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여름, 나는 지금 2년째 <문화일보>에 유혹이라는 신문 연재소설을 쓰고 있다. 재작년 가을, “맛있는 섹스는 있어도, 맛있는 사랑은 없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 이 소설의 끝 문장을 나는 아직 모른다. 원래 1년간 예정으로 썼던 이 소설은 독자들의 호응으로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1부 격인 연재분을 세 권의 책으로 이번에 출간하게 되었다. (p.297 <작가의 말>)
『유혹』은 그녀가 지금까지 썼던 그 어떤 소설보다 분량이 길고 파격적인 내용의 소설이다.
“어떤 비난이나 찬사도 신경 쓰지 않겠다는 각오로, 그동안 천착해 온 주제인 인간의 욕망을 이 소설에서 끝까지 밀어붙였다”며
“독자들에게도 낯선 작품을 쓰고 싶었다”는 말로 세 권의 책을 소개한다.
지난달 마지막 날,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그녀를 만났다. 여느 강연회와는 달리, 남성 독자들이 많았다. 그녀는
“이번 작품 덕분에 독자지형도가 변한 거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희귀한 남성독자들을 뵙게 되어서 반갑다” 며 웃었다. 그녀는 앞서 출간한 1, 2, 3 권의 테마는 ‘유혹은 어떻게 하는가’라면, 내년에 출간할 4, 5권은 ‘왜 유혹을 하는가’에 포커스가 맞추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책이 여러 권이라 걱정이 됐어요. 1권을 먼저 따로 사시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작가를 만나보고 더 살지 말지를 정한다는 독자분이 있어서 긴장이 됩니다(웃음).”“1권은 약간 들떠있는 분위기로 풀어놓아서, 별 게 없다고 느낄 수가 있어요. 2권을 보셔야 합니다(웃음). 복선과 실마리가 전개되죠. 이 소설을 읽고 권지예가 쓴 게 맞는 지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동명이인이 쓴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더라고요.” 그녀의 이전 소설과는 확실히 다르다. 서정적이기보다는 격정적이고, 정적이기보다 동적이다. 그러나 사람, 욕망, 여성의 정체성 등을 탐구하고자 한다는 것만큼은 그녀의 기존 작품과 다를 바 없다. 다만 그동안의 방식과는 조금 다른 톤으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프랑스 요리를 하려고 하면 퓨전식으로 할 필요도 생긴다는 것이죠. 반대의 경우인데, 프랑스에 있을 때 입양아를 대상으로 한국요리를 한 적이 있었어요. 간단한 요리 몇 개를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받고, 한국요리를 코스별로 만들었죠. 만두를 내놓기도 하고, 불고기도 하고 후식으로 수정과도 했었는데, 조금씩 변형을 했죠. 이를테면 불고기는 스테이크처럼 그들의 입맛에도 맞게.”
소설을 구상하면서 당시처럼 어떤 한 가지에 얽매이지 말고 편리하게, 입맛에 맞게 바꾸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그녀는 똑같은 주제라도 이렇게 써보고, 저렇게 써보는 게 흥미롭다고 말한다.
“『4월의 물고기』 같은 경우는 연애소설이긴 하지만 스릴러적인 요소를 넣고 싶었어요. 이번 소설의 경우 신문연재 소설이죠. 신문 연재소설의 경우 태생적인 조건이 있어요. 일일드라마의 시청률을 계산하듯이, 고려해야 하는 게 많죠.”“처음에는 독자와 신문사의 요구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어요. 걱정도 했죠. 여성작가가 성적인 표현을 세게 쓰면 어떤 반응이 있을까. 남편이나 지인들의 반응은 어떨지. 그런데 쓰다 보니 작가로서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어요. 기존에는 어디까지가 외설이고 예술인가라는 경계에 대한 고민 때문에 어느 정도 상징과 비유를 써서 문학적 포장을 써서 했었는데 그 영역을 벗어나 직접적으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이죠.”그녀는 그녀 자신 안의 욕망도 이 판타지 같은 이야기를 쓰면서 풀어진 면이 없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작가 자신 안의 욕망도
『유혹』을 읽고 있다는 것이다.
