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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인 사랑?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 선물! - 『4월의 물고기』 권지예

‘운명적인 사랑은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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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 사랑해. 기억하는 모든 것이 사랑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의 심연 속에서 사랑은 마음을 뒤흔들고, 일상을 송두리째 바꾼다. 그런 면에서, 사랑은 언제나 불온한 것도 사실이고.

모든 만남은 우연이지만, 그 모든 우연이 인연이 되는 것, 아니다. 만남이 몇 번 있었다면, 서로의 기억에 그 만남이 지리멸렬하다면, 그건 아무 일도 아니다. 아니, 아무 일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딱 그만큼일 뿐이다. 말하자면, 그저 흘려도 좋을 만큼의 만남. 인연, 특히 사랑이라면, 그저 만남에서 끝나면 안 될 일. 만남, 즉 우연이라는 씨줄, 운명이라는 날줄이 엮여야 가능한 사건이 바로 사랑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랑은, 다 운명적이냐. 그렇지도 않다. 각자의 사랑에 ‘운명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은 마음이야, 인지상정이지. 그렇다고 ‘운명’을 남발할 순 없지 않겠나. 운명이 무슨 운명이라고, 세상 모든 사랑을 수식할 만큼 한가하거나 저렴해선 아니 되는 법. 운명도, 알고 보면 바쁘다.

운명을 가늠하는 한 가지 요소. “결국 중요한 것은 기억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이야말로 운명의 열쇠다. 지나쳐버린 수많은 만남이 운명적이 되는 건 그것을 기억하는 자들의 몫이다. 두 사람이 설령 과거 어느 순간 만났다 치더라도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 만남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이든 인생의 주인공이든 기억을 찾아야 한다.”(pp.290~291)

『4월의 물고기』(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 펴냄)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기억해, 사랑해. 기억하는 모든 것이 사랑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의 심연 속에서 사랑은 마음을 뒤흔들고, 일상을 송두리째 바꾼다. 그런 면에서, 사랑은 언제나 불온한 것도 사실이고. 이 넓은 세상 위, 길고 긴 시간 속, 수많은 사람들 중, 너를 만나 사랑한다는 것. 그것만큼 불가사의한 일도 없다.

여기 불가사의한 일이 있다. 근심이 많고 두려움도 많지만 일단 누군가를 믿고 사랑하면 그야말로 천진무구해지는 여자. 사랑이 깊어지면 사랑에 대한 확인에 가슴을 졸이는 것뿐이지 사랑하는 사람의 주변이나 조건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여자, 서인. 비밀을 한 아름 가득 품고서 모진 세월을 꾸역꾸역 버텨오면서 자기 안의 자기와 맹렬하게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남자. “난 기억하고 싶지 않아. 지금 사랑하는 당신이 전부야.”라고 말하는 남자, 선우.

『4월의 물고기』는 서인과 선우, 두 사람의 사랑을 통해 묻는다. “이래도 사랑할 수 있어?” 두 사람의 사랑, 그러니까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가미한 운명적인 사랑으로 치장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각자에게 사랑의 본질을 묻고 싶은 작가의 의도. 아직도 운명적인 사랑을 믿으며, ‘운명적인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고 노래하고픈 권지예 작가를 지난 11일, 그의 집필실이 있는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만났다.

그러니까, 권 작가는 『4월의 물고기』를 통해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을 게다. “선우를 만나 절대적으로 행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미래의 행복도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서인은 선우와의 인연이 특별하다는 느낌은 분명했다. 이런 ‘불구하고’의 사랑은 어쩌면 불구의 사랑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이걸 사랑이라 하지 않는다면 뭐라 이름 붙일 수 있을까.”(p.277)


(필자 주. 스포일러로 간주될 만한 내용이 있습니다.)

계간지와 웹진에 연재된 소설이었다. 연재하면서 장단점이 있었다면.

