훨씬 만들기 쉽고 구조적으로도 안정적이다. 기둥의 중간 부분이 가늘어 보이는 착시현상을 보정하기 위해 배를 불룩하게 만든 것이 배흘림기둥이라면, 우리 눈에는 결국 깔끔한 일자 원통으로 보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포작은 어떠한가. 화려한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기에는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형태 또한 복잡하다. 작업 과정이 번거로워지고 건물의 하중이 커진다는 것은 건축가의 입장에서 보면 넘어야할 산이요, 감당해야할 위험요소다. 분명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다.





“전통건축을 만든 (목수)할아버지는 절박한 상황에서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집을 만들까, 하고 온갖 것들을 다 계산하면서 시행착오 끝에 만든 거에요. 결국 이 모습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 그 진화의 결과이지 누군가가 보기에 아름답기 위해서 만든 결과물이 아닐 거라는 겁니다. 저도 그래요. 건물 만들 때 처마를 들고 그런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비 들이치는 것, 맞바람 드는 것 이게 훨씬 더 중요하거든요.”

건물을 만드는 사람에게 아름다움이란 최우선 과제일 수 없다. 건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름다움도 없다. 건축가가 두려워하는 것은 미적 가치가 낮은 건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결함을 가진 건물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우선 과제는 안정성이 된다. 그것이 확보되지 않으면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건축물은 사라지게 된다.

그 옛날의 목수들도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현대 건축가 서현은 생각했다. 그러므로 전통건축의 발생과 진화의 일차적 원인 혹은 동기 역시 ‘안정성의 확보’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빗물과의 싸움은 목조 건축물의 숙명

목조 건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는 ‘물’과 ‘시간’이다. 오랜 시간 수분에 노출되면 나무는 썩기 마련이다. 자연 상태에서 빗물과의 싸움은 목조 건축물의 숙명인 셈이다. 그 숙명과 맞서 싸우는 과정 속에서 추녀는 탄생했고 변화해 왔다. 용마루의 곡선도 생겨났다. 그리고 이 둘의 역사는 지붕의 변천사와 흐름을 같이 한다. 지붕을 이루는 구성요소인 까닭이다. 추녀와 용마루가 보여주는 유려한 곡선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지붕에 주목해야 한다.




목조건물의 최상단에 단순히 지붕을 얹는 것만으로 빗물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다. 우산을 써도 발목이 젖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라고, 저자는 말한다. 비가 수직으로만 내리지는 않는 까닭에 사선으로 내리치는 빗물로부터 건물의 기둥을 보호할 필요성이 생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둥을 덮는 지붕을 더 길게 밖으로 빼내야 한다. 이 부분이 바로 처마다. 기둥 밖으로 더 뻗어 나간 지붕의 끝부분이다.

그러나 처마를 길게 빼내다보면 지붕의 경사 역시 완만해진다. 빗물을 빨리 흘려보내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경사가 급하면서 동시에 처마를 길게 뺄 수 있는 형태의 지붕을 만들 수는 없을까. 그 고민의 결과 탄생한 것이 책을 펼쳐 엎어놓은 것과 같은 형태의 유연한 곡면을 가진 ‘맞배지붕’이다.


‘추녀’의 탄생

건물의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ㅅ’자 모양을 하고 있는 이 맞배지붕에도 빗물에 취약한 지점은 있었다. 지붕이 미처 덮지 못한 건물의 옆면, ‘박공’이다.




빗물이 지붕면에서 박공으로 감아 들어오는 문제는 지붕 경사와 기왓골 정도로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직접 들이치는 것이다. (p. 63)

실제로 우리의 맞배지붕들은 거의 모두 가리기 방식을 채택했다. 후대에는 심지어 박공면 전체를 가리는 경우도 생겼으니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 시대의 풍판이다. 풍판은 박공면에 들이치는 비를 상당 부분 막아준다. 그러나 이것은 임시방편으로 덧대 가리는 부재다. (p. 64)



