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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내 삶의 척도를 스스로 정하세요”

서경식 『나의 서양음악순례』 삶의 지혜를 구하다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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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흑인으로 태어났다면, 평생 인종차별 문제와 싸우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당신이 여자라면, 남녀 차별 문제가 삶에 중요한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흑인으로 태어났다면, 평생 인종차별 문제와 싸우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당신이 여자라면, 남녀 차별 문제가 삶에 중요한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은 지역감정 문제에, 혹은 국가보안법 문제로 평생을 맞서 싸우고 있을 수도 있다.

남과 다른 조건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 소위 ‘평균’ ‘기준’이라고 부르는 범주에 안착하지 못한 사람들을 우리는 소수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소수자로 분류됨과 동시에 남과 다른 눈을 뜨게 된다. 스스로 소수자의 길을 걷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의지와 관계없이 그렇게 태어난다. 어떤 문제들은 이렇게 숙명적이다.

재일교포 2세 서경식 선생님에게 ‘재일교포’라는 정체성은 그런 문제였다. 평생을 따라다니는 고민이자 숙제였다. 게다가 가족의 현대사에 얽히기 시작하면서 그의 문제의식은 더욱 날카롭게 벼려진다. 1971년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서승, 서준식 두 형이 국가보안법 혐의로 체포되어 각각 사형, 7년 형을 선고 받는다. 대학생이던 서경식 선생님은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서 형들의 구호활동을 했고,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계속 해 나간다.

19년이 지난 후에 형들이 석방된다. “형들이 감옥에서 보낸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금 나의 인격을 형성했다”고 말하는 서경식 선생님은 이후 인권 문제, 소수민족에 관해 강연, 글쓰기를 하며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그의 저서 『디아스포라 기행』

『소년의 눈물』 『언어의 감옥에서』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등등에 그런 문제의식이 깊게 깔려있다.

주류에게 오직 성공과 실패의 척도가 있다면,
우리에겐 주류에게 없는 또 다른 척도가 있어요.

‘나는 나다, 나는 이렇게 산다.
너희들이 모르는 즐거움이 있다.’
자기만의 척도를 가지면,
문화, 예술, 사회 속에서도 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요.

자기 척도를 세우는건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갖는 거예요.


『나의 서양음악 순례』는 서경식 선생님이 ‘동반자이자 벗이고 아내이며, 때로는 딸 같기도 한 여성’ F와 함께 음악회를 둘러보고 나눈 이야기들을 녹여낸 에세이다. 그 안에는 음악에 대한 추억, 서경식 선생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윤일상, 말러와의 인연, 음악에서 비롯되었으나 삶으로 사회로 뻗어나가는 질문과 고민들이 담겨 있다.

두 사람의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화를 듣고 있자면, 나는 어느새 세 번째 동반자가 되어 이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진다. 이날의 인터뷰도 그런 ‘대화’가 되길 바랐다. 음악과 우리를 둘러싼 것들에 대해 서경식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를 옮긴다.


대량소비사회로 치닫는 한국, 걱정돼


Q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렸을 때, 책으로만 뵈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한국에는 자주 오시나요?

(서)
종종 들러요. 올해는 6월, 9월에도 왔고, 이번 방문이 세 번째에요.

Q 일본 동경경제대학에 교수로 계시죠?

(서)
네. 오해를 하시는 분이 있는데, 동경경제대학은 동경대와 관계가 없어요. 서울대학교와 서울 경제대학교가 따로 있는 셈이지요. 저는 ‘현대법학부’에서 인권, 소수자 문제를 강의하고 있어요. 거의 대다수가 일본학생들이고요. 변호사가 되고 싶지만, 그게 어려워서 공무원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Q 한국에 오시면 어떠신가요? 올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점이 있는지요?

(서)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바뀌는 것 같아요. 제가 3년 전에 안식년을 맞아, 한국에 2년간 체류했어요. 그때 길 건너는 일이 어려웠는데, 이번에 보니 길가에 횡단보도가 많이 생겼더군요. 이 정부가 하나 정도는 좋은 일을 한 것 같아요.(웃음) 일본은 3월에 원전 사고가 있어서, 도시가 어두워요. 절전하고 있어요. 한국은 전력소비 1, 2위 나라죠. 모든 것이 반짝반짝 하는데 너무 소비적이에요. 모든 것을 대량 소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 정부가 ‘더 소비하자’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으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건설회사 출신이죠? 그런 점이 걱정이 되네요. 지난 번 체류했을 때, 대선이 치러졌는데, 그때 많이 걱정했어요.

