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진 “나는 악인으로 태어났다”
『악의 회고록』 김연진 작가 서면 인터뷰
회고록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은 한 권의 길고 긴 편지에 가깝습니다. 평생을 외로움과 수치심 속에 살아온 한 인간이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남긴 기록인 동시에, 하나뿐인 친구에게 전하는 속죄이자 선물이죠. (2024.03.04)
‘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나쁜 말이나 나쁜 생각, 나쁜 행위 같은 것을 애초에 할 줄 모르는 순결한 사람들만이 모여 있는 세상을 말이다. 만약 그런 세상이 존재한다면, 그곳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본성’은 ‘나쁘다’는 것의 대척점에 있는 ‘착한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까? 이 험난하고 지난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평화로운 세상을 한 번쯤 꿈꿔볼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예로부터 인간의 성악과 성선에 대해 끊임없는 논쟁을 펼쳐온 역사가 증명하듯, 인간의 ‘선’과 ‘악’은 동시에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말이다. 그렇다면 ‘악’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란, 정확히는 ‘악’을 깨닫지 못한 자들의 세상이겠다. ‘선’한 사람들이 일구고 이룬 평화로운 땅에 태초의 ‘악’을 자각한 이가 깨어난다면 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러한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 정확히 그 세상을 창조해낸 작가가 탄생했다.
김연진 작가님 안녕하세요. ‘채널예스’를 통해 만나는 독자님들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과학을 전공했고, 철학을 즐기며, 문학을 쓰는 사람입니다. 언젠가 책 한 권쯤은 쓰지 않을까 했는데 이렇게 빨리 인사드릴 수 있어 기쁘고 영광입니다.
『악의 회고록』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소설은 한 인간의 ‘회고록’인데요. 소설의 큰 틀을 ‘회고록’으로 설정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회고록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은 한 권의 길고 긴 편지에 가깝습니다. 평생을 외로움과 수치심 속에 살아온 한 인간이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남긴 기록인 동시에, 하나뿐인 친구에게 전하는 속죄이자 선물이죠.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소설 『데미안』은 누구나 한 번쯤 제목을 들어봤을 고전입니다. 이 책의 화자는 ‘싱클레어’라는 소년인데요, 책 초반부에서 『데미안』이 싱클레어 본인의 자서전임을 밝히며 내용이 시작되고, 실제로도 책은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싱클레어는 독일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폰타네상의 수상자로 지명되기도 했다네요.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의 작품입니다. 1919년, 당시 이미 작가로서 유명했던 헤세는 익명으로 글을 평가받고 싶다는 마음에 가명으로 책을 발표했었다고 합니다. 워낙 멋진 이야기라 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만, 직접 소설을 쓰다 보니 그의 다른 속내를 조금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헤세라는 작가가 진심으로 『데미안』을 싱클레어의 책으로 여겼다고 생각합니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이야기에서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설 자리는 없었던 거죠.
같은 맥락에서, 『악의 회고록』은 엄연히 주인공 ‘말루스’의 저작입니다. 그의 이름으로 출간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우리가 사는 곳이 한국이라는 점을 고려해 못 이기는 척 제 이름으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악의 회고록』에는 순결한 자들만이 존재하는 ‘인탈리엔’이라는 곳이 등장합니다. 이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하는 데 작가님께 특별히 영감을 준 것이 있을까요?
여기서는 「작가의 말」을 인용해야겠네요.
“참 팍팍한 세상이다. 경기는 어렵고, 사람들은 자기밖에 모르고, 진정성 있는 것들은 점점 가치를 잃어간다. 뉴스는 마약이나 촉법소년 얘기를 떠드느라 바쁘다. 마치 온 세상이 악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한참 고민이 많던 시절 우연히 떠오른 생각. ‘착한 사람들만 가득한 세상에서 내가 유일한 악인이라면 어떨까? 그러면 원하는 건 뭐든 가질 수 있을 텐데. 남 눈치 볼 것 없이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을 텐데.’ 『악의 회고록』은 그런 불순한 상상에서 시작되었다.”
구상하게 된 계기는 위와 같습니다. “착한 사람들만 가득한 세상”이라는 전제는 곧 세계관이 되었습니다. ‘인탈리엔’이라는 이름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유리알 유희』에 등장하는 핵심 개념인 ‘카스탈리엔’에서 차용했습니다. 카스탈리엔은 정신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이상향, 음악, 철학, 명상과 같은 지적 유희에 몰두하며 살아가는 가상의 공간인데요, 인탈리엔은 부분적으로 카스탈리엔의 모습을 닮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그래서 더 모순된 세계입니다.
