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은 2007년에 발생해 사회적 파문을 몰고 온 ‘석궁 테러 사건’을 바탕으로 한 법정실화극이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 날이 선 화살을 겨누고 있다. 영화계의 전설인 정지영 감독의 연출과 안성기를 비롯한 명품 연기자들의 호연에 영화적 재미까지. <부러진 화살>은 지루하다는 법정 영화의 편견을 깨고 사회성과 재미를 고루 갖춘 영화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2007년 김명호 교수의 ‘석궁 사건’을 영화화김명호 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전 수학과 조교수로 수학자이다. 김 교수는 1995년 성균관대학교 수학과 입학시험 문제의 오류를 지적하며 동료 수학과 교수 및 학교 측과 격하게 대립했다. 그 뒤, 김 교수는 1996년 부교수 승진에서 탈락하였으며 이어서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교수지위를 잃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던 탓에 보복을 당한 것으로 판단. 법원에 교수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다. 그에 맞서 대학 측은 김 교수의 재임용 탈락이 보복과는 거리가 먼 ‘교수로서의 자질’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7여 년에 걸친 법정싸움은 결국 학교 측의 승리로 돌아간다.
이러한 판결에 억울함을 품은 김 교수는 2007년 1월 석궁을 들고 현직부장판사의 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판사에게 석궁을 쏘았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4년형을 선고받는다. 당시 원고 측은 결정적 증거가 될 화살이나 옷, 상처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법부를 공격한 데 대한 보복성 판결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결국, 김 교수는 4년형을 모두 살고 2011년 1월에 만기 출소하였다. 그리고 법정싸움을 통해 몸소 체득한 법 지식을 바탕으로 법을 지키지 않는 이들에 대한 비판과 소송을 다양하게 진행 중이다.
문성근이 정지영 감독에게 건넨 책 『부러진 화살』
영화 <부러진 화살>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했다. 정지영 감독은 사석에서 만난 문성근으로부터 ‘석궁 사건’을 다룬 르포 소설 『부러진 화살』을 건네받는다. 르포 소설 『부러진 화살』(서형 저, 후마니타스 펴냄)은 생생한 재판과정과 관련인물들과의 심층인터뷰, 풍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석궁 사건의 전말을 보여주고 있는 서적이다.
정지영 감독은 『부러진 화살』을 읽고는 “초저예산으로라도 꼭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로 영화에 착수하게 된다. 그리고 원작 『부러진 화살』에 꼼꼼한 취재를 더해 1년을 들여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영화 속 대사를 일부러 꾸몄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한테는 책으로 나온 『부러진 화살』을 사보라고 추천합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영화가 훨씬 사실적으로 느껴질 겁니다. 심지어 안성기 씨가 판사를 향해 ‘재판하기 싫죠?’, ‘이게 재판이야, 개판이야’라는 말까지 모두 사실입니다.” (정지영 감독)
20년 만에 재회한 정지영 감독과 안성기
9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정지영 감독과 명실상부 국민 배우 안성기가 20년 만에 다시 만났다. 두 사람이 함께한 첫 작품 <남부군>(1990)은 당시 금기시되던 ‘빨치산’을 소재로 전쟁의 비극과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편견을 날카롭게 지적한 화제작이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을 한국인의 시각으로 다뤄 화제가 되었던 <하얀 전쟁>(1992)은 한국 영화 최초로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았다. 이처럼 사회성 강한 영화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쫓아온 영화적 동지가 <부러진 화살>로 다시 뭉친 것이다.
“처음에는 제작비 5억원의 저예산 영화라 비싼 배우인 안성기를 쓸 수 없겠구나 생각했죠. 그리고 안성기 씨한테 솔직하게 차비밖에 못 준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안성기 씨가 시나리오를 읽은 다음 날 바로 함께 하자고 하더군요. 안성기 씨가 캐스팅되고 나자 다른 배우들의 캐스팅도 생각보다 수월하게 이뤄졌습니다.” (정지영 감독)
정봉주 전의원과 <부러진 화살>의 기막힌 인연?‘나는 꼼수다’의 정봉주 전의원이 ‘BBK 주가 조작’ 사건과 관련한 허위사실유포 등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확정받고 구속 수감됐다. 그리고 이에 분노한 시민의 열기는 19일 개봉을 앞둔 <부러진 화살>에 까지 번져갔다.
정봉주 전의원의 구속으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감이 싹튼 시점에서 사법부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영화가 개봉하는 것. 게다가 정봉주 전의원에게 1년 형을 선고한 항소심 판사가 <부러진 화살>에서 석궁을 맞았다고 주장한 판사로 밝혀져 영화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SNS를 타고 급속도로 퍼져 나가 <부러진 화살>의 명대사로 꼽히는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요”라는 말이 네티즌들 사이에 유행어가 된 일도 있었다.