Q 어떤 점을 가장 염려하셨나요?

(서)
한국이 대량소비사회로 가고 있는 점을요. 노무현 정부 때는 사회가 조금 자유로워진 분위기였어요. 지금은 반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이 느낍니다. 예를 들어, 과거사 청산, 국가 보안법 폐지, 이런 일들이 5년, 6년 전만 해도 중요한 이슈였는데 지금은 아주 잊어버린 것 같이 보여요. 남북 관계도 그때보다 아주 어려워졌고요. 걱정하고 있어요.


좋은 음악에 다가가는 방법


Q 1992년 『나의 서양미술순례』가 출간되었고, 근 20년 만에 『나의 서양음악 순례』가 나왔어요. 실체가 없고, 느낌만 있는 음악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음악에 대한 글을 쓰시면서 나름의 즐거움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서)
음악이라는 대상을 어떻게 쓸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악보를 분석하거나 음악사에 대해 얘기할 수는 있지만, 그런 책은 저에게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F라는 사람을 등장시켰어요. 각자 음악에 대해 갖게 된 감정을 나누고, 대화하고 싸우는 식으로 그 음악이 어떤 음악이었는지 알려주는 방법을 선택했어요. 그걸 읽으면서 독자가, 저와 F의 제 3의 동반자로 들어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Q 그런 의도라면 잘 전달이 된 것 같아요.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음악의 분위기나 풍경이 상상되었거든요. 두 분과 함께 거니는 느낌이었어요. ‘클래식은 어렵다’, ‘알아야 듣는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요. 선생님도 ‘내가 클래식을 즐길 수 있을까?’하는 긴장감이 있었다고 하셨고요. 그 긴장감이 클래식을 즐기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서)
클래식은 저에게도 어떤 계급이나 특권층의 전유물이었어요. 외부자로서 음악 앞에서 어색하게 소외당할까봐 두려워하는 콤플렉스가 있었지요. 하지만 동반자 F가 그렇지 않다고, 저를 강력하게 이끌어주어 그 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클래식 음악이 어렵다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이에요. 훈련과 교육이 필요해요. 필요도 없는 심리적 장벽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니) 이때까지 겪을 수 없었던 재미있는 세계를 경험했습니다.

Q ‘좋은 음악, 좋은 연주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선생님께서 책 속에서 물으셨죠. 답 없는 질문이라고 하셨는데, 오래 고민하셨던 선생님께서 힌트를 주신다면요?

(서)
일단 객관적인 척도가 있죠. 유명한 음악가의 음악이라든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 단체나 예술가의 연주라던가, 그런 것이 좋을 거에요. 이런 얘기가 일리가 있어요.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작곡가와 연주가 있었는데 이때까지 살아있어서 유명한 거니까요. 다만, 그것을 다시 한번 자신의 주관으로 검토하고, 자신의 감성으로 받아들여야 해요. 유명하니까 좋다. 이런 게 아니라. 유명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거나 지루하다거나 그럴 수도 있으니까요.

만약 우리가 세계적인 연주를 시시하게 느꼈다면 ‘아, 내가 잘 몰라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해서다.’ 생각해버리죠.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의 감성, 감수성을 충분히 믿어도 된다는 거죠. 그게 어려워요. 선입견이나 기존의 관념을 해체해나가면서 음악을 듣는 태도가 필요해요. 남들의 의견에 합의하거나 동조할 필요가 없어요. 제가 F한테 배운 것은 그거예요.


Q 그렇군요. 음악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선생님이 최고로 치는 음악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어요. 맨 뒷부분에 ‘나와 F가 뽑은 성악과 관현악 베스트3’ 부록이 있어서 무척 재미있었고요. 이런 음악 파트너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지요.

