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순 “사람을 움직이는 건, 결국 사랑이에요”
그림책 『나는 귀신』 펴내
행복해서 웃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그 옆에 있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그게 아마 제가 그림책을 만드는 이유의 절반쯤은 해당하지 않나 싶어요. (2020.09.23)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아 사라져 가는 소년이 있다. 왁자지껄한 군중 속에서 홀로 희미한 배경이 되어 가는 소년의 곁으로 귀신이 찾아와 속삭인다. “나랑 놀래? 귀신이 되는 법을 알려 줄게.” 소년은 자신에게 손 내밀어 준 유일한 존재인 귀신으로 인해 눈부신 변화를 맞이한다. 고정순 작가의 그림책 『나는 귀신』은 포개지다 마침내 번져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는 이 책을 두고 “‘어둠의 그림책’ 또는 ‘변증적 그림책’이라는 방향에서 고정순 작가가 하나의 길을 열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혼자였던 소년이 둘이 되고, 그 둘이 셋이 되고, 마침내 모두가 되어 활짝 웃는 장면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2016년 펴낸 산문집 『안녕하다』에서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한 ‘나만의 그림책’ 만들기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봤어요. “모두 나를 싫어해요. 그래서 난 귀신이 되었어요(169쪽)”라는 그림을 그린 ‘형준이’의 사연이 이 책의 모티프가 아닐까 생각했는데요.
맞아요. 제가 2018년에 펴낸 『철사코끼리』를 제주도에 가서 만들었는데요. 그 책을 만들러 제주도로 떠나기 바로 전 날, 불광출판사 편집자에게 전화가 왔어요. 같이 그림책을 작업하고 싶은데, 만나서 상의를 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제주도에 갔다 와서 뵙기로 일정을 잡고, 『철사코끼리』 작업을 마무리 지은 뒤 만나게 됐어요. 편집자님이 『안녕하다』에 나온 형준이의 이야기가 좋았다고, 그림책으로 만들어보자고 하셨어요. 그게 이 책의 시작이에요.
출판사에서 먼저 내용을 기획했던 책이네요.
네, 보통은 제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서 더미북을 출판사에 보내는 과정으로 출간 계약이 이루어지는데 『나는 귀신』과 지난 6월 펴낸 『시소』는 처음으로 편집자의 의견에 따라 만든 책이었어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생긴 궁금증이 풀렸어요. 유일하게 두 책은 기존 작품들과 분위기가 달라서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아마 편집자가 제안해서 만든 책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두 책이 연작 느낌이 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거예요. 덕분에 제 작업 스타일을 한번 바꿔볼 수 있었어요. 제가 저를 흔드는 건 한계가 있잖아요. 언젠가 외부의 영향으로 흔들리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였죠. 물론 협업을 하다 보면, 편집자의 조언이 100% 납득되지 않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래서 ‘작가로서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둬야 하는지. 그림책에서 내가 끝까지 지켜가야 할 것은 무엇인지’ 많이 생각하게 된 작업이었어요.
책의 주인공이 된 형준이는 어떤 아이였는지 궁금해요.
목사님 내외분이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가 있는데, 제가 거기서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진행했어요. 형준이는 그 공부방에서 만난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에요. 가정폭력 피해 아동이었고, 또래보다 체구가 작았어요. 그래서인지 늘 총, 칼 같은 그림만 그리더라고요. 아마 그게 자신이 강하게 보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매일 총, 칼 그리기에만 집착을 해서 다른 걸 그리게 해주고 싶었는데, 마지막 수업 때 형준이가 그린 그림이 귀신 이야기였어요.
그 친구의 그림은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귀신이 되는 나라에서 사는 주인공이 다시 사람들을 구하러 가는 내용이었어요. 무리에서 소외된 아이였고, 가정폭력 피해를 당했음에도 이 아이는 사람들의 관심을 원하고, 나아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자기가 구하고 싶다는 걸로 이야기를 마치더라고요. 그걸 보고 ‘아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하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나요.
이번 책 작업을 하면서 형준이를 찾아보고 싶었는데 그 센터가 폐쇄돼서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종종 문화예술인협동조합 친구들과 자선 공연을 다닐 때 형준이가 생각나요. 형준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가 너무 많거든요. 아동폭력 피해자에 대한 뉴스가 나오면 ‘혹시 내가 아는 아이들이 아닐까’ 싶은 순간이 있는데 형준이는 그럴 때 항상 떠오르는 아이예요.