돈과 미모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문학소녀 시절 그녀는 당시의 유행에 따라 로맨스 소설에 흥미를 느꼈다.
“쓰고 싶은 욕구는 강했는데, 유치하기 짝이 없었던 시절”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얼마 전 대학노트를 발견했어요. 고등학교 때 쓴 장편소설이 노트에 빼곡히 적혀 있었죠. 제가 쓴 로맨스 소설이었어요. 그런데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 오유미였어요. 『유혹』의 주인공 이름과 같았죠. 이번 소설을 쓰기 직전, 자연스럽게 떠오른 이름이었는데, 같은 이름이었던 거죠. 이 노트를 찾고 너무나 신기했어요. 오유미를 여기서 만나다니.”그녀는
“어떤 작품을 쓴다는 것은 운명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자신의 마음속에 언젠가 써지기를 기다리는 이야기들이 있는 거 같다”며,
“마치 소설의 씨앗이 있어서 피어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오유미는 어떤 여자일까. 오유미를 만들고, 오랜 기간 품고 있는 작가 자신도
“끝을 봐야, 오유미가 어떤 여자인지, 어떤 여자였는지를 말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한다.
“다만, 밋밋한 이야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최대한 재미있게 끌고 가려고 합니다. 두 달 정도 남았어요. 결말부에 다다른 셈이죠. 다시 태어나면 오유미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대중 소설과 본격 소설에 차이점이 뭔가를 생각하면. 대중 소설이 나쁜 건 분명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폄하하는 의미에 대중 소설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도 대중 소설로서 재미있지만 이 안에 본격 소설로서의 고민이 담아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고민이기도 하고요.”그녀는 독자에게 직접 질문을 했다. 돈과 잘생긴 용모 중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독자들의 결정은 반반이었다.
『유혹』속 성공의 척도는 돈이다. 돈을 얻기 위해서 미모도 사용한다는 것. 그녀는 이러한 관점이 요즘에는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돈은 적당히 자존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면 족하고, 대신 외모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여성분들은 미모가 목적인 삶을 사는 분들도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결혼이 하나의 이데올로기였죠. 안 하면 창피한 일 같이. 혹은 반공사상처럼 말이죠. 당시는 ‘여자가 예쁘면, 시집을 잘 간다’ 정도였어요. 돈 많은 남자에 의해서 선택이 되었으니까요(웃음). 요즘에 젊은 여성들은 아마 그런 생각하지 않을 거 같아요. 오유미라는 여성을 그냥 예쁘고 남자를 잘 유혹하는 그런 여자로만 그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지적이고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싶었어요.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죠. 유혹만 하면 꽃뱀이고, 권력을 위해서 유혹한다면 ‘미실’일 뿐이잖아요. 그렇게 쓸 수는 없었습니다. 오유미의 유혹은 그 행위자체가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죠. 말하자면 ‘삶의 전술로서의 유혹’이 되겠네요.”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소설을 독자 여러분에게 중간 점검을 받으려니 좀 걱정도 된다. ‘유혹적 글쓰기’로 유혹이 끝까지 독자들의 마음을 유혹해야 될 텐데. 성능 좋은 진공청소기처럼 강한 흡입력으로 독자들을 내 소설로 한바탕 빨아들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작가는 독자를 글로 유혹하는 사람이니까. 거기다 정말 욕심을 낸다면 이 책이 완결되는 날, 나름대로의 카타르시스나 작은 감동까지 독자 여러분께 선물로 줄 수 있다면. 그 꿈이 나를 깨어 있게 해 주길 바라며 오늘 밤도 책상 앞에 앉을 수밖에. 이제 마음을 비우고 독자들과 호흡하며 이쯤에서 완주를 앞둔 마라토너처럼 다시 초심을 가다듬고 호흡을 고르고 싶다. (p.299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