(서)
좋은 얘기에요. 음악을 즐기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대화를 나누는 거예요. 일본에서는 음악에 대한 얘기 조차도, 자기 감성을 남에게 드러내야 하니까 부끄럽다고 생각해요. ‘아, 당신 그런거 좋아해?’ 이런 반응을 얻으면 어떡하나,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요. 사실 음악 연주회를 다녀와서 음악 얘기도 없이 식사만 하고 헤어지는 게 보통이잖아요. 음악에 대해 얘기하면, 서로의 감성의 차이라던가 어긋나는 지점이 드러나니까 본능적으로 회피하는 것 같아요. 솔직한 감정을 나누는 게 힘들긴 하지만, 좋은 음악이 무엇인지 남에게 묻고, 자신에게도 따져보는 일이 좋은 음악에 다가가는 방법입니다.


지식인의 고독… 윤이상 선생께 묻고 싶었다


Q 윤이상 선생님이 서양음악에 매혹된 계기가 이 책에 담겨 있지요. 혹시 선생님은 서양음악에 처음 매혹되었던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서)
윤이상 선생님은 전통 음악을 배우며 자랐고, 학교에 가서 처음 오르간을 보고 ‘앗, 이런 것이 있구나’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세계를 만났죠. 저는 그와 반대예요. 일본에서 음악교육은 서양음악을 바탕으로 하거든요. 그러니 저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죠. 그런데 오히려 윤이상 선생의 음악을 만났을 때 ‘아, 전혀 다른 음악세계가 있었구나’ 느꼈어요. 재일 조선인인 내가 오래 전에 잃어버린 그런 음악세계의 발견이 있었던 거죠.

Q 윤이상 선생님과 인터뷰 약속을 잡았지만, 안타깝게 성사되지 못했다는 사연이 나와요. 그때 윤이상 선생님을 만나 꼭 여쭤보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서)
윤이상 선생의 『상처입은 용』은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책입니다. 윤이상 선생이 동백림 (간첩단) 사건으로 고생을 겪고, 회복되었을 때까지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그 이후 해외운동에 몸을 바치고, 작곡도 했던 80년, 90년대 얘기가 그 책에 나오지 않아요. 그 얘길 듣고 싶었어요. 윤이상 선생은 대체 민중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동백림 사건을 겪고 난 뒤, 그의 음악에는 인간세계의 불안이라든가 공포가 많이 담겨 있어요. 공포나 불안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은, 나약한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인간은 보통 그런 상황에 처하면, 공포를 외면하고 근거 없는 낙관으로 살려고 해요. 이를테면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났는데, 원전 사고현장에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외면하려고 해요.

윤이상 선생은 정신적으로 강인하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바탕에 깔린 불안에 대한 음악을 했던 거죠. 일반 사람들은 낙관적으로 살고 싶어하니까, 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이것이 선구자나 뛰어난 예술가들이 겪어야만 하는 고독, 고립된 상태예요.

아우슈비츠 층언자 프리모 레비도 마찬가지죠. 아우슈비츠에서 귀환해서, 또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사람들이 들어주지 않았어요. 아무리 얘기해도 사람들이 들어주지 않고 외면할 때, 보통은 포기하고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죠. 하지만 선생은 달랐어요. 대체 무엇을 믿고, 무엇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작곡을 했는지 저는 궁금했어요. 그런 뜻에서 민중을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여쭙고 싶었어요.



Q 앞을 내다보려는 지식인, 예술가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고독일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 역시 그런 고독을 갖고 있지 않으실까 싶어요.

(서)
저는 뛰어난 사람은 아닙니다만(웃음) 지식인으로서의 고독이 있죠. 자주 그런 느낌이 들어요. 특히나 저는 일본 사회에서도 ‘소수자’니까요. 그래서 보이는 여러 가지 위태로움, 위험, 불안이 있어요. 경계에 있으니까 양쪽이 보이고, 주변에 저와 감수성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더욱 예민하게 느끼기도 하고요. 그래서 더욱 윤이상 선생께 가르침을 얻고 싶었어요. 저도 아주 때때로 힘들 때가 있거든요. 일본뿐 아니라 여기서도 말이죠. 끊임없이 얘기하지만, 과연 전달이 되었을까 하는.

Q 선생님, 스스로를 정의하신다면, 선생님을 어떤 주의자(ideologist)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서)
저 자신은 모르겠지만, 자주 회의주의자라고 불립니다. 회의주의라든가 세상 사람들에게 권고하는 것은 나약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모두가 믿고 있는 것에 ‘과연 그럴까?’ 질문을 자주 던지는 것이 나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의주의자인가보다 하죠.(웃음)

Q 윤이상 선생님이 음악적 스승처럼 그려져 있는데요. 그분과의 만남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로 남아있나요?

