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걸스 혜림 “사랑, 여전히 배워가고 있어요”
에세이집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
제 삶에 대해 쓰다 보니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라고 결론이 나더라고요. 늘 열심히 헤엄치는 중이라고 느껴요. 정해진 건 없지만 무언가를 찾으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2020.09.11)
“여전히 찾는 중이에요.” 무대 위에서 빛나는 아이돌, 4개 국어를 하는 통번역가, 7년의 장기연애를 지켜온 사랑꾼 혜림이 에세이집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을 출간했다. 모든 것을 갖춘 듯한 혜림이지만, 아직 헤맨다고 말한다. 흔한 겸손 아닐까? 조금 더 다가가 보니, 작가 우혜림은 한 자 한 자 진심을 눌러 적고 있었다. 4점을 넘었던 학점이 조금 떨어졌다며 웃으며 말하고, 사랑하는 이와 보내는 일상이 행복하다는 혜림. 차분히 대화를 이어가며 느꼈다. 단단한 중심이 있으니까 불안도 방황도 솔직하게 말할 수 있구나. “당신의 불완전한 모습도 껴안아 줄게요”하고 위로할 수 있는 거구나. 오래 생각한 마음을 다 털어놓고도 “참, 어려워요”라고 덧붙이는 귀여운 사람. 에세이도 이 대화도 참 혜림답다.
우혜림은 원더걸스 혜림으로 데뷔하여 <2 Different Tears>, <Why So Lonely> 등 수많은 히트곡을 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통번역을 전공하며, 안네 프랑크의 이야기를 담은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은 선하다고 믿는다』를 번역했다. 현재는 학업을 병행하며, 유튜브 채널 <Lim’s Diary>를 통해 팬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혜림의 섬세한 글과 석윤이의 북디자인, 편집자의 수고가 만나 멋진 책이 탄생했어요. 처음 책을 받아보니 어땠어요?
와, 정말 뿌듯했어요. 저는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기만 했으니 결과물이 상상이 안 됐거든요. 궁금해하다가 마침내 완성된 결과물을 보니 기뻤죠. 누군가 책은 작가를 닮는다고 하더라고요. 저를 닮은 책으로 완성된 것 같아요.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건 언제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어요. 연습생 시절, 힘들 때도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위로했고요. 저만의 힐링 방법이었죠. 자연히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는데,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루게 될 줄은 몰랐어요. 꿈 같아요. (웃음)
혜림의 삶이 고스란히 담겼지만, 핵심 주제는 ‘사랑’이에요. 어떻게 정했나요?
처음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편집자님이 “혜림 씨는 사랑에 대한 글을 잘 쓰실 것 같아요”라고 하셨고, 마침 결혼도 했으니 제 시기에 딱 맞는 주제였죠. 또,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사랑과 희망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연예계 활동과 대학 생활까지 바빴을 텐데, 집필 기간은 얼마나 걸렸어요?
여러 활동을 병행하며 쓰느라 1년 넘게 걸렸어요. 심심할 틈이 없었어요.(웃음)
무대 위의 혜림이 익숙해서인지, 글 쓰는 모습을 상상해보고 싶어요. 주로 언제 글을 쓰나요?
일상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바로 글로 옮기는 편이에요. 일단 기록해 놓고 집에 가서 문장을 다듬는 식으로요.
시력 검사를 하러 갔는데 적색과 녹색 빛을 보여주더라. 적색과 녹색의 갈림길을 오가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너와 가까울 때든 멀어질 때든 나는 너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거야. 적색이든 녹색이든 마음이 다하는 날까지 너를 보고 싶어 한다는 거야.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 138쪽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어요.
제 삶에 대해 쓰다 보니 이 문장으로 결론이 나더라고요. 늘 열심히 헤엄치는 중이라고 느껴요. 정해진 건 없지만 무언가를 찾으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혜림의 삶을 표현한 말이네요.
네, 늘 진행 중이죠. 우연의 일치인데, 제가 낸 책에 둘다 ‘여전히’라는 말이 들어가더라고요. 첫 번역서 제목도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은 선하다고 믿는다』예요. 멈추지 않고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다는 말을 좋아하나 봐요.
연예인이 쓴 글이면 화려할 것 같았는데, 솔직해서 공감된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어요. 요즘 위로받을 곳이 흔치 않잖아요. 이 책을 통해서만이라도 힐링이 됐으면 했어요. 마치 따뜻한 핫초코를 마시는 것처럼요.
혜림은 1, 2등도 아닌 3등을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과 달라서 의외였어요.
스스로를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저는 경쟁하는 상황이 오면 힘들어하는 사람이에요. 차라리 남에게 1, 2등을 주고 3등을 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해요.
연예계는 1등을 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곳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점이 힘들 때도 있었죠. 매일 얼굴을 보는 친한 동료여도 비교당하는 상황이 생기니까요. 저는 경쟁이 어울리지 않아요. 심리 테스트를 해도 매번 ‘평화주의자’라고 나와요. (웃음)
본인이 생각하는 ‘혜림다운 것’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나요?
계속 찾고 있는 중이지만, 화려함보다 소박한 것이 어울리는 사람이요. 제 책이 겉표지는 화려하지만, 안의 내용은 차분하고 따뜻한 것처럼요. 예전에는 제가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변화가 많은 것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잔잔한 게 잘 맞더라고요.