그 이야기로 그림책을 만들자는 제안을 받고 놀라셨겠어요.
네 너무 놀라웠고, 그 내용으로 제안을 주신다는 게 신선했어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죠. 사실『안녕하다』가 참 안 팔렸는데, 그 책을 잘 봐주시는 편집자가 종종 있더라고요(웃음). 산문집 안에서 그림책 소재를 찾는 분이 있다는 게 저에게는 뜻밖이었는데, 지난해에 만난 한 기자분이 들려주신 말씀이 있어요. “『안녕하다』는 고정순 작가가 앞으로 낼 그림책의 기획서에 해당한다”고요. 돌이켜 보니 정말 그 책에 쓴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그림책으로 풀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완성까지 2년 넘게 걸린 책이라고요. 작업 과정이 궁금해요.
출판사의 제안으로 창작그림책을 만드는 건 처음이라 좀 낯설었어요. 초반 작업을 해보니, 자꾸 어른 취향의 그림책이 나오더라고요. 제가 보편적인 아이들의 모습을 담기 보다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에 집중을 많이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내용이 어른스럽고, 난해하다는 게 편집부의 지적이었고 제가 보기에도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책에서는 기존에 제가 하던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서 변화를 주고 싶었는데, 새로운 걸 시도하다 보니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렸어요. 원래 제가 가지고 있던 스타일을 바꾸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어떤 변화를 주고 싶었나요?
제 전작들은 그림이 좀 무겁잖아요. 이번만큼은 어린이 독자의 마음에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요. 드로잉 재료를 주로 사용해서 경쾌함을 주고, 의도적으로 아이들에게 친숙한 그림을 넣으려고 시도했는데, 여전히 제가 가진 무거움을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크레파스, 색연필 등 아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재료로 그림을 그리셨던 거예요?
네, 아이들을 좀 꼬셔보려고요(웃음). 저는 어린이 독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사실 『가드를 올리고』를 만들 때, 기획 단계에서부터 어린이들의 손을 놓았거든요. 그림책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그 책은 여러 번 인생의 파고를 만난 어른들에게 주는 이야기였지, 아이들을 위한 건 아니었어요. 실제로 『가드를 올리고』를 이해하고, 감응하는 아이가 있다면 슬플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림책이 가진 독자에 범주에 아이들을 꼭 포함해야 하지 않나’라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그래서 출판사에서 이런 제안을 주셨을 때, 반가웠어요. ‘이 참에 아이들을 한 번 꼬셔봐야겠다’고 생각했죠(웃음). 『나는 귀신』은 아이들을 가장 많이 생각하며 만든 책이에요.
다양한 귀신들의 모습이 재밌었어요. 귀신을 그릴 때 참고한 자료가 있나요?
일본 애니메이션도 많이 봤고요.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중에 <신비아파트>라는 만화가 있더라고요. 그것도 봤어요. 제일 많이 참고한 건 <이웃집 토토로>였어요. 거기서는 조그만 먼지들도 생명을 갖고 있잖아요. 그런 게 재밌더라고요.
최대한 아이들이 봤을 때, 즉각적으로 무슨 귀신인지 알 수 있는 익숙한 모습이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어린 조카들에게 알고 있는 귀신이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죠. 오로지 주인공 귀신만 ‘이렇게 생겼으면 좋겠다’라고 제가 생각했던 귀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어요. 그동안 만든 책은 제 안에서 나오는 걸로 이루어진 내용이 많았다면, 이번에는 아이들이 많이 알 것 같은 요소를 넣으려고 애썼죠.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은 무엇인가요?
주인공 친구가 혼자 덩그러니 있고, “나는 점점 사라져”라고 쓴 부분이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제일 먼저 그린 그림인데요. 아이의 앞머리를 길게 내린 게 마음에 들었어요. 처음 캐릭터를 만들 때, 이 아이가 후반부로 가면서 눈이 보이게 설정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와 이거 심오한데?’하고 혼자 좋아했어요(웃음).
잘 안 풀려서 작업이 어려웠던 그림은요?
