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무해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싶다! - 편지지, 전범선 작가
『비혼이고요 비건입니다』 편지지, 전범선 저자 인터뷰
『비혼이고요 비건입니다』는 비거니즘을 ‘살림’이라 번역하는 두 사람의 ‘집안 살림’과 ‘지구 살림’에 대한 이야기다. (2022.04.05)
작가 편지지와 전범선은 먹보다. 잘 먹고 잘 사는 일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쓴다. 하지만 어느 날 전처럼은 살 수 없게 되었다. 이제껏 먹고 살아온 삶이 ‘나’에게 얼마나 유해한지, ‘세상’을 얼마나 망치는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변하기로 했다. 비건이 되었다. 더 이상 동물을 먹지 않고, 동물 가죽, 동물 실험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지금 더 잘 먹고 더 잘 산다.
『비혼이고요 비건입니다』는 비거니즘을 ‘살림’이라 번역하는 두 사람의 ‘집안 살림’과 ‘지구 살림’에 대한 이야기다. 여러 매체에서 동물, 여성, 생태, 기후. 평등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들에 목소리를 내온 두 사람은 동지이자 연인이다. 사진을 찍고 글 쓰는 ‘편지지’와 노래하고 글 쓰는 ‘전범선’은 결혼 아닌 식구로 산다. 식구가 되어 비건 식탁을 나눈다. 둘이 같이 하니 더 건강하다. 두 사람은 더 나은 나와 지구를 위해 ‘에고 아닌 에코’로서 살아보자 말한다. “사냥꾼이나 죽임꾼보다는 사랑꾼이자 살림꾼으로” 살아보자 말한다.
두 작가님이 함께 『비혼이고요 비건입니다』를 출간하셨어요.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편지지 : 안녕하세요. 서울에 살며 다양한 예술 작업을 하는 편지지라고 합니다.
전범선 : 글 쓰고 노래하는 전범선입니다. 밴드 ‘양반들'의 보컬이고요,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과 함께합니다.
국내 채식 인구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비거니즘이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요, 비건이라고 하더라도 여러 유형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두 작가님은 어떤 방식으로 실천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편지지 : 육고기를 먹지 않는 페스코테리언, 간헐적으로 채식을 하는 플렉시테리언 등 다양한 채식 스펙트럼이 있지만, 그러한 단계로 정체화하는 것은 오히려 또 다른 위계를 만들어내요. 그래서 저희는 하나의 단계에 정체하기보다, ‘비건 지향’이라는 언어 사용을 권장합니다. 비거니즘과 채식 스펙트럼은 해외에서 유입됐지만 ‘비건 지향’은 해외에는 없는 개념이죠. 모두가 잠재적 비건 지향이라고 생각하면 부담 없이 비거니즘을 실천할 수 있어요.
전범선 : 사실 비건에 여러 유형이 있다는 것은 오해합니다. 채식주의자 중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죠. 베지테리언, 페스카테리언, 플렉시테리언 등등. 비건은 그중에서 동물성 제품을 전혀 소비하지 않는, 비교적 엄격한 종류의 채식주의자입니다. 물론 자연식물식을 하거나 과일만 먹는 더 엄격한 부류도 있지요. 한국에서는 피라미드를 그려놓고 여러 층위로 채식주의자를 서열화하기보다는 비건 또는 비건 지향으로 많이 쓰고 있습니다. 가끔씩 젓갈이 들어간 김치를 먹는 사람을 굳이 ‘페스코'라고 정의하는 건 한국의 식문화에서 무의미하니까요.
『비혼이고요 비건입니다』를 보면,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비건 레시피 아홉 가지가 수록되어 있어요. 그런데 레시피에 정확한 계량을 표기하진 않으셨더라고요. 혹시 이유가 있나요?
편지지 : 독자가 레시피에 의존하지 않고, 주어진 것들로 창의적으로 응용해 보길 바라는 마음에 정확한 계량을 지양했어요. 대신, ‘적당히’, ‘조금’, ‘원하는 만큼’ 따위의 수식어로 대체했어요.
전범선 :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이라는 책이 있어요. 레시피에 반대하는 요리책을 표방하죠. 정해진 계량과 수량에 따라 요리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재료에 맞게 실용적으로 응용하는 요리법을 제안합니다. 저의 요리 공포증을 깨준 책이었어요. 『비혼이고요 비건입니다』도 그런 역할을 하면 좋겠네요.
