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박사 공병호가 새 책으로 다시 찾아왔다. 저자의 이름 앞에는 항상 ‘경제’와 ‘경영’, ‘자기계발’의 수식어가 붙는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경제경영서도 아니고 저자의 기존 자기계발서들과도 그 색이 다르다. 『공병호의 고전강독 1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 최고의 인생을 묻다』와 『공병호의 고전강독 2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 다시 정의를 묻다』는 그렇게 ‘색다른’ 책이다. 이를 두고 방향의 전환 혹은 변화라고 부른다면 섣부른 일일지 모르나 분명한 것은 새롭게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
“고전강독은 제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첫 번째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주제였고, 두 번째는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의는 무엇이고 부정의는 무엇인가.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작년 봄부터 고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는 ‘조금 더 올바르고 후회 없는, 보람된 삶을 살아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고전’이라는 새로운 텍스트로의 탐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저자의 말처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화두는 젊은 날에만 부여잡고 고민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비로소 하늘의 명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에 들어선 저자에게도 올바른 삶이란 좀처럼 답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고민해야만 하는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플라톤의 저서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메논>, <파이돈>, <향연>, <알키비아데스 Ⅰ>(
『공병호의 고전강독 1』
) 와 <국가>, <법률>(
『공병호의 고전강독 2』)에 나타난 플라톤과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삶을 통해 저자는 ‘훌륭한 삶’에 대한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그렇다면 <논어>와 <손자병법>과 같은 동양 고전 다시읽기 열풍이 불고 있는 시점에서 왜 그는 서양고전을 선택했을까 궁금해진다. 그러한 반응을 익히 짐작이나 한 듯이 강연회를 시작하며 그 이유를 밝혔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서양 고전은 우주의 본질이나 사랑의 본질, 정의의 본질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데 반해, 동양 고전은 처세론적 성격이 강하다고 했다. 그로 인해 동양 고전은 보다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되어 굳이 자신이 다리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이 섰다는 것이다. 반면 서양 고전은 ‘본질에 대한 탐구’라는 그 특성상 이해하기 힘들고 심오한 내용들이 많아 원전을 읽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생각했다.
『공병호의 고전강독』 두 권을 출간하면서 저자의 바람이 있다면 고전 읽기의 난해함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서양 고전에 접근하는 데 있어 자신의 책이 주춧돌로써 기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인간의 가진 가장 고결한 것은 ‘혼’
두 권의 책에 걸쳐 총 8권의 (플라톤의)저서를 각각의 주제에 따라 해설한 내용을 1시간 남짓한 강연회 시간 안에 모두 담아내기란 무리가 따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 날 강연회에서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내용들이 소개되었다. 그 첫 번째는 ‘영혼’에 대한 것이었다.
“플라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고결한 것으로 ‘혼’을 이야기합니다. 악행을 범한다는 것은 자신의 가장 고결한 혼을 저급한 육체에 복속시키는, 노예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일상 속에서 때때로 타협해야할 순간에 직면했을 때 ‘혼을 더럽히는 일은 아닌가.’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철학을 다룬 책들을 살펴보면 두 철학자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었던 부분이 바로 ‘영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 역시 영혼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힘주어 이야기한다. 살아가면서 정말 귀하고 훌륭한 것은 대부분 영혼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영혼이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은 고전을 공부하게 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현대의 자본주의가 물질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물질 조차도 원천은 ‘혼’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저자는 영혼을 관리하고 격려하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면 훨씬 더 훌륭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영혼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플라톤은 ‘영혼 삼분설’을 통해 영혼이 이성과 기개, 욕망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이성이 사유적 부분이라면 기개는 이성의 명령을 받아 행동하는 의욕적 부분이다. 그리고 욕망은 욕구적 부분이다. 이성이 가장 잘 발휘된 상태가 지혜이고, 기개와 욕망이 가장 잘 발휘된 상태는 각각 용기와 절제이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이 각각의 혼이 가장 잘 발휘되었을 때로, 이를 두고 ‘덕’이라 하였다. 한 개인이 지혜와 용기, 절제를 모두 갖추었다면 개인 차원의 정의를 이루었다 할 수 있다.
