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유명 요리연구가이자 라이프스타일리스트 구리하라 하루미 씨가 최근 한국에 첫 출간한 자신의 요리책 『전하고 싶은 일본의 맛』을 들고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키친 101’로 들어섰다. 출간 기념으로 마련 된 쿠킹클래스에서 손수 일본 가정식을 시연하기 위해서다. 환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는 그녀를 독자들은 박수로 맞이했다.
“한국과 일본은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생각보다 서로의 요리는 많이 소개되지 않은 것 같아요”
2004년 구어만드 세계 요리책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요리연구가로서 구리하라 하루미 선생의 일본 내 위상은 대단하다. 1996년부터는 수많은 일본 여성들에게 특별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계간지『haru_mi』를 만들어 온 발행인이기도 하다. 라이프스타일리스트로서 일명 ‘하루미 스타일’의 아이템을 판매하는 숍과 레스토랑의 복합형인 ‘유토리노 쿠칸(여유로운 공간)’ 등을 오픈하기도 했다. 2009년 그녀의 저작물 누계 발행 부수는 2천만 부를 넘어섰다. 그런 그녀를 사람들은 일본의 마사 스튜어트라고 칭한다.
하루미 선생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독자들은 ‘키친 101’로 들어서는 그녀를 보며 설렘 섞인 웅성거림으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개중에는 일본에서 온 열혈 팬도 있는 듯 간간히 일본어로 된 대화가 들려오기도 한다. 오늘 시연할 선생의 레시피를 하나도 빼놓지 않으려는 듯 손에는 저마다 디지털카메라 한 대 씩을 들고 있다. 필요한 모든 도구가 갖춰져 있으면서도 편안한 카페 같은 주방을 연상케 하는 ‘키친 101’의 분위기가 마음에 든 듯 하루미 선생의 입가에도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주방은 그녀에게 너무도 익숙한 공간임을 보여주는 듯, 일본에서 직접 준비해 온 재료를 꺼내고 주방도구를 자신의 스타일대로 배치하며 요리를 시작할 준비를 시작한다. 과연 일본 최고의 요리연구가이자 스타일리스트라는 말이 허언은 아닌 듯, 모든 움직임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이어진다. 한국에 온 흥분과 이색적인 느낌조차도 주방만큼은 예외인 듯, 준비가 끝나갈 수록 차분해지는 눈빛에서 전문가의 노련함이 엿보인다.
수수한 일본 가정식의 매력, 도미밥과 미소시루
쿠킹클래스가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구리하라 하루미 선생의 소개가 이어지고 독자들과 함께 할 일본 가정식 요리 세 가지도 소개 됐다. 오늘 선생과 독자들이 함께 만들어 볼 일본 가정식은 도미밥과 자바라 오이절임, 두부를 넣은 미소시루 등이다. 순서는 우선 하루미 선생의 시연으로 시작해 4인 1조로 이뤄진 독자들의 실습, 그리고 하루미 선생이 만든 자바라 오이절임과 미소시루를 독자들과 함께 맛보는 시간으로 진행된다. 시연을 함에 앞서 하루미 선생이 한국에 오게 된 소감을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털어놨다.
“안녕하세요. 구리하라 하루미입니다. 저를 아시는 분이 많으신가요? 아니라면 이번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해요. 한국과 일본은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생각보다 일본의 요리가 한국에 많이 소개 되지는 못한 것 같아요. 오히려 먼 유럽에서는 일본 요리가 붐을 일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번 기회를 빌려 한국요리와 일본요리가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제 남편 역시도 한국에 관심이 많고 좋아하는데요. 이번에도 같이 왔지만 ‘아내의 일하는 자리만큼은 동참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오늘 함께 오지는 못했어요(웃음).”
오늘 시연할 세 가지 음식, 도미밥과 자바라 오이절임과 미소시루는 일본의 각 가정에서 손쉽게 만들어 먹는 일본 전통 요리.
“원래 책에는 도미 대신 꽁치가 들어갔지만, 제철이 아닌 탓에 도미로 대체했다”는 하루미 선생은 요리를 준비하는 과정 하나하나에 설명을 곁들이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중간에 언제든 질문이 있으시면 해주세요. 원하시는 대로 앞으로 나와서 보셔도 되고요. 앉아서 보셔도 됩니다. 우선 다시마를 깨끗이 씻어 물에 담가놓았고요. 지금은 물을 끓여 미소시루와 도미밥을 만들 육수를 만들고 있습니다. 다시마는 오래 끓이면 안되기 때문에 물이 끓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꼭 건져주세요.”