(서)
윤이상 선생을 실물로, 살아있는 존재로 만난 게 제게 정말 큰 영향을 끼쳤어요. 윤이상 선생은 별로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나 같은 젊은이가 다가갔을 때 별로 많은 얘기를 해주지 않았고요. 제가 찾아가도 ‘무슨 일이야, 뭐 때문에 왔어’라고 한 두마디 뿐이셨어요. 제 얘기를 가만히 들어주시되, 이래라 저래라 한번도 얘기하신 적이 없죠.

윤이상 선생은 우리와 삶의 척도, 삶의 기준이 달랐어요. 보통 사람들은 자기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죠. 선생님은 자기 삶의 척도뿐 아니라 예술이라는, 삶보다 훨씬 긴 척도가 있었어요. 저는 그 경지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척도는 시작도 끝도 없고 영원한 것이죠. 사람들에게는 최소한 세 개의 척도가 있어요. 일상생활, 예술, 정치.

동백림 사건 때문에 감옥에 있을 때도, 선생은 작곡을 하세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런 모습을 볼 때, 이 사람이 우리보다 건강한지 강인한지는 알 수 없어도, 우리에게 없는 어떤 척도를 가지고 있구나 알 수 있죠. 그런 사람은 상상 속에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만나니 경탄스러웠죠. 만나서 별로 얘기하지는 못했지만, 선생님의 존재를 느끼고 싶다. 늘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음악(연주)은 책과 그림과 달리 사람이 개입되어 있고, 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네요.(웃음)



비주류의 삶에서 누릴 수 있는 다른 즐거움


Q 재일교포로 한국을 바라볼 때, 가장 낯선 점이라면 무엇인가요?

(서)
부정적인 측면부터 보자면, 모든 것이 경쟁적이에요. 점점 심해지고 있고요. 일본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속도가 이처럼 빠르지 않아요. 사회가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될까 싶어요. 긍정적인 점을 말하자면,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해요. 이 사회에는 그런 기능이 남아있어요.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사안에 자신의 의견을 별로 얘기하지 않아요. 누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그 일이 정해졌는지도 모른 채로 일이 진행되고 있어요. 지난 번 시장선거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한국은 그런 측면으로 아직 가능성이 있고, 좋게 보고 있어요.


Q 예술의 전당’이라는 직설적인 작명에서 한국인의 기질을 알게 됐다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질을 발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서)
한국 사람의 기질이라는 말은 조심스러워요.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니까요. ‘예술의 전당’이라는 말은 객관적인 말이에요. 자기 스스로가 쓰는 말이 아니죠. 청중이나 손님이 ‘이곳은 예술의 전당이구나’ 하는 거지, 건물 스스로 ‘예술의 전당’이라고 말하고 있는 게 신기했어요. 여러 나라 음악홀을 다녔는데, 이렇게 직선적인 이름은 없었거든요. 뮤직회랑, 음악협회, 회관 이런 식이죠.

제가 알기로는 ‘예술의 전당’이 전두환 정부 시절에 세워졌어요. 나라가 국가 사업으로 문화를 다룰 때 이런 경우가 많아요. 우리가 ‘예술의 전당’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과시하는 거죠. 이건 한국인의 기질이라기보다, 과거의 국가주의적인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것도 그저 외부인의 시선으로 느낀 낯섦일 뿐입니다.


Q ‘재일 조선인으로 있으면, 일본 사회 속에서 주류가 될 수 없다는 걸 일찍 자각했다’는 말씀을 예전에 하셨어요. 이러한 생각은 성장기 때 선생님께 어떠한 영향을 미쳤나요?

(서)
주류가 될 수 없다는 건 지금도 기본적으로는 갖고 있는 생각이에요. 주류와 비주류가 있는 사회 구조 자체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라고 할까요. 비주류의 삶에는, 주류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고, 즐거움도 있어요.

주류에게 오직 성공과 실패의 척도가 있다면 우리에겐 주류가 없는 또 다른 척도가 있는 셈이죠. 세계 곳곳에, 주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죠. 세계 전체로 보면 그들도 다수파에요. 사회에서는 소수자지만, 그런 사람들끼리 서로 소통하고 힘을 모아 나아갈 길이 있다면, 결국 슬픈 존재가 아닐 거예요.