동시 연재는 아니었고, <자음과모음> 계간지 창간 다음 호부터 연재 제안을 받아서 시작했다. 인터넷은 4회 막바지에 인터넷서점에서 재수록을 요청해서, 이미 나온 것을 순차적으로 연재했다. 인터넷 연재는 재수록이라, 다른 인터넷 연재와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고 봐야지. 어쨌든 연재가 쉽지는 않았다. 리듬도 깨지고 시간은 시간대로 늘어지고 했지만, 연재를 안 했으면 (소설을) 못 썼을지도 모른다. 3년 전에 처음 손댔다가 (중간에) 놔둔 상?였는데, 연재를 하다 보니 끝을 낸 거다. 연재가 나처럼 자기 관리력 없는 사람에겐 참 힘든데, 보통 마감 호르몬이 나온다고 하잖나.(웃음) 힘 한 번씩 다섯 번 힘주니까 되더라.

사는 일이 막막하고 쓸쓸해서 쓰기 시작한 소설이라고 했다. 마침표를 찍었을 때 기분과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은 소회는 어떤가.

처음 쓸 때 막막했다. 다만 그때는 슬럼프였다. 소설을 쓰고 싶은데, 여태까지 하던 식으로 진부하게 쓰지 말고 다르게 쓰고 싶었다.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토지 문학관에 가서 놀다가 썼는데 진척이 안 되다가, 연재하면서 마침표를 찍었다. 해냈구나, 하는 뿌듯한 만족감이 들었다. 책으로 낼 때는 그전에 쓰던 방식과 달라서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우려 반 기대 반이었다. 설렘도 있었고.

‘쁘와쏭 다브릴’(4월의 물고기), 재밌는 제목이다. 뭘 뜻하는지 책에도 있지만, 이에 얽힌 기억이 있을 것 같다. 맞나? 아니면 제목을 쓴 이유라도?

그냥 기억은 단순하다. 프랑스에 가서 프랑스어도 잘 못할 때, 4월1일이 됐다. 프랑스 친구에게 한국에서는 이날이 ‘만우절’이라고 했더니, ‘쁘와송 다브릴(4월의 물고기)’이라고 하는 거다. 무슨 상관일까 싶어, 왜 그렇게 부르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모르겠다고 하더라.(웃음) 애들이 놀릴 때, 등에 붙여서 속이고 좋아하는 그런 거다. 골려주는 거지.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땐데 그렇게 하면서 논다고 그러더라. 물고기라는 단어가 들어가면서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내 안에 묻혀 있었는데, 처음부터 이 제목이 떠오른 건 아니었다. 연재 전에는 제목이 없었지. 연재할 때 제목을 달아야 하니까 고민을 했는데, 선우가 낚시하는 장면이 나오고, 물고기의 느낌이나 상징 같은 게 들어갔으면 싶더라. 그 와중에 ‘4월의 물고기’라는 단어가 자꾸 떠올랐다. 뭔가 신비로운 것 같아서 일단 제목으로 쓰자. 인연이란 게 그렇잖나. 낚싯줄을 던져 그 많은 물고기 중의 하나를 낚는 것에는 특별한 교감이나 인연이 있는 것 같고. 운명적인 상대를 만났을 때 저릿하는 그런 것. 4월의 물고기가 바보 같은 사랑이라는, 주인공의 성격이나 운명성을 상징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목을 그렇게 썼다.


말씀 그대로, 운명적인 사랑의 이야기다. 추리 기법을 차용해 이를 두드러지게 나타냈는데,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원래 엽기적이고 무시무시한 얘길 좋아하는데, 본격적으로는 못 쓰겠더라. 그런데 소설을 쓴 지도 10년이 넘었고, 뭔가 색다르게 변신하고픈 욕구도 생기고, 기존의 글쓰기가 지겹고 잘 안 되는 느낌도 있었다. 그래, 사랑 이야기를 쓰자. 운명적인 사랑을 쓰자. 남들은 불륜 얘기를 주로 쓴다고 했다.(웃음) 결혼의 어긋남, 결혼 제도의 모순, 페미니즘 계열의 그런 소설을 썼으니까, 이번에는 사랑 이야기를 쓰자고 했다.