책에 두 분의 반려견 ‘왕손이’이야기도 많이 나와요. 왕손이도 비건 강아지라고요. 비건을 지향하는 견주라면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할 것 같은데요, ‘비견’으로 키우는 데에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편지지 : 고맙게도 왕손이는 가리는 음식 없이 채소를 잘 먹어서 아주 수월하게 동거 중입니다. 오히려 왕손이와 함께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음식을 찾게 돼요. 생식 위주의 식사를 하면 우리 한 입, 왕손이 한 입 나눠 먹을 수 있어요. 비건 사료가 논비건에 비해 가격이 두세 배 정도 높아요. 아직 논비건 사료가 주류라 이 정도 투자는 감수해야 하는 것 같아요. 『비혼이고요 비건입니다』에 반려견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쉬운 레시피도 소개해두었으니 독자분들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전범선 : 고양이와 달리 개는 순식물성 음식만 먹고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과학적 합의가 있어요. 고양이도 논쟁의 여지가 있구요. 개나 인간이나 원래 잡식동물이기 때문에 잘 챙겨 먹기만 하면 문제가 없어요. 우리가 맛있게 먹는 음식을 왕손이와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가끔 비건 음식 중에도 가공 식품이나 자극적인 것을 먹다보면 왕손이에게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죠. 케이크나 감자튀김 같은 거요. 그럴 때는 개도 못 먹는 걸 내가 먹고 있구나, 반성합니다. 자연식물식으로 먹으면 거의 다 왕손이와 나눌 수 있어요.
완벽한 비건은 어디에도 없다. 완벽한 비건 한 명보다, 비건을 지향하는 백 명이 실질적으로 이롭다’라고 말씀하신 구절이 좋았습니다. 비거니즘을 지향하지만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비건을 실천하는 일이 어려워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요?
편지지 : 분명 오래된 식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비건으로 살면 끊임없이 타협하는 순간이 찾아와요. 스스로를 옥죄거나 검열하지 않고, 건강과 행복을 유지하며 실천하는 방식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해요. 동물을 위한 실천인데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면 지속 가능하지 않죠.
전범선 : 비거니즘의 목표는 동물의 고통과 죽음을 최소화하는 거예요. 개인의 도덕적 숭고함을 증명하는 게 아니죠. 어차피 제가 아무리 완벽한 비건이 되어도 줄일 수 있는 소비량은 하루 세 끼밖에 안 됩니다. 세 명이 채식 한 끼 먹는 것과 같아요. 분명한 기준과 지향점을 갖되 각자의 사정과 여정에 따라 지치지 않고 지속하는 게 중요합니다. 제 주변에 번아웃이 온 비건들과 중도 포기한 사람들이 많아서 말씀드립니다. 결국 모두 잘 살고, 잘 살리자고 하는 운동이잖아요.
이 책을 보면 두 분의 견문에 감탄하게 됩니다. 차마 못 다한 얘기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인터뷰를 빌려 하고 싶었던 얘기가 더 있으실까요?
편지지 : 제 삶은 비거니즘을 만난 이후로 완전 달라졌습니다. 매일같이 사랑이 만개하죠. 동물에 고통을 가하지 않고자 매일 의식적으로 섭생하는 습관이 저를 정화해 주어요. 이 사랑을 모두와 나누고 싶습니다.
전범선 : 양반들의 첫 싱글 ‘두무개다리’가 4월 중순에 발매됩니다. 비거니즘과 로큰롤은 모두 사랑이에요. 전자는 세상의 고통을 줄이자는 거라면 후자는 행복을 늘리자는 거죠. 양반들의 음악과 함께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이 책을 읽을 독자 분들께 한마디 해주세요.
편지지 : 인생의 수많은 갈래 중, 제가 누군가에게 영감을 받아 무해한 삶을 지향하기 시작한 것은 필연이자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은 독자에게 조금이나마 귀감이 되어 함께 같은 가치를 공유하면 좋겠습니다.
전범선 : 잘 먹고 잘사는 것과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죽임의 문명이 강요하는 잘먹기와 잘살기는 끝없는 욕망과 착취와 정복을 수반합니다. 무해하게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여러분께 이 책을 바칩니다.
*편지지 카메라를 들고 지구를 유랑하는 낭만적 유목민. 더럽고 아름다운 것들을 수집한다. 서울에서 자랐고, 발리를 오가며 살았다. 바다 근처에 있을 때 가장 기운이 난다. 베란다 텃밭을 가꾸는 도시농부이자 모델, 사진가, 작가, 현대미술가, 예술 감독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활동한다. 개인전 [여성:서사](2020)를 열었고, 그룹전 [반려 기계를 향한 청신호](2022)를 기획했다. *전범선 글 쓰고 노래하는 사람. 밴드 ‘양반들’ 보컬이자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 자문위원이다. 로큰롤과 비거니즘 모두 살리는 일이라고 믿는다. 느낌을 살리고, 기운을 살리고, 생명을 살린다. 하지만 집안 살림은 아직 실력 미달이다. 참된 ‘살리미’로 거듭나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 중이다. 저서로는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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