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만에 탄생한 최초의 부마민주항쟁 만화, 민주화의 『불씨』
『불씨』 다드래기 작가 서면 인터뷰
부마민주항쟁 45주년을 맞아 전문가들의 엄밀하고 신뢰성 있는 내용 감수와 역사 고증, 다드래기 작가의 탄탄한 이야기 구성이 만나 45년 전 닷새간의 항쟁을 생생하고 치밀하게 복원한 최초의 부마민주항쟁 만화가 탄생했다. (2024.06.05)
『불씨』는 1980년대 민주화 대서사의 발화점이 된 1979년 부마민주항쟁의 역사를 소시민들의 시선에서 입체적으로 복원해낸다. 독기 가득한 유신정권에 대차게 맞서 기어코 독재를 무너뜨린 부산과 마산 민중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저마다의 삶을 내어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던 당대 시민들의 강렬한 염원이 이 작품을 읽는 오늘날 우리의 마음속에서 벅차게 끓어오른다. 부마민주항쟁 45주년을 맞아 전문가들의 엄밀하고 신뢰성 있는 내용 감수와 역사 고증, 다드래기 작가의 탄탄한 이야기 구성이 만나 45년 전 닷새간의 항쟁을 생생하고 치밀하게 복원한 최초의 부마민주항쟁 만화가 탄생했다.
『안녕 커뮤니티』 『혼자 입원했습니다』 등 전작에서 우리 주변의 작고 소중한 존재들의 일상을 포착하는 만화를 그려오셨는데요, 이번에 ‘부마민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소재로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출판사에서 부마민주항쟁을 만화로 그려볼 생각이 없느냐고 먼저 제안이 들어왔어요. 짧은 작업기간에 부담이 무척 큰 것은 사실이었지만, 부마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후 처음으로 제작되는 ‘사실 기반의 픽션 콘텐츠’라서 굉장히 흥분되었죠.
저는 부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까지 지냈고, 대학교부터는 전남, 지금은 광주에서 18년째 살고 있어요. 부마항쟁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오히려 부산에서보다 광주에 살면서 5·18민주화운동과 함께 부마항쟁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더 많이 접했습니다. 부마항쟁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어른을 부산에 살면서는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아직 제대로 정비되지 못한 이야기를 내놓는다는 점에서 숙제 하나를 해결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고장에 대한 큰 자부심이기도 하고요.
부산에서 광주로 이어 살았다는 사실이 운명같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 만화 작업은 내 거다’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어요. 무엇보다 부마항쟁으로 우리나라의 5대 민주항쟁이 완성되는 만큼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시리즈에 합류하는 자체가 영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마항쟁을 만화로 만든 국내 최초 작품인 만큼 자료 조사부터 쉽지 않았을 듯한데요, 『불씨』의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제공해주신 연구자료와 구술자료집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평소 작업할 때 항상 직접 취재하고 인터뷰하는 편인데, 이번 작업은 개인이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었거든요.