그런데 내 나이엔 알콩달콩하기만 한 사랑이 예뻐 보이지는 않는데, 운명은 진부한 얘기가 될 것 같아서 고민했다. 운명 같은 사랑이라면, 대개 수채화 같은 얘긴데 내 성격에 안 맞고. 방법론을 고민하다 보니 미스터리가 가미됐다. 사실 사랑에 빠지는 것 자체가 미스터리한 사건이잖나.(웃음) 그 자체가 첫 번째 플롯이 된 거지. 주인공 둘 다 미스터리한 인물이면 더 재밌겠다. 주인공을 미스터리하게 상상하다 보니 성격도 그렇게 됐고, 스릴러를 기본으로 해서 나가게 되니 겁은 나더라. 사랑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욕 된통 먹으면 어쩌지. 그렇게 고민하면서도 해보자고 했다.(웃음)


앞선 『퍼즐』에서도 추리적인 요소를 집어넣은 바 있다. 순수 작가가 장르 소설을 좋아하면 격이 낮아질 거란 강박도 있었다지만, 슬슬 떨쳐버리는 것 같다. 탐정 소설이나 본격 추리 소설도 곧 쓰는 것 아닌가?

쓰고 싶었다. 추리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갖고 있는데, 한 번에 CSI를 쓰긴 어렵고 과도기적으로……. 『퍼즐』 같은 경우에도 그런 요소가 있지. 반전도 있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가기도 하고. 단편은 맛만 보여주자고 했다. 한 번은 제대로 써보자. 다음에는 그런 추리 요소가 아주 짙은 걸 쓸지도 모른다. 물론 방향은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 본격 추리물을 써야지, 아가사 크리스티가 돼야지, 그런 건 아니고. 그렇게 써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주제나 소재가 맞아떨어지면 강렬하게 써 볼 것 같다.

기대하겠다.(웃음) 등장인물의 이름을 보면, 서인과 선우. 성별을 가늠하기 어렵고, 자음과 모음의 위치가 약간 바뀐 거다. 두 사람의 운명성을 강조하기 위함인가?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렇게 깊은 뜻은 없었다.(웃음) 그냥 중성적인 이름을 쓰고 싶었다. 사람 안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있고, 선과 악도 공존하고 뒤섞여 있는데, 여성성이나 남성성이 강한 이름을 쓰고 싶진 않았다.

결말에 대해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어떤 고민이 있었나.

고민, 많았다. 버전이 많았던 건 아니고, 잔인하고 죽고 이런 거여서. 어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선우가 자기 안의 인격이 두 개 있잖나. 운명적이고 지고지순한 사랑 얘기를 하기 위해선 선우가 서인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부각해야 했다. 다른 인격이 나와서 서인도 헷갈리고 불안할 텐데 선우가 서인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사랑하는 남녀들이 ‘죽을 만큼 사랑해.’라고 하는데, 그런 말 함부로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웃음) ‘죽어도 좋아.’도 마찬가지지. 인간이 진짜 사랑을 그 정도로 생각하는지,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그런 의미도 있었다. 소설이니까 가능하겠지만, 죽음으로서 사랑을 보여준 거잖나. 그 말을 실천한 거지.(웃음) 현실에서는 그럴 수 있는 사람, 별로 없을 거다.


책을 보면서 호기심이 일었다. 서인이 쓰고자 했던 소설의 첫 대목이자 제목이, “당신이 나를 사랑하게 되던 날을, 그날을 혹시 정확하게 기억하시나요?”다. 그런 제목의 소설을 진짜 쓸 생각은 없나.

처음에는 그걸 제목으로 쓸까 생각도 했다. 왜냐면 본격적인 이야기 전에 두 주인공이 서로 예전에 만났던 운명인지 모르고 반복적으로 만나면서 인생을 좇아온 것 같은 그런 뉘앙스로 썼다. 대개의 연인들은 서로 운명이라고 느끼잖나. 나를 만나기 위해 태어나고 좇아왔나 봐, 그런 식의 에피소드도 생각나서, 그거라고 쓸까, 약간 고민했다.(웃음)

비밀과 의혹이 서인을 불안과 의심의 지옥으로 이끌면서도, 서인은 거기에 또한 끌린다. 소설 속 표현을 빌리자면, ‘불구하고’의 사랑인데,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권지예의 입장도 비슷한가?

