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길, 버스나 전철에서 책을 참 많이 읽었어요. 단편 한 개를 읽기에 딱 적당한 시간이거든요. 그럼 일하면서 계속 그 단편을 곱씹게 되죠. 일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는 장편소설을 읽다가 잠들곤 했습니다. 일 끝나고 도서관에 가서 읽기도 하고요. 도서관, 운송수단, 집에서 아침이나 저녁에 주로 읽었네요. 요즘은 일을 하지 않고 있어서 밤낮으로 마음껏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는 정신적으로 게을러질 때인 거 같습니다. 무기력해질 때요. 좋은 책을 읽으면 좋은 음식을 먹은 것처럼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듭니다. 또 멋진 작품을 만났을 때 책을 더 읽고 싶어지죠. 이런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무래도 좋은 작품은 좋은 작품을 많이 읽어야 나온다고 생각하니까요.
서재에 이름을 붙인다면, ‘사다리 위 우리들의 다락방’이 어떨까 싶어요. 저는 이사를 자주 다녀서 책을 많이 모으기 힘들었습니다. 한때는 어쩔 수 없이 일부만 남기고 처분해야 했죠. 눈물을 머금고 후배, 친구들에게 넘기고 헌책방에 팔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 서재에 있는 책들은 절대로 팔 수 없었던, 가장 좋아하는 책들이 남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세 번 이상 읽은 책들이죠. 그래서 책을 읽을 때면 가장 친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다락방에 올라가는 기분이 듭니다. 긴장이 풀리면서 아늑해지고 무릎을 모으고 앉아서 친구들과 고개를 맞댄 그런 기분이요. 달그락 달그락 우리들이 내는 발소리가 다락방에 울려 퍼지는 것 같습니다.
생애 첫 책 『청춘파산』을 출간한 지, 이제 한 달 정도 지났습니다. 출간 당시에는 마냥 좋고 들떠 있었는데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복잡한 심경변화를 경험했어요. 허탈하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하고…. 이제 조금 진정되는 기분입니다. 독자 분들이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자신만의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는 좋은 책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해서 읽는 편이에요. 스무 살에 읽은 책을 스물다섯에 읽고 서른에 읽고요. 나이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예전에는 뭐 이렇게 재미없나 싶은 책도 십 년 뒤에 읽으면 소중하게 다가오기도 하고요. 또 ‘좋아하는 작가가 좋아한 작가의 작품’을 찾아보는 식으로 독서를 했습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작품을 알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토니모리슨의 책을 읽고 그가 영향을 받았다는 버지니아 울프와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들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며칠 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타계 소식을 듣고 그의 작품들을 다시 읽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미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기 시작했어요. 처음에 그 책을 추천 받아서 읽었을 때는 사실 좀 어려웠거든요. 두 번 읽고는 조금 감이 잡혔던 거 같습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도 한번 더 읽어야겠네요.
제가 추천할 작품들은 대부분 십대, 이십 대에 읽은 책입니다. 책을 만나는 시기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때 읽었기 때문에 더 강렬하게 다가왔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 때는 책을 많이 살 사정도 안 되고, 그래서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었는데요 모르는 말이 나오면 윗부분을 살짝 접어놓고 집에 와서 사전으로 찾아보곤 했습니다. 워낙 소설을 좋아했기 때문에 제 인생의 책은 아무래도 소설책이 많은 것 같습니다.
명사의 추천
가장푸른 눈
토니 모리슨 저/신진범 역 | 들녘
처음 읽은 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올라가는 시기였어요. 서점에 갔는데 지금 보면 촌스러울 수 있는 형광색 표지에 그려진 흑인여성이 단번에 눈에 들어왔습니다. 계산하려는데 서점 아저씨가 그건 네게 너무 어려우니까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앵무새 죽이기』를 읽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죠. 저는 그 말에 오기가 생겨서 이 책을 들고 나왔어요. 밤을 새어 읽었을 정도로 아주 강렬했어요 활자가 영상보다도 강렬할 수 있구나, 라고 느꼈어요. 영화보다 제겐 더 선명하게 영상이 그려졌거든요. 백인의 푸른 눈을 갖고 싶어하는 흑인소녀 피콜라는 늘 제 가슴속에 있습니다.
북극 허풍담
요른 릴 저/백선희 역 | 열린책들
최근에 본 소설책인데 연신 키득키득 웃음이 나옵니다. 저 역시 북극에서는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 내가 이렇게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구나 생각하면서 단숨에 세 권을 읽어 내렸습니다. 북극에 다녀온 것처럼 시원하고 동시에 따뜻해지는 소설입니다.
나치 시대의 일상사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저/김학이 역 | 개마고원
도서관에서 만든 스터디 모임에서 다섯 명의 또래 친구들과 함께 읽은 책입니다. 토론하며 읽어서 그런지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무서운 시절에 보통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보지 않았죠. 이 책을 시작으로 미시사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큰 역사도 중요하지만 작은 역사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저/김연경 역 | 민음사
이 책을 빼먹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뭔가 머리를 세게 내려치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습니다. 인간의 어둠을 이렇게 잘 그려낼 수 있구나, 감탄했어요. 이후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다 찾아 읽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딸들
엘리자베스 M. 토마스 저/이나경 역 | 홍익출판사
고등학교 때 단짝 친구가 이 책에 푹 빠져 있었어요. 친구와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 저도 사서 읽었습니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라디오 광고 멘트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요. 광고만 듣고는 상투적인 내용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대배경 때문인지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이 책에 빠져든 이유는 구석기 시대라는 시대배경이 한몫 했던 것 같습니다.
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저/한성례 역 | 이룸
그야말로 문장이 풍경처럼 펼쳐진다고 할까요? 동시에 그 하나하나의 문장 속에 지독하고 처절한 슬픔과 비애가 담겨 있지만 끝내 폭발시키지 않고 가라앉히죠. 마치 차디찬 얼음 속에 니트로글리세린이 혈액처럼 흐르는 느낌입니다. 대가의 문장이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레고로 만든 집
윤성희 저 | 민음사
아주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 만난 책입니다. 복사기에 얼굴을 대고서 눈을 감지 않는 여자. 대학 때 <현대비평론> 수업에서 저는 이 책을 선택해서 발표를 했기 때문에 여러 번 읽은 소설집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고독한 인물들이 모두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것 같아요.
시
이창동/김희라/윤정희
워낙에 이창동 감독님 작품 좋아하지만 마지막에 미자(윤정희)가 지은 시가 인상적이었어요. 끝내 눈물이 나더라고요.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상황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내면으로 갈무리하면서 그에 대한 분노를 슬픔으로 승화시킨 수작이었습니다.
색계
이안,양조위,탕웨이
양조위라는 배우를 참 좋아합니다. 학창시절에 그가 등장하는 무협비디오를 몽땅 빌려봤을 정도로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탕웨이의 광팬이 되어버렸죠.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닌, 육체와 사랑의 접점이 보였다고 할까요. 그 미묘한 접점을 짚어낸 탕웨이, 그리고 그 진정한(?) 사랑을 잃고도 그저 냉정하게 겉모습을 가라앉혀야만 한 양조위의 연기가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산일기
박정범
한국영화를 참 좋아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승철이 ‘탈북자 승철’이 아니라 ‘승철이라는 사람인데 탈북자라는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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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on111
2015.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