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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고통스러운 삶에 차라리 폭소를 - 권지예

「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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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소는 즐겁고 반가운 선물이겠지만, 섹스의 절정에서 마치 삶에 대한 비웃음처럼 터져 나온다면 좀 곤란하다. 「폭소」에 나오는 ‘나’는 결혼 9주년 기념일 밤을 맞아 전희에 들어가기 전, 맥주로 적당히 취해 있는 아내에게 달래듯 부럽게 말한다.

 폭소는 즐겁고 반가운 선물이겠지만, 섹스의 절정에서 마치 삶에 대한 비웃음처럼 터져 나온다면 좀 곤란하다. 「폭소」에 나오는 ‘나’는 결혼 9주년 기념일 밤을 맞아 전희에 들어가기 전, 맥주로 적당히 취해 있는 아내에게 달래듯 부럽게 말한다.

“오늘만은 좀 심각해져보라구, 응? 구구단을 외워보든가, 머릿속으로 가계부를 적어보든가……” 아마 아내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느라고 그랬을 것이다. 이를 악물고 쿡쿡 웃음을 터뜨리다가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필사적으로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아픔 때문에 더 이상 몰두할 수가 없었다. 얼결에 그녀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러자 그녀는 비명 대신 참고 있던 웃음을 마구 터뜨렸다. 그녀의 양 손아귀에 내 머리카락이 제법 뽑혀 있었다. 이 무슨 슬픈 코미디인가! (『폭소』중에서)

그러니 어쩌겠는가, 끝까지 살아봐야 하지 않는가

 자폐증에 시달리고 있는 아들을 둔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동반자살 하려 바다로 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폭소」는 우리 삶이 하나의 슬픈 코미디라 말하는 것 같다. 작가는 이번 작품집 중에서「폭소」를 삶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무거운 작품으로 여기고 있다. 「폭소」는 작년에 이상문학상을 타고난 후 작가가 처음 발표한 작품. 이상문학상을 ‘갑자기’ 타게 된 후, 갑자기 사람들이 주목과 기대를 보이는 것 같아서 작품을 쓸 때 무척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내가 일단 편해야 작품이 편하게 씌어지는데, 좀 부담스럽더라구요. 폭소는 삶과 정면 대결을 해서 죽느냐 사느냐 하면서 끝까지 밀고 나갔다가, 자폐아를 둔 아버지가 그래 살자, 하며 돌아오는 내용을 쓴 작품이거든요. 그렇게까지 쓰려면 좀 위험부담이 있어요. 굉장히 강렬한 주제잖아요. 그걸 잘못 쓰면 무척 이상하게 될 거 같고, 잘 써야 좀 문제작이 될 거 같은데 하는 고민 속에 썼던 거 같아요.”

 작가는 첫 작품집『꿈꾸는 마리오네뜨』에서 여성스런 주제의 사랑 이야기를 많이 한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약간 진지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을 쓰고 싶어했다. 또한 첫 작품집은 프랑스에서 쓴 만큼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담았는데, 이번 작품집은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담았다. 또한 아무래도 첫 작품집에 있는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서 쓴 자연발생적인 작품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나름대로 프로 의식을 가지고 특별한 기획 아래 작품을 썼다고. 주제에 있어서 여성의 문제에서 많이 벗어났다는 것도 변화된 모습이라고 한다. “여성소설가들, 불륜 소설 그만 써라”는 식의 비판이 있기도 해서 세상 속의 다양한 삶과 인간관계의 안팎을 들여다보는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작가는 코믹하게 할 것은 코믹하게 하고, 톤도 다르게 해서 변화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여성소설가들이 쓰는 작품이 사랑이며 불륜 같은 비슷한 이야기가 많은데, 자신이 보기에도 1990년대의 그 분위기에서 이제는 다른 변화를 시도할 때도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작가는 되도록 사랑 문제를 안 쓰려고 노력했다. 물론 ‘성’에 대한 문제를 양념처럼 깔긴 했다. 다양한 사람살이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고 나름대로 주제의식 면에서 변화를 추구한 이번 작품집을 묶어놓고 보니, 일단은 반찬이 다양한 밥상 같은 느낌이 든단다. 그러면서 그게 영양가가 얼마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겸양의 말도 잊지 않는다.