선생의 손길을 옆에서 진지하게 돕는 동행도 있었다. 알고 보니 그녀가 일본에서 발간하는 잡지 『Haru_mi』의 취재진들이다. 모두 창단 때부터 함께 한 17년 인연이라고 하니 말하지 않아도 척척일 터였다. 육수가 만들어지는 동안 하루미 선생은 다시 도미의 뼈를 발라내고 굽기 시작했다. 쉬운 설명은 개인적인 추억을 곁들여 이어졌다. 일본에서 도미는 경사스러운 날, 좋은 날 먹는 음식. 그에 대한 추억은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있게 마련이다.
“도미는 소금구이로 굽고 있습니다. 표면에 살짝 소금간을 해 놨죠. 꽁치나 고등어도 같은 방법으로 꽁치나 고등어도 굽곤 해요. 도미밥은 일본에서 하나의 문화로 볼 수 있는 음식이에요. 옛날부터 결혼식에는 곡 도미에 소금이 올라오는 것이 전통이죠. 특이하게 과자도 곁들여지는 경우가 있는데 저도 어렸을 때 과자를 그대로 밥과 함께 먹었던 적도 많았어요(웃음). 도미밥이라고 해서 꼭 도미만 넣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도미 대신 고기나 채소를 넣어도 좋죠. 아 육수가 끓고 있네요. 다시마를 건지고 가다랑어포를 넣도록 하겠습니다.”
가다랑어포를 두 손으로 한움쿰 집어넣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우리식 표현으로 ‘손이 꽤 크다’는 생각이 든다. 독자들의 표정에서 그런 생각을 읽은 듯, 그녀는
“아끼지 말고 양껏 넣어야 맛좋은 육수가 만들어진다”고 설명을 덧붙이며 웃는다.
“가다랑어포는 파우더 형태로 된 것도 있으니 상황에 따라 편리하게 이용하시면 됩니다. 다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채에 거릅니다. 오늘 오신 분들은 이 맛을 꼭 기억해주시기를 바랄게요.”
세심한 칼집이 특징, 자바라 오이절임
도미밥과 미소시루를 준비하는 와중에 자바라 오이절임을 만드는 법도 함께 진행됐다. 우선은 절임을 바탕이 되는 소스를 만드는 것부터, 간장 2분의 1컵과 식초, 설탕은 취향에 맞게 양을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시연이 이어가며 그녀는 문득 생각난 듯 한국 오이에 대한 칭찬을 쏟아놓는다.
“한국 오이를 처음 봤을 때는 물기가 너무 많지 않나 싶어 걱정했는데 전혀 문제없었어요. 굉장히 맛있고 식감이 좋더라고요. 자바라 오이절임은 한번 만들어 놓으면 1주일은 먹을 수 있어요. 일본 같은 경우 자르는 방법이 상당히 발달했는데 여러 가지 오이 썰기 방식이 있어요. 자바라는 옛날부터 일본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자르기 방식이죠.”
마치 얇은 종잇장처럼 칼집을 내는 것이 ‘자바라 식’의 특징, 그러면서도 오이를 끝까지 자르지 않고 3분의 2정도까지 칼집을 내는 것이 포인트다. 이런 방식으로 앞뒤 같은 방향의 칼집을 내어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오이는 양끝을 자르고 비스듬하면서도 얇게 칼집을 내야 합니다. 초보자들은 젓가락을 오이 밑에 괴어 놓고 자르는 것이 실수를 하지 않게 해주죠. 이렇게 자를 시간이 없을 때는 그냥 방망이로 두드려서 살짝 으깬 상태로 절여도 됩니다. 제 생각에 일본 오이보다 한국 오이가 이 요리에 딱 맞는 것 같아요. 누구도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처음에는 물이 나오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깊고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자바라 오이절임은 큰 그릇이 없을 경우에는 약간의 소스와 함께 비닐 팩에 넣어 절여도 될 정도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유럽에 갔을 때는 똑같은 방법을 이용해 현지 와인을 재료로 만들어 보기도 했어요. 굉장히 시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일본 사람들은 신맛에 강한 편이에요. 해외에 나갔을 때는 그렇게 해서도 많이 먹곤 하죠(웃음). 한국의 경우 고춧가루나 생강, 빨간 홍고추를 올려먹는 것도 괜찮을 듯해요(일종의 고명 같은 느낌).”
요리는 스스로의 맛을 찾는 과정
쌀을 씻어 채에 거르는 모습은 한국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냄비에 씻은 쌀을 담은 후 그 위에 구운 도미를 얹은 모양새가 특이하다. 좀 전에 준비한 육수에는 다양한 조미료가 들어가 감칠맛을 더한다.