그런 게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이성적으로 따지고 조건을 많이 생각하는데, 이러저러해서 좋아한다는 건 영리한 사랑이 아닐까. 조건이 안 맞으면 헤어질 수도 있는 거고. 물론 그런 걸 쿨한 사랑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운명적인 사랑은, 사랑해서는 안 되고 불행할 것 같다고 생각은 들어도, 거부할 수 없는, 끌리고 늪에 빠진 것 같은 게 아닐까.

서인은 운명적인 사랑을 조롱하고 싶었으나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여자다.

나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다. 그렇다고 운명적인 사랑이 아무한테나 오지는 않는다. 누구에게나 운명이 받아야 될 선물처럼 오는 건 아닌 것 같다. 운명적인 사랑도 사람 가려 가면서 선물을 줄 것 같다.(웃음)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올 것 같다. 기다리는 사람은 순수하다고 본다. 그렇게 순수성을 간직한 사람한테는 운명적인 사랑이 올 것 같다. 성경엔 어린아이에게 천국이 보인다고 하듯이, 운명을 볼 수 있는 사람도 따로 있는 거지.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 본연의 순수성을 되찾고 그럴 필요성도 있지 않을까. 젊은 사람들에게 그런 얘기도 하고 싶었다. 나이가 나 정도 되면 때가 묻어서 때 묻은 사랑을 할 수밖에 없지만.(웃음) 운명적 사랑이 있지만 쉽진 않다. 사랑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조건 따지고 영악하게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소설을 보면서, 카슨 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의 한 대목도 떠올랐다. “사랑받는 사람은 배신자일 수도 있고 머리에 기름이 잔뜩 끼거나 고약한 버릇을 갖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랑을 주는 사람도 분명히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지만, 이는 그의 사랑이 점점 커지는 데에 추호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어디로 보나 보잘것없는 사람도 늪지에 핀 독백합처럼 격렬하고 무모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혹시, 읽어봤나.

옛날에 봤다. 몇십 년 전, 20대 때 읽었는데, 하도 오래돼서 세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고, 알게 모르게 그런 느낌은 내 속에 있지 않았나 싶다. 끌리는 사람을 만나면, 약간 객관적으로 봐서 아니더라고 연민을 자극하거나 따뜻하게 하고 싶고 그러잖나. 굳이 사랑이 아니라도, 사람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고.

책에 ‘사랑은 행복한 우연이고 불행한 우연은 죽음이다.’라고 있다. 죽음을 마냥 불행한 우연이라고만 말하진 않는 것 같다. 죽음을 뛰어넘은 사랑이 있으니까.

독자 중에 묻는 분들이 있다. 이 사람들을 죽인 게 어떤 의미냐. 우연은 아닌 것 같고 필연적인 운명의 결과인 것 같다. 죽음을 함부로 하는 게 아니고, 고통 속에서 죽음을 선택한 거다. 서인도 그것을 승화시킨 거고. 마지막 순간까지 의심을 해도 진심을 알게 됐을 때 서인이 느끼는 감정이 그랬을 거다. 영혼이 가질 수 있는, 죽고 나서도 상대방의 살아있는 영혼에게 미치는 사랑의 위대함 같은 거.

‘쇄골 절흔’ 얘기가 많더라.(웃음) <잉글리쉬 페이션트>도 언급하고.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되게 인상적이었나 보다.

좀 그랬다. 요즘 쇄골 미인이 뜨긴 하는데, 그걸 의식한 건 아니고.(웃음) 쏙 들어간 부분이 신체 부위 중에서 독특한 부분이고 급소다. 누르면 꽉 막히잖나. 상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성기 이상의 죽음을 부를 수 있는 치명적인 부위이고. (쇄골 절흔을 누르면서) 지문 인식기 같이 생겼다. 선우도 서인의 거기에 끌리는데, 맥도 뛰고 살인마에겐 유혹의 장소다.