“저는 사람들한테 과정은 그렇지 않더라도 결론적으로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내가 소설에 쓰는 이야기는 무척 비극적이고, 아이러니도 들어가고, 이래도 사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안 좋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이렇게 힘든 세상이고 이렇게 힘들게 사는 인생도 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정말 열심히 끝까지 살아봐야 하지 않는가, 하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소설을 쓰게 만들었던 힘은 이방인으로서의 느낌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친 경험은 그가 여러 작품과 글에서 쓴 대로 동생의 죽음과 아버지의 사업 실패였다. 그는 숙명여고를 다니던 시절 ‘숙란’이라는 신문을 만드는 신문반에 있었는데, 그때부터 작가가 되려고 생각했다. 그후 늘 언젠가 작가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등단은 하지 않고 있던 그에게 프랑스에서의 생활은 좋은 계기가 되어주었다.

“프랑스에 사니까 자연스럽게 쓰고 싶은 욕망이 생기더군요. 작가가 되든 안 되든 쓰다 보니까 일단 힘들고 외로운 프랑스 생활을 견디어내게 해줄 수 있는 힘이 되고, 치유의 힘이 되었던 거 같아요. 프랑스에선 굳이 악착같이 작가가 안 되어도, 쓰는 것만 해도 행복하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다시 쓰기 시작했죠.”

작가는 프랑스에 있는 동안 정말 사람 만날 일이 별로 없었단다. 한국 사람들 하고 별로 어울리지도 않고 단지 가족적인 삶을 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매우 폐쇄적인 상황이었다고. 남의 나라에서 살아서 그런지 괜히 주눅 들기도 하고, 또 프랑스는 우기와 흐린 날이 칠8개월은 될 정도로 날씨가 무척 안 좋았다고 회상한다. 반면 좋은 점은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이 주어졌다는 점을 든다. 덕분에 글 쓰는 일에 침잠하게 되었던 것 같다고.

“이방인의 느낌을 가져본다는 게 글쓰기에 참 도움이 되었던 거 같아요. 아주 자기가 행복하고 잘나면 사실 글 안 나와요. 뭔가 억울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남들한테 말하면 안 들어주고, 그렇더라도 뭔가 토로하고 싶은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거든요. 소설이라는 장르가 어쩔 수 없이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프랑스에 있으면서 그런 정조가 계속 유지되었어요. 늘 혼란스럽고 내가 한국 사람인데 언제까지 여기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끝도 없는 막연한 불안이 계속되었죠. 이런 소외감과 정체성의 문제가 30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문제와 같이 부합되었고, 그래서 더 문제의식을 가졌던 거 같아요.”

재미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

 이번 작품집에 대해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을 좀 쉽게 노출시키고, 문장 곳곳에서 독자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작가의 의도를 말해버린다는 단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작가는 이에 대해 자신도 그런 점을 느꼈는데, 약간의 작가적 노파심 때문에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의 소설이 좀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서 과민반응을 한 거 같기고 하고, 한때 선생을 오래 하다 보니까 더 그런 ‘습관’ 같은 것이 배어 나오지 않았나 싶단다.

“실제 성격도 포커페이스를 잘 못해요. 제 스스로 진솔하고 진지해야 된다는 생각이 강해서 그런지 협상도 잘 못하구요. 다 보여줘야지 속이 편한 그런 성격이 있어요. 친구들 간에는 성격 좋다, 보기보다 소탈하고 남자 같은 면이 있다는 얘기를 가끔 들어요. 그러다 보니 작품에서도 감추고 숨기는 것이 부족한가 봐요. 그래서 내가 아직 고수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가 글을 쉽게 쓰는 이유에는 작품을 재미있게 쓰려는 욕구도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독자들에게 쭉 빨려 들어간다, 재미있다, 한번 손에 잡으면 잘 읽힌다 같은 얘기를 듣고 싶어한다. 그러다 보니 또 더욱 쉬운 이해를 추구하게 된다고. 그는 요즘같이 가뜩이나 영화다, 인터넷이다, 게임이다 해서 독자들을 뺏기는 마당에 너무 딱딱한 문장으로 재미없게 쓰면 정말 독자들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본다. 주제나 내용은 나중에 독자가 읽고 나서 각자 느끼는 몫이고, 어쨌거나 소설가는 독자가 읽게 유혹을 잘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하고, 그러다 보면 좀 가벼워질 수도 있겠지만, 문체의 가벼움은 별로 개의할 일이 아니라고 작가는 생각한다.