부마항쟁은 지금도 국가 차원의 조사가 계속 진행되는 중이에요. 오랫동안 쌓여온 구술자료가 있어 제가 직접 다시 인터뷰한다는 마음으로 꼼꼼하게 읽었습니다. 구술자료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에 층분히 도움이 될 만한 사례들을 뽑아 부마아카이브(www.buma1979.com)에 나와 있는 시간과 동선에 맞추어 재구성했습니다. 특별한 한 사람의 사례가 아니라 여러 인물을 지역과 직업, 성장 과정의 유사함 등으로 분류하고, 상징적이거나 인상적인 사건을 연결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소시민들의 삶을 통해 사건이 연결되게끔 하기 위해 구술기록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죠. 그래서 만화 속 사건마다 실제 당사자가 있으면서도, 세밀하게 들어가면 특정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본 그림 작업을 할 때였는데요, 서울에 비해 지방은 6~70년대 사진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특히 마산은 발전과 변화가 정말 촘촘하게 일어난 곳이기 때문에 현재의 창동 부근은 예전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그래서 특정한 배경을 시각화해서 만들어내는 게 힘들었어요. 랜드마크가 될 만한 것을 정하고 지자체 홈페이지의 디지털 자료, 과거 사진 복원 전문 유튜브 채널의 자료, 인근 중소지역의 과거 사진들을 모두 조합해 1979년 당시의 동네를 만들었습니다. 창동파출소 근처 시장에는 일부 옛날 아파트가 여전히 남아있는 곳이 있어, 이를 조금씩 드러내보이며 최대한 지역성을 보이고자 했는데 (생각만큼 잘 구현되지 않아) 속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부산의 경우에는 중앙동의 80년대 초반 사진을 관계기관의 협조를 통해 구할 수 있어 이미지화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남포동 극장가 일대의 상징적인 건물 자료는 많이 구할 수 있었고, 구술기록에 남아있는 당시의 극장 개봉영화나 TV 방영 프로그램들을 최대한 수집해 독자분들께서 시대성을 느낄 수 있도록 조합했습니다. 배경 그림에서 표현의 한계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있으면, 문화적인 내용이나 소품들을 더해 보완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동안은 항상 자료 조사하는 동안이 가장 힘들었는데, 『불씨』 작업을 하면서는 조사만큼이나 이미지화하는 작업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번 만화 작업을 하면서 부마항쟁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나, 꼭 알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어느 다큐멘터리의 댓글이 기억에 남습니다. 자신이 부마항쟁 당시 학생들을 숨겨주고 도와주었던 국제시장 상인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분의 댓글이었어요. 왜인지 모르지만, 아버지가 당시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다며 부마항쟁에 참여한 것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는 내용이었습니다. 부마항쟁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것에 대해 5·18민주화운동에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그렇게 된 것이라는 음모를 주장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아 놀랐고요.
앞서 말했지만, 저는 부마항쟁에 대해 오히려 광주에 살면서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들은 누구도 부마항쟁을 묵살하거나 평가절하하지 않습니다. 내 고향인 부산보다 광주에서 부마항쟁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에요. 부마항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충분히 자긍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부마항쟁이 우리 기억에서 잊히다시피 한 것은 항쟁 직후 박정희 대통령 암살, 12·12쿠데타를 통한 정권 교체, 광주에서의 학살 등 대형 사건이 쉴 틈 없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부마항쟁 이후 많은 피를 흘려야만 했던 사건들이 계속 이어졌죠. 1987년 6·10민주항쟁까지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이 직진할 수 있었던 그 시발점에 시민들의 힘으로 일어난 부마항쟁이 있음을 잊지 말고 모두 자랑스러워하면 좋겠습니다. 내 고향 부산과 마산이 민주화의 성지라는 사실은 자긍심을 가질 일이니까요.
『불씨』에서는 여러 인물의 다채로운 서사가 돋보입니다. 한두 주인공이 아닌 여러 명의 캐릭터와 서사로 작품을 그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역사적인 사건은 크게 움직이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각자 다르게 살아갑니다. 특별하게 의로운 리더가 아닌 자신의 삶을 소중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문제의식을 느끼고 격동에 휘말리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시민운동으로서의 부마항쟁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구술자료를 읽다 보면 원래 의식이 많이 고취된 분도 있지만 하루하루 자신의 삶에만 충실하고 정치 상황은 잘 모르고 사셨던 분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폭행과 고문을 당하는 순간에도 무엇이 죄가 되어 잡혀 왔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대개 ‘학생운동’으로 기억되는 민주화운동의 역사 속에서 일반 시민들에게는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 다양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어요. 오히려 자신과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내 삶에 폭력적으로 들어왔을 때 어떤 변화를 수반하는지 많은 독자분들이 보시고 외면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부마민주항쟁의 명장면과 명대사를 하나 꼽자면요? 이를 『불씨』에서 어떻게 표현하고자 하셨나요?