낚시는 소설의 주요 키워드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낚시는 어떻게 소설에 넣을 생각을 했나. 낚시와 사랑의 공통점이 있다면.

누굴 따라가서 낚시를 해 봤다. 그 손맛을 잊지 못해 낚시를 하는 것 같더라.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지만, 가는 낚싯줄을 통해 생명과 생명 사이의 떨림이 느껴지더라. 물밑 세계와 지상 세계, 세계도 다르고. 물고기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존재인데, 생명의 신호를 아주 가는 줄을 통해 느끼면서 그게 꼭 인연의 줄 같더라. 만날 사람은 꼭 만나게 되고, 낚시를 통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더라. 낚시와 사랑의 공통점은 그런 거지. 그 사람과 내가 낚싯줄 같은 선으로 연결돼 있는.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신이 보기엔 선으로 연결돼 있을 것만 같다. 생명의 인연줄과 같이 낚시는 인연의 비유라고 할 수 있다.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느냐. 왜 그 고기가 낚여야 하느냐. 운명성, 인연 같은 것들.


처음 낚싯대를 잡아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낚시를 좋아하시나. 본격 낚시 소설을 쓰실 계획이라도?(웃음)

한때 조금 가본 적이 있다. 음, 낚시 자체의 재미보다는, 소설가들은 뭐든 깊이 빠지면 안 좋다.(웃음) 모르는 세계를 접하면 깊이 빠지기 전에 어떤 색다른 느낌이 떠오른다. 배우는 걸 오래하지도 않지만, 석 달 이상 못 배우겠더라. 소설적인 영감만 떠오르고. 그러면 글로 쓰고. 수영도 두 달 하다가 그만뒀는데, 소설을 한 편 쓰고는 더 이상 수영하기도 싫고, 배우기도 싫은 거 있지.(웃음) 탱고도 배우러 간 적이 있다. 오래 배웠으면 춤꾼 됐을 텐데, 욕망의 춤이구나 하는 느낌이 오더라. 문외한에겐 그렇게 엉뚱한 게 보이는 거지. 결국 소질도 없고 그만뒀지만. 낚시도 몇 번 해보니까, 그 느낌은 새로웠다.

이중성. 누구에게나 있는데, 두드러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이성으로 억누르기도 할 테고. 권지예의 ‘지킬과 하이드’도 얘기해 줄 수 있나.

지킬과 하이드처럼 강렬한 건 아니지만, 성격이 양극단적인 면은 있다. 날 보고 온화하다, 조용하다, 얘기하는 분들이 많지만, 반면 되게 대범할 때도 있다. 겁이 없을 때지. 외려 큰일이 벌어지면 굉장히 침착하고 겁이 없어진다. 보통 때는 소심하고 걱정이 많은데 말이다.(웃음) 극단이 있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지닌 선우에게 작가가 무한 연민을 보내고 있다고 느꼈다. 서인보다 선우에게 더 깊은 애정을 보인 것 같?데?….

더 애틋하게 생각한 것은 있었다. 서인은 그냥 착한 여자다. 난 그렇게 안 착하지만.(웃음) 선우가 애틋한 느낌이었던 것은, 자기 안에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자기 운명의 덫에 걸려 있잖나. 저주받은 영혼이라 극복도 안 되고. 낮과 밤이 바뀌면서 병든 인간이잖나. 그래서 안 됐고, 애정이 있었던 것 같다.

에스프레소나 독주 등 강하고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기질과도 혹시 연관이?(웃음)

많은 독자들이 소설이 강렬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신다. 그런 강렬한 것을 좋아하는 독자 마니아가 있는 것 같다. 성격도 사실 뜨뜻미지근한 것을 싫어한다. 포인트가 분명하고 명확한 걸 좋아한다. 반전도 좋아하고. 강렬한 걸 좋아해서 내가 왜 그런가 생각해 봤는데……. 기질이나 식성과 관련돼 있지 않을까. 맥주, 못 마신다. 보드카나 중국술, 좋아한다. 독한 술이지. 그런 술을 마시면 많이 마시지 않아도 효과적으로 취하잖나. 목구멍 강렬한 자극.(웃음)

프랑스, 권지예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같다. 이번 소설에서 선우는 프랑스에 입양된 과거가 있다. 프랑스, 권지예에겐 어떤 곳인가.