물론 비주류적인 삶은 힘들고 고통스러워요. 어떤 소수자 뿐만 아니라, 양극화 사회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해요. 취직하는 것 밖에 자신의 전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취직이 안되면 절망적인 삶을 산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여기에 또 다른 척도가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어요. 제가 대학에서 가르치려는 게 이건데, 어려워요.

이제는 세대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젊은 세대들이 제 책을 읽었으면 하는 이유도 그거예요. 단순히 미술, 음악에 대한 흥미뿐 아니라, 새로운 척도를 모색하기 위해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거죠. 주류로서 성공하는 것 이외의 다른 삶의 방식, 그 의미를 모색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원전사고 문제, 기존의 사고방식으로 다뤄서는 안돼


Q 앞서 윤이상 선생님의 척도 말씀을 해주셔서 인지, 잘 와 닿는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은 요즘 어떤 일에 가장 큰 관심을 쏟고 계신가요?

(서)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은 원전, 방사능 사고죠. 원전 사고는 방사능 문제이기 때문에, 실제로 나쁜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건 20년, 30년 후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척도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문제죠. 미래 세대는 자신의 책임도 없고, 상상도 못한 이유로 병을 앓게 되거나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어요.

이제까지의 삶의 척도를 넘어선 문제인데, 사람들은 기존의 척도로만 생각해요. 돈벌이를 잘하거나, 다른 나라와 경쟁하려는 짧은 척도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개개인의 불안을 외면하고 싶은 나약함도 합쳐진 거죠.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3개월 정도는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가졌는데, 이제는 거의 관심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많이 걱정스러워요.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땅에 앞으로 태어나는 아기들에게도 나쁜 영향이 있어요. 지금 것도 있는데, 중국에도 있고 한국, 북조선에도 있고 러시아, 일본에 있죠. 동아시아의 이런 것은 외면하고 방치하면 안될 상황인데도 사람들이 관심을 잃어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지금의 문제를 직시하고 자각해야 해요. 일본에서는 방사능 수치가 얼마면 안전하고, 얼마면 안 된다. 그런 얘기만 하고 있는데, 이 문제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는 거죠.


Q 이와 관련해 선생님은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서)
주로 이런 주제의 글을 쓰고. 강연도 합니다. 경남 합천에 히로시마 피폭 2세, 3세가 살고 있어요. 내년 3월에 합천에서 평화세계대회가 열려요. 거기에 제가 강연자 중 한 사람으로 참석할 예정이고, 5월에는 도쿄경제대학교에서 학술심포지엄을 열 예정이에요. 이 문제가 저의 가장 큰 관심사예요. 제 나이가 예순이니까, 앞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간이 그렇게 길진 않아요. 당분간 몇 년 간은 이 문제에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Q 앞서 말씀하신 대로 한국의 젊은 세대는 일찍부터 경쟁사회 속에서 성장했어요. 부모님에게서 독립하는 일이 어렵고,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많이 듣고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서)
인생에 복수의 척도를 가집시다. 이를 테면, 음악이라는 것은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아니에요. 전문가들의 특권, 지배에 항복하지 마세요. 너는 전문적인 지식도 없이 얘기한다고 억압하잖아요. 이런 것에 겁먹을 필요가 없어요. 나도 똑 같은 전문가가 되야지 생각하지 말고 다른 척도를 가지세요.

‘나는 나다. 나는 이렇게 산다. 너희들은 모르는 즐거움이 여기 있다.’ 예술에도 있고, 문화에도, 사회 속에도 그런 즐거움이 있어요. 그렇게 하면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죠. 하나의 척도만 놓고, 그 척도를 전문가들이 점유하니까, 승자/패자로 구분되어 홀대를 당하게 되죠.


Q 선생님 역시 초반에는 ‘내가 클래식도 잘 모르고, 감상할 줄도 모른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책까지 쓰게 되셨잖아요. 새로운 척도를 세우신 거죠? 이건 동반자 F 덕분이겠군요.(웃음)

(서)
저 사람은 척도 자체가 없어요.(웃음) 예비지식이나 선입견이 없어요. 자신의 감성에 끝까지 충실한 사람이에요. 어쨌거나 저에게는 다른 척도의 사람이 옆에 있는 셈이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이해해주는 사람보다 힘들지만(웃음) 재미있어요.

아예 척도 없이 사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웃음)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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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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