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역적의 종손이 바뀌었다, 수양의 진짜 손자는?
『국본』은 욕망으로 가득 찬 사내와 욕망이 거세된 사내가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싸우는 이야기이며, 두 사람이 내리는 선택은 자신이 가진 욕망을 충실히 따른 결과입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민중들은 역사 속에서 정의롭지 못한 지도자들을 단죄하길 바랐다. 이는 비단 과거의 염원을 넘어, 현재에도 통용되는 말이다. 『국본』은 패륜을 저지르고 권력을 탈취한 수양대군과 한명회를 단죄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서자영 작가는 이 작품이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고 자신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별안간 아씨』 『사주팔자』 『원경』 등 역사 속 사건들에 상상력을 더해 몰입감 있는 작품을 펴냈던 서자영 작가를 만나 보았다.
이번 작품 『국본』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수양대군의 손자와 김종서의 손자가 뒤바뀌었다는 설정으로 진행되는 역사 팩션입니다. 출생의 비밀에 바탕을 둔 복수극이지만, 흔한 복수극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왕과 역적의 종손이 뒤바뀐다니, 상상만 해도 어마어마한 사건입니다. 또한 하늘이 내린 왕이 아닌 왕재 시험을 통해 능력 있는 왕을 뽑는다는 설정 역시 기존 역사소설에서 볼 수 없던 흥미로운 장치로 느껴집니다. 이런 발상은 어디서부터 시작하셨을까요?
출생의 비밀을 화두로 가지고 있었는데, 가상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브레인스토밍을 하다가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가상보단 실제 역사를 비트는 게 대중들에게 훨씬 더 흥미로울 것 같았거든요. 그때 떠오른 인물이 세조와 성종이었습니다. 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본으로 선택받은 세조의 손자 성종(잘산군).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오랫동안 구상하고 고민하였습니다.
조선 후기 집필된 『금계필담』에도 김종서 집안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자손이 수양대군을 꾸짖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설화를 모티브로 제작된 <공주의 남자>라는 드라마도 성황리에 방영됐습니다. 『국본』도 이와 비슷하게 패륜을 저지른 수양을 벌주는 단죄극이라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계속 전해지고 사랑받는 걸 보면, 권력을 쟁탈한 건 수양이지만 민중들에게 사랑받는 건 김종서라는 느낌이 드는데, 김종서와 수양은 당시에 어떻게 인식되고 있었을까요?
그 당시 수양과 계유정난을 일으킨 공신들에 대한 백성들의 반감이 상당했으리라는 근거는 여러 사료나 야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숙주나물’의 유래만 보더라도 당시 민중들이 공신들보다 사육신이나 생육신을 더 존경하고 충신으로 인정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무리 왕이 되었다고는 하나, 부모 잃은 어린 조카를 밀어내고 왕좌에 앉은 삼촌의 모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정해 보이는 법이죠. 수양의 평판이 좋기는 어려웠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수양대군의 가장 강하게 인식되고 있는 이미지는 <관상>에서 이정재 배우가 연기한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에서 수양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상대의 목을 놓지 않는 이리였다면 『국본』에서 수양은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며 약한 모습을 보이는 전혀 다른 이미지라 흥미롭습니다. 이번 수양대군 캐릭터를 구상하실 때 참조하신 기록이나 모습이 있을까요?
나이 든 수양은 지난날의 과오를 대단히 고통스러워했다는 기록이 세조실록을 비롯해 여러 사료에 남아있습니다. 전해오는 모든 이야기를 사실이라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수양이 말년에 변했다는 걸 보여주는 객관적인 정황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불가에 귀의한 것입니다. 조선은 숭유억불 정책을 취한 유교 국가였고 본인도 사림을 중시한 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수양은 말년에 이르러 불교에 심취합니다. 아마도 나병으로 고통받고 악몽도 자주 꾸며 몸과 마음이 모두 쇠약해지자 종교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국본』에서 심신이 모두 무너진 수양의 모습을 그리려 노력했습니다.
『국본』 속 진짜 왕손의 정체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미궁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신우와 현 역시 점차 자신의 진짜 뿌리를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각자 다른 신념으로 자신의 정체를 선택하게 되는데요. 같은 상황에서 다른 방식을 선택하는 현과 신우를 조금 더 말씀 해주신다면?
저는 신우를 고뇌하는 햄릿, 현을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맥베스로 보고 캐릭터를 설정했습니다. 그래야만 한다, 그러고 싶다는 욕망이 현에게 행동의 당위성을 가진다면, 신우는 이것이 옳은 행동인가, 이렇게 해도 좋은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신중하게 행동하는 인물입니다. 『국본』은 욕망으로 가득 찬 사내와 욕망이 거세된 사내가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싸우는 이야기이며, 두 사람이 내리는 선택은 자신이 가진 욕망을 충실히 따른 결과입니다.
작가님의 작품에는 시대상을 딛고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려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해 작품을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이번에도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는 혜주라는 캐릭터가 눈에 띕니다. 하지만 한정적인 여성들의 기록과 생활상에 가려 이런 인간상을 창조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실 거 같은데요. 작가님께서 여성 캐릭터를 만드시는 방법과 꼭 신경 쓰는 부분이 있으실까요?
저는 여성 캐릭터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여성 캐릭터와 남성 캐릭터에 차별을 두지도 않고요. 극을 구성하면서 필요한 인물을 설정하고 그 인물에 가장 적합한 성격을 부여합니다. 여성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어렵게 생각하지도 않고, 더 고민해서 설정하지도 않습니다. 캐릭터를 설정할 때 여성이라 더 고민하거나 한 적이 없어 오히려 제 여성 캐릭터들이 진취적이고 주체적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세조나 한명회, 월산군 같은 실존 인물들도 매력적이지만, 신우와 혜주, 도율과 철 같은 가상의 인물들도 실제 인물처럼 느껴질 정도로 생동감 있게 표현된 거 같습니다. 이들 중 가장 애착을 가지고 창작하신, 작가님의 페르소나는 누구일까요?
가장 애착을 가지고 창작한 인물은 철입니다. 개인적으로 철의 모든 순간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보시는 분들이 가장 많이 공감하실 인물은 혜주일 것 같습니다. 혜주는 극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고민을 하는 인물이거든요. 소설 속 혜주의 고민과 갈등은 현재의 우리와도 많이 닮아 있어요. 부모의 기대와 나의 욕망 사이의 괴리,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내가 바라는 대로 살아도 괜찮을지 하는 걱정 등이요. 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겪었을 법한 시기를 지나는 혜주를 응원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국본』에서 가장 많이 시간을 들여 표현하고자 하신 장면이 있으실까요? 가장 시간을 많이 들이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마지막 궐에서 신우와 현이 대립하는 장면입니다.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인데요, 이 장면은 대사까지도 시놉시스 단계에서 이미 거의 완성되어 있었어요. 그 장면에서 포효하듯 터트리는 신우의 모든 대사가 제가 이 소설을 쓴 이유이자, 이 소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거의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의 욕망에서부터 사건이 시작되고 그 욕망을 따라 전개됩니다. 그런데 신우는 무욕한 인간이에요. 욕망이 없는데도 신우는 이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아니, 욕망이 없기에 주인공일 수 있었습니다. 신우와 현이 대립하는 장면이 바로 왜 욕망을 거세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는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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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