저자에 따르면 전통 건축의 지붕이 ‘삼차원으로 굽은 면’의 형태를 갖게 된 것은 빗물로부터 박공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건물의 정면에서 바라보면 지붕의 양 끝으로 갈수록 경사가 급해지고 상대적으로 중앙부분은 낮은 경사를 갖는 곡면 형태다. 박공면 쪽으로 타고 흐르는 지붕면의 빗물을 막기 위해 박공 쪽의 지붕을 높이게 된 것이다. 이 삼차원 곡면은 기와의 등장과 함께 불필요해졌다. 지붕 위의 기왓골이 처마 방향으로 물을 인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굽은 지붕의 경사면은 다시 펴지지 않고 흔적기관처럼 남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박공면 전체를 수직의 부재로 막은 ‘풍판’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었다. 이것이야말로 건축미적인 측면에서 목수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진각지붕’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박공면에도 경사지붕을 만든 것이다. 지붕은 네 개의 면을 갖게 되었고 박공의 취약 부분은 사라졌다. 이 때 새롭게 등장한 것이 ‘추녀’다. 지붕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부재다. 문제는 건물의 모서리에서 대각선으로 가는 이 부재의 길이가 결코 짧지 않다는 것이었다. 단변 방향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추녀의 길이도 함께 늘어났으므로, 우진각지붕은 단변 쪽으로 길이가 길어야 하는 건물에 얹기에는 부적합했다.

“우진각지붕을 만들 수 있으려면 그만한 부재를 동원할 수 있는 사회적인 권력과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집단이어야 했겠죠. 아무나 만들 수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주 중요한 문루 정도에만 우진각지붕이 사용된 이유입니다.”


‘추녀’의 변형

우진각지붕의 추녀에 사용될 부재를 구할 수 없다면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보다 짧은 길이의 부재로 박공에 들이치는 빗물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새로 등장한 해결책은 ‘눈썹지붕’이었다. 풍판처럼 박공의 전면을 세로로 막는 것이 아니라, 아랫면에만 작은 처마를 경사진 형태로 만들어 붙인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임시방편에 불과한 것이었다. 결국 눈썹지붕이라는 과도기적 형태를 거쳐 ‘팔작지붕’이 탄생했다. 맞배지붕과 눈썹지붕이 일체화된 형태다.

팔작지붕에도 추녀가 존재하지만 우진각지붕에 비해 그 길이가 짧아졌다. 지붕의 가장 높은 지점에서 추녀가 시작되는 지점까지는 기존의 풍판처럼 세로로 부재를 대었는데, 이를 ‘합각’이라고 부른다. 합각의 크기가 커질수록 추녀로 사용되는 부재의 길이는 짧아도 되었기 때문에 팔작지붕은 우진각지붕보다 재료 수급의 부담이 적었다. 전통건축의 지붕으로 팔작지붕 형식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것은 만족스러운 해결책이었다.




비가 그치고 햇빛이 비칠 때 우산이 마르듯 기둥도 말라야 한다. 추녀를 쳐들면 그만큼 기둥 하부가 더 많은 햇빛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수분의 증발을 의미했다. 즉 비바람이 들이쳤다고 하더라도 모서리 기둥이 빨리 마르는 것이다. (p. 90)






추녀 부분은 공기의 흐름이 가장 빨라지는 부분이다. 법당의 풍경이 추녀에 매달려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것은 곧 추녀 부분에 비바람이 더 세게 들이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추녀가 위치한 곳은 빗물과 싸우는 목조 건축물의 최전방 지역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의 방어선을 탄탄히 구축하기 위해 목수는 추녀를 더 길게 빼는 방법을 선택한다. 추녀가 길어질수록 처마는 모서리에서 곡선을 이루며 밖으로 휘게 되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지붕의 모습은 ‘추녀에 비해 건물 가운데 처마가 상대적으로 안으로 휘어들어간 모양’이 되었다. 빗물을 막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빗물을 빨리 마르게 하는 것이었고, 하늘을 향해 처마 끝을 올림으로써 태양의 입사각을 크게 만들 수 있었다. 백자의 허리, 흰 버선코 등을 들어 설명해온 전통 건축의 곡선미는 이러한 필요에 의해 얻어진 결과물이지, 그 자체가 건축의 목적이었을 수 없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얻게 된 우아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배흘림기둥의 목적은 미감의 만족에 있지 않다