“일본은 육수에 간장과 미림, 청주, 소금을 넣습니다. 보통 한 냄비에 육수가 두컵정도 들어가는데 이때 육수는 조미료를 다 넣은 상태임을 잊지 마세요. 특히 소금은 육수의 맛을 살려줄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으니 주의해서 사용하세요.”
육수 두 컵은 도미를 피해 씻은 쌀 안쪽에 조심스레 부어졌다. 그리고 강한 불로 12분 정도 가열하고 이후 10분 정도 뜸을 들이면 도미밥이 완성된다. 재미있는 것은 앞서 선생이 이야기한 것처럼 여기에 도미 대신 다른 채소나 고기 등을 넣으면 또 다른 종류의 영양밥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모든 과정을 기억해 주신다면 식재료에 따라 다양한 영양밥을 할 수 있어요. 오늘은 설명을 하며 진행해서 시간이 꽤 걸렸는데, 집에서 혼자 한다면 세 가지를 30분 내에 할 수 있습니다. 요리하는 게 싫어질 때도 가끔 있잖아요. 그럴 땐 30분 안에 모든 것을 다 해낸다는 생각으로 해보세요. 정말 30분 내에 완성이 된다면 그 만족감이 꽤 크거든요(웃음).”
설명에 여념이 없는 사이에 밥물이 끓어오르면서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 밥 익는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도미의 향이 은은하게 배어있는 것이 특징, 그 사이 미소시루 역시 만들어 놓은 육수에 두부를 으깨 넣으며 뚝딱 만들어 보인다. 미소시루는 우리나라의 된장국과 비슷한 것으로 약간의 맛의 차이는 있지만 한일 양국 사람들의 입맛에 잘 맞는 음식이다.
어느새 모든 요리가 완성되고 상차림만 남았다. 무심코 국그릇을 가져다 도미밥을 푸던 하루미 선생이 아차 싶은 듯, 다시 그릇을 바꿔 담으며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일본에서는 밥그릇이 우리나라의 국그릇과 비슷한 모양인 탓이었다.
“도미 살을 부셔서 밥과 섞어도 되고 살짝 남겨 밥에 얹어 먹어도 됩니다. 일본에서 도미요리집이 상당히 많은데, 마지막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도미밥이죠. 이렇게 도미밥과 미소시루, 자바라 오이절임으로 만든 상은 평소 일본에서는 저녁식사 레시피인데, 아침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오늘 요리는 참 완벽하게 잘 된 것 같아요(웃음).”
시연을 끝마치며 그녀는 나름의 요리철학을 이야기했다. 꼭 레시피 대로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식탁예절에 대한 좋은 느낌도 함께 이야기하는 그녀의 미소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많은 분들이 레시피 대로 했는데 마지막에 와서 그대로 되지 않아 실망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그 맛은 여러분들이 바꾸셔도 괜찮은 겁니다. 오늘 만든 세 가지도 집에서 해보고 내 맛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바꿔도 좋아요. 한국과 일본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문화의 차이가 있으니까요. 한국에 가정을 보면 가족 간에 정이라든지, 윗사람을 대하는 예의가 있잖아요. 그런 모습이 엄격할지 몰라도 전 정말 보기 좋아요. 가족끼리 기념일과 행사를 챙기는 것도 그렇고요.”
쿠킹 클래스에 모인 독자들은 그녀의 말에 웃음 지으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실습을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도미 굽는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 나왔다. 실습이 끝나면 각자 만든 도미밥과 함께 하루미 선생이 준비한 자바라 오이절임, 미소시루를 곁들여 기억에 남는 저녁식사가 이어 진다.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는 한국과 일본, 오늘의 쿠킹 클래스처럼 두 나라 사이에 음식문화가 더욱 활발한 교류로 이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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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하고 싶은 일본의 맛 구리하라 하루미 저/송소영 역 | 시드페이퍼(seed paper)
이 책은 일본의 마사 스튜어트라고 불리는 하루미에게서 진짜 일본의 맛, 일본 가정식의 정수를 배울 수 있는 책이다.
하루미가 가족에게, 지인에게 인정받은 152가지 엄선된 레시피만을 뽑아 구성한 이 책은 봄/여름/가을/겨울/설날 등 계절에 맞는 재료들을 이용해 만드는 건강한 제철 요리와 흰 쌀밥에 어울리는 계절별 미소시루, 일식/양식/중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요리, 반찬 걱정이 필요 없는 조림요리, 아내의 마음, 엄마의 마음으로 하루미가 직접 개발한 요리와 만능 소스, 간편하게 먹으면서 영양까지 챙길 수 있는 덮밥과 영양밥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