아이들이 다 같이 놀기 직전의 장면을 그릴 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친구가 된 두 아이가 재미있게 놀고 있고, 나머지가 이를 바라보면서 모두 함께 놀기 직전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내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어떻게 노는지도 고민해야 했고요. 제가 어릴 때 놀았던 방식과 요즘 아이들이 노는 방식은 다르잖아요. 또 저는 어릴 때 주로 혼자 놀았거든요. 벌레를 구경한다거나 하면서(웃음). 그걸 그려 넣을 수는 없으니 뭘 그려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우산 위에 인형을 태우고 노는 모습이 귀엽더라고요(웃음).
실제로 제가 알고 있는 9살짜리 아이의 애착인형들을 보고 그린 거예요. 책 나오니까 아이가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작가님에게도 이 책에 나오는 ‘귀신’과 같은 존재가 있을까요.
실존하는 친구들이요. 그 중에서도 한 친구가 떠올라요. 제 그림책 중 『점복이 깜정이』가 있는데, 거기서 깜정이를 따라다니는 점복이가 제 친구고,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강아지 깜정이는 저예요. 제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 몸이 불편한데, 그럼 사는 것도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별로 안 불편한 거예요(웃음).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친구가 보이지 않게 저를 계속 배려해줬기 때문이었어요. 그 책을 만든 것도,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요. 제가 작업을 하며 지내다 보니 외부와 접촉이 많지 않고, 외로움을 타고난 면이 있는데 그 친구가 저의 그런 부분을 많이 돌봐준 것 같아요.
책에 미처 싣지 못한 작가의 말에 “슬픈 세상에서 사랑만이 구원이라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라고 썼어요.
앞서 말한 그 친구와의 이야기에서 나온 문장이에요. 친구와의 어떤 일화에서 받은 느낌을 페이스북에 썼는데, 편집자님이 그 글을 다듬어 주셨어요. 세상에 단 한 명만이라도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은 죽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 말에 정말 동의하거든요. 이렇게 각박한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관심과 사랑밖에 없는 것 같아요.
편집자님께 “그 글을 보도자료에 써도 되냐”는 질문을 받고, 사실 처음에는 좀 쑥스러웠어요. 너무 멋있는 척 하면서 쓴 말 같아서요(웃음). 그리고 보도자료를 쓰기 전에, 편집자님이 저에게 카톡을 하나 보내셨거든요. “작가님이 슬픈 건, 세상에 대한 사랑이 너무 깊어서 인 것 같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카톡을 공방 가는 지하철 안에서 봤는데요. 너무 커다란 말이라서,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살면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쨌든 같이 일하는 파트너가 저를 좋게 봐줬고, 그 내용을 토대로 이 책을 소개할 수 있어서 기뻐요.
작가의 말의 또 다른 문장은 “단 한 사람에게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 있다면, 그것으로 그림책을 만들고 싶습니다”였어요. 『나는 귀신』을 보여주고 싶었던 단 한 사람이 있다면요?
아마 불특정 다수일 텐데요. 형준이와 같은 상황에 있는 친구들이었으면 해요. 제가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그림책 수업을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그림책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냐”는 거예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보여주는 수업자료가 있어요. 영화 <그녀(her)>에 나오는 한 장면인데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위해서 셔츠 주머니에 카메라를 넣고 다니면서 자기가 걷는 세상을 보여주거든요.
이렇게 단 한 사람에게라도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 있다면, 저는 그게 좋은 소재라고 생각해요. 흔히 독자를 고려하고, 더 많은 독자를 품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물론 그것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에요. 대중에게 다가가는 건, 무척 어렵고 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는 분명 소수가 있거든요. 저는 개인의 소수성에도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행복해서 웃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그 옆에 있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그게 아마 제가 그림책을 만드는 이유의 절반쯤은 해당하지 않나 싶어요.
다발성통증증후군을 앓고 계시다고 알고 있어요. 요즘 건강은 좀 어떠세요?
아주 좋지는 않아요. 지병이 생긴 지 20년 가까이 되다 보니, 합병증이 많이 생겼거든요. 대부분 난치성 질환이에요. 뭐든 하나라도 낫거나 멈춰야 할 텐데 쉽지 않네요. 또 제가 몸을 살뜰히 돌보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요즘 좀 빨간 불이 켜진 것 같아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통 하루가 어떻게 흐르나요?