사회적 차원의 정의는 사회 구성원들 각자가 자신의 직분을 최고로 발휘하였을 때 이루어진다. 플라톤에 따르면 한 사회는 세 가지의 계급으로 구성된다. 이성을 가장 잘 발휘하는 재능을 타고난 사람인 ‘지도자’와 기개가 뛰어난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군인’, 욕망이 강한 사람들인 ‘사업가’가 그것이다. 지도자가 이성을 훌륭하게 발휘하여 지혜의 덕을 이루고, 기개를 발휘한 군인들이 용기의 덕을, 재화를 생산하는 생산자들이 욕망을 발휘하여 절제의 덕을 이룰 때 사회 차원의 정의가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스스로가 어느 쪽에 재능이 있는 사람인지 자신을 유심히 관찰할 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에 대한 탐구와 지식을 쌓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직분을 최고로 잘 수행하는 것, 수행하려고 노력하는 것, 수행해 가는 과정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 그 자체가 생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가 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항상 새겨야 될 조언
<알키비아데스>
『공병호의 고전강독』을 읽으며 독자들이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으로 저자는 <향연>과 함께 <알키비아데스 Ⅰ>을 꼽았다.
“알키비아데스가 스무 살이 채 되지 못한 나이에 정치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났을 때 소크라테스를 찾아옵니다. 그 때 소크라테스가 세 가지 조언을 해주는데, 꼭 정치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지도자가 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항상 새겨야 될 조언이라고 생각됩니다.”
알키비아데스를 향해 소크라테스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생각의 일치를 도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둘째, 불화와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배워본 적 있는가. 셋째, 구성원 각자의 재능이 최고로 발휘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그리고 이 세 가지를 갖추고 있다면 정치에 참여해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정치는 훌륭함을 나누어 주는 것’이기 때문에 훌륭함에 해당하는 지혜와 용기, 절제를 가지고 있는 자만이 나누어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저자가 생각하는 지도자의 자질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도자는 구성원들의 생각을 조화시킬 줄 알아야 하고,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 항상 발생하기 마련인 불화를 원만하게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끄는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재능이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마련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저자의 생각은 그리스 철학의 에르곤(Ergon, 기능) 개념과 맞닿아 있다. 에르곤은 한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 그의 기능을 중시한다. 저자 역시, 인품이 훌륭하여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부여받은 과제를 기능면에서 얼마나 잘 수행하는가에 달려있다는 데 생각을 같이 한다. 이것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중요시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정치가가 갖추어야 할 자질을 설파한 <알키비아데스 Ⅰ>를 읽고 생각해 보기를 권한 저자의 의도도 같은 맥락에서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세상을 살다간 인물들을 오늘날에 호출하여 그 행적과 사상을 되짚어 보는 일은 그것 자체로 ‘새로운 해석’이다. 동일한 인물과 사건을 두고도 저마다 부여하는 의미가 다르다는 사실이 그 근거다.
『공병호의 고전강독』을 두고 저자 자신이 ‘공병호의 자기학습노트’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이 책 역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사상에 대한 공병호 방식의 해석이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흐름을 따라가는 동안 곳곳에 숨어있는 생각해 볼 ‘꺼리’들을 마주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가령 <소크라테스의 변론> 과 <크리톤>에서 ‘악법도 법이다.’를 외치며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독주를 마신 소크라테스의 선택을 두고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논의가 있을 수 있다. 다수의 결정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하면서도 ‘악법’이라 하는 것이 절차적 정당성을 획득했다는 이유만으로 따라야하는 것인가? 탈옥이 당장은 법을 어기는 일이 될지라도 훗날 법을 개정하려면 불가피한 선택이 아닌가?
독자들은 이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봄으로써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저자와 일치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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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병호의 고전강독 1 공병호 저 | 해냄
『공병호의 고전강독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 최고의 인생을 묻다』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 옳은 길인가”라는 쉼없는 질문 앞에 단단한 해법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플라톤의 대화편 중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중심으로 하는 저서들과 소크라테스가 주요 등장인물로 나오는 저서를 세밀히 읽어나간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위대한 철학가들의 지혜는 더 이상 책장 속의 케케묵은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강력하고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