7년간의 장기연애 끝에 최근 결혼식을 올렸어요. 결혼 생활은 어떤가요?
연애 기간이 길다 보니, 몰랐던 모습을 새롭게 알게 되는 건 없어요. 연애할 때도 크게 숨기지 않았거든요. 달라진 게 있다면, 생활에 안정감이 생겼어요. 이 사람인지 아닌지 고민을 더 안 해도 되고 함께여서 좋은 순간들이 많아요. 같이 영화를 보고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낼 때, 결혼을 잘했다고 느끼죠.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가족끼리 잘 아는 사이였다고요. 부모님에게 오픈해서 하는 연애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어요.
너무 편했어요. 부모님과 남자친구가 함께 밥을 먹고 여행하는 것이 너무 익숙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인 걸 알고 놀랐어요. 저희는 상견례도 안 했거든요. 매일 같이 밥 먹었는데, 갑자기 차려입고 인사하는 게 낯간지러운 거죠. (웃음)
유튜브 채널 <Lim’s Diary>로 결혼식 현장을 공개했죠. 핫펠트의 축가와 태권도 공연까지 너무 재밌더라고요. 당일 떨리진 않았어요?
저도 그게 궁금했거든요. 내가 결혼식 날 많이 떨릴까? 펑펑 울 수도 있으니 당일에 부모님 눈 마주치지 말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요. 그런데 막상 당일이 되니 긴장이 안 되고 굉장히 덤덤한 마음으로 마쳤던 기억이 나요.
원더걸스 멤버들이 브라이덜 샤워를 열어 줬어요. 원더걸스는 혜림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소중한 한 시기를 함께했던 사람들! 예쁜 청춘 시절을 같이 보냈으니까 이해하는 것도 많고, 그래서 서로를 잘 응원할 수도 있어요. 완전히 만들어지기 전의 제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니 정말 각별하죠.
고백을 고민하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건넸죠.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표현했는데 그가 거절하는 것은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사랑을 표현한 것에 성공한 것”(121쪽)이라고요.
사실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건 당연해요. 저도 좋아하는 상대에게 표현하기 전에 두 번, 세 번 고민해요. 결국에는 후회하더라도 해보고 실패하는 게 낫지 하면서 말을 건네죠. 그러면 걱정하는 것만큼 큰 일이 아니었구나 알게 돼요. 일단 용기를 내서 표현하면 내 할 일은 다 한 거고 성공한 거죠. 주저하는 친구에게 힘이 되고 싶었어요.
누구나 연애할 때, 완벽하지 않잖아요. 혜림은 연애 초반에는 애정결핍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어요. 장기 연애를 하며, 달라진 점이 있나요?
한결같이 가족처럼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회복되었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서 한국에는 가까운 가족이 없었는데, 민철 오빠가 부모님, 친구, 연인 역할을 다 해줬어요. 오빠도 처음에는 애정결핍인가 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말하더라고요.
연인에게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 어떻게 확신했어?” 물어본 적이 있다고 했어요. 혹시 본인이 그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답해줄 것 같아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있는 그대로 이해해줄 때, 내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어요. 살다 보면, 저도 안 좋은 상황에 놓일 수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도, 나를 포용하고 사랑해줄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뒷모습에선 한 사람의 긴 여정이 보이는 것 같아.
뒷모습에선 직위도, 외모도, 경력도 아무것도 없어.
뒷모습은 거짓말하지 않아.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 52쪽
민철 님과 MBTI 성격테스트를 하니 정반대의 성향으로 나왔다고요. 혜림은 INFJ(선의의 옹호자)인데, 민철 님은 ENTJ(대담한 통솔자)예요.
저희는 다른 점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안 맞아 하기보다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간다고 생각해요. 다르기 때문에 더 완벽한 짝이 될 수 있어요. 마음의 태도가 중요한 거죠. 예를 들면, 오빠는 직설적이고 저는 심사숙고하는 편이거든요. 제가 속마음을 담아두고 있으면 오빠가 속 시원하게 말하라 하고, 오빠에게는 제가 ‘그렇게 말하지 말고 좀 더 부드럽게 말해 봐’ 조언해요. 서로 없어서는 안 될 사이예요.(웃음)
민철 님은 이번 책을 읽었나요?
네, 원래 웹툰 아니면 책을 안 읽는 사람인데, 정말 열심히 읽더라고요.(웃음) 이번 생일에 오빠가 제 책을 100권 사줬어요. 최고의 선물이었죠.
이 책을 읽는 독자를 상상한 적이 있나요?
굉장히 설레는 질문이네요. 제 또래의 20~30대 여성분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그중에서도 마음이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어요. 제가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따뜻한 글을 건넬 수는 있으니까요.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주었으면 하나요?
천천히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글은 짧지만 생각할 것이 많거든요. 하나하나 글자를 음미하며 읽으면 조금은 힐링이 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꼭 하고 싶었어요. 혜림이 생각하는 사랑은?
가장 순수한 ‘나’로 돌아가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한없이 귀여워지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10년 뒤에는 또 달라지겠죠? 여전히 배워가고 있으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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