제 별명이 ‘칸트’예요(웃음). 정확하게 움직입니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자고, 몇 시부터 청소하고, 작업하는 시간이 딱 정해져 있어요.
집을 보고 짐작했어요.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해서요(웃음).
맞아요(웃음). 경미한 결벽증도 있고, 루틴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작업량이 많아서 종일 일을 하죠. 주로 오전에 글을 쓰고 밤 늦게 그림을 그려요. 교대 없이 돌아가죠(웃음). 저는 하루에 2~3시간 밖에 잠을 안 자거든요. 언제부터인가 일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혼재되어 흘러가는 느낌이에요.
제가 작가가 되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렸어요. 스물 여섯 살에 그림책 작업을 시작해서 서른 아홉 살에 첫 책이 나왔으니까요. 그 사이에 무척 힘들었고, 중간에 계약이 엎어져서 마음 고생을 한 적도 많아요. 어렵게 작가가 되었다는 연민이 있다 보니, 스스로 작업에 좀 매달리는 편이에요. 지금도 “당신 책은 출간할 수 없다”며 어떤 출판사에서도 제 원고를 받아주지 않을까 봐 걱정될 때가 많아요.
아직도 그런 불안이 있으세요?
네 불안감이 크죠. ‘앞으로 더 이상 출간 기회를 얻지 못하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가끔 편집자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이 얘기를 하면 다들 놀라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지금은 너희들이 나를 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 시들 거 아니야(웃음)!”
그림을 그리기 전부터 막막해지는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빈 도화지를 볼 때도 그렇고, 워드 창을 켜놓고 컴퓨터 커서가 깜빡이는 것만 봐도 두려울 때가 많죠. 제가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게 인터넷 서점 판매지수 검색하는 거예요(웃음). 불도 켜지 않고 그거부터 검색해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저와 비슷한 시기에 책을 낸 다른 작가 것도 찾아보죠(웃음). 가끔 주변에서 “이렇게 어두운 책 만들면서 팔리길 바라냐”고 하는데요. 그만큼 독자들의 반응에 민감해요. 판매 부수는 무척 신경 쓰는데, 어떻게 해야 잘 팔리는 지는 모르겠어요.
그럼 리뷰도 자주 찾아보시겠네요.
네 많이 봐요. 『나는 귀신』의 경우에도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책이다”라는 리뷰는 여전히 찾기가 힘들었는데요(웃음). 그래도 인상적인 이야기가 두 가지 있었어요. 하나는 제가 아는 친구인데, 고등학교 때 왕따를 당해서 이 책이 자기 이야기처럼 느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 글을 읽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또 하나는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께서 SNS에 남겨 주신 서평이에요. 이 책을 읽고 “주먹 울음을 울었다”고 쓰신 대목에서 정말 감격했어요. ‘아 내 그림책으로 김지은 선생님을 울렸구나’하면서(웃음).
저도 트위터에서 그 서평을 봤어요. <채널예스>의 칼럼 ‘김지은의 모두 함께 읽는 책’에서 작가님의 『엄마 왜 안 와』를 추천해주시기도 했는데요.
네, 봤어요. 그 책은 김지은 선생님이 페미니즘 관련 수업을 할 때 참고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평론가라는 아우라가 있어서,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하나에 긴장하게 될 때가 있는데 리뷰를 보고 너무 좋았어요.
그동안 강연으로 독자를 가까이에서 만나셨잖아요. 기억에 남는 독자의 반응이 있을까요?