첫 소설집을 낼 당시, 프랑스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를 배경으로 썼다. 그 이후 (프랑스에 대해) 안 썼고, 한국에 온 지도 10년이 넘었다. 가끔 꿈에서 향수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 철들고 8년 가까이, 30대의 대부분, 중요한 시기를 보내서 당연히 무시할 수 없겠지.

그런데 프랑스 얘길 쓰면, 독자들이 거부감 있는 것 같다. 겉멋 들어서 프랑스 쓴다는 얘기도 있고.(웃음) 사실, 난 그곳에서 생활의 때가 묻은 사람인데 말이야. 그 이후로는 (프랑스 얘기를) 안 하게 됐는데, 귀국한 뒤 10년 이상을 한국의 역동적인 것에 적응하느라 정신도 없었다. 그래도 프랑스 모습들이 언뜻언뜻 떠오른다. 프랑스 소설을 한 번 써볼까 생각도 하고 있다. 프랑스는 단순히 1년 갔다 오고 그런 게 아니어서, 당시 (프랑스를) 떠날 때는 여길 떠나 어떻게 사나 걱정도 했다. 어쨌든 나한테는 영향도 많이 주고 밀접한 곳이다.


과거, 이방인의 느낌이 글 쓰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아직 이방인의 느낌은 여전한가.

처음에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한국에 와서 2~3년까지도 한국을 보면, 한국 사람들은 왜 이래, 이런 느낌도 들었고.(웃음) 한국의 속도에 공연히 주눅 들어서 촌뜨기 같은 느낌도 있었고. 프랑스가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생활 속도 등은 한국을 못 따라온다. 그런 게 참 낯설었다. 당시에도 한국적인 것이 생경하게 다가와서 글 쓰는 데 참 좋았다. 이방인이 그렇잖나. 외롭고 주변에 동화 못하고 거리감을 느끼면서 관찰을 하게 되지. 그게 소설가에겐 아주 좋은 자세를 준다.(웃음) 프랑스에 있으면 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를 알 것 같긴 한데, 그러면서도 왕따 당하는 느낌? 그렇게 긴장하는 느낌이 글을 쓰면 깨어 있는 느낌을 주는데, 그게 좋았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 한국 사람인 것 같아서. 딱 꽂히는 데가 없다.(웃음)

쉰이 넘으면 세계로 나가자는 목표를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잘 진행되고 있나.

마흔 다 돼서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런 결심을 했다. 10년 동안 한국에서 글 잘 쓰는 작가 축에 들자. 그러다 오십이 넘으면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살고 싶더라. 아이들이 커서 독립적인 나이가 되면, 선진국 여부를 떠나 가보고 싶은 나라에 1~2년 살면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살고 싶다는 생각. 소설가는 그게 가능하잖나. 직장인도 아니고 뭘 들고 다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되지.

시기는 됐는데, 생각만 하고 있다. 아이가 대학은 가야 할 것 같아서. 아직 좀 더 남았다. 가게 되면, 유럽이나 미국은 싫고 남미나 동남아의 조용한 방이나 집을 얻어서 산책하고 풍물도 보고, 그곳을 작업실 삼아, 글을 쓰고 싶다.


향후 계획과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계획은 구체적인 것은 없다. 지금도 매일 신문 연재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있고, 나중에 책으로 묶어 내야 할 것 같고. 그다음 책은, 지금으로서는 획을 다른 쪽으로 긋고 싶다. 이제까지 사랑, 욕망을 주제로 많이 썼다면, 앞으로는 뭐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요만하면 됐다는 느낌도 든다. 새로운 화두나 주제를 들고, 재충전하면서 새로운 소설을 쓰고 싶다. (추리 소설이나 야구 소설 어떤가?) 어쨌든 끊임없이 변신하고 싶다. 추리 소설, 야구 소설도 좋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새로운 길로 접어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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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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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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