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시대가 나오는 건 필연이었습니다
『늑대신부』 권현숙 작가 인터뷰
『늑대신부』는 전 생애 동안, 죽음 너머로까지 이어지는 한국인의 사랑 이야기다. (2022.08.16)
시작은 한 통의 편지였다. 몽골에서 경성부 주소로 보낸 70년 전 발신자 불명의 편지. 서촌 영혼결혼식장의 귀신 붙은 편지의 내막을 풀어가는 90년생 백말띠와 수신자 30년생 백말띠와의 만남은 우리 근현대사와의 운명적 조우였다. 1946년 개교한 서울대학교 음악부 1회생 두 주인공을 통해 해방 후 혼란상과 6.25 당시 서울의 상황이 리얼하게 그려진다.
그 와중에도 사랑은 눈 뜬다. '친일 - 항일' 두 집안의 '베루'와 '완셈'은 동기생으로 만나 치열한 갈등 속에서도 서로의 운명을 거역하지 못한다. 『늑대신부』는 전 생애 동안, 죽음 너머로까지 이어지는 한국인의 사랑 이야기다. 자신의 이름을 땅에 묻고 음악에 영생을 준 두 음악가이자, 참혹한 생의 비수에 맞서 맨몸으로 사랑과 음악을 지켜낸 위대한 두 늑대 이야기이다.
『늑대신부』를 집필하신 소감이 어떠세요?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소설을 취재하기 위해서 몽골에 다녀오자마자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었거든요. 조금만 늦었더라면 이 책은 아직도 못 나오고 있겠지요. 또한, '역시 늑대는 강하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백 기간이 길었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2010년 장편 소설 『에어홀릭』이후 두드러진 활동이 눈에 안 띄어서인지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출간하기로 한 출판사의 부도로 출간이 무산되면서 그 기간이 공백이 됐나 봅니다. 간간이 단편 소설도 발표하고, 몇 년씩 연재로 글도 쓰고 있었고, 『늑대신부』 집필 과정과도 연계된 『카메오 천사들』도 썼지요. '여행기 아닌 여행기'라는 부제를 달고 『인샬라』때 사하라에서 겪었던 실제 사건들, 『루마니아의 연인』 집필 과정에서 체험한 기적의 순간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현대까지, 시대적 배경을 이렇게 설정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분단국 한국의 현실은 어디서부터일까? 역사적 사건들을 너무 잊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거창하게 들리시겠지만 '분단 시기에 작가로 살고 있는 저의 소명 의식'의 발로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역사를 그 자체로,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습니다. 역사는 배경으로, 땅 밑을 흐르는 지류로 묘사하지만 정확한 고증은 필수입니다.
『늑대신부』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이야기하지만, 두 연인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도 있습니다. 그 연인들의 사랑을 통해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첫사랑인 동시에 유일한 사랑을 지켜내려는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또한, 진정한 예술가의 영혼을 묘사해보고 싶었습니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예술가라면 이들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경성시대가 나오는 건 필연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과 연애가 주를 이루다 보니 경성시대라고는 하나 '새내기 대학 신입생들의 새파란 연애 이야기'가 됐습니다. 소설을 추리적으로 끌고 나가는 힘은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주인공에게 맡겨 그 삶도 비중있게 다루어 균형을 이루려 노력했습니다.
다음 행보가 궁금합니다. 현재 집필 중이신 작품이 있나요?
분단이나 역사는 이제 제가 쓸 분량은 썼다 생각하고요, 현 시대적 문제를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제가 보고 겪고 느끼는 MZ 세대에 시선이 갑니다. 개인의 방식과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삶에 공감합니다. 대상이 젊다고, 아직 과도기라고 쉽게 쓸 소설이 결코 아닙니다. 더 넓고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하죠.
소설가로서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요?
한 나라의 힘은 문화의 힘입니다. 문화 중에서도 문학의 비중이 크지요. 우리가 읽고 정신의 살을 찌운 양식이 무엇입니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문학 아닙니까? 요즘 출판 경향은 독자들의 손이 쉽게 가는 짧고 가벼운, 그러나 오래 남지는 않는 책을 쫓습니다. 음악에도 수많은 대중이 열광하는 대중음악이 있고, 양적으론 비교가 안되지만 귀가 트인 조용한 마니아층이 존재하는 클래식 음악이 있듯이 문학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양쪽 모두 공존하는 건강한 문화 풍토가 조성되면 참 좋겠습니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에도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번역이 되어 해외로 나가면 좋을 작품들이 사장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작가들의 발표 공간이 많아지고 원고료도 현실화되고, 그와 더불어 번역가의 양성 등 문학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그러려면, 작품을 알아보는 안목있는 독자분부터 좋은 책을 선택해 주시는 일이 선행되어야겠지요. 그럼 제풀에 흥이 나서 돈 안되는 일에 영끌하여 작품을 쓰는 이상한 족속이 ‘작가’입니다. 부디 기억해주십시오.
*권현숙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졸업하였다. 『나의 푸르른 사막』, 『인간은 죽기 위해 도시로 온다』, 『인샬라』 등을 집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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