두 분 정도가 떠올라요. 한 분은 중증장애를 앓고 있는 딸을 키우는 어머니였어요. 딸이 새끼 손가락 하나로 글을 쓰는데, 제 책 『가드를 올리고』와 『철사코끼리』를 보고 위로를 많이 받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철사코끼리』의 마지막 장면에서 종이 울리거든요. 그 장면을 보고 “우리 딸도 언젠가는 사람들을 울리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얼마 전 『시소』 출간 기념 강연에서, 편집자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책이라고 이야기했더니 실망했다는 분이 계셨어요. 작가가 다 만든 게 아니라는 이유로요. 그래서 제가 “그동안 글, 그림 모두 내가 완성한 책들도 편집자 없이는 결코 나올 수 없었다. 편집자는 작가와 협업하는 존재다”라고 말씀 드렸어요. 실제로 저는 편집자 의존도가 높은 작가예요. 편집자 없이는 절대 책을 못 만들죠. 사실 ‘이게 실망스러운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반 독자들이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 잘 인식할 수 없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예술을 너무 멀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천재이거나 대단한 사람, 신의 영역에 가까이 있는 사람만 한다고 여기니까요. 그게 저는 별로 좋지 않게 느껴져요. 그러니까 예술가가 돈 얘기를 하면 ‘작가가 왜 돈을 밝히지?’라고 생각하잖아요. 원래 금융가들이 모이면 그림 얘기하고, 작가들이 모이면 돈 얘기 하는 건데(웃음). 예술을 신성시 하는 게, 예술이 대우 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게 아니라 마치 이 세계에 없는 무언가를 지칭하는 것처럼 이물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림책을 만드는 행위는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저도 한 마디로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데요. 단순히 작가가 되고 싶어서 직업적으로 접근을 했다면 다른 일도 충분히 많았을 텐데, 왜 하필 그림책 작가에 그렇게 매달렸을까? 싶어요. 아마 저의 욕구겠죠. 글, 그림을 함께 하는 작업이라는 매력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매체니까요. 하고 싶은 말이 좀 줄어들어야 작품을 덜 만들 텐데, 해가 거듭할수록 하고 싶은 말이 더 생기더라고요(웃음). 내 안에 있는 말들을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그림책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어린 시절이 좀 남달랐거든요. 이 책에 나오는 아이처럼 사람들에게 이해 받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난독증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학습장애를 겪었고요. 모든 게 평범한 기준에서 조금 떨어지다 보니, 제가 가진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몰랐던 시간이 꽤 길었어요. 그때 쌓인 것들이 그림책으로 풀어지는 것 같아요. 그림책은 저의 또 다른 언어인 거죠.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이 있나요?
장기적으로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요즘 사회 현상 중, 제가 신기하게 보고 있는 게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이에요. 어떤 사안이 있으면 온라인 상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융단폭격을 가하고 오잖아요. 그런데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아요. 이에 대한 이야기를 우화로 풀어보려고요. 최근 ‘조국 사태’나 ‘박원순 시장 사건’ 등을 보면서 사람들의 모습이 좀 놀라웠거든요. 사건의 원인과 결과도 중요하지만, 이걸 풀어가는 모습을 보고 언젠가는 나도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이야기의 구성은 성경책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제가 종교는 없지만, 종교에 대한 관심은 많거든요. 특히 작가가 된 이후로 성경책을 읽으며 가끔 그림책에 대한 소스를 얻는 편인데, 괜찮게 생각했던 몇몇 이야기를 사회 현상과 묶어서 우화집 같은 책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가까운 미래에 출간될 작품이 있을까요?
곧 나올 책들이 몇 가지 있어요. 하나는 청소년 노동자의 죽음에 관한 그림책이에요. 제가 고등학교 때 직업학교를 다녔는데, 그 당시에도 실습 현장에서 죽은 친구들이 있었어요. 계속 반복되는 현실에 대해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으로 그린 책 작업이 거의 끝나서 내년쯤 나올 예정이고요.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님 초기작의 삽화를 그렸는데, 곧 출간될 것 같아요.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아이들이 서로 끌어안고 고난을 이겨나가는 내용으로, 코로나 시대에 힘이 될 책일 거예요.
마지막으로 『어느 늙은 산양 이야기』라는 책이 나올 텐데요. 아픈 산양이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내용으로, 저를 많이 투영했어요. 죽음에 대해 유쾌하게 생각해보고 싶었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웃음).
앞으로 『나는 귀신』을 보게 될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쑥스럽다고 말하면서도, 독자들을 만나면 이 책에 ‘슬픈 세상에 사랑만이 구원이다’라고 사인을 해요. 이 말이 제일 하고 싶어요. 아무리 여유가 없어도, 사람이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주변에는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아주 많거든요. 그들을 품고, 도와주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번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제가 지역아동센터에서 형준이를 비롯한 여러 아이들과 그림책 수업을 할 때도, “요즘 굶는 사람이 어딨어” 라는 말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실제로 하루에 한 끼도 못 먹고 굶는 사람들 있고요. 매 맞고 자라는 아이들도 있거든요. 우리가 모를 뿐이지, 그늘 속에서 외롭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번쯤 떠올려 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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