배흘림기둥 역시 예외가 아니다. 건축가 서현은 배흘림기둥의 목적이 미감의 만족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형태로써 배흘림기둥이 탄생되었다는 이야기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인 ‘주초’다. 목조 건축물의 기둥은 돌받침인 주초 위에 세워진다. 기둥에 맞춰 주초를 재단해야 하는데 돌을 다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무를 깎는 것과 돌을 깎는 것, 어느 것이 더 손쉬울 것인가 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문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주초에 맞춰 기둥을 재단할 수도 없다. 건물이 필요로 하는 기둥의 크기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찾은 절충안이 기둥 아랫부분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었다. 이로써 본래 기둥의 크기를 유지하면서 주초의 가공 작업량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배흘림기둥 형태가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로 들 수 있는 것이 조선 시대의 ‘민흘림기둥’이다. 민흘림기둥은 어떻게 배흘림기둥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는가, 그 해답의 실마리 역시 주초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는 석재 가공의 수준이 그로부터 약 1000년 전보다 훨씬 후퇴한 시대’라고 저자는 말한다. 심지어 주초 가공을 아예 포기한 경우들이 등장했는데 ‘덤벙기초’라고 해서 적당한 크기의 막돌을 그대로 기둥 받침으로 쓴 것이다. 그 위에 세우는 나무 기둥의 밑면은 ‘그랭이질’ 방식으로 대강 긁어서 다듬었다. 민흘림기둥이 아래로 갈수록 굵어지는, 원래 나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형태를 갖는 것은 기둥을 다듬을 필요가 없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배흘림기둥과 달리 밑면을 다듬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은 곧 주초로부터 제약을 받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주초를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없어지니 그에 맞춰 기둥을 재단할 필요성도 없어진 것이다.




이렇듯 전통건축을 이해하는 저자의 방식은 우리에게 새로운 동시에 낯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문제와 해결’의 키워드로 풀어낸 전통건축에 대한 이 이야기가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미적 감상에 기댄 기존 해석보다 더 자세하게, 더 많은 부분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방식의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왜 우리는 자연친화적 미감을 운운하는 유미주의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었나. 저자는 ‘양식화’에서 그 답을 찾았다.




전통건축의 목수들에게는 도면도 없이 건물을 짓는다는 것이 자랑거리였다. 도면도 없는데 문헌이 있을 턱이 없다. 그들은 아예 글자를 읽을 수 없는 신분이었을 가능성도 크다. (중략) 문헌이 없으면 이유도 없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교과서가 아니라 묵언의 수련만 존재했다. 나를 따라 해라. 나도 스승을 따라 했다. 이렇게 이유가 생략된 채 형태가 반복되어 전승하는 것을 양식화라고 한다. 그리고 결과물로서의 그 형태가 양식이다. (p. 104)



전하여지지 않았기에 베일에 싸여 있었던 전통건축 양식의 ‘이유’. 건축가 서현은 『사라진 건축의 그림자』 안에서 그 이유를 추적한다. 건축가로서의 경험과 논리적 추론은 그가 가진 강력한 무기다. 그 무기 앞에서 전통건축을 덮고 있던 베일은 한 꺼풀 벗겨지고, 사라졌던 그림자는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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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건축의 그림자 서현 저 | 효형출판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라는 책으로 건축교양 서적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저자 서현의 새로운 책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목한 대상은 바로 전통건축이다. 이 책은 우리가 책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접하고 받아들여 온 전통건축의 일반적인 가치들, 그 클리셰와 정면으로 반박을 제기한다. 한국 전통 건축의 모습이 지금과 같은 것은, 자연친화적 미감 운운하는 비판 없는 유미주의 때문이 아니라 한국 전통건축의 발생학적 계보와 진화의 노력으로 인한 결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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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사라진 건축의 그림자

<서현> 저14,400원(10% + 5%)

유미주의를 걷어내고 전통건축의 치열한 진화과정을 만난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라는 책으로 건축교양 서적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저자 서현의 새로운 책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목한 대상은 바로 전통건축이다. 이 책은 우리가 책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접하고 받아들여 온 전통건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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