<부러진 화살>이 이처럼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 교수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담은 영화다”,
“사회 정의를 수호하려 애쓰는 판사들에게까지 불신감을 갖게 한다”,
“정봉주 전의원의 구속을 마케팅으로 활용한다” 등이 그것. 그리고 정봉주 전의원 항소심의 재판장은 ‘석궁 사건’ 판사가 맞지만 주심 판사는 한미FTA를 비판하고 대통령을 조롱한 것으로 문제가 되었던 판사라는 점에서 특정 판사의 ‘신상 털기’식 비난은 옳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처럼 2012년의 문을 여는 최대의 문제작 <부러진 화살>은 1월 19일 개봉을 앞두고 관객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시사회 및 인터뷰 종합“그 자리에서 대본을 읽고 바로 고사 지내러 갔어요”
<부러진 화살>은 90년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정지영 감독이 13년 만에 발표한 작품이다. 13년 동안 정지영 감독은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13년 동안 계속 영화를 준비했었어요. 하지만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성근 씨가 빌려준 『부러진 화살』이라는 책을 단숨에 읽고는 연출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정지영 감독)
반가운 얼굴은 정지영 감독만이 아니다. 14년 만에 장편 극영화에 복귀한 김지호와 80년대의 은막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나영희가 오랜만에 스크린 나들이에 나선 것이다.
“배우로 데뷔하고 영화 2편을 찍고는 영화를 하지 않았어요. 소화하기 어려운 역할의 제의가 많아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영화를 하지 않았지요. 대신 드라마를 주로 해왔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오는데 회사에서 차 한 잔 마시자고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나갔더니 대본을 보여주며 바로 결정하라는 거예요. 오늘이 고사날이라고요(웃음). 그래서 그 자리에 앉아서 읽는데 대본이 정말 술술 넘어가더라고요. 흥미진진하게 읽었고 그 자리에서 오케이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고사 지내러 갔죠(웃음).” (김지호)
“저는 80년대에 영화를 주로 했어요. 당시는 정말 대단한 감독님들과 함께했었는데, 안타깝게도 정지영 감독님께는 캐스팅이 안 됐어요. 그런데 이렇게 세월이 지나서나마 정지영 감독님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서 기뻤고, 특히 저의 데뷔작을 함께한 안성기 선배님이랑 오랜만에 호흡을 맞출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영화를 다시 해보니 제가 정말 영화를 하고 싶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나영희)
“<라디오 스타> 이후로 내 연기 평가가 제일 좋네”
<부러진 화살>은 김 교수 역할의 안성기와 박 변호사 역할을 맡은 박원상의 연기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둘의 호흡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법정영화를 유쾌하게 끌고 간다.
“김 교수에 초점을 맞춘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박 변호사가 한 캐릭터 한다는 걸 알고는 박 변호사의 캐릭터도 깊이 파고 들어갔습니다. 둘 다 만만치 않은 캐릭터라 둘이 붙으면 재밌겠다고 생각했고, 실제 영화를 만들다 보니 생각 이상으로 재밌는 장면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정지영 감독)
안성기도 <부러진 화살>에서 보여준 자신의 연기에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런 내용은 배우 박중훈의 트위터를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박중훈이 안성기와의 전화통화 내용을 공개한 것. 안성기는 박중훈과의 전화통화에서
“<라디오 스타> 이후로 내 연기 평가가 제일 좋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안성기는 김 교수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어떤 면에 주안점을 두었을까?
“제 평소 이미지는 부드럽고 미소가 많은 완곡한 이미지죠. 그런데 시나리오에 표현된 김 교수는 냉정하고 모든 것에 완벽을 추구하는 깐깐한 인물로 표현되어 있더군요. 저는 그런 캐릭터가 좀 더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연기했습니다.” (안성기)
“<부러진 화살>은 <도가니>에는 없는 유쾌함까지 더한 영화”
<부러진 화살>은 실화를 바탕으로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문제작이라는 점에서 ‘제2의 도가니’라고 불리기도 한다. 혹은 <도가니>가 <부러진 화살>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예측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한 정 감독의 생각은 어떨까.
“영화 촬영이 다 끝나고 <도가니>가 개봉했어요. 어느 트위터에서 보니까 정지영 감독이 영화 제작을 못 하다가 <도가니>가 히트하는 것을 보고 돈을 구해서 <부러진 화살>을 만들었다고도 하더군요. 하지만 영화를 만들고 난 뒤 <도가니>가 개봉했고 <부러진 화살>의 제작은 <도가니>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사실 <도가니>는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한 면이 있어요. 하지만 <부러진 화살>은 그렇지 않아요. 적절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고 진지하면서도 유쾌함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다르다고 생각해요.” (정지영 감독)
정지영 감독이
『부러진 화살』의 영화화를 결정하자 주변에서 많은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사법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영화가 온전히 개봉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정 감독은 이런 말을 듣는 것 자체가 우리 현 사회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왜 우리는 이런 영화를 만들 때 ‘두렵지 않은가?’ 혹은 ‘무사히 개봉할 수 있나’라는 질문을 받아야 하나요. 냉정하게 볼 때 우리는 아직 덜 상식적인 사회에 살고 있는 거 같습니다.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왜 눈치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헌법이 우리의 자유를 보장해주고 있는데도 왜 그런 고민을 해야 하는지 이상합니다.” (정지영 감독)
‘석궁 사건’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을 당시 뉴스의 쟁점은
‘석궁을 쏘았느냐? 안 쏘았느냐?’에 맞춰졌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왜 석궁을 들이대야만 했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사건의 전말을 보여주는 영화의 제작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부러진 화살>이 사회에 만연한 정의와 진실 불감증을 일깨워주는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