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내 책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책
오은의 옹기종기 (168회) 『안간힘』, 『걸어 다니는 어원사전』, 『이해인의 말』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0.12.31)
프랑소와 엄: 안녕하세요? 2021년, 새로운 마음으로 화이팅 할 프랑소와 엄입니다!(웃음) 제가 왜 이런 화이팅 넘치는 인사를 했느냐면 오늘 가지고 온 책에 실린 명언 때문이에요. “제가 하나 터득한 진리는 일부러 명랑하게 살지 않으면 남한테 부담을 준다는 겁니다.” 이 문장에 꽂혀서 명랑해지려고 노력 중이에요.
불현듯(오은): 오늘 주제는 ‘내 책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책’이에요. 정말 어렵더라고요.
캘리: 정말 어렵지만 정말 욕심나는 주제였어요.
유병록 저 | 미디어창비
이 책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이 책은 읽을 때마다 약간 다른 사람이 되는 느낌이 있어요. 전에 이슬아 작가님이 글쓰기가 내 속에 나만 너무도 많지는 않게, 다른 이의 눈으로도 세상을 보자고 말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저는 그 말이 독자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라는 생각해요. 쓰기만큼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자기를 통과한 글을 써냈다면, 그 책을 정말 깊은 마음으로 읽는 사람 역시 나 바깥을 상상하게 되지 않나, 하고요. 그런 책이 나에게 몇 권 있다는 게 제게는 큰 용기이고 힘인데요. 이 책은 그런 책 중 하나예요.
유병록 시인은 시도 쓰시고, 책을 편집하는 편집자이기도 해요. 그리고 아들을 잃은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이 산문집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많이 담겨 있는 책이에요. 시인의 표현에 따르면 '누가 누구를 이해하고 감싸 안을 만큼 회복되지 않은' 그런 사람이 많은 순간에 어떤 마음을 갖고 안간힘을 쓰는지, 그 안간힘으로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주는데요. 아내와 싸움이 잦아져서 힘들어하기도 하고요. 혼자 비명을 지르면서 울지도 하고요. 뜻밖에 전시나 책에서 위로를 받기도 해요. 그런가 하면 아내와 방송댄스를 함께 배우는 장면도 나오고요. 이런 생활하는 모습,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참 중요하게 느껴졌어요.
출간 당시 <채널예스>와 한 인터뷰에서 책의 제목 ‘안간힘’이 마치 ‘인간의 힘’처럼 읽혔대요. 너무 좋죠? 인간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 생활하는 사람이 이 책에는 있고요. 새해 첫 방송 첫 소개라 너무 무겁게 이야기가 전달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긴 했는데요. 저마다의 사건을 비교할 수는 없고, 각자가 갖고 있는 삶의 무게가 있잖아요. 그 무게가 너무 힘들 때가 분명히 찾아오고, 너무 자주 찾아올 때도 있을 텐데요. 그런 날에 이 책을 같이 읽고, 인간의 힘을 떠올리면서 함께 걸어 나가보자는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마크 포사이스 저 / 홍한결 역 | 윌북(willbook)
저는 어린 시절 국어사전을 보면서 단어들을 발견하다가 사전을 좋아하게 됐는데요. 이 책의 저자도 똑같아요. 옥스퍼드 사전을 선물 받은 후 줄기차게 한 길을 걸어왔다고 합니다. 작가이자 언론인, 교정인이며 어원전문가로 오늘도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저자 소개가 있어요. 이 책에서 다루는 단어들은 영어 단어이기 때문에 우리와 멀기도 하고, 생경한 단어인데요. 무엇보다 작가의 입담이 너무 좋아요. 머리말에 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분도 빠져들 거예요. 친구와 비스킷을 먹는데 친구가 비스킷의 어원을 물어봤대요. 그러면 간단하게 대답할 수도 있을 텐데 계속 보충설명을 한 거죠. ‘biscuit’의 ‘bi’는 ‘bicycle’이나 ‘bisexual’에 들어있는 ‘bi’와 똑같다면서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깊이 들어갔더니 결국 친구가 줄행랑을 쳤다는 거예요.(웃음)
이런 이야기도 있어요. 구름과 하늘이 어떻게 다른지 우리는 알죠. 하늘이 있고, 거기에 구름이 간혹 떠 있잖아요. 그런데 ‘sky’라는 단어는 바이킹들이 원래 구름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었대요. 왜냐하면 그때의 영국은 하늘이 그냥 구름이었기 때문이에요. 또 ‘dream’의 원래 뜻이 ‘행복’이래요. 그러면서 작가는 꿈을 이루는 것, 행복을 달성하는 것 모두 쉽지 않다면서 모두 맞닿아 있는 거라고 분석해요.
제가 사전류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하겠다는 마음 보다는 그냥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가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거든요. 그런 여러 가지 면들이 이 책에 담겨 있어서 좋았어요.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특히 시를 쓰는 사람이잖아요.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늘 단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 얼마나 차별적인지, 얼마나 다양한 뜻을 갖고 있는지 늘 예의주시하고 사려 깊게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데 관심에 관심이 더해지면 어원까지 이르게 되는 것 같고요. 어원을 알면 우리가 쓰지 않는 단어도 생길 거고, 살려낼 수 있는 말도 생기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아마 제 책장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 같아요.
이해인 저 / 안희경 글 | 마음산책
연말에 선물 못 챙긴 분들이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될 때 고르면 좋을 책이기도 하고요. 마음산책 출판사의 말 시리즈는 워낙 디자인이 예뻐서 인테리어용으로만 사도 괜찮을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오은의 옹기종기>에 이해인 수녀님을 모시고 싶었는데요. 수녀원에 노령 수도자 분들이 많이 계시고, 코로나 문제도 있고 해서 외부활동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쉽지만 그래서 오늘 이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책은 안희경 작가님이 이해인 수녀님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얘기를 담은 책이에요. 부제가 ‘수도 생활 50년, 좋은 삶과 관계를 위한 통찰’이고요. 수도자의 삶이 나와는 먼 얘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충분히 좋아하실 책이거든요. 수녀님이 아주 솔직하셔요. 예전에 실수했던 일들, 작은 에피소드 등이 아주 많이 담겨 있어서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나 혼자 갖고 있는 여러 고민도 있지만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아주 좋고, 행복할 때는 그 어떤 힘듦이나 아픔도 회복될 때가 많잖아요. 이 책에 담긴 수녀님의 다양한 이야기들, 작가 활동에 있었던 사건들, 항암 치료 에피소드 등이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크게 와 닿았던 내용이 ‘겸손’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저는 누군가 겸손하게 말하고, 편안하게 해줄 때 너무 큰 감사를 얻거든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조금만 더 겸손해지고, 조금만 더 낮은 자세로 대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충고를 할 때 이해인 수녀님은 그것을 쪽지로 할 것인지 말로 할 것인지도 계획할 필요가 있다고 하시거든요. 상대편 반응에 충격을 받았다면 일단 그 자리에서는 재차 따지지 않고 평소처럼 대하라고요. 그러면 그때부터 상대도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는 거죠. 사람마다 지내온 경험이 다르고, 영혼의 빛깔이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 맞도록 나를 깨워서 연구해야만 우정을 키울 수 있다는 얘기도 좋았는데요.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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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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