제가 좋아하는 장면은 작품 중 부산대생 윤태석이 경찰서로 연행되고 구타를 당하는 와중에 TV에서는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 흘러나오는 장면입니다. 구술자료에서 당시 부산대생이던 성OO 선생님의 사례를 읽었는데, 자신이 연행되었던 금요일에 마침 경찰서에서 「여러분의 인기가요」를 TV로 틀어놓았다는 이야기를 보고서, 그리고 싶은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당시 경찰서에서 구타를 당하는 와중에 1위 곡으로 「그때 그 사람」이 흘러나왔는데, 며칠 뒤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아이러니의 감정을 느끼셨다는 지점이 저에게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무차별적으로 연행되고 끌려가는 시민들의 모습이 교차되는 지점이 계엄령과 함께 분위기가 달라지는 기점을 표현하기 좋았어요. 그 장면을 읽는 독자들의 귀에 노랫소리가 들리면 좋겠다고 상상하면서 만들었습니다.
담당 편집자님께서는 “작은 불씨라도 바람을 타면 멀리 날아가기 마련이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오는 부분을 가장 좋아하시더라고요. 부산대에서 피어오른 항쟁의 불씨가 다음날 동아대 등 다른 대학과 부산·마산의 시민들에게 퍼지게 되는데, 이중 동아대의 시위대가 진출하는 장면에서 나온 내레이션입니다. 작품 제목이 ‘불씨’가 되는 데에도 이 내레이션의 영향이 컸어요.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사에 있어 부마항쟁이 가지는 위치와 의의가 다 담겨있는 말이라 저도 동의합니다.
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명대사는 도입부에 나오는 “대통령이 죽었다”입니다. 이 대사는 10월 26일로 시작한 작품이 며칠 전 과거로 돌아가게 하는 주문이면서, 항쟁의 시간이 지난 후 현실의 문제로 돌아오게 하는 주문으로 한 번 더 사용됩니다. 독재자로서 대통령이란 이름만 가진 사람에게 평범하고 냉정하게 ‘죽었다’는 말을 사용하여 그 죽음 자체의 사실 이외에는 아무 감정도 넣지 않고자 했습니다.
특별한 물건을 수집하기를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만화 작업 중에 새롭게 수집하신 게 있을까요?
아무래도 평소에 취재하거나 답사를 습관적으로 다니다 보니 헌책 구하는 걸 좋아합니다. 옛날 팸플릿이나 리포트를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이번에 부마항쟁을 공부하면서 경남대에 격문을 붙인 이OO 선생님 이야기를 읽다가 일제 치하의 동아일보 사설집에 담긴 가장 격렬한 문구를 골라 부마항쟁의 격문으로 옮겨적었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 사설집은 신동아의 별책부록으로 동아일보사에서 배포한 것인데, 마침 제가 1974년판을 갖고 있었어요. 만화에 그 사설집을 그려 넣고 싶었으나 괜한 사족일 것 같아 깔끔히 포기했지요.
대신에 작업 들어가기 직전에 구한 『씨알의소리』 1979년 9월호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이 책을 잘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부 읽었는데 마산에서 활동하신 이선관 시인의 시 「번개식당을 아시나요」가 최초로 발표된 것이 이 『씨알의소리』 1979년 9월호를 통해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실제로 마산에서 이선관 시인의 이야기가 자주 다루어졌던 터라 이 시를 꼭 작품에 넣고 싶었습니다. 자료가 부족해 시각적인 배경을 드러내 보이기가 매우 어려운 마산이었는데, 이 시를 통해 마산 수출자유지역을 자연스럽게 조명할 수 있었고 진숙이라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어요.
올해는 부마민주항쟁 45주년입니다. 독자분들이 부마민주항쟁을 어떻게 기억해주면 좋을까요?
부마민주항쟁의 불씨는 학생들이 날랐지만, 불씨가 불길이 되어 타오른 것은 시민들에 의해서입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완성되는 과정에 있어 바로 부마항쟁이 중요한 불씨가 되기도 했죠. 민주화운동에는 특정한 무게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부는 흐름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 불씨를 던진 부마민주항쟁이 평범한 시민들이 만들어낸 중요한 시작점이었음을 알리는 데 제 만화가 보탬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드래기 호기심이 많은 만화가. 언제나 새로운 탐구생활을 하고 있다. 『달댕이는 10년차』, 『거울아 거울아』, 『안녕 커뮤니티』, 『혼자 입원했습니다』를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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