“문학이 요즘 영화나 다른 미디어에 밀리는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인생에 대한 강렬한 희망을 줘야 하는 게 문학의 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 등도 감동이 있을 순 있지만 그래도 문학에 비해서는 오락에 더 가까운 거 같아요. 문학은 인생에 대해서 조금 더 진지하게 성찰을 해야 즵 거 같고, 사람들에게 힘들지만 살아야 된다는 메시지를 나름대로, 노골적이든, 우회해서든, 아니면 반어적으로든, 들려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폭소」는 좀 정공법으로 나간 소설 같아요.”

그는 현재『문학사상』에 『아름다운 지옥』이라는 작품을 매달 백 매 가량 연재하고 있다. 작품 내용은 197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중에 여자주인공의 10대 이야기, 10대에서부터 20살 정도의 성인이 되기까지를 다룬 성장소설이다. 주변의 70년대식 인물들과 주인공 여자애가 성장하면서 느끼는 것인데, 요즘에 보면 당시의 억압적인 정치상황 같은 부분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그는 이 작품은 문체에 있어서 좀 편안히 읽혀지는 문장을 쓰고 있다고.

작가가 소녀 시절을 보낸 시기 역시 70년대인 만큼 작가 자신이 느낀 이야기도 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자전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두 가지만 맞아도 자전적 소설이라 여기는 독자들이 보기에는 자전적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야기의 흐름이나 그런 것은 다 꾸며낸 것인데, 상황은 기억에 의존해야 하니까 직접 겪었던 일도 조금씩 들어가고, 당시에 작가가 청소년으로서 느꼈던 감정도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전체 분량은 1400~1500매 정도로 장편소설 한두 권 분량이 될 것 같다고.

작가는, 연재라는 것이 매월 닥치기도 하고, 좀 쉬면서 재충전해야 힘 있는 작품을 쓸 수 있을 것도 같아, 요번 여름에는 장편에만 몰두할 계획이다. 그는 순발력을 요하는 작품 위주로만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는 바닥이 나지 않을까 싶어 이번 여름과 가을을 재충전의 시간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또 작가는 프랑스의 못 다한 이야기를 장편으로 쓰고 싶다. 어떤 문화적인 소설이 될 수도 있고, 입양아라든지, 아니면 프랑스의 민박집 같은 데에 한국인들이 흘러드는 이야기처럼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삶을 장편으로 쓰고 싶다고. 또한 지금 시대 젊은 사람들의 연애소설을 한 편 멋지게 쓰고 싶기도 하고 여러 구상중에 있다.『글루미 썬데이』를 매우 인상 깊게 봤다는 그는『글루미 썬데이』처럼 굉장히 많은 서사성이 중첩되어 나오는 대서사로망 같은 장편에 대한 구상도 가지고 있다. 

“요즘의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나 자란 젊은 작가들은 역사적 경험이 별로 없는 게 사실이에요. 물론 저도 1960년대 생이라 비교적 역사적 경험이 적은 편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상황이 굉장히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은데 그걸 선배 소설가들이 많이 썼어요. 그걸 좀 다른 방식으로 재미있게 쓰고 싶어요. 한에 맺혀서 쓰는 것보다는 좀더 다른 관점으로, 역사적인 맥락 안에서 재미있는 서사가 많이 살아 있는 작품을 써보고 싶어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한국 개화기 때 문호를 개방하면서 가치관이 흔들리는 신여성의 문제 같은 것을 재미있게 쓰면 좋을 것 같단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람이란 것이 남의 이목으로 사는 게 더 많은 것 같다면서, 자신은 “남의 가치관에 휘둘리지 말고 내 식대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남이 보기에 성공한 듯 보이면 실제로 자신에겐 족쇄가 되는 일도 없지 않고, 자신이 행복하냐 아니냐는 결국 남의 이목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작가. 자신의 삶을 버리면 버릴수록 삶이 좋았던 것 같다면서, 딱 소설이면 소설 하는 식으로 배수진을 치면 더 악착같이 하게 되는 것 같단다. 머릿속에서 작품에 대한 구상이 떠나지 않는 그는 현재진행형의,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게 해줄 수 있는 작가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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