‘선’과 ‘악’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인탈리엔의 ‘신념’과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중시하는 삶의 ‘가치’를 완벽히 구현해내셨기에, 매우 체계적인 작업이 필요했을 듯합니다. 집필할 당시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세계관을 구체화하셨나요?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굉장히 애를 먹었던 부분이거든요. 말씀대로 인탈리엔에는 악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악이라는 게 단순히 ‘나쁜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몹시 복잡한 개념입니다. 흔히 말해 미움이나 질투, 좌절, 분노, 두려움처럼 우리에겐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아예 존재하질 않는 거예요. 그런 개념 자체가 없고 그래서 표현할 단어조차 없습니다. 처음엔 욕만 안 하면 되겠지,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크게 후회했습니다. 내뱉는 말 한마디, 떠오르는 생각 한 조각까지 모두 검열하기 시작하면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악으로 가득 찬 모순덩어리인지 절절히 느끼게 됩니다. 주인공 ‘말루스’가 회고를 하는 동안에는 이 과정이 무결하게 지속되도록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작은 부분 하나라도 타협하는 순간 의미가 없어지는 만큼, 단어 하나하나 모든 개념을 붙들고 늘어졌던 고된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어? 이게 있어도 되는 단어인가?’ 하면서 곱씹어보시면 하나의 ‘즐거움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제목부터가 대놓고 ‘악’의 회고록이죠. 악이 없는데 어떻게 악이란 표현을 썼냐, 의문이 드신다면 ‘인탈리엔’으로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신 거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독자님들이 『악의 회고록』을 읽을 때, 작품의 어느 부분에 주목하여 읽으면 좋을까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악의 회고록』의 독서 가이드가 있을까요?
장황하게 세 가지 정도를 써보았습니다만, 다 지웠습니다. 독자님들의 읽는 재미를 반감시키는 일이란 생각이 번뜩 들었네요. 울고 웃고 화내며 입맛에 맞게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대신 여담을 하나 하자면, 이 얘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기회가 생긴 김에 적어 봅니다. Allegri의 〈Miserere Mei〉라는 클래식 음악이 있습니다. 작중 ‘노인의 환향식’ 부분은 이 곡이 써주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주변이 유난히 고요했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과 동시에 소름이 쫙 돋으면서 정확히 14분 동안 정신을 잃었습니다. 왜, 유명한 작가들이 흔히 말하기를, 글을 쓸 때 “누가 귀에 대고 내용을 들려주는 것 같아서 그것을 받아 적었을 뿐이다”라고 하던데 정확히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글자가 날아와 꽂히면서 눈물이 펑펑 나는데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돌아보니 그 순간이 아주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초고를 완성한 이후에 셀 수도 없을 만큼 수정을 거쳤지만 ‘환향식’은 가장 고칠 게 없었던 부분입니다. 손대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여러분께서도 그 감정을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해당 부분을 읽기에 앞서 음악을 깔아두고 조용한 곳에서 읽어주시면 조금 더 좋은 경험을 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악의 회고록』은 작가님의 첫 데뷔작인데요. 차기작으로 ‘악’의 확장판 또는 ‘악’과 관련한 또 다른 이야기를 집필할 계획이 있으신가요? 앞으로 작가님의 작품 활동이 어떤 지향점을 가질지 궁금합니다.
이건 저도 궁금한 부분입니다. 물론 이 악이라는 것이 앞으로 글을 쓰면서 빠질 수는 없는 개념일 것 같아요. 하지만 이걸 다시금 핵심 주제로 쓰게 될지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웃으면서 쓰고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고요, 사실 조금씩 쓰고 있습니다. 많이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악의 회고록』의 「작가의 말」에서 “‘나’밖에 남지 않은 상실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진짜 ‘우리’의 가치를 되찾아주고 싶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실 때 우리가 살아가는 ‘상실의 시대’는 어떤 세상일까요?
상실이란 결국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뜻이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아마 ‘우리’의 가치, 함께하는 것의 가치가 아닐까 합니다. 누군가와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조금은 어색해진 세상입니다. 나 자신의 안위를 우선으로 두고 일단 나부터 챙기고 보자는 사고방식이 당연해진 세상이요. 저 또한 그렇습니다. 물론 ‘나’라는 개념은 중요합니다. 자아를 찾고 보듬어주고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하는 건 궁극적인 지향점이자 우리가 반드시 해나가야 할 목표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 과정을 혼자서 해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저는 고태호 작가의 〈펀치드렁커드〉라는 작품으로 그 고민을 이어나가는 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어려운 질문이었네요.
말루스든 에스투스든, 선이든 악이든, 혼자서는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마찬가지로 읽어주시는 여러분이 계시기에 제가 쓸 수 있습니다. 바쁘고 어려운 시기에 소중한 관심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따뜻함이 세상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기를.
*김연진 과학을 전공했고, 철학을 즐기며, 문학을 씁니다. 어제는 국제 저널에 실릴 논문을 쓰고, 오늘은 장편소설을 씁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분자의학 및 바이오제약을 전공했다. 단편소설 「라크리모사」로 제65회 서울대학교 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가작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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